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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폭음이 울려 퍼지며 강렬한 힘의 파동이 대기를 타고 몸으로 흘러들어온다. 충격이 가른 피부에서 분출된 핏방울이 물안개가 되어 허공을 수놓고, 극도의 밀집으로 물질화한 신력이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현실에 구현된 신들의 전장.
그리고 친우와 악연이 주역이 된 살육극.
그것이 그녀, 에스텔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
그녀의 무인으로서의 감이 경종을 울렸다.
이 싸움은 이미 결투의 틀을 벗어났다. 이대로 이어진다면 저곳에 있는 둘 중 하나는, 아니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저승의 강을 넘을 터다.
그렇기에 말려야만 한다.?
당장 저곳에 뛰어들어 어떻게든 두 사람을 갈라놓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말인가?’
그녀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전장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다.?
혹시 닿지 않을까?
부질없는 기대감을 품고 손을 뻗어보지만, 여행자 앞에 펼쳐진 사막의 신기루처럼 닿지 못한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전장에 닿지 않는 손끝에서 잔인할 만큼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아틀락나차의 사도, 스테파니가 구축한 거미줄 형태의 결계.
겉으로는 엉성해 보이는 그 거대한 장벽은 그녀로서는 파괴할 수도, 넘을 수도 없다.
저것에는 의지가 없다. 그저 자신을 만든 사도의 뜻에 따라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나, 어째서일까?
에스텔은 왠지 그 벽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기하라고.
이것이 사도와 일반인 사이의 경계이며,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빌어먹을.’
그녀는 무력했다.
단순히 사도끼리의 결전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문에 복귀한 이래, 에스텔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마치 이야기 속의 무력한 귀족 영애처럼. 기사에게 구출을 요청할 뿐인 빌어먹을 짐처럼.
기사임을 자부하는 그녀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욕. 그 참을 수 없는 감각이 그녀의 골수를 타고 흘렀다.
‘그는 부정하겠지.’
그레고르, 그녀의 친구는 이 사실을 알면 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말할 것이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그녀가 가르쳐 준 상형권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만 에스텔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 건 그리 대단한 도움이 아니야.’
상형권으로 강해지긴 했지만, 그래봤자 보어헤스 백작에게 유린당할 뿐이었다. 거기에 그걸 넘어서. 그레고르는 그녀 없이 홀로 있을 때 더 강해졌다.
‘젠장.’
쿵!
답답한 마음에 주먹을 내질렀다. 어지간한 목책 정도는 충분히 부술 수 있을 정도의 위력. 하지만 결계에는 자그마한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겠지.
설령 그녀가 만전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힘은 사도에게 닿지 못한다.?
하물며 지금 그녀의 상태는 엉망. 언제나 휴대하던 마력검은 압수당한 상태이고, 마력 역시 만일을 대비해 억제당한 상태.?
그런 상태로 사도가 만든 벽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쯤은 알고 있어.’
이런 상태로는 설령 저곳에 도달한다고 해도 짐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자신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도 골수에 사무치도록 이해하고 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이 싸움을 멈춰야겠다고 여기는 이는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가문의 사도는 그들이 죽길 바란다.?
길드 협회장의 사도는 딱히 그들을 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능력이 없을뿐더러, 자신과는 달리 위험을 무릅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녀가 해야만 한다.
손이 으깨져서 사라진다고 해도.?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해도.
이곳에는 그녀밖에 없으니까.
쿵! 쿵!
그렇기에 그녀는 계속해서 두드렸다. 손에서 피가 흘러나와 대지를 적실 때까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움을 바라나?]
마치 악마의 것처럼 달콤한 속삭임이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뭐?’
어째서인지 익숙한 목소리.
분명 기억 속에 없는 음성인데도, 지나칠 정도로 친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목소리였다.
‘언제 이 느낌을 느껴봤지?’
잠시간의 고민.
그리 오래지 않아 그녀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드라 님.’
그레고르와 계약한 옛 군주이자 가문의 수호신이었던 존재.?
인간이 아닌 초월자에게서 느꼈던 감각이 그녀의 뒤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사도의 소행일까? 아니면 근처에 주인이 없는 신기가 존재하는가?
끊임없이 몰아치는 의문.
에스텔은 그 파도를 억지로 의식 한쪽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신이든 악마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자일뿐.
“어떻게 돕겠다는 겁니까?”
[아가씨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틈을 열어주지.]
고작해야 ‘문을 열겠다’처럼 일상적이고 가볍게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가 만들어낸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우웅-!
마치 백지장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결계에 검은 구멍이 뚫렸다.
고작해야 손가락 하나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자그마한 틈.?
그 틈새는 서서히 커지더니 사람 하나가 넘어갈 수 있을 만한 문을 만들어냈다.
기적.
불가능에 한없이 가까운 현상이 그녀의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이건 신이나 악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전능한 동시에 무능.
초월자들은 이해를 넘어선 권능을 부릴 수 있지만, 적절한 대가나 의식 없이는 기적을 내려줄 수 없다.
그것이 세계의 법칙.
그렇기에 옛 군주들은 사도라는 불편한 체제를 만들어 사도야행을 펼치는 것이 아니던가?
그나마 억지로 이를 이해하자면 숨어 있던 사도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도가 다른 사도의 권능을 이렇게 쉽게 파훼할 수 있다고?’
어느 쪽이든 말이 되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살짝 몸을 떨면서도 에스텔은 입을 열고 상대에게 말을 건넸다.
“왜 저를 돕는 것입니까?”
상대가 사도라면 그 의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분명 단순히 호의만으로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터.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상대.
그리 오래지 않아 답이 돌아왔다.
[흠. 그저 아직 ‘저것’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만 해두지.]
마치 실험체를 평가하는 것 같은 발언. 그 말에는 어째서인지 악의와는 다른 묘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그게 무슨……?!”
알아야 한다.
그녀의 본능이 이를 알아야만 한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만이라면 다시 질문을 던졌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상황은 그녀의 예상보다 급박하게 돌아갔다.
치지지직-!
‘구멍이 줄어든다!’
목소리의 주인이 힘을 거둔 것인지, 아니면 스테파니라는 사도가 힘을 쓴 것인지, 장벽에 난 구멍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미 성인 남성이 지나갈 수 있던 문이 그녀조차 허리를 숙여야만 가능할 정도로 줄어든 상황.
‘생각하는 건 나중이다.’
기회는 오직 한 번뿐.
“지금이다, 그레고르!”
비격(飛擊). 사자의 포효!
구멍으로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에스텔은 보어헤스 백작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전력을 다한 공격을 펼쳤다.
이윽고 공격이 닿자 고개를 돌리는 보어헤스 백작.?
‘구멍은 사라졌나?’
살짝 돌아보니 장벽은 완전히 복구되어 틈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보어헤스 백작의 신형.
‘부탁한다, 그레고르.’
자신의 친우가 알아차리길 바라며 전장에 집중하는 에스텔.
그런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사실을.
*** ***
콰앙-!
공간을 찢어발길 것처럼 강렬한 권격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옆구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
분명 회피하기는 했건만, 충격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래도 조금 나아졌어.’
이전까지는 이런 회피조차 불가능했을 터. 그러나 여전히 만족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부족한 성과였다.
‘거리를 둬야 해.’
상대를 향해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도 나는 쉬지 않고 발을 놀렸다.
투웅-!
거리를 넓힌 보람도 없이 대지를 울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보어헤스 백작의 몸이 눈앞에 나타났다.
‘축지라고 했던가?’
대지를 매개로 하는 순간 이동의 권능.
“칫!”
바닥을 굴러 어떻게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대 역시 쉬지 않고 공격을 이어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연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두근. 두근.
터질 것처럼 울리는 심장은 내게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오래 버틸 수 없다.
가능한 한 빨리 끝내라.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그럴 수 있으면 이런 고생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금기를 발동한 보어헤스 백작의 힘은 정면승부를 불허할 정도.
초기 몇 분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두들겨 맞았던 걸 생각하면, 어떻게든 회피하는 지금만 해도 크나큰 발전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성장한 건 아니지만.
‘단순해졌어.’
온 신경을 보어헤스 백작에게 집중하면서도 나는 냉정하게 현 상황을 평가했다.
보어헤스 백작, 그는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GRAAAAA-!”
괴수와 같은 울부짖음이 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다. 이미 이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무예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영혼이 망가진 건가?’
마치 내가 이드라의 영지에서 겪었던 것처럼.
물론 그 결과물은 나와는 전혀 달랐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내 쪽은 몸이 빠르게 망가졌다면, 견고한 그의 육체는 긴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일 뿐.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길어야 30분인가?’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보어헤스 백작의 육체 역시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일어나 있다면 나의 승리.
‘하지만 버틸 수 있을까?’
답은 불가능.
내 몸 역시 이미 한계에 도달한 지 오래다.
골격, 관절, 근육, 신경.
오랜 혈투로 내 몸 역시 멀쩡한 곳을 찾기 힘든 수준이다.?
아무리 길게 끈다고 해도 10분 정도겠지.
설령 내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더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건 보고 싶지 않아.’
이드라의 숲에서 고깃덩어리가 된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참극.?
아무리 내가 싫어하는 이라고 해도 그런 꼴이 되도록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체 무슨 수를 써야 하지?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보어헤스 백작이 금기를 해제하거나. 내가 금기를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만들거나.
전자는 보어헤스 백작이 정신을 차려야만 하니, 결국 남은 선택지는 후자이다.?
사도가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그저 변신을 유지할 수 없도록 강한 타격을 주는 것뿐.
실로 간단하면서도 정석적인 방법이지만, 문제는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타격을 줄 수단이 없어.’
저 형태로 변신한 이후, 보어헤스 백작은 금강 갑주를 상시 유지 중이다.?
내 공격 수단 중 금강 갑주를 뚫을 수 있는 건 단 하나.
수왕 강림.?
그걸 사용하면 금강 갑주 따위는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수왕 강림을 쓰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수왕 강림은 강력하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기술이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동물의 특성을 빌려와, 한순간 초월적으로 강력한 신체 능력을 얻는 권능.?
그 상태에서 펼치는 공격은 가히 그 어떤 물질도 견딜 수 없다.
그야말로 최강의 창. 하지만 그 창을 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최초의 수왕 강림을 보어헤스 백작이 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
그 당시의 보어헤스 백작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을 포기했지만, 눈앞의 광전사가 그러리란 보장은 없었다.
잘못하면 권능이 발동하기 전에 역으로 공격을 당할 터.
‘빌어먹을.’
방도는 역시 ‘그것’ 뿐인가?
고유 권능. 각 사도가 지닌 자신만의 힘.
보어헤스 백작이 금강 갑주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이드라의 영지에서 그것을 손에 넣었다.
만약 그걸 발동할 수만 있다면 수왕 강림만큼 강력한 공격을 안정적으로 펼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꿈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조건이 맞지 않아.’
보어헤스 백작의 금강 갑주와는 달리, 내 고유 권능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결투장에서는 그 상황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터.
‘하필이면 이런 고유 권능이라니!’
얻을 때부터 느꼈지만, 정말 쓸모없는 능력이다.
‘어쩔 수 없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시간의 틈이 생길 때까지 버티는 것뿐!
‘최대한 버티는 전법으로 간다.’
갑오징어의 신체 구조를 바탕으로 타격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 나는,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자, 와라!”
그렇게 또 한 번의 충돌이 일어나려는 순간.
“지금이다, 그레고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보어헤스 백작을 향해 푸른 빛의 칼날이 쇄도했다.
“저건?!”
비격, 사자의 포효.
에스텔이 펼치는 최강의 원거리 공격 기술.
블레어와의 싸움 도중 틈을 만들어 준 기술이기에 분명히 기억한다.
‘그게 왜 여기서 나와?’
당혹감에 휩싸여 시선을 틀자,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결계 내부로 들어온 에스텔의 모습이 보였다.
“에스텔?”
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 펼쳐지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사고가 정지했다.
“대체 왜 여기에……?”
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의문.?
하지만 내가 질문을 하는 것보다 먼저 보어헤스 백작이 움직였다.
“GRAAAAAAAAAAAA-!”
자신을 노린 것에 분노한 것일까?
아무런 피해도 없었건만, 야수가 된 그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쿵-!
대지를 딛는 것과 동시에 에스텔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거대한 신형.
‘빌어먹을!’
망설이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조금만 늦어도 에스텔은 고기 조각이 되어버릴 터.
‘이렇게 된 이상 죽기 살기로 해볼 수밖에!’
“권능 발동. 수왕 강림.”
끄드드득-!
전신이 빠르게 뒤틀리며 괴이한 형태를 구성한다.?
안전성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시간이 오래 걸렸겠지만, 시간이 없는 만큼 조금 불안정하더라도 변화를 가속한다.
“하압!”
목표는 보어헤스 백작의 무방비한 등!
‘제발 닿아라!’
에스텔에게 그가 도달하기 이전에 공격이 닿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나는 주먹을 내질렀고.
쿠우우우우웅-!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소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 ***
“크윽!”
굉음과 함께 만상을 붕괴시키는 파괴의 폭풍이 에스텔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본래라면 인간인 에스텔의 몸뚱어리 정도는 고기 파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폭발. 그 파괴의 현장에서 에스텔을 구한 것은 기묘하게도 그녀를 노리고 달려오던 이였다.
“…….”
보어헤스 백작. 영혼이 망가진 사도 형태의 맹수는 지금 처음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만신창이.
단단한 갑주 덕에 몸통은 형태를 이루고 있었지만, 사지는 그 형태를 완전히 잃었다. 머리 역시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눈구멍으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어쩌면 심한 뇌진탕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제압하는 데 성공했나?”
‘목숨을 건 도박의 보람이 있었군.’
일전에 금강 갑주를 뚫어버린 그레고르의 권능이라면 한순간의 틈만으로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 작은 희망을 그레고르는 현실로 만들었다.
“휴.”
입을 타고 흘러나오는 안도의 한숨.
“에스텔!”
그 한숨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녀의 친우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어떻게 여기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넘어서 이곳에 온 것이 당혹스러웠던 것일까?
투구 때문에 그 표정을 볼 순 없었지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놀리고 싶군.’
이전까지는 기사단원들이 친한 동료를 놀리던 것을 이해하지 못했건만,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승리했구나, 그레고르.”
에스텔은 미소를 지으며 친우의 승리를 축하했고.
“……다음부터는 이런 위험한 짓은 하지 마세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동료는 약간 볼멘소리를 했다.
그 순간.
“GRRRRR-!”
보어헤스 백작의 입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그드드득-!
지면을 이루고 있는 광물들이 산맥의 군주가 임명한 사도를 향해 몰려든다. 그들이 구성하는 건 이미 망가져 버린 사지.
‘말도 안 돼!’
저런 식으로 다시 싸울 수 있다고?
죽지만 않는다면 어떤 부상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권능을 사용해 신체 일부를 재구성할지도 모른다는 것 역시 짐작했다.
하지만 짐승처럼 정신이 망가진 상태에서도 소멸한 사지를 다시 만들어낸다고?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일반적인 사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능력.
‘저런 걸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죽여야만 할지도 모른다.
최악의 가능성을 에스텔이 떠올린 순간.
“에스텔.”
그레고르의 평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믿을 수 있나요?”
평온하지만 진지한 음성으로 전하는 지금 상황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질문에 에스텔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대답했다.
“믿는다.”
짧지만 확신에 찬 대답.
“감사합니다.”
원하던 답변이었던 것일까?
그녀의 대답에 그레고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드라의 환염으로 이루어진 촉수가 에스텔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내부가 완전히 망가졌는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조금씩 침잠해 들어가는 의식.
“조금 아플 거예요.”
그런 그녀의 귓가에 그레고르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오래지 않아 에스텔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화르륵-!
에스텔의 몸이 있었던 자리에는 환염에 불탄 재만이 남아 허공을 수놓았다.
========================================================================================================
몸 상태가 안좋아서 하루 지각을 하게 되었군요.
다음에는 지각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는 이러다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추운 겨울입니다. 여러분도 건강에 유의하시길.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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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1-01-05 15:59:53
건강과 자신의 생활이 우선이죠.
그러니 전전긍긍하거나 죄의식을 가지시기보다는 건강의 회복에 주력해 주시기를 당부드려요.
이렇게 매번 포럼에 컨텐츠를 기고해 주시는 점에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게다가, 포럼에서는 누구도 업로드 일정 등의 이슈로 재촉하지 않는 점도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리겠어요.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로 코멘트할께요.
전개상황을 보고 꽤나 놀랐다 보니 마음을 좀 정리하고 따로 써야 할 필요도 생겼다 보니 그러해요. 양해를 구할께요.
Papillon
2021-01-11 00:55:32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충격적인 전개처럼 쓰긴 했는데, 그 정도인가요? 일단 이후 반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이니 이만 생략하도록 하지요.
마드리갈
2021-01-12 19:21:38
그러면 이번에는 내용에 대한 코멘트.
보어헤스 백작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운명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보어헤스 백작이 인간의 형태를 잃고 인간이었던 존재로 변해버린 것이라든지, 에스텔의 뒤에 그림자 같은 게 나타났다 사라졌고 이후 이드라의 환염으로 된 촉수가 에스텔의 심장을 관통하게 된 것은 대체 이렇게 끝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생각한 이상이었어요. 그래서 꽤 놀랐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조차 잊어버렸던 것이었어요.Papillon
2021-01-26 01:32:17
그림자는 사실 다음 장에 등장시킬 존재였는데, 이번 장의 전개를 더 원할하게 하기 위해 미리 등장시켰습니다. 그 존재의 정체는 비밀이지만 한 가지 확답드릴 수 있는 건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SiteOwner
2021-02-20 20:46:56
이렇게 매번 소설을 기고해 주시는 점에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운영진으로서도 회원으로서도 Papillon님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언제나 포럼을 편안하게 잘 이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감상평을 추가하겠습니다.
현실에 구현된 신들의 전장이라니...무섭군요. 이 구절만으로도.
게다가 구체적으로 묘사된 상황은 극한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고, 그것을 보고 있는 에스텔은 자신이 속수무책이라는 점에 절망하고 있고, 그러다 완전히 달라진 상황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군요.
이런 대이변이...
역시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건가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보어헤스 백작은 진정으로 강하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합니다.Papillon
2021-02-26 03:35:52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어헤스 백작과 에스텔 둘 다 육체적 강함은 상위권입니다만, 정신적으로는 모자람이 있습니다. 특히 보어헤스 백작은 이런 성향이 더 두드러지지요. 만약 정신적인 성장을 겪지 못한다면,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언젠가 좌절을 겪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