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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기 ‘하이재’는 올 때마다 새로 온 것 같다. 벌써 30번은 넘게 와 보는 것인데도 그렇다. 적어도 도라고등학교 2학년, 괴담동아리 ‘도컬트’ 소속의 마연희에게는 그렇다.
세라토라는 대도시는 전 우주의 경제, 기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첨단을 달리는 도시 중 하나. 이런 곳에서 ‘괴이한 것’을 찾는다는 건 누군가는 웃긴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니까 연희는 더 괴이한 것들을 찾고 싶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괴담 책들을 탐독했고, 중학교 때부터는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직접 탐방도 몇 번 했다. 온 도시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괴이를 찾고 싶었고,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 이후 동아리에서도 열성적으로 활동해 왔다.
“안녕하세요!”
학교 인근에 있는 골동품 가게 ‘하이재’에 들어서자, 주인이 반갑게 맞아 준다.
“어? 또 왔구나. 오늘은 뭘 찾는 거니?”
“오늘요? 어...”
연희의 눈에 들어오는 물건은 정말 많다. 유명한 해적 ‘파르토’가 썼다는 도금된 블래스터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막으로 덮인 행성에 사는 괴물의 이빨로 만들어진 술잔, ‘오 브레아’라는 종족에 전해져 내려오는 부적 등등. 이런 물건들을 볼 때마다 드는 건, ‘저 아저씨는 저런 물건들을 다 어떻게 모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진열장 한쪽에 누더기로 기워진 듯한 인형이 하나 있다.
“어, 아저씨, 저 인형은 뭐예요?”
“아, 저거로 말할 것 같으면... 어떤 정령숭배 종교 집단에서 만든 저주인형이야. 몇 달 전에 내가 입수하기 전까지, 약 150년 동안 이 인형에 죽은 사람들은 얼추 잡아도 200명은 넘을 거야.”
“에이, 정말요? 설마 정말로 저 인형이 죽인 걸까요?”
연희는 짐짓 의심스럽게 물어본다.
“그럼! 이 인형 때문에 죽은 유명한 사람 하나만 말해 볼까? 빅토르 요르겐손 하원의원. 지역구 주민들이 몰래 교단 사제를 찾아가서 저주를 부탁했는데, 며칠 후에 시름시름 앓더니 지병이 악화하여서 죽어 버렸지!”
주인의 목소리만 듣고도, 연희도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 실감이 난다.
“알겠는데... 설마 인형이 죽였겠어요?”“그래서 ‘오컬트’라는 것 아니겠어! 너도 그러니까 그런 걸 좋아하는 거고!”
“절 어쩌면 그렇게 잘 아시나요.”
“오랫동안 많이 봐 왔으니까.”
“하하하하, 좋아요. 그럼 그 인형 하나 주세요.”
“알았어. 단골이니까 특별히 할인해 주지.”
“감사합니다!”
“네가 그 인형의 저주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좋다... 이렇게 오늘도 하나 얻었다. 연희는 싱글벙글 웃으며 하이재를 나선다.
집에 와서, 연희는 그 인형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누더기 인형인데, 저 인형이 200명을 넘게 죽였다니.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왠지 또 무서워 보인다. 피에로 인형의 겉모습을 한 괴물 괴담도 떠오르고...
다음날, 금요일 오후 3시, 도컬트 동아리실.
“응? 거기 골동품 가게 가서 대단한 물건을 하나 사 왔다고?”
“선배님! 그게 정말이에요?”
“맞아! 너희들의 기대를 채워 줄 만한 물건이지.”
동아리실 한가운데에 종이상자를 앞에 두고 선 연희를 동급생, 후배들이 둘러싸고 있다. 연희가 신기한 물건을 가져왔다는 말에 벌써부터 다들 기대로 눈이 빛나고 있다.
“뭔데, 뭔데! 빨리 보여 줘!”
연희의 바로 앞에 앉은 남학생 링후린이 연희를 재촉한다. 연희가 상자를 벗기자, 누더기투성이의 그 저주인형이 드러난다. 햇빛을 받았지만, 칙칙해 보이는 건 여전하다.
“에이! 겨우 저거예요, 선배님?”
린의 옆에 앉은 여학생 키시 레이카가 고개를 까딱거린다.
“저게 뭐 대단한 거라도 된다고 그래요.”
“그래. 그렇게 보이지?”
연희는 마치 언덕을 올라가기라도 하듯, 슬슬 간을 보기라도 하듯 말한다.
“하지만, 이 인형은 정말 너희들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몰라!”
연희는 끝을 확 높인다.
하지만...
과연 괴담 동아리 도컬트답다고 할까, 다들 시큰둥하다.
이미 수십 가지의 무서운 이야기를 찾으러 탐방을 다니고, 수십 가지의 무서운 물건들을 보아 왔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연희도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물건은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그 전에 봐 왔던 어떤 괴이한 물건들과도,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좋아. 그럼 내가 직접 보여 줄 수밖에 없겠는데. 왜 이게 저주인형인지 말이야.”
연희가 막 옆에 있는 가위를 들려는 그때.
“저, 선배님!”
“어, 왜?”
부르는 사람은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1학년 남학생 이주한이다. 말은 없지만, 동아리실에 다들 모일 때부터, 주욱 인형만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그거, 제가 한번 해봐도 돼요?”
“아... 좋아. 좋은데, 대신 이 인형 때문에 뭐가 일어나도 나는 책임 안 진다.”
“좋아요.”
주한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큼성큼 인형이 놓인 책상 앞까지 다가간다. 잠깐 고민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채 1초도 되지 않는다. 대뜸 가위를 집어들더니, 곧바로 그 누더기 인형을 보고 선다.
“선배님, 이제 찌를게요.”
“어, 해 봐. 나는 책임 안 진다고 했어.”
연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한은 인형의 다리를 가위로 꽉 누른다.
하지만 그것뿐, 찌르지도 않고, 곧바로 주한은 자리를 나선다.
“뭐야, 그게 끝이야? 찌르지도 않고.”
“그냥 제 발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요.”
“하하하하, 겨우 그거야?”
연희는 주한의 말에 보가 터진 듯 웃는다.
“이왕이면 좀더 그럴듯한 저주를 생각했어야...”
그 순간.
쿵-
뭔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
돌아보니, 주한이 바닥에 넘어져서 발목을 부여잡고 있다.
“아... 아아악...”
“야! 주한아! 왜 그래?”
“아... 바... 발... 발을... 삐었어요...”
“뭘 어떻게 했길래 이런 데서 다 넘어져?”
잠깐...
연희는 주한을 일으켜 세우려다 말고, 그 인형을 돌아본다. 주한이 가위로 누른 자리와 발목을 삔 자리가, 같지 않은가! 주한을 걱정해 주는 것과는 별개로, 연희는 이 인형이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가까이서 지켜본 주한의 동급생들도 무서워지기는 마찬가지다. 린은 인형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곁눈질로만 본다.
“에이! 뭐 이런 걸로 다 쫄고 그래.”
기다렸다는 듯, 연희와 같은 2학년 여학생 앙겔라가 일어난다.
“봐봐, 보라고!”
다들 앙겔라를 돌아본다. 연희와 주한을 포함해서.
“그렇게 다들 쫄아서야 도컬트라고 할 수 있겠어?”
“아... 그건 그런데...”
“찌르려면 확실히 찔러야지!”
“야, 그래도 그걸 곧장 찌르면...”
“마연희 너도 쫄았네!”
앙겔라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송곳을 들고는 곧장 인형에게 돌격하듯 달려들어, 곧바로 인형의 가슴팍을 푹 찌른다. 마치,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이 확실히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야! 너 왜 그래?”
“선배님, 방금 찌른 건, ‘진심’인데요.”
“아, 말도 마. 내 남친‘이었던’ 녀석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앙겔라는 씩씩거리기까지 한다.
“어... 그래?”
앙겔라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찔렀으니까,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고. 괜히 이게 저주인형이겠어?”
바로 그때.
♩♪♬♩♪♬♩♪♬
앙겔라의 전화 벨소리다.
“여... 여보세요? 뭐... 뭐라고요?”
앙겔라는 마치 그 자리에 굳어 버린 듯, 덜덜 떨기만 한다.
“야, 앙겔라, 왜 그래?”
“할머니가...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대. 심장에 문제가...”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선배님, 할머니 말고 남자친구한테 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니야... 나는 분명히...”
앙겔라는 거기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얼굴을 두 손에 파묻어 버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형을 은근히 무시하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런 눈빛도 이제 싹 사라졌다.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이 인형, 뭔가 있다! 인형을 보는 모두의 표정이 찬물을 끼얹은 듯 굳어졌다.
“서... 선배님, 저 인형...”
쭉 지켜보던 레이카가 덜덜 떨며 말한다.
“설마 저를 똑바로 보고 있는 건 아니겠죠?”
연희가 보니, 레이카뿐만이 아니다. 인형 바로 앞에 앉은 린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동급생들, 후배들 모두 인형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야... 야! 저 인형 좀 어떻게 해 봐!”
린이 애써 인형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아니, 왜 내가...”
“네가 가져왔잖아!”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저 망할 인형을 당장 치워!”
말을 하고 있지 않은 다른 동급생과 후배들도 그 인형에게서 애써 눈을 피하며 말한다.
“진짜로 사람 죽는 꼴 보고 싶어?”
“아,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기는 했지만, 연희 역시 다리가 후들후들거린다. 설마, 저 인형, 정말 누가 초능력을 부여했다든가 그런 건가?
인형을 마주 보니까, 이제는 온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분명 연희 자신이 가져온 건데도, 이렇게 덜덜 떨릴 줄이야!
그 순간, 떠오른다.
‘인형의 저주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골동품 가게 주인의 말이.
“어디 하려면 해 봐. 나는 절대 당하지 않을 테니.”
다들 ‘저 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연희를 보지만, 연희는 그러건 말건 인형을 가만히 응시한다. 떨리지만, 손가락을 인형의 이마에 가져가서, 얹는다.
지그시.
그저 퍼포먼스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연희뿐만 아니라, 그 누구의 머리에도.
다음 순간.
“여보세요? 여보세요?”
앙겔라가 급히 전화를 받는다.
“어? 깨어나셨다고요? 다행... 다행이에요... 정말!”
앙겔라의 목소리. 그렇게 밝아질 수 없다. 정말로.
조금 후, 주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배님,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요.”
“어? 벌써 일어났어? 확 삐어 버린 것 아니었어?”
“아, 아니에요. 의외로 금방 괜찮아지던데요?”
“아... 다행이다.”
연희는 다시 동아리방 안을 돌아본다. 다들 안도하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이러니까 괴담 동아리지!’
다음날, 미린역 남쪽에 있는 카페거리의 한 카페.
“어, 그래?”
두 사람이 테라스에 앉아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다. 한 사람은 미린고 1학년생 현애, 또 한 사람은 연희.
“이 상자 안에 그 저주인형이 있다고?”
“맞아. 하이재에서 얻어왔지. 150년 동안 200명도 더 죽인 저주인형이야.”
연희는 상자를 벗기고 저주인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애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어, 놀라지도 않네.”
“에이, 농담이지? 하하하. 설마 나한테 저주를 해도 내가 얼려 버리면 그만이야.”
“어... 그런가?”
“하하하,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린 거 아니겠어?”
“음... 그런가? 하하하!”
연희는 상자 안에 다시 인형을 넣고는, 같이 깔깔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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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컬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아마 시리즈로 확장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나중에 시리즈로 만들어지면 한번 시리즈명을 지어 보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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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1-01-28 13:02:28
과연 저 소동이 정말 문제의 저주인형이 원인이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마음의 힘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서는 참으로 강력하다는 것이겠네요. 사람의 마음은 그 자체로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사물과 결합하게 되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꼭 바이러스의 생존전략같네요.
역시 굉장한 위기를 타넘어 온 현애답다고 할까, 그렇죠. 그 점이 좋아요.
시어하트어택
2021-02-01 23:20:39
사실 일부러 좀 모호하게 쓰기는 했죠. 구체적으로 알 수 없도록 하는 게 나중에도 도움이 되니까 말입니다.
SiteOwner
2021-03-06 20:23:37
150년 동안 200명도 더 죽인 저주인형...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인형을 소장했거나 직간접적으로 그 인형과 접점이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죽었을 터이니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인 괴담같습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도 생판 거짓말보다도 더 무서운 게 사실에 교묘히 거짓을 혼입한 것이라고 하니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현애의 마음가짐이 참 좋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애에 더욱 몰입할 수 있나 봅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3-14 22:53:29
저도 그래서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처리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저주인형 같은 건 솔직히 말하면 미신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힘든 일들이 잊을만하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