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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일요일,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의 카페 ‘레드봇’. 도트 위주의 디자인이 특징인 곳이다. 안쪽의 단체석에서는, 붉은 사과머리를 한 여학생 주위에 친구들이 모여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어? 너희 가족이 여름휴가에 ‘테르미니’로 간다고?”
“뭐, 뭐? 테르미니?”
“그... 투스칸 행성에 유적이 많다는 도시 아니야!”
“맞아.”
테이블 가운데에 앉은 니라차가 은근히 뽐내는 듯 말한다.
“거기서 9박 10일 일정으로 유적지 투어 겸해서 쇼핑도 하고, 뭐 이거저거 하려고. 물론 숙소는 5성급 호텔일 테고.”
“정말? 그런 일정이면 비싸다거나 그러지 않아?”
“에이, 전혀. 우리 부모님 정도면 그 정도는 큰 돈도 아니지.”
“아, 맞다. 너희 부모님 투자회사 하신다고 했지.”
“그런데 말이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소리를 가른다. 모두가 돌아보니 현애가 니라차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자랑만 할 거면, 우리를 왜 부른 거지?”
“왜냐면, 너희들도 같이 가면 좋으니까.”
“어, 정말?”
“우리도 같이 가자고?”
니라차의 말을 듣던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너 그 말, 진심인 거야?”
“그래.”
니라차의 대답은 바로 나온다.
“내가 왜 이걸 말하냐면, 사실 그 패키지로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따로 있었는데, 사정상 그 사람들이 못 가게 됐거든.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내 친구들이라도 같이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너, 그거 말이야.”
세훈이 살짝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는 니라차에게 말한다.
“혹시 우리한테 주는 건 싸구려 숙박시설에서 자고, 식사도 자비로 해결하고, 이런 거 아니야? 왠지, 좀 의심스러운 냄새가 나는데.”
“아니야, 맹세코 그런 건 아니야!”
니라차는 가방에서 금박이 된 봉투를 몇 개 꺼내서 보여준다. 틀림없이, 니라차가 말한 테르미니 여행 상품권이 맞다. 그것도 9박 10일, 최고 옵션의!
“이거 한 몇 장 있는데?”
“우리 가족 것 말고도... 어림잡아 6장은 될 텐데...”
“어? 6장?”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시저가 목소리를 높인다.
“6장이면, 여기 있는 사람들도 갈 수 있잖아!”
“그... 그렇죠, 시저 오빠. 얼마든지 말하세요. 가고 싶으면 가게 해 드릴 테니.”
“하하하, 고마워.”
“참,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조제가 말을 꺼낸다.
“그거 언제부터 가는 거야? 너 그걸 아직 안 말해 줬는데...”
“아참, 내가 말을 안 했다. 이번 달에 기말고사 끝나자마자 갈 거야.”
“기말고사가... 6월 26일날 끝나지, 아마.”
“그렇지. 그러니까... 6월 27일 토요일에 출발해서, 7월 6일 월요일에 돌아오는 거지.”
“오, 그래? 괜찮겠는데?”
다들 테르미니에서의 즐거운 휴가를 상상하고 있는데, 시저가 불쑥 말을 꺼낸다.
“그런데... 그때 테르미니는 날씨가 어떠려나.”
“아... 테르미니요?”
니라차가 잠시 테르미니의 날씨정보를 찾아보더니 말한다.
“대충 여기하고 비슷해요. 대신 비는 좀 더 적게 오고요.”
“그래, 좋네.”
“다들, 괜찮으면 말하세요!”
“음... 나는 좀...”
구석에 앉아 있던 파비안이 슬금슬금 말을 꺼낸다.
“발레리오 씨하고 뭐 하기로 한 게 있어서... 아쉽지만 나는 다음에 가야겠네.”
그날 오후 4시, 발레리오의 저택. 거실 한쪽에 메이링이 앉아서 로봇이 가져다주는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자네 왜 왔나? 일요일에는 좀 쉬지그래.”
어느새 거실로 나온 발레리오가 거실에 앉아 있던 메이링을 보고 묻는다.
“아, 발레리오 씨.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왜 굳이 직접 왔어? 웬만하면 전화나 화상통화 같은 걸로 해도 되는데.”
“그런 거면 오지도 않았겠죠.”
메이링이 봉투 하나를 꺼낸다. 조금 전 레드봇에서 니라차가 꺼내 보여준 것과 같은, 금색 봉투다. 그리고 거기서 꺼낸 건...
니라차가 보여준, 바로 그 여행 상품권이다!
“발레리오 씨, 이거, 뭔가 좀 감이 오는 것 있지 않나요?”
발레리오가 한번 그 상품권을 훑어보더니, 감이 온 건지 고개를 끄덕인다.
“어? 혹시 뭐라도...”
“아, 여기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지.”
“테르미니의 유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있다고요?”
“레아하고 호렌이라면 좀 자세히 알고 있어.”
“응? 레아하고 호렌이라니요?”
“테르미니는 원래 이레시아인들의 도시가 있던 곳이야. 물론 그건 수천 년도 더 전의 일이고, 그곳이 버려지고 나서 한참도 더 뒤에 인류가 들어와서 거기에 테르미니를 건설했지. 물론 내가 거기 직접 있던 건 아니지만. 나와 내 형제들도 거기는 한 번도 안 가 봤네.”
“정말인가요?”
“그래. 아마 인터넷 뒤져보면 어느 정도는 나올 거야.”
“그... 그게... 다인가요?”
“물론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지.”
발레리오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장주원 박사의 부하 중 잡히지 않은 사람이 있지?”
“네, 한 명 있었죠. 좀비를 다루는 능력자였죠.”
“그 사람이, 테르미니에서 포착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네, 정말요?”
“맞아. 복수의 정보원에게서 관련된 정보를 입수했지. 아마 장 박사를 잡은 그 날 우주선을 타고 투스칸 행성으로 가 버린 모양이야.”
“그런데 바로 그렇게 행선지를 잡고 가는 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내 추측인데, 그자는 장 박사보다 더 강력한 자의 지령을 받고 있을 것 같아.”
추측이라고는 하나, 발레리오의 말은 곧바로 나온다.
“그리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 장 박사보다 더 강력한 자라면 한 녀석밖에 없지.”
“그... 프리모를 죽였다는 자 말인가요?”
“맞아! 장 박사에게는 페드로 솜브라라는 가명을 썼고.”
프리모라는 이름이 불리자, 발레리오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진다.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저, 발레리오 씨, 괜찮은가요?”
“아... 나는 괜찮네.”
발레리오는 애써 감정이 북받쳐 오르려는 것을 참으며 말한다.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나?”
“네? 무엇이든지...”
“여기 이 상품권에 적힌 ‘술탄 트래블’이라는 회사를 한번 조사해 주겠나?”
“네... 한번 제가 조사해 보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 6월 27일 토요일, 투스칸 행성의 테르미니 우주공항.
“하! 이제 도착했네.”
게이트를 나오자, 세훈이 숨이 확 트인 듯 큰 소리로 말한다. 터미널 한가운데 걸린 시간은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다. 세라토와 테르미니의 시차는 3시간이고, 세라토 우주공항에서 오전 9시에 출발했으니, 일행은 12시간을 꼬박 우주선 안에 있었다.
“그런데, 니라차.”
니라차 옆에서 현애가 묻는다.
“호텔까지는 어떻게 가?”
“호텔? 리무진 버스가 올 거야. 그거 올 때까지 여기서 구경하고 있으면 돼.”
리무진 버스가 오기까지는 1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6시 50분에 공항 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행은 각자 흩어져 쇼핑도 하고, 구경도 하고 하기로 했다.
현애는 막 캐릭터 매장 쪽으로 가려다가, 기둥에 뭔가 붙어 있는 걸 본다. 가까이 다가가니 전단지가 하나 붙어 있다.
“응? 얘들아, 여기 무슨 전단지 같은 게 붙어 있는데?”
[유적 발굴단 상시모집]
[관련 자격증 소지자 우대]
[채용 합격자는 내규에 따라 결정]
[문의:XXXX-XXXX-XXXX]
붙어 있는 전단지는 유적 발굴단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전단.
“에이, 이런 게 뭐 대단하다고.”
“유적이 많은 도시니까 이런 전단도 붙어 있는 거겠지.”
“그래... 그렇겠지?”
다들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세훈조차도. 현애는 제 갈 길을 간다. 일단은 여기를 구경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단 내용이 이상하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테르미니에 뭐가 대단한 게 있다고 저렇게 유적 발굴단 광고까지 하는 건가?
아무튼, 일행과 떨어져서 터미널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건 기념품 매장. 아직 여행은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에 벌써부터 눈길이 끌린다. 대체로 신전이나 신상을 형상화한 듯한, 금색과 은색 위주의 캐릭터 상품이 많다. 일단 쭉 보니 지금 살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 테르미니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기념품점을 둘러보고 나서서, 또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이번에 눈에 들어오는 건 생활용품 전문점 ‘사우전드 숍’. 세라토에서도 많이 보인 가게들로, 학교 근처에도 하나 있었다. 주로 파는 건 생활용품. 하지만 여기 우주공항 터미널에 있는 가게의 특징이 있다면, 이곳은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파는 코너가 비중 있게 마련되어 있어서, 여행 필수품을 미처 사지 못한 여행객들이 한 번씩 들렀다 갈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간판에도 그런 내용이 쓰여 있다.
가게로 들어가는 길에, 또 다른 전단지가 몇 장 붙어 있다. 떼어서 한번 본다.
[직원구함]
[모집분야 : 시추, 조사분석]
[근무조건 : 일 10시간]
[연락처 : XXXX-XXXX-XXXX]
“이것도 유적 발굴이네. 왜 이런 전단지가 많지?”
다른 전단지들도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이 정도로 많이 보이다 보니,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다. 그 뗀 전단지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다. 이따가 한번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몇 걸음 정도 걷다 보니...
“거기, 잠깐만.”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현애가 돌아보니, 벙거지를 쓰고 사각형 무늬의 셔츠를 입은 웬 젊은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다. 모자 너머의 그 시선, 처음 본 건데도 우호적인 시선이 아니다. 오히려 적이나 사냥감을 보았을 때의 시선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노려보는 건지는 몰라도.
“당신, 누구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 전단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군.”
“무슨 소리야? 전단지 보는 사람은 다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줄 알아?”
“물론 그냥 전단지를 보기만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는 전단지를 뜯어서, 그걸 가져가려고 했지. 이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이지?”
“참 별소리를 다 하네.”
“별소리라니.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증명된 사실이지.”
벙거지를 쓴 남자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너 같은 얼뜨기들은 수십 명도 더 보아 왔고.”
“무슨 소리야? 나는 댁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그런 얼뜨기들 말고 싫어하는 부류가 두 가지 더 있지. 질문하는데 말 빙빙 돌리는 사람, 그리고 검은 꿍꿍이를 품은 사람. 너는 그 세 가지에 다 해당하는 것 같으니, 내가 가르침을 줘야겠어.”
벙거지 쓴 남자는 불쌍함과 경멸이 반반씩 섞인 눈으로 현애를 스윽 본다. 얼핏 현애의 눈에 보인다. 남자의 허리춤에 휴대용 드라이버가 채워져 있다.
“자, 가르침을 주기 전에 하나만 물어볼까? 네 이름을 듣고 싶은데.”
“그래, 가르침은 좋은데 말이야.”
현애가 여전히 볼멘소리로 말한다.
“나부터 알아야겠는데? 댁이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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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부의 첫 회차를 업로드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주2회 업로드해도 되겠군요...
그럼 연재 속도는 상황 봐가면서 조절하겠습니다. 특별히 공지하지 않는 한 주2회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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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4-14 22:47:19
이제 3부의 시작인 101화네요.
많이 기다렸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속도감 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게 되네요.
사실 해외여행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 여러모로 사전준비해야 하는 게 많죠.
그런데 성간여행을 현실세계의 해외여행 감각으로 하는 게 정말 놀랍기 그지없어요.
역시 부자는 씀씀이가 다르네요.
행선지는 테르미니. 문제의 페드로 솜브라도 그곳에 있는 듯하고, 술탄 트래블이라는 회사도 여러모로 의심이 가는 거군요. 고객을 술탄처럼 모실지, 여행사가 술탄같이 행동할지는 명확하지 않으니 실체가 어떨지는 상상에 맡겨야겠네요.
테르미니 현지의 구인광고는 이스라엘의 유적관광같은 감각일까요. 실제로 관광객에게 발굴유적을 갖고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하죠. 거기에다, 판타지 세계를 다룬 애니에서 잘 보이는 모험가 길드원 모집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현애에게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잘 꼬이는 걸까요...
시어하트어택
2021-04-18 23:26:52
기다려 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여행이란 게 쉬워 보여도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 쉬운 건 아니죠. 혼자 2박 3일 다녀오는 해외여행도 준비할 게 여간 많지 않은데, 저 정도 패키지여행이면 정말 많은 게 필요한 법이죠...
SiteOwner
2021-04-18 21:43:32
3부의 속행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기를 기원하며 이제부터 감상하겠습니다.
대타라는 게 참 오묘합니다.
세계의 여러 분야의 위인들이 의외로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꾸러 들어간 대타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서 대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번의 주인공들이 과연 그렇게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기대반 걱정반이 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장주원 박사의 부하 중 잡히지 않고 도주한 그도 주인공들의 일행의 행선지에...과연 이번도 순탄치는 않을 게 보이는군요.
현애에게 처음부터 적대하는 벙거지 쓴 남자에게는 영 좋은 감정이 안 듭니다.
감언이설로 접근하는 자도 조심해야 하지만, 처음부터 적대하는 자 또한 역시...
시어하트어택
2021-04-18 23:30:18
사실 저런 빈 자리 채워넣기 같은 데에서 신인들을 많이 볼 수 있죠. 다른 사람이 부를 노래를 불렀다든가, 선거의 재보궐선거라든가... 그렇게 해서 국면을 바꾼 게 참 많죠.
이번 여행도 아마 순탄치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3부는 그냥 유람기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