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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터즈] Chapter 10: 듀얼. Episode 37

Papillon, 2020-12-20 12:03:01

조회 수
128

오지 않는군.’


부모의 원수라도 바라보듯 소여 백작은 손에 든 잔에 담긴 적포도주를 노려보았다.

오늘은 결혼식. 그의 계획이 최종 단계에 들어서는 날이다.

식만 끝낸다면 보어헤스와의 연합은 성사. 사도야행에서 소여 가문이 우위를 점할 터. 그리고 식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소여 백작의 마음속에서는 근거 없는 불안감이 사라질 줄 몰랐다.


‘3일 뒤 신부를 훔치러 오겠다!’


그 빌어먹을 평민은 그렇게 외치고 모습을 감추었다.

자신만만한 태도와는 별개로 그 선언의 본질은 패배자의 발악. 평소의 백작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비웃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3.

기연을 독식하는 영웅담의 주인공조차 큰 변화를 보이기 힘든 기간이다.

거기에 이미 전적도 있지 않던가?

보어헤스 백작과의 결투 전에도 그 평민에게는 3일이 주어졌다.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처참한 패배.

그런데 그 녀석이 3일 후에 돌아온다? 기껏해야 그 추한 수명이 줄어들 뿐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그날 이후 소여 백작의 뒤에는 늘 정체 모를 불안감이 뒤따랐다.

이해할 수 없고, 근거조차 없는 불길한 예감.

평범한 이라면 이를 무시할 터.

하지만 소여 백작은 범인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인으로서의 감.

소여 백작의 경험상 그것은 그 어떤 예측보다 정확도가 높았다.

그 감이 그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놈을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고.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식 전에 녀석을 말살하고자 했건만.


머저리 놈들.’


사도라는 것을 제외하면 둔갑술사에 불과한 목표다.

전투력만을 고려하면 기껏해야 삼류 무인.

그런데 그런 자를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찾아내?


한 번 물갈이가 필요하겠군.’


로즈마리만 숙청하려고 했건만, 아무래도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일단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지.’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그런 문제를 고민할 시간쯤은 넘치도록 있을 터.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건 그렇고 내 예상보다 많이 모였군.’


그의 시선이 식장에 모인 하객을 향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 없는 군중에 불과하다. 숫자가 조금 많긴 하지만 소여 백작 같은 대귀족의 결혼식이라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적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백작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런 쭉정이 따위가 아니었다.


보어헤스 백작을 제외하고도 사도가 셋이나 모였군.’


크루거와 마이어스의 사도가 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을 초대한 것은 자신.

그들을 포섭하기 위한 준비 역시 끝내는지 오래다.


그런데 설마 그가 올 줄이야.’


여기에 올 거라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사도.

그는 굳이 따지자면 소여 백작의 정적. 이곳에 올 필요가 없는 이다. 오히려 그의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면 오지 않는 것이 옳은 선택일 터다.


그런데 왜지?’


명분과 실리.

그 어느 쪽을 고려해도 이득이 없을 터인데?

마음 같아서는 수하에게 정보를 캐내라고 명령하고 싶지만, 겨우 그 정도로 무언가를 토해낼 만한 자가 아니다.


직접 움직여야겠군.’


그렇게 소여 백작이 움직이려던 찰나.

콰앙-!
하늘 저편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이건?!’


그에겐 익숙하지만, 평소에는 들을 리가 없는 소리.

음속돌파음.

무언가가 소리보다 빠르게 이동할 때 들리는 소음!


놈이 왔단 말인가?’


하지만 대체 어떻게?

놈이 비행 능력이 있긴 하지만, 그 속도는 기껏해야 맹금 수준일 터. 그 정도 속도라면 은밀기동부대 측에서 보고했을 터인데!


어떻게 된 거냐!’


하지만 소여 백작이 당황하든 눈앞에 벌어진 현실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쿠웅-!

벼락이라도 내리꽂힌 것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식장 근처 공터에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퍼져나오는 먼지의 파도.

짙은 흙먼지는 시야를 가리기 충분했지만, 환하게 타오르는 신의 환염은 이 장막 너머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레고르.

꿈의 마녀의 사도.


약속대로 왔다, 개자식들아.”


그가 이곳에 왔다.


?

*** ***


?

아슬아슬했네.

늦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번데기를 모방해 신체를 재구성하는 것은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만 실수했다면 식이 끝날 때까지 끝을 내지 못했을 터.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오래 걸린 값은 한 편인가?’


나는 오른손에서 너울거리는 환염을 바라보면서 투구 아래에서 미소를 지었다.

우화를 거친 내 몸은 단순히 복구된 수준이 아니었다.

변이 당시에 사용한 재료 중에는 신력 역시 존재했다.

본래라면 인간의 몸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힘.

그 힘이 섞여 들어간 신체는 구조가 인체와 같을 뿐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궁극의 육체.

딱히 특별한 능력이 생긴 건 아니다. 하지만 신체 자체의 능력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영역에 도달했다.

근력, 지구력, 내구력, 인지력. 거기에 마력과 신력을 다루는 감각까지!


이 정도면 보어헤스 백작이랑 맨몸으로 치고받아도 내가 유리하겠는데?’


범부 그 자체였던 예전의 내 몸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

물론 신체 능력이 전투력의 모든 것은 아닌 만큼 내가 보어헤스 백작보다 강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어처구니없이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정면 승부가 가능하기만 하다면.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화 이후 극도로 강화된 칠감(七感)이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사도가 다섯이나 모여있다.

다시 말해, 나와 보어헤스 백작을 제외한다고 해도 셋이나 되는 사도가 있다는 말일 터.

저들이 가만히만 있다면 내 마음대로 싸울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상황이 흐르리란 보장은 없었다.


아마 저 중 둘은 크루거랑 마이어스 쪽이겠지.’


같은 카다스 4대 귀족에 속한 가문인 만큼, 그들은 보어헤스 백작의 의지를 존중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문제는 남은 한 명인데.


저쪽은 어떻게 나올까?’


내 편을 들어준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죽을지도 모르겠는걸?’


에스텔과 도주하는 데만 전념한다고 해도 승산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결국, 승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이들의 개입을 배제해야 할 터.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그를 이룰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위축된 태도를 보이면 안 돼.’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간 거기서 끝이다.


약속대로 왔다, 개자식들아.”


그렇기에 나는 조금 허세를 부리며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말했다.

이어지는 잠시 간의 정적.

절대다수 하객의 눈에 당혹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속대로.’


그 단어를 들은 그들의?시선은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제드 소여.

이 자리를 준비한 사내.

그 남자라면 무언가 아는 것이 있을 터.

그들의 시선에 담긴 의문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소여 백작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이 감히!”


다른 귀족들 앞에서 모욕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소여 가의 권위가 떨어졌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내 앞에서 늘 차가운 태도를 견지하던 그는 이번만큼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고소했지만, 여기서 웃음을 터뜨리면 내가 지는 거다.

나는 여전히 삐딱한 태도를 견지한 채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감히는 무슨. 이미 말씀드렸을 텐데요? 결혼식 당일 신부를 훔치러 오겠다고요.”

꼴에 사도라고 오만방자하기 그지없구나! 네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보어헤스 백작에게 쓰러진 패배자 주제에.”

그러니까 설욕하러 온 거 아닙니까? 죽지만 않았다면 결투야 몇 번이든 하는 게 당신네 귀족 아닙니까? 명예회복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죠.”

네놈!”

그보다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군요, 보어헤스 백작님. 제 복수전에 응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설마 꼬리만 개처럼 도망치시진 않으시겠지요? 그 대단하신 보어헤스 가문의 주인께서 말이죠.”


보어헤스 백작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에스텔이 당황한 것이 느껴질 정도로 건방져 보이는 태도.

하지만 듣고 있던 그녀 역시 내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결투.

이 나라의 법에 따르면 결투란 두 사람 사이의 숭고한 대결. 그 어떤 사유가 있어도 타인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보어헤스 백작이 내 결투 신청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다른 사도들은 끼어들 명분을 잃을 터.


, 빨리 대답해라.’


나는 잠시 보어헤스 백작을 빤히 바라보았고,


하핫! 흐하하하하!”


보어헤스 백작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뜻 보면 유쾌하지만 달리 보면 노기가 깃든 기묘한 웃음.

그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않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얼음 가면을 쓴 살인귀처럼 차갑게 굳은 표정.


좋습니다. 당신은 늘 예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군요.”


내 결투 신청에 동의하면서 그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강림!”


쿠웅-!
보어헤스 백작 주변의 공간이 신력으로 물들며, 그의 육신 위로 사도의 갑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산맥의 지배자, 샤우그너 판의 사도.


,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그의 선언과 함께 결투가 시작되려는 순간,


그만!”


소여 백작이 분노에 찬 채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뭐지?’


설마 결투를 방해하려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여 백작은 속으로야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자신의 권위를 중시하는 이.

그런 남자가 결투에 끼어드는 것처럼 자신의 명예에 흠집을 낼 만한 일을 할 리가 없을 텐데?


억지라도 쓸 생각인가?’


다른 이들 역시 당혹스러운지 모두의 시선이 소여 백작의 입에 집중된 순간. 백작은 예상외로 상식적인 이야기를 토해냈다.


이곳에서는 싸울 수 없소. 여기 있는 이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오?”

그건.”

그대들이 결투하는 거야 자유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식이 끝난 이후 따로 날짜를 잡으시오.”


그런 소여 백작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젠장,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확실히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사도는 일반적인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 그런 사도끼리 전력으로 결투를 벌였다간 이곳은 폐허나 다름없게 될 터.

마도기사나 강력한 전투마법사라면 모를까, 대다수의 평범한 귀족들은 이 자리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싸워야 해.’


식이 끝나버리면 에스텔은 보어헤스 백작의 부인. 그렇게 되면 보어헤스 백작은 결투를 받아들일 이유가 사라진다. 설령 결투를 거부한다고 해도, 조건 자체가 아내의 해방이니 오히려 내 쪽이 욕을 먹겠지.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내가 해결하도록 하겠네.”


그렇게 고민하던 전혀 예상치 못한 이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의 근원은 한 명의 노인.

그는 어린애처럼 키가 작을뿐더러, 장작처럼 마른 몸을 지팡이에 기대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그저 평범한 병약 노인에 불과할 터.

하지만 노인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본 순간 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사도!’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신력이 느껴지던 존재.

노인을 부축하듯 그와 함께 이동하는 여인은 그저 노인을 돌보는 데만 관심을 보일 뿐, 그 무엇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저 노인은 누구지?’


대체 누구길래 사도가 저렇게 극진하게 모시는 거지?

그런 내 의문을 해결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소여 백작이었다.


무슨 생각이지, 쿠엔틴 회장?”


소여 백작은 씹어 뱉듯이 노인의 이름을 읊었다.

자칫하면 놓칠 정도로 낮고 조용한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름은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다.


쿠엔틴 회장?!’


왕국 길드 협회장!

모든 마법사 길드를 자신의 발아래 두고 있는 남자.

작위는 없을지언정, 그 영향력은 어지간한 대귀족 못지않은 남자다.


하지만 이 남자가 왜 여기에?’


소여 백작과는 정적 관계일 텐데?

쿠엔틴 회장은 소여 백작의 질문에 잠시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 재미있는 친구로군. 배짱이 두둑한 것이 꼭 젊었을 때의 나를 닮았어.”


정말 이 양반은 뭘 원하는 거지?

표정만 봐서는 정말로 호의에 불과한 것 같은데…….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네. 그저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결투가 미뤄지는 걸 안타깝게 여길 뿐이지. 결혼식장에 들이닥쳐 신랑에게 결투 신청을 하는 사내라니. 고전 연애담에서나 볼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렇게 말한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축하는 여인에게 시선을 향했다.


준비하게, 스테파니.”

, 회장님. 강림.”


쿠엔틴 회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여인, 스테파니는 곧바로 사도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미줄을 연상시키는 문양이 새겨진 은백색 날렵한 갑주를 걸친 존재.


[아틀락나차의 사도인가?]


이드라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스테파니의 손에서 뻗어져 나간 신력의 실은 나와 보어헤스 백작의 위치를 중심에 둔 채 원형을 그렸다.

이윽고 완성된 것은 돔 형태의 투기장.


억지로 부수려고 한다면 모를까, 여파 따위가 주변을 부술 일 따위는 없으니 안심하게나.”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투기장 형태의 구조물에서 느껴지는 신력은 도저히 경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 그러면 마음껏 싸워보게나.”


쿠엔틴 회장의 말에 소여 백작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윽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더는 명분이 없을 터.

, 그럼.


시작해볼까?”


내가 그 말을 뱉는 것과 동시에 보어헤스 백작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


보어헤스 백작은 그레고르라는 사내가 그리 싫지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그는 강한 사내를 좋아했다.

정신이든 육체든.

어느 쪽이든 강인한 자라면 괜찮은 피를 보어헤스 가문에 수혈해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자신의 것이 될 여인에게 붙어 있는 것 역시 나쁘지 않았다.

가까운 이를 지키려는 성향 역시 긍정적인 요소. 그런 성향을 타고는 아이는 가문에게 있어서 이득이다.

그렇기에 가문의 여인을 시켜서 그의 씨를 받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다.


마음을 꺾는다.’


아무리 뛰어난 형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문을 적대하는 이는 이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한번 교육할 필요가 있을 터.


전력으로 간다.’


바람과 불꽃의 파괴술을 응용해 등 뒤에서 화산이라도 터진 것처럼 육체를 가속한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섬광.

일전에 보여준 그레고르의 속도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곧 충격음이 나야만 하는데.

후웅-!

주먹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그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허공뿐.


뭐지?’


피했다.

그의 전사로서의 본능이 그에게 답을 속삭여줬지만, 여전히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대체 어떻게?’


지금의 공격을 그리 여유롭게 피한 것일까? 이래서야 마치,


미리 공격을 알고 피한 것 같지 않습니까?”


당황한 보어헤스 백작의 귓가에 그레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기겁하는 것도 잠시.


하압!”


기합성과 함께 그의 손이 다시 움직였지만, 여전히 공격은 허공을 가를 뿐이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잠시 거리를 두고 그레고르의 모습을 살피자, 그의 눈에 기묘한 것이 포착되었다.

그레고르의 머리에서 돋아난 기다란 두 갈래의 무언가. 그 모습은 그에게 익숙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래, 바퀴벌레라는 이름의 해충을.


저건?”

제가 알려드릴 이유야 없죠.”


잠시 욱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감정에 몸을 맡겨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이성.

아마 머리에 난 저것으로 움직임을 간파하는 것일 터.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적을 상대하는 법이야 간단하지.’

공격을 잘 피하는 적을 상대할 때는 피할 수 없도록 만들면 그만이다.


권능 발동. 활화산.”


산맥의 신력이 그의 발을 타고 지면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윽고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대지.

활화산.

샤우그너 판의 의 권능을 응용해 지열을 폭주시키는 기술.

신력이 깃든 용암은 사도라도 경시할 수 없을 터.

처음에는 작았던 분화구는 이윽고 그레고르가 서 있는 장소를 제외한 모든 곳을 덮었다.

이렇게 된 이상 달려서 도망치는 건 불가능. 거기에 비행 역시 쉽지는 않을 터.


좁은 공간에서는 날아서 도망칠 수도 없겠지!’


그렇다면 이제 끝낼 수 있을 터.

하지만,


권능 발동. 수왕 강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레고르의 몸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괴이 그 자체.

그것은 모든 짐승인 동시에 그 어떤 짐승도 아닌 존재.

그저 전투만을 위해 존재하는 짐승의 왕을 구현한 신체.

그 모습을 본 보어헤스 백작의 전투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저건 위험하다라고.


고유 권능 발동. 금강 갑주.”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빨랐다.

저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순간, 보어헤스 백작은 자신의 육체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을 택했다.

여기에 더해서 발동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어 주문.

공기의 장막과 염열의 울타리.

빙설의 방패와 대지의 벽.

무수히 많은 방어막이 그의 육체를 감쌌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

콰아아아앙-!

변이를 끝마친 그레고르가 일격을 뻗는 것과 동시에 투기장 내부의 모든 것이 부서질 듯 진동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보어헤스 백작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넝마가 된 자신의 갑주.


금강 갑주가 뚫렸다고?”


말도 안 된다.

금강 갑주는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는 개념을 구현한 것일 터인데?


이제야 눈치채셨습니까?”


당혹감의 늪에 빠진 그에게 차분한 그레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은 당신보다 제가 더 강합니다.”

Papillon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12-20 14:39:54

주인공 그레고르가 범부에서 비범한 인물로, 그리고 단지 이기고 지는 것에만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숙명의 대결이라는 과제를 눈앞에 둔 인물로 급성장했어요. 역시 시프터라는 말을 붙이기에 적절해요.

게다가 소여 백작도 의외로 상식적인 부분이 있네요. 무고한 인명피해를 낼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결투라는 사회관습을 중시하는 태도.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옳은 것이지만요. 의도야 어찌 되었건.


금강갑주도 결국 별 수 없네요.

하긴, 다이아몬드가 경도는 가장 높지만 쪼개지기는 하니까..그 성질이 없었다면 보석으로 가공되지도 못했겠죠.

Papillon

2020-12-31 03:06:50

소여 백작은 의외로 사회 관습을 이해하고, 이를 따르려고 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선해서가 아니지요. 그렇게 행동해야만 귀족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외부인 앞에서는 상식인이자 고지식한 귀족으로 행동하지만, 자신의 악행이 들켜도 상관없는 순간에는 악인으로 돌변하지요. 어찌 보면 블레어 같은 살인귀보다 더 사회를 좀먹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SiteOwner

2021-01-25 20:09:13

드디어 그레고르가 혁명적인 변화를...

그리고, 변화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전조를 만들기 마련인데, 그 변화를 소여 백작이 감지했다 보니 그의 심기가 결코 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하려면 시간이 10년으로도 부족하고 그런데, 아주 단시간에 대량생산되고 크기도 비교가 불가능할만큼 작은 탄환이 그런 사람의 목숨을 아주 간단하게 뺏을 수 있는 것처럼.


보어헤스 백작은 분명 강한 존재.

그런데 그 강한 존재라는 게 모든 상황에서의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다는 의미는 되지 못합니다.

단단하면 유연하지 못하고, 크면 느리기 마련...

Papillon

2021-01-26 01:30:21

보어헤스 백작의 고유 권능은 강력하지만, 실상을 따지자면 그저 '무지막지하게 튼튼한 갑주를 입었다' 정도니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강력하지만 그 이상의 공격력을 지닌 존재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강함이기도 합니다.


여담이긴 한데, 사실 그레고르가 완전한 사도가 되자마자 쓰러뜨린 블레어는 능력만 보면 보어헤스 백작의 천적입니다. 공간 왜곡으로 방어력을 무시하고 공격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전투 경험의 차이가 극명하기 떄문에 실제 싸우면 결과가 어찌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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