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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10호 사원의 지하 통로.
사람이 잘 지나가지 않는 통로의 한가운데에서, 남자와 여자 한 명씩의 화기애애한 목소리가 들린다. 조곤조곤 들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자세히 듣지 않으면 발굴 작업 소리에 묻혀 버릴 정도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매코이 씨.”
“아니, 저야말로 감사할 일입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슈뢰딩거 그룹의 소니아와 제10호 사원의 현장 소장 매코이. 매코이의 얼굴에서 주저하는 듯한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은근히 웃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매코이 씨가 왜 감사하는 거죠? 감사해야 할 쪽은 오히려 저희인데.”
“저희는 돈을 받는 대로 일할 뿐입니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 있죠. 더 큰 돈을 주는 데 고마워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혹시, 그런데...”
소니아는 매코이의 귀에 대고 말한다.
“소장님께서 직접 관리하는 곳은 이쪽 구역뿐입니까?”
“네. 저희 인력 업체에서는 이곳만 관할합니다. 하지만 제10호 사원과 제12호 사원의 현장소장들은 대부분 제가 아는 사람들이죠.”
“어, 그래요?”
소니아의 귀가 솔깃해졌는지, 눈이 확 뜨인다.
“그쪽에서 제시한 액수에 따라, 그 유물이 발굴될 확률은 더 높아질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매코이가 은근히 소니아를 찔러대자, 소니아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다가, 잠시 후 입을 연다.
“그럼 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조달할 수 있는 액수에는 또 한계가 있는지라...”
“그렇습니까,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둘의 대화가 막 화기애애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뭐... 뭐야!”
한참 에곤을 추궁하던 비앙카에게 이 대화가 귀에 들어간다. 안 그래도 열이 받아 있던 비앙카는 다짜고짜 소니아에게 달려든다. 어느 새인가 매코이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 자식,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아니, 왜 그러는 거지, 비앙카?”
“왜긴, 이쪽은 우리 작업 구역이라고! 너희가 뭔데 뺏어 가려는 거지?”
“우리를 탓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잘 알지 않나? 원망할 거면 너희들의 자금력을 원망하라고.”
“뭐야!”
비앙카는 소니아를 향해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 비앙카의 능력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에곤 역시 그 광경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다.
한편, 현애는 미켈에게 문자를 더 보내 보려다가, 미켈의 표정이 풀리자 그만두고 구경이나 신경쓰기로 한다. 미켈이 먼저 가 있는 벽면에 새겨진 양각화에 대해 또 어떤 맛깔난 설명을 할 것인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른손이 갑자기 찌릿거린다?
“아니, 뭐야...”
전류가 흐르는 물건을 만진 것도 아니고, 정전기가 생기거나 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주위에는 전류가 생길 만한 그 무엇도 찾기 힘들다. AI폰 같은 것 말고는. 그렇다면 이 불쾌한 찌릿거림은 대체 어디서 온 거란 말인가...
그러는 와중에도, 찌릿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오른손뿐만이 아니라, 왼손도 찌릿거린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거기에다가 그 찌릿거림은 손목을 거쳐 팔에도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이건 뭐야...”
도대체 어디서 올라왔는지,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를 이 찌릿거림은 잦아들지도 않고, 두 손과 두 팔을 덮으려고 한다. 마치 전기가 흐르는 수조 안에 두 손을 가득 담근 듯한 느낌이, 잦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진다.
도대체 이 찌릿거림은 어디서 온 건가? 분명 2분 전까지만 해도 없던 것이다. 그렇다면, 2분 이내의 무언가가 두 손을 찌릿거리게 하는 것이다.
문득, 전화 메시지에 생각이 닿는다.
재빨리, 현애는 미켈을 보며 손짓한다. 미켈에게 메시지를 보냈으니 미켈이 뭔가 알고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미켈은 반응이 없다...
다시 한번, 손을 흔든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미켈이 돌아본다!
하지만...
미켈은 손으로 X자를 만든다.
“뭐... 뭐야?”
현애가 어이없어하는 중에도, 두 팔의 지릿거림은 점점 선명해져 간다. 설마 아니겠지 싶어서 미켈을 다시 보며, 두 팔을 들어 보인다. 그러자...
미켈의 얼굴이 순간 굳어진다.
미켈이 어찌나 경악했는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미켈의 눈의 흰자위가 다 보일 정도고, 입이 쩍 벌어진 것도 처음 봤다. 그러면서도, 미켈의 입에서는 그 어떤 말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손만 내저을 뿐.
“뭐, 왜 저래? 내 손이 저리는데 왜 자기가 말을 못 해?”
미켈이 문득, 손가락으로 현애의 아래쪽 어딘가를 필사적으로 가리킨다.
“뭐야, 어디를 가리켜? 나보고 어딜 보라고?”
현애는 금방 그 손가락이 향한 방향을 알아챈다. AI폰이다! 낌새를 챈 현애는 재빨리 전시실을 뛰어나가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의 문을 닫고, 저려 오는 손에 힘을 주고서 AI폰을 켠다. 도대체 이 불쾌할 정도의, 손을 쓰지 못할 정도의 찌릿거림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양손에 냉기를 일으켜 본다. 하지만 잘 안 된다. 점점 더 커지는 찌릿거림이 양손에 방해가 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냉기는 둘째치고 온도가 내려가지조차 않는다.
“도대체 왜 이래... 이거 큰일나겠는데...”
찌릿거림은 점점 팔을 타고 올라간다. 거기에다가, 전화를 만지니 더욱 찌릿거린다. 얼핏 보니 전류가 손에서 발산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제는 잡기도 힘드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지?”
지릿거리고 마비되는 느낌의 손을 부여잡고 AI폰을 잡자마자, 화면에 이상한 메시지가 하나 뜬다.
[손이 마비되니 어떤 기분이지?]
“뭐야, 어떤 녀석이 보낸 거야!”
누구에게서 온 건지 모를 메시지가 현애의 전화 화면에 나타난다. 마치 어딘가에서 현애를 훔쳐보고 있는 것만 같다. 주위를 한번 휙 돌아본다. 하지만 여기는 화장실. 지켜보는 눈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해킹 프로그램이라도 깔아 놓은 것인가?
다시 한번, 현애는 점점 저려 오는 손으로 AI폰을 꽉 쥔다.
그러자...
[소용 없는걸, 파울리. 손님들 앞에서 쩔쩔매는 것 같은데, 그 꼴이 볼 만하겠군!]
“잠깐... 파울리라고?”
현애의 머릿속을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 손을 내젓던 미켈!
“아... 조금은 알겠어...”
하지만, 짐작이 가는 건 둘째치고, 이제는 손으로 뭘 만지지도 못하겠다. 찌릿거림을 넘어, 마치 양손 자체가 전류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손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냉기를 일으키기조차도 쉽지 않다. 뭐든 하긴 해야겠는데...
그때다.
마침 현애의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바닥에 흐르는 물, 어디에선가 새어나오는 물 말이다!
“어? 좋아. 이거면 찌릿거리는 걸 어떻게 해 볼 수 있겠는데...”
하지만 손을 뻗어 보려고 하니, 마치 전류가 온몸에 흐르는 듯하다. 감전되는 것 같이!
“으... 으앗!”
바닥에 흐르는 물에 손을 대려다가 실패한 바로 그때.
“자, 기분이 어떤가?”
미리 녹음된 것 같은 이 음성. 아까 전의 메시지도 ‘파울리’라고 한 걸 봐서는 여기를 직접 보고 있지는 않은 건 확실한데, 지금의 목소리를 들어 보면 또 안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도대체 이 목소리의 정체, 뭐란 말인가? 최소한 미켈을 적대하는 목소리라는 건 확실한데!
“손을 못 쓰니까 죽을 맛이지? 너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확실히 그게 읽히는데?”
현애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기로 한다. 목소리를 낸다면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알아챌 것이고, 그러면 현애 자신이 세운 계획도 틀어지게 될 테니.
“어디까지 가려나 보자고. 지금은 허세로 버티고 있는 것 다 아는데, 온몸이 감전되는 듯 전류가 퍼져도 그게 가능할까?”
다시 한번, 바닥 한쪽에서 새어나오는 물을 한번 응시한다. 양팔을 타고 올라가는 찌릿거림을 없앨 방법은, 이미 생각해 냈다. 손이 안 된다면, 저기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거기에 생각이 닿자, 두 발을 어떻게든 비틀어 신발을 벗고는, 양말까지 벗는다. 그리고 양말까지 벗고, 거기에 물을 묻히니...
됐다.
두 팔을 감싼 전류 때문에 좀처럼 발산되지 않던 냉기가, 발로부터 다시 솟아나온다. 순식간에, 잃어버렸던 냉기를 다시 되찾은 것만 같은 시원함이 온몸을 감싼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쯤, 두 팔을 집어삼킬 것만 같이 괴롭혔던 전류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됐다. 누구인지 모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해방이다!
“후...”
길면서도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뭐야, 어째서 느껴지지 않는 거지]
[파울리 이 자식,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또 다시, 적으로부터의 메시지가 현애의 AI폰에 나타난다. 화면을 자세히 보니, 온 화면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매우 특이한 디자인이다. 확실히 현애가 쓰는 메신저는 아니다. 분명 누군가의 초능력이다. 하지만 손을 대서 화면을 보니, 일반적인 메신저처럼 밑에 답장을 입력할 수 있다. 거기에 대고 이렇게 입력한다.
[뭐기는, 머리가 딸리니 알 수도 없겠지]
그렇게 말하고서, AI폰을 냉기가 가득 들어간 손으로 한번 꽉 쥔다. 몇 초만에,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서 온 메시지 화면은 사라진다.
“하, 뭐야. 이 녀석, 전기 속성이었나...”
다시 한번 두 손을 들어본다. 찌릿거리는 느낌은 이제 더는 들지 않는다.
“후, 이제 된 거겠지? 이제 다시 전시실로 가 볼까...”
발걸음을 옮기는 중, 몸에서 전기가 발산되는 느낌이 든다. 마치 현애의 몸 자체가 발전기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뭐야... 에이, 기분 탓이겠지.”
한편, 지하 통로.
“파울리 이 자식, 잘도 내게 굴욕을 줬겠다...”
여전히 아까의 대치 상황이 이어진다. 소니아와 매코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비앙카와 에곤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에곤은 잔뜩 이를 갈고 있다.
“너, 비앙카, 각오해라! 이번에는 쉽게 안 넘어갈 거다! 알겠냐!”
에곤은 분했는지, 앞에 선 비앙카를 보고 괜히 열을 낸다. 그가 화를 내는 대상도, 그가 공격을 받은 쪽도 모두 틀렸지만. 물론 그걸 보는 비앙카도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이다.
“내가 그런다고 전화를 걸거나 할 것 같아? 안 되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뭐, 좋아. 네가 안 하겠다면야 강제로 하게 하는 수밖에는 없지.”
에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비앙카는 또다시 AI폰을 손에 쥐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려고 하고 있다. 자기도 모르는 새, 또다시 말이다. 비앙카의 능력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에곤이, 오히려 비앙카를 비웃고 있다!
“좀 전에 네 입으로 말했지?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고. 하지만, 이제 금방 알게 될 거다. 내 능력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8-14 23:54:14
번지수를 잘못 찾은 상대, 정말 곤혹스럽죠.
그게 사원의 지하통로에서도 그리고 관광지에서도...
현애에 대한 공격은 현애를 미켈 파울리라고 생각해서 가해진 것이었고, 에곤은 분노의 대상이자 공격측을 비앙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고, 진짜 총체적 난국이네요.
이런 번지수 오류, 대체 어떻게 하면 바로잡힐지, 누가 죽어야 할까요? 사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그것도 답은 못 되지만요.시어하트어택
2021-08-15 15:56:59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보다 더 문제인 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작중의 에곤도 그걸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고 있고요.
콘라트도 그랬죠... 자기 적수로 잘못 알고 덤볐다가 최후를 맞이했고요.
SiteOwner
2021-08-16 00:08:56
진짜 불꽃튀는 각축전이라는 것을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발굴현장에서도 온갖 신경전에, 관광객 현애에게도 전기공격.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것을 감전되는 것 같다고 묘사하는 게 정말 일리있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군요.
오해, 정말 번거롭습니다. 그리고 그걸 풀려면 얼마나 큰 대가가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정작 오해가 풀린다 하더라도 오해를 사과하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8-22 20:00:28
오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해소되고 나서도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최대한 만들지 않으려고 조심해도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