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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과 잠시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던 카키자키 선생은, 잠시 후 재림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는 듯, 꽤 여유로운 웃음을 띠며 말한다. 카키자키 선생에게, 이런 일은 이미 몇 번 겪어 본 일이다.
“그래, 네 말이 맞지. 하지만 수업은 1시부터 시작하잖아, 맞지? 그러니까, 1시 정각까지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면 돼. 알겠지?”
“......”
재림은 거기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는지, 그냥 카키자키 선생에게서 시선을 두지 않고서, 그냥 자신이 하던 게임을 계속할 뿐이다. 물론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선생이 없는 교실과 있는 교실은 차이가 크다. 아무래도 선생이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구경시켜 주거나 하기도 부담이 크다.
“에이...”
재림은 불만스러운 소리를 내뱉으며, 시계만 본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부담감이 너무 크다.
한편, 민의 뒤를 이어서 들어오려던 친구들은 교실 안에 카키자키 선생이 들어온 걸 알고는 주춤거린다. 물론 카키자키 선생은 그걸 알고는 교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다 안다니까? 들어와도 돼.”
카키자키 선생의 그 말에 친구들이 다 들어오자, 카키자키 선생은 마치 그 상황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마치 준비해 온 것 같은 말을 시작한다.
“어, 얘들아. 이건 그냥 흘려들어도 돼. 너희들 이따가 경품 추첨 행사 하고 경품을 받고 하는 건 좋은데, 결과에 연연하면 안 돼. 한번에 너무 많은 걸 삼키면 오히려 체하는 거, 잘 알지? 선생님이 하는 말, 너희들 정도 나이면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고...”
다들 무슨 소리인지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재림은 그런 카키자키 선생의 말 역시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건지, 카키자키 선생보고 들으라는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궁시렁거리는 모습이 카키자키 선생의 눈에도 잘 보인다. 물론 선생의 눈에 재림의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저기, 혹시, 재림아?”
카키자키 선생의 그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민을 비롯한 다른 H반 동급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린다. 재림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시선을 피해 가면서 게임을 계속한다. 물론 그 입모양은 변하지 않는다.
“재림아? 왜 그러는지는 잘 알거든? 그러니까...”
하지만 선생이 그렇게 말해도 재림의 기분은 풀리지 않는 건지, 계속 입을 비죽 내밀고서, 시계까지 봐 가며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은 다른 동급생들의 시선을 끌고, 또 불편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건 민 역시 마찬가지다. 민이 재림 쪽을 돌아보다가, 문득 재림과 시선이 마주친다. 재림은 ‘뭘 보냐’는 듯한 시선을 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마치 ‘아쉽다’는 듯 입에서 내뱉는 한숨 또한 보인다.
“에이, 왜 저러냐. 자기 게임 못 하게 한다고 설마 저러는 건가?”
“아닌데. 재림이 저러는 애가 아니잖아. 그냥 창고 같은 데 들어가서 하라고 해도 할 애잖아? 왜 오늘따라 저렇게 하는 건지...”
친구들이 그렇게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는 사이, 수업 벨소리가 울린다.
“에이...”
재림은 그렇게 푸념 섞인 소리를 내뱉지만, 그러든 말든 수업은 시작된다. 민은 또다시 재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옆을 한번 돌아본다. 하지만 지금 재림이 특별히 무언가 특별히 일을 꾸미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선생이 보는 눈도 있으니 딱히 지금은 무언가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수업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다시 앞을 돌아본다.
한편, 그 시간, 로니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조금 전 베카를 놀래켜 주는 작전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거기에다가 다른 사람들도 모여 있을 때 그렇게 되었으니,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다.
“어디, 좋아. 이제 이따가 행사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 준다면, 다들 놀라겠지. 그러면...”
하지만, 로니의 그런 망상은 얼마 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로니의 등을 쿡쿡 찌른다. 돌아보니 같은 반의 바실리다.
“야, 바실리? 너 왜 방해하냐? 게임 대회 연습이나 하고 있지 그래?”
“아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저기...”
그렇게 말하며 바실리가 가리킨 곳은, 교실의 뒷문. 무슨 소리인가 하고 로니가 돌아보니, 다름 아닌 베카가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깜짝 놀라서, 로니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선다. 베카는 로니를 보더니,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한 번 흔들고는 곧장 그 자리를 벗어나서 자기 교실로 가 버린다. 베카가 가자마자, 로니는 금방 그 공손했던 표정을 싹 지워 버리고, 베카를 무시하는 듯한,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바뀐다.
“헷! 뭐야? 나는 또 나한테 뭐라도 하려는 줄 알고! 그건 그렇고, 이따가 경품 추첨하지? 선배라고 봐 주는 것 없어. 지옥을 맛보게 해 줄 테니!”
“야, 로니? 너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바실리의 귀에 그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모양이다. 로니는 얼른 손을 내젓는다.
“네 일 봐, 어서!”
그래도 바실리가 자기 자리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로니를 의식하며 서 있자, 로니는 위협적인 표정을 보여서 바실리를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 그러자마자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린다. ‘에이’ 하는 로니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오후 2시, 미린중학교 운동장에 차려진 가설무대. 동아리 교류행사 마지막 날 행사에 앞서서 경품 추첨이 곧 시작되려 한다. 가설무대를 앞에 두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고, 중간중간에 교사들도 껴 있는 게 보인다. 물론 교사들은 경품을 바라고 여기 온 게 아니라, 학생들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보이는 것이기는 하지만. 교사들 중 한 명이 자꾸만 무대 한쪽에 게시해 놓은 경품의 목록에 눈이 가는 것도 소소하게 눈에 띈다. 자꾸만 경품 목록을 보던 그 교사가 입을 연다.
“아멜리는 왜 이런 행사를 열 생각을 한 거지?”
“어, 모르죠. 자기 딴에는 이렇게 자기 후배들끼리 경쟁을 붙여 놓고 그걸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을지도요.”
“그러게요. 한 선생, 그런데 혹시 선생도 경품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죠?”
“에이, 전혀요.”
한 선생은 그렇게 말하지만, 경품 목록을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는 게 아무래도 옆에 있는 동료 교사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에이, 그러지 말고, 한 선생, 솔직히 말해요. 선생도 실은 저기 경품 갖고 싶잖아요?”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나요?”
“에이, 저는 보이는데요! 뭐, 저런 경품이라면 다들 갖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는 법이죠!”
“그냥 보는 거하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건 다르죠, 산토리 선생.”
“에이, 솔직히 말하라니까요.”
한편, 무대 위에 있는 아멜리는 방송부 후배들과 다른 동아리의 매니저들에게 무언가 전달사항을 말하고 있다.
“이거 다 끝나면 곧바로 밴드부가 여기 나와서 공연을 하고, 그다음은...”
“네, 선배님, 잘 알겠는데, 혹시 뒷정리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방송부가 우선은 최대한으로 할 거고, 그다음에 문제가 되면, 운동부 쪽에서 좀...”
아멜리의 그 말을 듣던 조셉은 또다시 볼멘소리를 낸다.
“선배님, 당연히 수고비는 주시는 거죠?”
“그래, 잘 알겠으니까, 저기 보이는 전광판 좀 무대 뒤쪽으로 대기시켜 놔!”
“아, 알죠! 알죠.”
조셉은 또다시 아멜리에게 은근히 불만을 표하려다가, 이내 그만두고 조용히 아멜리의 지시사항이나 따르기로 한다. 어차피 오늘이면 이 지긋지긋한 일도 끝나기 때문이다. 일단은.
전달사항을 받은 다른 동아리 매니저들이 흩어지고, 아멜리는 무대 뒤로 들어가서 초조하게 시간을 본다. 그러다가, 예정된 시간이 되어 알람이 울린다. 그러자마자, 아멜리는 아주 환하게 웃어 보이며 무대로 나와서, 무대 앞에 모인 동급생과 후배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마치 미리 써 오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을 시작한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동아리 전체 교류행사에 앞서서, 경품 추첨을 진행하겠습니다. 우리 학교의 약 절반 정도가 경품 추첨에 참가해 주셨는데요, 모두 감사합니다. 상품은 제가 미리 공지한 것과 같이, 최신형 슈퍼카 모델과 6박 7일 호텔 숙박권을 비롯하여 여러분이 만족할 만한 푸짐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도 좋습니다. 추첨 방식은 제가 공지해 드렸듯,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좀 평범한 정도의 경품은 룰렛이 몇 번 돌아가면 바로 당첨자가 나올 거고요, 슈퍼카 같은 경품은 맨 마지막쯤에 가 봐야 윤곽이 나올 듯하네요. 무엇이 되었든, 여러분이 원하는 경품이 당첨되기를 바랍니다.”
아멜리는 그렇게 말하고서, 옆에 있는 조셉에게 손짓을 한다. 곧바로 조셉이 무대 뒤쪽의 공간으로 가서 무언가를 꺼내온다. 조셉이 꺼낸 건, 전광판에 표시된 대형 룰렛이다. 룰렛이 계획대로 앞에 차려진 걸 확인하자마자, 아멜리는 동급생들과 후배들을 보고 고무된 표정을 하고 말한다.
“자, 보세요, 보세요! 여러분이 기다리는 경품이, 바로 앞에 있어요!”
그 룰렛을 보자마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당연히, 기대감을 품고 뭐라고 하는 게 다수이고, 일부는 확신감, 그리고 일부는 의심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리고 여기에, 그런 사소한 의심조차도 품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디 보라고. 내가 뭘 뽑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건, 친구들 사이에 껴 있는 재림이다. 재림 역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품 추첨 행사에 응모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를 그 자신감은, 친구들에게 있어 질투심도 유발하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지, 의심이 안 가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야, 너는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러게. 너 그런 말 하는 거 무슨 이상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한 수호는, 재림의 시선을 슬슬 피하며 말한다. 재림은 실실 웃기는 하지만, 수호가 그렇게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 않는다. 사실, 수호에게 재림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너는 그런 종류의 운은 없어서 일부러 건드리지도 않은 것이거든. 무슨 소리인지, 너는 모르겠지만.’
수호는 재림의 옆에서 계속 귀찮게 말하고 있다.
“야, 재림이 너! 똑바로 나한테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데!”
“......”
재림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걸 보던 수호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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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3-11-24 23:59:13
카키자키 선생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주 저렇게 여유롭게 받아넘기는 저 화법은 역시 교육자라 할만합니다.
재림이 그 상황에서 입이 몇 개든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뱉은 말은 있고 주워담기는 이미 처음부터 불가능하니 자신의 말에 속수무책이 되었을 뿐, 게임을 해도 게임을 하는 기분이 아닐 것입니다.
학생들이 자기딴에 딴짓한다고 머리를 쓰지만 교사의 위치에서 보면 훤히 보입니다. 저도 학원강사를 하면서 겪어본 것이다 보니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긴 애들이니까 그걸 제대로 알리가 없겠지요.
로니와 베카는 정말 안 부딪치면서 살지 않으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몰라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과 저런 사이가 되고 싶지 않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역시 아멜리가 연 경품행사는 장관이군요. 학생은 물론 교사까지 혹할 정도면...
상품에 쓴 돈만 하더라도 현실세계의 원화로 따지면 10억원은 그냥 우습게 넘을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수퍼카는 사실 생산라인 자체가 비용 문제상 자동화된 생산라인 대신 숙련공이 조립하고 검수하는 이른바 수제차라서 납기가 늘어지게 되는데 아멜리가 경제력이 압도적으로 커야 하는 건 물론 우선조달가능한 능력까지 보유중이라는 것이니까 아멜리는 그냥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저 정도의 교섭력은 사실 손꼽히는 부호 중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재림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혼자 불행해지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데, 제 인성이 잘못된 것일까요.
시어하트어택
2023-11-26 23:06:07
현실에서는 교권 침해 사례가 꽤 많이 일어나고 있죠. 작중에서 저런 상황까지 가지 않은 건 참 다행이라고 할 수 있죠.
아멜리가 내건 경품의 목록은 조금씩 공개되기는 하겠지만, 꽤 입이 벌어질 만한 것들입니다. 우주선이나 플랜트 같은 수준까지 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요...
마드리갈
2023-11-25 23:38:14
ZARD의 노래인 운명의 룰렛을 돌리며(運命のルーレット廻して)라는 노래가 생각나고 있어요.
게다가, 카키자키 선생의 대응이 정말 의외였어요.
저는 뭐랄까, 문제해결의 최단루트를 좋아하지만 거친 면모도 있는데 역시 카키자키 선생은 달라요.
하여튼 누구를 놀래킨다든지 행사를 어지럽힌다든지 하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요즘 테러를 일으키고도 뇌 없는 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테러조직 하마스가 바로 저런 부류의 인간들의 집합소가 아닌가 싶어요.
역시 견물생심. 욕망은 솔직한 거예요. 죄악시할 필요가 있나요? 교직도 따지고 보면 욕망의 소산인 것을. 그나저나 아멜리의 정체는 정말 뭔지...제가 프로필 이미지로 쓰고 있는 학생회의 일존의 캐릭터 아카바 치즈루처럼 현역 고교생이면서 학생회 임원인 동시에 상품자원 선물트레이딩 투자가인 건지...
재림은 재림(再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어하트어택
2023-11-26 23:17:19
사실 아멜리의 집안 정도면 전체적으로 보면 상위권이기는 하나, 손가락에 꼽을 정도는 아니죠. RZ그룹이라든가, 황실이라든가 하면 정말 누구나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하겠습니다만...
재림의 꿍꿍이는 예상치 않은 방향에서 틀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