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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86화 - 길고 긴 화요일(3)

시어하트어택, 2021-01-09 23:03:22

조회 수
119

미린대역 지하.
현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대체 저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는 무엇이 자신 있다고 의기양양하게 웃는 건가? 이미 능력은 간파당했는데 저렇게 웃는 건 이상하다. 혹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 때문에 현애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더욱더, 냉기의 막을 두껍게 두른다.
“그럴 줄 알았지!”
남자의 저 이미 이긴 듯한 목소리! 도대체 뭐를 믿고?
“네 녀석, 도대체 뭐가 자신이 있는 거냐!”
“너는 걸려든 거야. 내 함정에.”
“함정... 함정이라고?”
뭔가 이상하다.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막 같은 게 느껴진다! 그것도 현애 자신을 두르고 포위한 듯한!
그리고... 알겠다! 현애가 만들어낸 냉기 바깥으로, 엄청난 열기가 둘러쌌다. 열기와 추위가 만나 만들어낸 막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래, 나와 네가 합작한, 함정이란 말이다!”

그 시간, 미린고 근처의 주택가.
“나한테 물어보면 된다니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나긋나긋하지만, 상당히 기분 나쁜 남자의 목소리다.
“어떤 녀석이냐.”
세훈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한다.
“장난치는 녀석은 당장 나와라.”
외제니도 잔뜩 성이 내며 그 기분나쁜 목소리의 남자를 찾는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머지않아 나타난다.
“왜 그렇게 성을 내고 찾나. 내가 나와 주겠다는데.”
그리고 보인다. 세훈, 조제, 외제니의 앞에.
검은 셔츠를 입은, 검은 눈동자가 또렷한 평균 정도 키의 남자가.
“무슨 짓을 한 거냐, 너.”
조제가 그 남자의 앞을 가로막고 서며 말한다.
“대체 무슨 짓을 우리한테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수 있지. 장주원이라는 녀석이 보낸 거지?”
“맞아.”
남자는 바로 대답한다.
“그리고 지금은 8시 18분이지.”
“네 녀석,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갑자기 시간 이야기가 왜 나와?”
“왜냐고? 흐흐흐...”
조제가 잔뜩 성을 내도 남자는 태연히 웃기만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 뭐야!”
조제는, 남자와 마주보기 직전의 그 상황으로 돌아가 있다! 분명히 남자를 노려보고 성질을 냈던 그 상황은 기억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냐...”
“알고 싶겠지? 너희 셋은 걸려든 거다. 내 ‘시간의 덫’에 말이지.”
“시간의 덫이라니?”
“말 그대로야. 내가 설정해 둔 시간에 너희는 갇혀 버렸다!”
“호오, 그러시겠다...”
검은 셔츠의 남자를 잠시 노려보던 세훈은 기선제압도 할 겸해서 일부러 크게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상관없다! 너를 때려눕히고 여기서 빠져나가 줄 테니!”
“과연 그럴 수 있을까?”

8시 30분, 도라고등학교 근처 주택가.
시저는 혼자서 걷고 있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표정은 매우 어둡다. 마치 세상의 근심을 다 짊어진 것 같이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검은 자동차 한 대의 운전석에, 대머리의 근육질 남자가 앉았다. 그 뒤에는 키가 작아 보이는 누군가가 앉아 있다.
“좋아, 바로 작전에 들어가겠다.”
알레한드로의 왼손에서 뻗어나온 실들이 보인다. 그 실들은, 뒷좌석에 닿아 있다.
“일어나라, 마르코 티머만. 행동을 개시할 때다.”
알레한드로가 말하자마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마르코가 스르르 일어난다. 눈은 게슴츠레 떴고, 머리는 부스스하고,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다.
“가라. 이제 네가 행동할 때다.”
알레한드로의 말에 따라, 마르코는 초점 없는 퀭한 눈을 한 채, 차문을 열고, 차를 나선다. 알레한드로는 저벅저벅 걸어가는 마르코의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왼손에 있는 실을 움직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왼손 주먹을 꽉 쥔다.

한편 미린고등학교 남쪽의 저택들이 늘어선 주택가.
파라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조금 전에 소공원을 돌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다. 지난 3월 대기업 산하 연구소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 얻은 휴가다. 물론 아까 메이링과 통화한 대로, 의족 수리를 위한 게 좀 크기는 하지만.
조금 걷다가, 한 저택 앞을 지나갈 때.
두 사람이 대문을 나오는 게 보인다.
“어, 파라 아니야?”
익숙한 목소리. 대문이 닫히자 보이는 건, 반디와 민이다.
“반디 언니잖아요! 민이도!”
파라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자, 반디와 민도 웃어 보인다.
“오늘은 출근 안 해?”
역시나, 반디는 그것부터 묻는다.
“연차 냈어요. 이거저거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연구소 일은 좀 할 만해?”
“에이, 아직은 처음이라서 선배들한테 도움 많이 받죠.”
곧이어서 파라도 반디에게 묻는다.
“대학원은 좀 어때요? 교수님이 들들 볶는다거나 그러지 않아요?”
“다 그렇지 뭐. 정도의 차이는 있다지만.”
파라가 또다시 뭐라고 말을 꺼내려던 그때.
“안녕하세요-”
또 다른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후드를 쓰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사람이 가볍게 뛰다가, 파라와 반디를 보더니 걸어온다. 그리고 후드를 벗자, 은발의 긴 생머리가 드러난다. 얼굴은 좀 앳되어 보이고, 키는 딱 파라 정도의 키다.
“어? 피오 씨잖아요!”
반디와 민도 피오라는 그 사람을 알고 있는 듯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아니, 이따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이따가 오세요. 1시에 온다고 했죠?”
“아, 맞아요.”
“오늘 수리는 좀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하시고요.”
“아, 감사합니다!”
피오는 곧이어 반디와 민을 돌아본다.
“이렇게 일찍 나온 건 처음 보는데요. 두 사람 다.”
“에이, 교수님이 빨리 나오라니까 빨리 나오는 거죠.”
반디는 자연스럽게 웃는 건지, 억지로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래요...”
피오는 잠시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더니 민을 보고 묻는다.
“그럼 넌 왜 일찍 나왔어?”
“아, 누나가 일찍 나오라니까 일찍 나왔죠.”
민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반디를 쏘아본다. 반디는 그저 웃을 뿐.
“아, 그래. 오늘도 재미있게 보내고.”
반디와 민과 헤어지고 나서, 피오는 다시 파라를 돌아본다.
“이따가 오후 1시에 늦지 말고 와요!”
그렇게 피오와 헤어지고, 파라는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AI폰을 꺼내서, 메이링이 보내 준 주소를 본다.
“여기가 그런데 어디지...? 집 근처인데...”
걸어가면서 파라는 좀더 검색해 본다. 어느 정도 검색을 한 후에...
“어? 뭐야, 여기.”
파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드릴맨 작가네 집 아니야?”

미린대역.
“아... 전화가 왜 안 돼.”
직원 통로 출입문 바깥에서, 주리는 애타게 전화를 걸고 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그것도 3분째. 메시지도 넣어 보고 했지만, 받지를 않는다.
“도대체 왜 안 받는...”
그때.

♩♪♬♩♪♬♩♪♬

전화벨이 울린다 얼른 주리는 전화를 받는다.
“저, 발레리오 씨!”
“무슨 일이지, 주리 양?”
“지금 급한 상황이에요! 미린대역 지하인데, 현애가 직원 통로 같은 데로 끌려들어갔고, 거기서 장 박사의 하수인을 만난 것 같아요!”
“습격을 당했다고?”
“네. 지금 여기서는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는 못 보는데, 정황상 확실해요!”
“알았어. 근처를 지나는 재단 소속 요원들한테 그리로 가라고 전하지.”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주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도와줄 손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철문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철문 안쪽.
“엇... 이건...”
움직이지 못하겠다. 현애가 선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움직일 수 있기는 하다. 발을 뻗어 앞으로 나갈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열기가 밀어내는 힘이 세고, 까딱하면 열기에 휩싸이기 딱 좋게 생겼다!
“어떤가?”
“이런 거 가지고 내 목숨을 받아갈 수 있기나 하겠냐!”
“호오, 충분히 받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네녀석은 이렇게나 약해빠졌으니까 말이야!”
힘을 다해 트레이닝복의 남자에게서 나오는 열기를 막아내 보려고 하지만, 점점 밀리고 있다. 그나마 몸에 둘렀던 냉기도 점점 엷어지고, 화르륵거리는 뜨거운 열기가 뺨에 닿을 정도다. 저번 외제니와의 싸움 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그때는 그저 푹푹 찌고 땀만 뻘뻘 흘리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아예 불길 자체가 직접 현애를 삼키려는 듯하다!
“내가 원하면 이 안의 온도를 섭씨 500도까지도 올릴 수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숯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어때? 네 녀석에 대한 처형은 이런 게 아주 딱 어울리는데. 어떤 연고도 없이 미래에 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 어때? 묘비명으로는 딱이겠군!”
현애는 슬금슬금 걷는다. 어차피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에게 움직임이 보이기는 하겠지만, 일단은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도 않고 주저앉을 수는 없잖은가...
“호오, 그렇게 슬금슬금 걸어서 어딜 가시려고 그러시나?”
남자는 현애가 움직이는 걸 막지도 않고, 그냥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지켜본다. 그리고 현애의 움직임이 멈추자...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문 가까이 가서 어떻게든 내 공격을 회피해 보려고 하는데, 그건 이미 간파됐지! 철문은 온도가 높아지면 용광로처럼 뜨거워진다는 것도 몰랐나?”
과연, 남자의 말대로, 철문은 만지려고 하기만 해도 익어 버릴 것만 같이 뜨겁다. 섭씨 100도는 족히 넘고, 200도까지도 넘어 버릴 것 같다!
“하지만 상관없어.”
현애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손이 타지 않도록 충분히 거리를 둔 다음, 냉기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과연, 철문이 조금씩 차가워진다.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호오, 그래? 해보겠다 이거지?”
트레이닝복 입은 남자는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얼굴이 붉어지고 충혈이 된 눈, 그리고 그 뒤로 올라오는 열기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를 실제로 봤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할 정도다. 곧바로, 문이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문을 얼려서 탈출하려던 모양이었는데, 어림도 없지. 반대로 해 주겠다! 이 문을 뜨겁게 달궈서 빠져나갈 수 없게 하겠다! 그다음 너를 숯으로 만들어 주지! 각오해라!”
내리꽂는다...
남자의 뜨거운 열기가...
철문에 바로!
현애는 살짝 몸을 돌려 피한다.
“허어, 그런다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나? 최후의 순간이 조금 유예되었을 뿐이라고!”
“아니, 천만에.”
“이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남자는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문이...
엄청난 열기를 받은 끝에, 변형되고, 녹아내리고 있다!
“어... 어...”
그리고 녹아내린 문 너머로 보인다...
문밖에 있는 주리와 방호복을 입은 사람 네 명이.
“거기서 나오시지.”
주리의 목소리가 들리고, 요원 한 명이 앞장서 들어가자마자, 남자가 내뿜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진다. 잠시 후 남자는 요원들에게 포박된 채 끌려나간다. 다시 주리와 마주한 현애는 차갑디차가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얼굴 엄청 벌겋잖아. 괜찮아?”
“아,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지금 몇 시지?”
“8시... 20분이네. 빨리 가자.”
“어? 왜 빨리 가?”
“세훈이를 만나기로 했는데 세훈이가 연락이 통 안 돼. 조제하고 외제니를 만난 것까지는 알겠는데...”
주리는 걱정스럽게 말한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빨리 가 보자!”
둘은 잰걸음으로 다시 발을 옮긴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1-10 22:36:50

사건이 동시다발하네요.

게다가 특히 현애를 노리는 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목적이 뭔가 싶을 정도로 집요하네요. 문제의 장주원 박사를 잡으면 대체 뭐가 목적인지를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마르코 티머만, 결국 세뇌된 건가요. 곤란하군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내가 상황을 완전히 지배했다" 라고 생각하는 그게 최대의 함정같네요. 현애를 노리던 장주원 박사의 하수인은 결국 잡혔고, 이제 전말이 밝혀질 것 같네요.

시어하트어택

2021-01-11 21:48:58

고난은 저게 끝이 아닙니다. 정말 산 넘어 산이죠...

거기에다가 정말 강한 적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그 싸움을 잘 써낼 수 있을지는 한번 봐야 알 것 같습니다만....

SiteOwner

2021-02-20 20:49:26

시간의 흐름이 뭔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당황하기 마련인데, 통상의 경우는 시간이 예상 외로 많이 지나갔을 때이고, 초자연적인 상황이 개입하지 않는 한은 시간의 역전은 없습니다. 일단 현실세계에서는 시간의 역전 자체가 검증가능한 형태로 보고된 바가 없고, 창작물의 세계에서도 이것을 다룬 작품이 많지는 않은데...


트레이닝복에 입은 그 남자, 역공작에 보기좋게 걸려들었군요.

그 순간이 참으로 비참할 것입니다. 그래도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법...

시어하트어택

2021-02-27 12:15:22

저 세계 기술력으로도 시간 역행은 매우 힘든 기술입니다... 초능력밖에는 저런 걸 쓰는 예를 설정해 놓지도 않았고요. 만약 저 기술이 있다면 꽤나 혼란스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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