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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 20분, 법률사무소 스텔라.
문 앞에 선 메이링이 손을 문에 대자, 문이 스르르 열린다. 메이링의 눈에 들어온 건, 아침 일찍부터 자리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앨런, 치라유, 아냐.
“어?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메이링을 보자마자, 세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일어나서 메이링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 아니야, 아니야! 내가 오히려 미안한데, 나보다 다 일찍 오니까.”
“변호사님이 어제 일이 좀 많으시다니까, 저하고 아냐가 서로 7시 30분쯤 나오자고 하고 그 시간에 나왔는데, 앨런 선배가 저희보다 먼저 와 있지 뭐예요.”
치라유는 슬쩍슬쩍 앨런을 돌아보며 웃는다. 앨런 역시 그걸 부정하지는 않는 듯 슬며시 웃기만 한다.
“그래도 세 명이 좀 일찍 와서 해 놓으니까, 변호사님 하실 일이 많이 줄었어요.”
아냐도 치라유를 거든다.
“그런데, 소송 건 말고도 오늘 할 중요한 게 또 하나 있다고 했죠?”
“맞아, 소송 건도 소송 건이지만,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지.”
그 시간, 미린대역 직원 통로.
“하윽...”
현애는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대해 잠깐은 머리를 흔들 정도로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혼란은 몇 초도 안 되어 없어진다. 지금 처한 상황은, 분명히 현애 자신을 향한 공격. 그리고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그림이 그려진다. 현애 자신도 따져 묻고 싶다. 도대체 장 박사는 왜 자신에 대해 그렇게 집착하고 목표로 삼는지 말이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장 박사를 직접 대면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자, 어디 한번 말해 보실까.”
현애는 눈앞에 선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네 녀석, 누구한테 지령을 받고 나한테 이렇게 하고 있는지.”
“왜? 네 녀석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분에 대해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으면서, 시치미 떼기는.”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는 팔짱까지 끼고는, ‘어디 덤벼 보려면 덤벼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현애를 내려다본다. 웬만한 사람이었으면, 그 큰 키와 험상궂은 얼굴에 바로 압도당했을지도 모른다.
“알긴 알고 있지.”
현애는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한껏 목에 힘을 주고 말한다.
“그분이 너한테 뭐라고 하던데?”
“그분께서 원하시는 건, 네 녀석의 목숨, 그것이지!”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의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단도직입적이다.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받아가겠다!”
“그래? 가져가 봐. 하지만 쉽게 가져가지는 못할 거야.”
“호오, 그러시겠다!”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좁고 긴 공간 안에 울려 퍼진다. 그 순간, 현애의 몸을 휘감는, 이상한 느낌...
“흐읍... 이건... 도대체...”
8시 20분, 수영의 집.
“하, 이 자식, 우리 집 근처에 왔겠다. 걸리기만 해 봐라.”
수영은 아침식사를 하던 중,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한다. 어제 그 도깨비불 때문에 쓰기로 했던 <최강 냉동인간>도 다 쓰지 못한 데다가, 잠까지 설칠 뻔했다. 그걸 생각하면, 오늘 그 도깨비불을 쓰는 녀석을 잡기 전에는,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막 수영이 식사를 마쳤을 때.
“수영 님.”
“왜 그래, *니르바나?”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수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어제 저녁에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걸 떠올린다. 바로 AI폰의 홀로그램 모니터를 켜 본다. 누군가가 와 있다.
“파비안 씨?”
“네, 수영 씨. 저예요!”
“아, *니르바나, 열어 줘.”
문이 열리고, 파비안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수영 씨!”
“무슨 일이죠? 여기를 다 오고.”
“혹시나 해서 물어 볼 게 있는데요.”
“응? 뭘 물어보려고요? 그런 거라면 AI폰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내심 걱정스러운 얼굴빛을 보이기는 하만, 수영은 지금 속으로는 웃고 있다. 이렇게 취재 대상이 스스로 와 줄 줄이야!
“아니, 아니, 저도 뭔가 불안해서요.”
“불안하다니요?”
“봐요, 수영 씨도 불안하잖아요. 눈이 떨고 있는데...”
“에? 그럴 리가 있나요.”
수영은 애써 시치미를 떼 보려 하지만...
“어제 도깨비불 봤죠?”
“어? 파비안 씨도 봤어요?”
도깨비불이라는 말을 듣자, 수영의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물론이죠... 저는 자려는데 막 그 도깨비불이 창밖에 떠서 귀찮게 하더군요.”
“아... 그래요...”
그 순간, 수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어째서, 파비안이 도깨비불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혹시 파비안 씨, 이 동네 사세요?”
“아, 맞아요. 발레리오 씨가 그저께 근처 빌라에 집을 하나 주시더라고요. 해동자 교육도 받고,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거기서 살라고요.”
“음? 그래요? 위탁 가정에 가서 생활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건 미성년자인 해동자한테 해당하는 거더라고요.”
“하, 좋아요. 어쨌든, 일단 왔으니까 차 한 잔 드시죠.”
파비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영은 바로 *니르바나를 부른다.
“*니르바나, 손님한테 아침에 좋은 차 한 잔 대접해 줬으면 좋겠는데.”
“네, 수영 님. 제 선택이 과연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 시간, 미린고등학교 근처의 주택가.
“그래서, 메이링 씨가 오늘 뭘 알려줄 거라고 했다고?”
“맞아. 보안 때문인지 절대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와 봐야 안다고 했어.”
평소 같았으면 그냥 흘려넘길 세훈의 말인데, 조제와 외제니는 온몸이 떨린다. 장 박사와의 사건이 있고 나서부터 많은 게 바뀌었다. 앙드레한테 초능력을 받았을 때에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뭔가가 근본적으로 바뀐 느낌이다.
“우리도 한번 가 봐야 하나...”
“그러게.”
세 사람이 불안한 표정을 하고 주택가를 계속 걷고 있는데...
“잠깐.”
조제가 뭔가 이상한 걸 본 듯 말한다.
“왜 그래, 조제?”
“우리, 한 3분 전에 여기 걷고 있지 않았냐?”
“어디?”
“봐봐. 저기 편의점 있잖아!”
세훈과 외제니가 돌아보니...
조제의 말대로다!
3분 전에 지나갔던 그 편의점이, 어째서 저기에 그대로 있는 건가?
하지만 그것보다도...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야!”
세훈은 또 다른 걸 발견했다. 그건 바로...
“아니, 시간이 어째서 8시 17분인데!”
“어? 무슨 소리야?”
“네 시계가 잘못된 거 아니야? 어떻게 3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제와 외제니는 혹시나 해서 각자의 시계를 꺼내서 시계를 본다.
“어... 뭐야? 8시 17분?”
“좀 전에, 분명히 8시 20분 아니었어?”
“그러게... 도대체 왜 이러지?”
세훈이 보니, 분명히 몇 명 지나다녀야 할 동급생도 안 보이고, 하다못해 산책하는 행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누가 짜 놓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왜 이렇게 음산해?”
외제니가 몸서리를 치며 말한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장난치고 있는 거야?”
“왜, 그 답을 듣고 싶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택가 한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8시 30분, 법률사무소 스텔라.
메이링은 짐을 내리고,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은 다음 텀블러를 꺼낸다. 자리에 앉기 전, 한때는 자비에의 자리였던 비어 있는 자리를 물끄러미 본다. 착잡해진다. 어제 많은 것을 알았다. 메이링이 직접 발로 뛰며 알게 된 정보도 있고, 앨런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것도 있기는 하지만,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다. 어떤 사실을 알고 나면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요리사인 아버지에게도, 소설가인 어머니에게도, 오빠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하지만 이만큼 몸으로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변호사가 되었을 때도, 초능력을 얻었을 때도 못 느껴 봤다.
“자, 그래서 오늘은...”
메이링이 부하 직원들에게 뭔가 막 말하려는데...
♩♪♬♩♪♬♩♪♬
AI폰을 꺼내든다. 파라로부터 온 전화다. 받아본다.
“아, 여보세요?”
“언니, 저예요.”
“파라 아니야? 이 시간에 출근할 시간 아니야?”
“맞긴 하는데, 오늘 연차 냈죠. 의족 수리도 할 겸 해서요.”
“그런데 왜 전화했어?”
“집 근처에 도깨비불이 어제부터 나타났는데, 이거 언니한테 말하면 되는 거죠?”
메이링은 순간 고개를 갸우뚱한다. 파라가 그 빌라촌에 살았던가?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기는 하지만...
“맞아. 일단 나는 알았으니까, 내가 찍어 주는 주소로 가 봐.”
전화를 끊자마자 메이링은 파라에게 수영의 집 주소를 보내주고는, 다시 부하 직원들 쪽을 돌아본다.
“내가 어디까지 했더라?”
“오늘은 뭘 할 건가에 대해 말하려고 하셨죠.”
아냐가 얼른 말한다.
“아, 맞아! 아침 일찍부터 다들 도와준 덕분에, 사무실에서의 일은 점심 먹기 전에 아마 끝날 수 있을 것 같아.”
“변호사님, ‘사무실에서의 일’이라면, 다른 일도...”
“네 말대로야, 앨런.”
메이링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다들 눈치를 채고 있는지, 아무도 놀란 얼굴은 하지 않는다.
“응? 다들 눈치채고 있었어?”
“아, 앨런 선배님이 말해 주던데요.”
“아, 그래, 좋아.”
치라유와 아냐의 말에 메이링이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다들, 점심 먹고 나서 가는 거다. 알겠지?”
한편 그 시간, 미린대역.
“이... 이건 뭐야... 크읍...”
현애가 숨쉬기 힘든지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뭔가를 잘못 먹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목이 너무 칼칼하다. 마치 목구멍에 불이 난 것만 같고, 궤양 같은 게 난 것만 같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호오, 걸려들었나.”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과연, 온도를 조금만 올려도 효과가 있는데.”
“온도를, 온도를 올린다니...”
현애가 목을 부여잡으며 말하자, 남자는 여유롭게 말한다.
“말 그대로야. 내 손이 닿는 곳 어디든지 온도를 올릴 수 있단 말이다!”
잠깐, 온도를 올린다고? 그렇다면, 이쪽은 낮추면 되는 것 아닌가?
“답은 간단하네. 반대로 이쪽은 낮춰 주겠다!”
현애는 곧장 능력을 발동한다. 냉기를 몸에 두르자, 간단히 찾았다. 열점은 바로 목구멍 한가운데 있었다! 목구멍에 있는 열점의 온도를 내리자, 칼칼하던 목이 바로 원래대로 돌아간다.
“어때, 간단히 끝났지?”
“......”
남자는 말없이 팔짱만 끼고 있다.
“왜 말이 없는 거지? 네 능력은 간파되었단 말이다.”
“과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애는 주위에 두른 냉기를 해제하지 않는다. 경계의 눈빛은 더욱 강해진다.
“해 보라고. 네가 무슨 수를 쓰든, 나는 준비되어 있으니까.”
“하하하, 준비? 그래, 마음껏 해 보라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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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1-08 13:17:01
진짜 무서운 사람은 악당이 아니고, 평온한 일상을 방해받아서 살의를 품게 된 사람이죠.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의 쿠죠 죠타로가 디오 토벌전에서 "네놈은 나를 화나게 했다" 라고 분노를 표출한 것이 바로 그런 것.
현애에게 나타나서 목숨을 뺏겠다 어쩌고 하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 수영의 집필을 방해한 도깨비불 조종자, 조제와 외제니가 시간역전의 상황을 경험하게 만든 정체불명의 인물 등은 역시 싫네요. 그런 자들로부터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이 없어요. 전력으로 싸우고 적을 쳐부수는 것밖에.
살아 오면서 저 정도의 위험은 없었지만, 제가 잘못되기를 바라고 추잡한 중상모략을 가했던 자들의 목적은 전혀 달성되지 못하고 좌절되었어요. 바로 이것처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모두 상황을 잘 돌파했으면 좋겠어요.
시어하트어택
2021-01-11 21:41:25
정말 저런 상황이 된다면, 되도록이면 남들과 부딪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저라도 싸우지 않을 수 없겠죠.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는 주요 인물들에게 저런 상황이 한꺼번에 일어나니 더욱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SiteOwner
2021-02-20 20:48:29
동면인의 실태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보안, 기밀사항이 많은가 봅니다.
그래서 동면인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거나 접하기 힘든 정보도 꽤 존재하는 것 같군요. 수영이 파비안으로부터 들은 정보 또한 그런 부류같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냉동수면이 가능한 세계라면 역시 현실세계에는 없는 제도적 장치도 있어야겠지요. 이렇게 다른 사회상을 읽을 수 있어서 그게 또 재미있습니다.
역시 공기가 달라지면 그게 껄끄럽습니다.
비행기를 오래 탄다든지 등등...그러고 보니 가장 최근에 탄 게 벌써 3년 전입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2-27 11:28:44
동면이 저렇게 일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용화되었다면 제도적 장치도 있어야겠지요. 다른 작품들에서는 저런 제도적 장치는 넣지 않았다 보니 거기에 대한 보완을 한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