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주택가 소공원. 크기 자체는 동네 공원 정도의 크기지만 입구의 분수와 그 주위로 펼쳐진 대리석 블록, 분수를 둘러싼 장미원, 산책로, 놀이터, 조그만 언덕, 그 위의 정자 등 있을 만한 건 다 갖춘 곳이다.
분수대 앞의 산책로로 들어가는 입구에, 현애, 세훈, 주리와 갈색 머리의 남자가 마주보고 서 있다.
“우선, 우리는 그쪽의 소개부터 듣고 싶은데.”
현애가 세훈, 주리의 앞에 서서 남자를 보고 말한다.
“그쪽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상대할 수는 없잖아? 적어도 이름이라도 알려 주면 좋겠는데.”
“네 말이 맞군. 그럼 소개하지. 내 이름은 ‘파비안’, 보스의 명을 받들어, 너희를 상대하러 왔다.”
“그러셔... 그럼 바로 우리를 상대해 보실까.”
“본격적인 대결 전에, 아까 내가 뭐라고 했지?”
파비안이라는 남자는 바로 싸우려는 자세를 취하는 현애를 제지한다.
“불공정한 승부를... 싫어한다고 했었지, 아마.”
“정답이야. 너희들 중 한 사람과, 1대 1로 승부하고 싶군.”
“그래...”
현애는 내심 자기 자신을 찍었겠지 하며 입 안의 침을 삼킨다. 그런다고 잘 넘어가지지는 않지만. 긴장 때문인지 주위에 찬 기운도 절로 피어오른다.
“음.”
파비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결정한 듯하다.
“공주리랬나? 나와라.”
“나... 나?”
파비안의 뜻밖의 지명에 주리는 머리를 긁는다.
“나하고 싸우겠다고?”
“그래. 나는 공정한 싸움을 좋아하니까. 조세훈은 그냥 남을 강화하기만 하는 능력이니까 나하고 싸우기에는 부적합하고, 남궁현애는 냉기 능력이니까 내게 불리하지.”
그런 건 다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다들 멀뚱멀뚱 서로를 볼 뿐이다.
“네 능력이 나와 싸우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바꿔도 된다.”
파비안의 말에 주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잠시 후 고개를 젓는다.
“그런 건 안되지. 친구들에게 전가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 싸우겠다.”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잠시 주리와 파비안의 사이에 긴장으로 가득찬 침묵이 흐른 후.
“왜 그래? 어서 공격을 시작하지 않고.”
“이미 시작하고 있거든.”
묘한 낌새가, 주리의 발밑에서 느껴진다.
내려다본다.
주리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발 아래에서 뭔가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알 것 같다.
옆의 장미원의 장미에서 뻗어나온 뿌리가, 주리의 발을 감으려고 하고 있다!
“이런 것쯤!”
주리가 발밑을 향해 손을 뻗는다. 뻗어나온 뿌리들이 무거워지는 듯하더니, 이내 땅속으로 파묻혀 버린다. 그것을 보고도 파비안은 웃을 뿐이다.
“제법이야. 내가 선택하기를 잘 했군. 딱 좋아. 마침 네 녀석의 눈도 좋은 눈을 하고 있고!”
“그래... 나도 그러면 봐 주지 않을 거야!”
주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파비안의 발밑에도 뭔가 이상한 기운이 피어올라오기 시작한다. 식물의 뿌리가 올라온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뭐... 뭐야. 이게... 도대체...”
움직이지 못하겠다. 파비안의 발이 바닥으로부터 떼어지지 않는다. 마치 두 발이 끈끈이 풀로 땅에 착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다!
“방금 내가, 봐주지 않겠다고 했지. 그래서 우선 발부터 묶어 놓은 것이고!”
하지만 주리의 말을 듣고도 파비안은 조금 떨기만 할 뿐, 열을 낸다든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든가 하지는 않다. 뒤에 서 있는 현애와 세훈이 봐도, 이제까지 만난 적들의 반응과는 분명 다르다! 그래서 더욱 이질감이 느껴진다.
“과연, 내 예상대로야.”
파비안은 태연히 말한다.
“발부터 묶어 둘 거라는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어. 하지만...”
“하지만이라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는 파비안이 이상했는지, 주리는 무심결에 묻는다.
그러나...
‘아차’ 하는 사이, 주리를 향해 뭔가가 날아오고 있다.
그 느낌은, 뒤쪽에서부터!
“뭐... 도대체...”
돌아본다.
뒤에 서 있는 나무들의 가지가, 어느새, 주리의 등뒤까지 뻗어나왔다!
“이걸 알았어야지. 네가 있는 곳은 숲과 가깝다고!”
또다시 주리가 돌아보니, 어느새 땅에서 뻗어나온 덩굴이 파비안의 발을 감고 있고, 파비안은 땅 위에서 약간 떠 있다!
“내가 분명히,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을 텐데...”
“땅에서 뻗어나온 덩굴은 내 몸이 아니거든!”
맞다... 그러고 보니 파비안은 하나도 움직이고 있지 않다. 오로지 덩굴, 땅속에서 뻗어나온 덩굴만이 움직이고 있다!
주리는 순간 몸을 틀어 장미원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이제 나뭇가지들은 좀 덜 따라온다. 하지만, 다른 게 주리 쪽으로 늘어나고 있다! 장미들, 그것도 줄기에 가시가 있는 장미들 말이다!
“이, 익...”
“어느 쪽으로 가든 너한테는 유리하지 않을 텐데?”
어느새, 파비안이 덩굴을 타고 주리의 옆에 쫓아왔다.
“현명한 선택을 바라지!”
“그래? 현명한 선택이라, 그거 고마운데?”
주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산책로 입구 쪽으로 방향을 튼다. 역시나,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길게 늘어난 나뭇가지들이 일제히 주리를 향해 뻗어온다.
“호오, 그러셔?”
뻗어오는 나뭇가지들을 보고도, 주리는 태연한 얼굴이다. 파비안이 보기에도 주리가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잠시 후,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리를 향해 뻗어오던 굵은 나뭇가지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한다. 나뭇가지들이 점점 포개어지기 시작하더니, 주리의 앞에 점점 쌓이고, 어느새 주리가 그 쌓인 나뭇가지들을 밟고 올라섰다.
“자, 어때? 네가 쓸 나뭇가지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그렇단 말이지...”
파비안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듯 꽁꽁 싸맨 듯한 목소리를 낸다.?
그 시간.
“저 파비안이라는 녀석도 제법이네.”
세훈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주리와 파비안의 싸움을 지켜보며 말한다.
“우리를 분명 처음 보는 것일 텐데, 저렇게 능력을 다 파악하고 약점까지 잡아내다니 말이야.”
“그야, 분명 장 박사가 알려 줬겠지. 안 그래...”
현애는 무심한 듯 말하지만, 끝을 흐린다.
“그것보다도, 왠지 익숙해. 파비안이라는 저 남자,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야.”
“무슨 느낌인데? 본 적도 없잖아.”
“아니, 그냥 느낌만 그래. 내가 헛것을 봤을 수도 있고.”
현애와 세훈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때.
“야! 너희들! 너희들!”
누군가 숨을 몰아쉬며 헐레벌떡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돌아보니, 수영이다.
“어, 작가님 왔어?”
“작가님! 여기는 왜요?”
“아니, 나는 그저 작업 좀 하려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길이었는데, 딱 보니까 너희가 있는 거 아니야!”
수영의 시선은 현애와 세훈보다도, 분수대 너머로 벌어지는 광경에 쏠린다. 바닥에서 식물의 덩굴이 솟아나오고, 나무의 가지가 기괴하게 뻗어 있는 상황 말이다.
“아니, 저 애는 왜 저기서 홀로 싸우고 있어?”
수영은 나뭇가지에 둘러싸인 주리를 가리킨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가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니...”
수영이 고래고래 목소리를 높이며 달려가려는 것을, 현애와 세훈이 몸으로 막는다.
“아니,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잘나신 작가님, 좀 우리 말 들으라니까.”
“무슨 말?”
“지금 우리한테 싸움을 걸어온 녀석이 좀 특이해서, 1대1 싸움을 하고 싶대.”
“1대1?”
“맞아. 주리가 저 파비안이라는 녀석에게 지게 된다면, 그때 네가 나서서 싸우든가 해도 돼. 알겠지?”
“그래...”
수영은 떨떠름했는지 말꼬리를 흐린다.
“자, 보라고! 네가 쓸 만한 나뭇가지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 이쯤에서 그만 항복 선언을 하는 건 어떨까?”
어느새 파비안이 이 주변에서 끌어쓸 만한 나뭇가지는 다 쓴 것 같다. 주리가 무겁게 만들어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나뭇가지들이 2m는 넘게 쌓였다. 그리고 주리는 그 위에 올라서서 파비안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파비안 역시 불안한 건지 묘안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 주리를 올려다보고 있다.
“항복 선언이라고? 아직도 나는 수가 남아 있어!”
“수가 남았다니, 그게...”
주리가 미처 말을 다 마치기도 전...
압박감!
이 압박감은...
풀줄기다!
나뭇가지는 어떻게든 막아내기는 했지만, 땅속에 길게 뻗은 풀의 줄기가 남아 있었다!
“내가 쓸 만한 식물이 남아 있는 한, 나는 얼마든지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파비안은 승기를 잡은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한다.
“나뭇가지들은 전부 썼지만, 아직 땅바닥에는 풀의 뿌리와 줄기가 남아 있었고, 그걸로 너를 이렇게 묶을 수 있게 됐지!”
“이건... 이건 도대체...”
“그래, 수가 남지 않은 건 이제 그쪽 아닌가? 풀줄기를 무겁게 해봤자 압박이 가해지는 건 네 몸과 팔다리고, 안 그래?”
주리가 팔다리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압박이 심해진다. 풀줄기들을 무겁게 해 봐도, 압박이 있는 건 마찬가지!
“이제 승부가 난 거겠지?”
“야! 공주리!”
세훈은 묶여 있는 주리를 보고는 걱정이 되었는지 큰 소리로 외친다.
“저거 정말 위험한 거 아니야? 너희들 보고만 있을 거냐고!”
수영도 현애와 세훈을 제치고 직접 나서려고 한다. 그러나 현애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봐봐. 주리가 지금 어떻게든 할 것 같으니까.”
“뭐... 뭐라고?”
“보라니까? 진짜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하면 저런 표정은 짓지도 않으니까.”
세훈과 수영 모두 본다.
주리는 웃고 있다.
그것도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다!
“이봐, 너 왜 웃냐.”
파비안이 보기 이상했는지 실실 웃어대는 주리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나한테 금방이라도 항복하거나 해야 할 상황인데...”
“아니, 이건 내가 이겼어.”
“그래? 왜 그런지 알려 주실까?”
파비안이 못 믿겠다는 듯 주리를 보고 말한다.
“왜냐면...”
순간!
쿵-
다음 순간.
여기저기 흩어진 블록 조각이 널려 있고, 깊게 팬 자리에는 주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다리로 겨우 버티고 서 있다. 옆에는 파비안이 쓰러져 있다. 두 발이 덩굴에 묶인 채. 순간 무거워진 무게에 짓눌려 일어서지 못한다. 조금씩 몸이 땅속으로 파묻히려는 건 덤이다.
“승부는 났네. 내 몸 자체를 무겁게 하는 건 도박이기는 했지만.”
주리가 깊게 팬 자리에서 올라오며 일행에게 말한다. 그리고 파비안에게 간다.
“어때, 내가 이긴 거겠지?”
“인정한다... 내가 졌고.”
파비안은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한다.
“그러니까 나를 이대로 놔둬라. 그분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으니,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좋으니까.”
“뭐... 뭐?”
파비안의 말에 현애, 세훈, 주리, 수영이 자기 귀를 의심한 건지 서로를 한 번씩 돌아본다.
“아, 안돼!”
주리가 재빨리 파비안에게 걸어 두었던 능력을 해제한다. 파비안은 긴 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몸을 털고 일어난다.
“후... 살려 줘서 과분한 영광이군.”
“그래.”
이번에는 현애가 앞으로 나선다.
“나는 당신에 대해서 좀 알고 싶은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2-18 13:25:50
의문의 남자는 파비안이군요.
1대 1의 공정한 승부를 고집하는 것에서 꽤나 기묘하게 여겨져요. 게다가 3명의 정보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에서도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공포감이 느껴지고...파비안의 능력이 수목을 조종하는 것이다 보니 냉기능력을 가진 현애와의 싸움을 꺼린다는 게 이해되네요. 그런데 주리가 자중을 증폭시키는 도박을 해서 결국 파비안은 패배했네요.
그런데 현애와 이전에 접점이 있는 것인지...그게 또 궁금증을 유발하네요. 대체 현애는 정체가 뭘까요.
시어하트어택
2020-12-25 20:13:03
사실 1대 1의 승부를 진행한다는 설정을 넣고, 또 파비안의 능력을 먼저 설정하다 보니 싸움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나마 가장 적합한 사람이 주리더군요(...).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이지 큰 이유는 없습니다.
SiteOwner
2021-01-28 19:48:01
주리의 역발상에 감탄했습니다.
물론 자칫하면 자승자박일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을 무겁게 해서 상대가 쓸 힘 자체의 기본부하를 증폭시켜버리는 것은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고, 걸렸을 때에는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 것입니다. 초토작전, 청야전술 등으로 일컬어지는, 적이 들어오면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켜 버리는 전술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현애와 파비안은 또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인지...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군요.
시어하트어택
2021-01-31 23:19:16
뭔가를 무겁게 하는 건 주리 본연의 능력입니다만, 그걸 또 자신에게 사용하는 건 저도 처음 생각해 봤죠. 결과는 물론 괜찮게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