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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거기 누굽니까? 줄도 안 서고, 마음대로 막 들어도 되는...”
태연히, 마치 그냥 안전요원이 하는 것처럼 말하려 하지만, 루스탐의 말은 그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없다. 안전요원에게 일부러 말을 걸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스탐에게 생긴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쓰레기가 온몸에 붙어 쓰레기 덩어리가 되어 가던 사람들의 몸에 붙은 쓰레기 더미가, 어느새 모두 떨어져 있다. 멀리 보이는 루스탐의 목표물 또한 마찬가지다. 그 쓰레기들을 다시 붙게 해 보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뭐야, 내가 왜 이걸 쓸 수 없는 거지?”
“사람을 마치 자석처럼 만들어서 점점 힘에 부치게 만드는 능력은 정말 강력한 능력이지. 그런데, 어쩌나? 지금은 그걸 못 쓰잖아.”
루스탐은 그러나 이내 당황하던 조금 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되찾고는, 자신을 기습한 그 사람을 뒤돌아본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모자를 쓰고 유니폼을 입은 한 사람이 보인다. 돌발상황이 발생했지만, 이 상황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이내, 그는 위압적인 표정을 하고서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그 정체 모를 침입자에게 말한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행사장에 마음대로 난입하는 건 퇴장당할 수 있는 사유입니다.”
“못 하겠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루스탐은 그를 흘겨보더니 이윽고 입을 연다.
“괜히 일 커지게 만들지 말고 가십시오. 여기서 당신 인생이 귀찮아지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안전요원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나는 못 하겠는데.”
그 말을 듣자, 루스탐의 눈이 순간 이글거린다. 그리고 그 모자 쓴 남자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인다.
“칭찬하지.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을.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번 이상 그 능력을 쓰지는 못하나 보군. 그렇다면, 이제 각오는 됐겠지?”
“이봐, 큰일이 난다고. 나는...”
“못 들어주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루스탐은 그 모자 쓴 사람을 발로 차서 넘어뜨린다. 그 사람이 넘어지자,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지고, 이윽고 그 사람의 얼굴도 드러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웅성거리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 시간, 리암과 타마라는 신시아의 집 근처로 왔다. 신시아의 집이 있는 곳은 마리나 센터에서는 1km 정도 떨어진 고급 빌라촌인데, 뒤로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맨 꼭대기의 펜트하우스를 사는 데 직장인 30년 소득을 쏟아부어야 살 수 있다는 그 단지다.
“우와, 이런 데는 학교 가까이 있는데도 많이 못 와 봤네.”
“아니, 리암, 여기 해안 쪽에는 널린 게 이런 빌라촌하고 고급주택가잖아? 당장 미린고등학교 쪽도 그런 부촌이고. 너 설마 책만 보고 그런 건 아니겠지? 이미지는 안 그런데.”
“타마라, 날 뭘로 보는 거야? 너도 그렇지만, 알잖아, 나는 명령만 내리는 성격이 아니라고! 나도 이 동네는 처음 와 봐서 그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리암. 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거 내가 잘 아는데?”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리암이 문득 대화방에 나오는 마리나 센터의 그 소동을 보게 된다. 행사장에 가 있는 리암의 친구가 보낸 영상인데, 광장에 쓰레기가 달라붙은 사람들이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눈앞에는 그걸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누가 또 일을 벌인 모양인데. 우리 가 봐야 하나?”
리암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리암과 타마라를 자신이 아는 곳으로 안내하려던 신시아는 리암의 그 반응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왜? 우리가 뭐야? 초능력 방범대잖아?”
“하긴 그렇지.”
그렇게 말하고서, 신시아 역시 방향을 돌려 리암과 타마라가 가는 마리나 센터 쪽으로 따라가려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그렇게 발걸음을 돌리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뭐야, 저기 하늘이 좀 이상한데?”
앞서서 마리나 센터 쪽으로 향하던 타마라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는다. 지금 리암과 타마라, 신시아가 가던 방향에 있는 문제의 그곳에, 신시아가 알려준 것과는 또 다른, 보라색과 주황색의 불빛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거 어떡하지? 마리나 센터도 마리나 센터지만, 여기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은데?”
타마라가 그렇게 말하자, 리암이 곧바로 타마라를 돌아보며 말한다.
“야, 저건 지금으로서는 현상일 뿐이지만, 마리나 센터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우리는 거기를 먼저 가 봐야 하지 않을까?”
리암의 그 말에 타마라와 신시아 모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온 발걸음을 돌려 마리나 센터 쪽으로 향한다. 도중에 신시아가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을 보이자, 타마라는 애써 신시아를 달랜다.
“잘해 봐야 예전에 화제가 됐던 도깨비불 같은 거잖아?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고,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또 우리는 초능력 방범대잖아? 이럴 때일수록 저 사람들은 우리를 더 필요로 하겠지!”
타마라가 그렇게 말하자, 신시아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리암과 타마라를 따라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응? 우리 지금 마리나 센터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거 맞냐?”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리암이 입을 열자, 뒤따르던 신시아가 지도 앱을 꺼내보더니, 다급히 말한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니라고! 지도의 방위가 이상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지도가 갑자기 고장이 난다는 게 말이 되냐?”
신시아의 말에 타마라가 되물으며 자기 폰을 꺼내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하고는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것 같은데. 이거.”
“무슨 함정? 적이 있는 건가?”
“리암, 그 말대로야. 이런 거, 우리 한두 번 겪은 거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리암이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누군가 다가온다는 직감을 하고서.
“이봐, 내가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루스탐이 걷어차서 넘어진 그 사람의 주위에, 어느새 입장객들이 모여들어 있다. 그렇게 모자를 벗은 그 남자는, 아까 메이링과 통화했던, 이번 TCL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타미. 그래서 특히 타미의 팬들이 주위에 많이 와 있다.
“어머, 어머! 어떻게 된 거야? 타미 씨잖아!”
“그래, 저 사람이 뭘 어떻게 한 거지?”
그런 자기 팬들의 반응을 보자, 타미는 곧 어깨를 으쓱거리며 루스탐에게 말한다.
“거봐. 큰일날 거라고 했잖아.”
“얄팍한 수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 방해자!”
“행사 안전요원이 그렇게 지껄이는 것부터가 본인의 본분에는 한참 벗어난 거지?”
타미의 그 말에도 루스탐은 공격하려는 자세를 거두지 않고서, 오히려 타미를 쓰레기 덩어리로 만들 준비까지 마친 상황이다.
“꺼져라, 방해자는...”
그러나 루스탐에게 또다른 방해자가 나타난다.
“찾았네, 3분 안에.”
에밀이 어느새 루스탐의 뒤쪽에 와 있다. 아까 순간적으로 능력이 해제되어 모든 쓰레기가 떨어진 덕분에, 재빨리 발걸음을 재촉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에밀이 말한 건 다분히 허풍이 강하게 섞이기는 했지만, 마침 운이 크게 따라 줬다.
“네가 여기 광장에 있는 사람들한테 쓰레기 붙이고 하던 녀석이냐?”
“거기, 줄 안 서고 뭐 하십니까?”
루스탐은 또다시 능청스럽게, 에밀을 막아서며 말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방해자를 공격하는 루스탐과 안전요원 루스탐은 서로 다른 인격이 한 몸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줄은 서고 말씀하시지요. 이렇게 무단으로 들어오면 곤란하십니다.”
“표는 이미 끊었어!”
에밀은 루스탐의 앞에 표를 보여주며 말한다.
“지금 내가 여기 왜 찾아온 건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시치미 그만 떼고 좀 솔직해지지 그래?”
에밀이 그렇게 나오자, 루스탐은 최소한의 가식도 벗어던진 채 살기를 띤다.
“하, 그러시겠다... 훗, 바보같은 녀석. 나대지만 않았으면 명줄을 재촉하지는 않았을 텐데.”
루스탐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에밀은 마치 다 들으라는 듯 말한다. 이번에도 다분히 허풍을 가득 담은 말이다.
“이봐, 지금 위험한 건 당신 쪽이지 않나? 경찰들이 다들 당신을 잡으러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좀 머리가 빨리 돌아가야 되지 않아?”
“이 자식이!”
금세 다시, 에밀의 다리에 쓰레기들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그것도,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다. 루스탐이 바로 옆에 있으니만큼, 그 힘이 더 강할 것임은 당연하다.
“방해꾼, 그렇게 나대다가 제대로 내 능력의 맛을 보니 어떤가? 뭐, 후회해 봤자 늦었지. 이미, 더 많은 쓰레기들이 너를 향해 날아오고 있거든.”“그래? 그게 네 능력의 최대 단점이지!”
에밀은 그렇게 말하더니, 온 힘을 짜내서 루스탐에게 몸을 날려, 루스탐의 옆에 강하게 들러붙는다. 루스탐은 ‘하’ 하고 큰 숨을 몰아쉬더니, 자신에게 들러붙은 에밀을 뗴어내기 위해 주먹까지 쓴다. 그리고 다시 심호흡을 하며 말한다.
“단점이라고 했겠다. 하지만 그건 자기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지. 그런 건 진작에 대비하고 있었다.”
루스탐의 목소리는 차가워졌다. 그 말대로 이미, 루스탐은 대비를 다 해 놓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에밀을 바닥에 메다꽂자, 에밀에게 쓰레기들이 일제히 날아들어 붙어 버린다. 순식간에 에밀 역시 옆에 있는 안전요원같이 쓰레기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기습은 그럴듯하게 한 것 같지만, 결정력이 부족했지. 그리고 패배했고. 네 탓을 해라.”
루스탐은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목표물을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엇?”
누군가가 갑자기, 루스탐의 뒤통수를 걷어찬다. 그건 다름 아닌 예담. 예담 역시도 때마침 타이밍 좋게 입장 게이트에 다다른 참이다. 루스탐은 뒤를 돌아보더니 소리지른다.
“이게!”
“오, 저기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한편, 민과 친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게이트 쪽으로 이동하던 참이다. 마침 입장 게이트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보던 유가 그렇게 말하자, 토마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이야, 이걸 보고 뜻밖의 수확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토마? 너 하마터면 일을 망칠 뻔한 건 알고 하는 소리니?”
민이 들떠 있는 토마를 보고 마치 핀잔을 주듯 말하자, 토마는 다시 목소리를 높이려다가, 천식 때문에 기침을 하고서 조금 줄어든 목소리로 말한다.
“콜록... 솔직히 내가 판은 다 깔았거든! 고맙다고 하는 게 정상 아니냐?”
“그래, 토마... 아무튼 우선 들어가기나 하자고!”
민은 토마를 어르며 행사장의 다른 게이트 쪽으로 끌어당기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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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4-10-16 20:27:38
루스탐이 안전요원의 자격을 내세우지만 이제 와서 그게 설득력을 지닐리가...
그 협박을 두번이나 거부한 사람은 타미군요. 이전 회차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타미가 의외로...에밀도 가세하지만 역부족이네요. 하지만 역시 아무리 루스탐이라도 뒤에 눈이 달린 건 아니니 저 꼴이 나네요.
리암이 느낀 그 누군가의 추적은 대체 실체가 무엇일지, 저런 게 무섭죠.
시어하트어택
2024-10-20 23:37:36
루스탐이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건 맞지만, 안전요원으로서 활동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니, 그게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은 더욱 낮죠.
SiteOwner
2024-10-19 20:35:06
타미의 화법이 꽤 반갑습니다. 사실 저도 저런 화법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그런 저를 성격이 더럽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안되는 원칙을 구부리는 게 더 나쁠 수밖에 없고 거부하려면 확실히 거부하는 게 도리에 맞으니 그런 화법을 구사해야 할 때에는 그렇게 확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행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플랜B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루스탐은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봅니다. 그의 실패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10-20 23:39:48
루스탐은 안전요원이라는 직업은 표면적인 것이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뢰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평상시같은 상황이면 그게 효용도가 높을지 몰라도 작중 상황과 같을 때는 오히려 실패로 가는 길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