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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90화 - 파디샤(4)

시어하트어택, 2022-02-04 07:42:37

조회 수
120

“이봐, 파디샤.”
남자의 뒤에서 발레리오가 입을 연다.
“뭐가 온다고? 똑바로 말해라. 모호하게 말하면 우리는 못 알아듣는다.”
“친절하게 말해 줘야만 아는 건가? 붉은 베라네의 결정체가 온다. 새로운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할 물건이지.”
남자는 제법 웃음까지 지어 가며 말한다. 그 여유로운 말이, 그렇게 섬뜩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남자의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린다. 그 말인즉, 태양석이 오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남자의 말대로, 푸른 헬멧을 쓴 남자가 아케이드 한구석에서부터 점점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고, 전속력으로, 남자를 향해. 수많은 방해가 있었지만, 이 모든 방해를 뚫고 달려오는 헬멧 쓴 남자의 얼굴에는 희열, 그 이상의 희열이 묻어나온다.
한편, 파라의 그림자 안에서도, 지금 밖에서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는 채고 있는 듯하다.
“지금 저기 밖에서 뭐라고 그러는 거죠?”
“태양석이 지금 여기에 오고 있다고 그러는 것 같은데요...”
파라가 묻자 미켈이 바로 말한다.
“그리고, 우리 쪽의 목소리는 아닌 것 같군요.”
“그렇다면, 설마...”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파라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지금 온다는 태양석은, 2년 전에 자신과 마주쳤던 그자에게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게 현실로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분명히 여기 있는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긴요.”
세훈이 파라와 미켈의 말을 듣고 있다가 입을 연다.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고민할 시간도 없다고요.”
마침, 그 정찰대원이 세훈과 미켈이 숨은 그림자 쪽을 지나가려는 듯하다. 입은 열지 않지만, 세훈과 미켈은 지금이 기회임을 직감한 듯,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림자 안에서 나온다. 마침, 세훈과 미켈이 나오는 곳으로, 지나간다!
“절대 안 되지!”
그림자 안에서 미켈과 세훈이 나와서, 뛰어오는 정찰대원의 진로를 막아선다. 난데없는 상황에 놀란 정찰대원은 급히 진로를 바꿔, 옆으로 피해 보려고 하지만 역시나, 그쪽으로 가기에는 너무 멀다. 정면으로 돌파하자니, 난데없이 튀어나온 세훈과 미켈에게 걸려 넘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돌아서 가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정찰대원에게는, 몇 초의 고민할 여유조차도 없다... 하지만 그는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찰대원이 몸을 날린다. 그의 눈에 남자가 보인다. 크게 외친다.
“수, 수령님! 받으십시오!”
온 힘을 다해, 손바닥 크기의 그 금속제 상자를 남자를 향해 던진다. 그 순간, 아케이드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허공을 나는 상자에 쏠린다. 남자와 투닥거리던 현애도, 발레리오도, 비토리오도. 하지만 너무도 멀다. 남자에게는 가깝고!

“수령님!”
헬멧을 쓴 남자가 힘껏 던진 금속 상자가 허공을 난다. 마치 그것에 의지라도 실린 것처럼, 남자를 향해 똑바로 날아간다.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상자를 보는 남자의 눈이 기쁨에 가득 차오른다. 그 뒤로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보인다. 특히 발레리오의 얼굴색은 완전히 흙빛이 되기 직전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토리오 역시 떨리는 눈으로 그 광경을 보기는 마찬가지다.
“오, 저건가... 저걸 이제 열면, 찬란한 광채가 나를 덮고, 천국이 열리겠군!”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향해 상자를 던진 그 정찰대원을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수고했다. 네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구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천국에서, 너는 마땅히 그 보상을 받으리라!”
그 말을 듣는, 땅바닥으로 내려앉는 정찰대원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비록 몸은 그의 수령에게 닿지 못할지라도.
“좋다! 이제...”
하지만, 남자의 말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못한다. 정확히는 그가 막 그 상자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웬 벌레떼가 날아오더니, 태양석이 든 그 상자를 낚아채 가는 것이 아닌가!
“저, 저게 무슨...”
자세히 보니,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를 무수히 많은 벌레떼가 상자를 에워싸고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메뚜기 같이도 보이고, 풍뎅이 같이도 보인다. 남자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지, 상자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걸 멈추고, 한발 물러선다.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듯한 올라간 입꼬리와 황당하다는 듯한 커진 눈이 한데 합쳐져, 묘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저런 수작을!”
미켈은 그걸 누가 했는지, 대략은 짐작이 간다. 틀림없이 이 근처에 바리오가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떻게 이 근처까지 와서 벌레들을 보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다른 크루들이 무사히 이 근처까지 왔다는 건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응? 어디로 가는 거지...?”
현애의 눈에, 상자를 들고 가는 벌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어디론가 향하는데, 위쪽의 1층이나 아래쪽의 지하 공간은 아니다. 벌레들이 향하는 곳을 보니, 분수대 쪽인 것 같다. 쫓아가 본다. 벌레들을 뒤따라가니, 역시나, 분수대가 나온다. 그리고 예상대로, 벌레들은 그 상자를 분수대의 물 속에 빠뜨리고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너 이 자식, 어디로 도망가는 거냐? 지금 이 상황에서 비겁하게 도망가는 건, 별로 네게 좋은 선택지는 아닐 텐데...”
“도망치는 건 아니야. 지금 이 상황, 네가 더 나서야 할 상황 아닌가?”
“후... 훗, 그렇단 말이지!”
금세, 남자는 현애를 뒤따라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태양석을 절대 빼앗기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태양석은, 그의 차지여야 한다. 서둘러 달려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부질없는 시도다. 태양석은 내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너희가 그 어떤 행동을 하여 나를 방해할지라도, 그것은 이미 확고히 정해진 운명이다.”
몇 m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안심할 수 없는 거리다. 조건은 남자에게 유리하다. 체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남자가 마음만 먹으면 태양석을 가져오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이전에도 그는 지금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은 적이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년 전이 그랬다. 그는 베라네를 거래하러 온 어느 밀수단을 습격해서 그 자리에서 모두 없애 버릴 계획이었다. 마침 그가 20년쯤 전에 없애 버렸던 한 업자의 가족이 둘씩이나 있어서 그들 또한 거기서 없앨 겸해서 우선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처치할 계획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밀수단 모두 그에게 맞설 만한 변변한 무력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고, 특전대 같은 친위부대를 보낼 필요도 없이 그 혼자서만 움직이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공격을 한번 받았던 여자는 바로 그에게 다시 대항하는 대신, 베라네 시설로 몸을 돌려 시설을 파괴하는 데 온 힘을 다했고, 거기에 더해서 상당량의 베라네까지 빼돌렸다. 결국, 그날, 그가 공들여서 지었던 베라네 정제 시설은 파괴되었다.
“하, 그날, 절대 못 잊지.”
세훈과 미켈을 따라 그림자에서 얼굴을 드러난 파라가, 먼발치에서 남자를 지켜보며, 숨을 죽이며 말한다.
“그때 내가 베라네를 빼돌리지 않았으면 지금 이 그림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었으려나...”
“뭐, 말도 필요 없겠죠. 저희가 능력을 발현하지 못했을 테니, 지금의 여행 자체도 성립하지 못했을 테고요.”
“잠깐...”
파라의 얼굴이 굳기 시작한다.
“저 녀석이, 저 녀석이 더 빠르잖아! 이거 안 되겠어!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은데...”
분수대에 금속제 상자가 빠지자마자, 남자의 손이 더 먼저 뻗었다. 거기에다가 위치까지 더 유리하다. 출발은 현애보다 조금 더 늦었지만, 무섭게 속도를 낸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은 현애보다 두 발걸음은 앞에 있다. 거기에다가 오른팔을 앞으로 뻗은 반동으로 뒤로 향한 왼팔은, 은근히 현애를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도 하다. 그 왼팔은, 하필이면 현애의 시야를 정면으로 가리고 있다. 남자에게는 모든 것이 유리하고, 현애에게는 모든 것이 불리한 이 상황이다.
“자, 지금 이 기류 자체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거지? 이미 모든 운명은 결정되었고, 너도 그 운명을 피할 수는 없는데!”
“왜 그런지 알고 싶어?”
현애가 입을 연다. 남자에게 그 목소리가, 마치 그 이전의 방해자들의 목소리를 한데 합쳐 놓은 것처럼 거슬린다.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무슨...”
현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자의 눈앞에 보인 것.
바로, 완전히 얼어 버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버린 분수대. 그리고 거기에 손바닥이 들러붙어 버린, 그의 오른손이다. 거기에다가 얼음덩어리에서 나오는 냉기가 붙어 있는 손바닥을 더욱 얼게 하고 있다. 남자의 오른손으로부터 시작해서 팔꿈치에까지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
“개... 같은, 이런 수작을!”
남자의 입에서 화산이 분출하려는 듯한 말이 나오는 그 순간.
마치 비디오 되감기가 일어난 듯, 모든 것이 뒤로 돌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림자에서 막 나오려던 파라도 예외는 아니다. 몸이 다시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막 세훈과 미켈에게 2년 전의 나쁜 기억을 이야기하며 밖으로 나서려던 그때로 돌아간 것이다. 남자의 바로 뒤에서 뛰어가며 태양석이 든 상자를 향하던 현애도 예외는 아니다. 몇 초 전, 막 상자를 향해 뛰어가려던 그 위치로 돌아가 버렸다. 인지도 하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다. 분수대의 물을 모조리 얼려서 만든 거대한 얼음덩어리 역시 원래의 물로 돌아가 있다. 단순히 시간이 몇 초 전으로 감겨 버린 것이라면 모르겠으나, 파라도, 발레리오도, 현애도, 다른 아케이드에 있는 사람들도 몇 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인지는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서 남자만이 홀로 예외라는 듯, 그는 혼자 분수대 앞에 서서 태연히 손을 휘저어 분수대 안에 있는 상자를 꺼내려 하고 있다!
“알겠나?”
남자는 손을 휘저어 상자를 꺼내려고 하면서도, 다시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현애와, 그 외에 아케이드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러니까, 능력도 안 되는 주제에 처음부터 내게 대들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내게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다른 녀석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고. 그 운명에 순응했으면,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할 게 아니라, 새로운 천국에 함께할 자격이 주어졌을 텐데!”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2-02-04 15:30:07

역시, 끝날 때까지는 완벽히 끝난 게 아니네요.

그렇게 파디샤의 목전에서 태양석은 거두어지고 그는 온갖 있는 힘 없는 힘을 다해 발악하려 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네요. 그가 말한 능력도 안되는 주제에 하는 말은 타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야 할텐데, 어떻게 된 건지 그 자신만 모르는 듯하네요. 이제는 후회해도 늦은 것 같고...


이렇게 전작에서의 운명과 본작이 확실히 잘 이어지네요. 이제 남은 건 파디샤가 보기 좋게 몰락하는 것이겠죠?

시어하트어택

2022-02-06 20:13:22

하지만 파디샤는 그렇게 쉽게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그 결말로 가는 과정은 천천히 이루어지겠죠. 물론 작중의 시간에서는 이제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SiteOwner

2022-03-20 23:29:48

태양석을 통해서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태양석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파디샤는 스스로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얼어가면서도 외치는 악다구니는 결국 자신의 못난 점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는 기제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이제 그를 위한 운명은 없다고 봐야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2-03-27 20:53:20

어쩌면, 운이 지금까지 따라 주었기에 지금의 파디샤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운이 따라 줄지는... 그러지는 않은 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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