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퇴사했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관둘까 생각중이라고 하자 '현장 경험이 있어야 하는 일을 왜 실험하시던 분이 하세요?'라고 하셨고, 어떤 분은 '이럴거면 왜 뽑았대요?'라고 묻더군요. 저도 궁금합니다. 직무에 대한 이해 자체를 잘못 하고 있는데 왜 뽑은건지.?
일... 심각하게 안맞습니다. 제가 낯선 사람이랑 전화를 싫어하는데 이 일은 두가지 다 해야 하는 일이예요. 거기다가 케이스가 더럽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가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특허의 현재 권리자나 권리 이전 상태에 따라서 나뉩니다. 전산에 잘못 등록되는 경우도 있고(그것때문에 혼난 적 있음) 특허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가 되는 경우도 있고... 그거 말고도 케이스가 되게 많아요. 그것때문에 외부와 통화를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저는 이 일 하려면 거의 환생하고 성격작+스킬스탯 재분배를 다시 해야 하는 정도죠.?
그거랑 별개로 입사하고 한달까지는 좀 설렁설렁 하는 느낌이라 괜찮았습니다. 근데 한달이 지나니까 갑자기 여반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양도 양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경우가 들어와서 물어보면 한달차인데 왜 그것도 모름? 이렇게 됩니다. 무슨 시그모이드 함수*도 아니고... 한달차 전까지 0이었다가 한달 찍으니까 갑자기 1이 되던데요? 튜토리얼은 되게 쉬운데, 본게임 들어가면 난이도가 거의 엘든링*이나 다크소울*이 됩니다.?
이러면 인공지능도 제대로 처리 못 해서 정확도 떨어지는데 사람은 어떨까요??
두달차 되고 나서 갑자기 출력이 150%로 올라갔습니다(이것도 프로그램이나 지표 찍는것때문에 이 이상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케이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취합이 되어서 질문할 일도 줄었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머리가 없고 느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요? 네, 그 얘기를 어제 들으면서 길어야 5월 13일까지니까 슬슬 이직 준비 하시라, 필요하면 조절해주겠다 얘기했을 때 제가 말했습니다. '사실 그 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토요일이 말일이니 깔끔하게 내일 관두겠습니다. '
단순히 일이 어려워서 이러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저 생각보다 근성 있는 사람입니다. Jump rope challenge 600일 넘게 했잖습니까. (오늘 645일인가 655일인가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렇게 열렬히 할 의욕이 생기질 않더라고요. 관두더라도 월급 말고는 손해볼 게 없었으니까요.?
전직장에서도 대표가 (삐-)같았던 부분은 있었어요. 근데 에리본씨랑 뮤츠씨가 있으니까 같이 위아더월드! 하면서 힘든거 다 풀고 그랬거든요. 근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요. 제가 밥을 먹건 안 먹건, 밥을 먹고 게임을 하건 잠을 자건 그림을 그리건 백준*을 풀건 아무도 신경을 안 씁니다. 이 얘기를 어제 했더니, '똑같은 월급 받으면서 라이츄씨가 일을 덜 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라고 하시는데 이 가정은 맞건 틀리건 문제가 됩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일처리에 대한 시간복잡도가 더 크다는 이유로 사람을 공기취급 해도 되는겁니까? 이 가설이 틀리다면, 무슨 근거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함부로 단정짓는겁니까??
당분간은 조금 쉬고싶습니다. 원래 멘탈이 나가면 식사를 안 하는 편이라 요즘 많이 먹어봐야 밥 반공기로 줄은데다가 점심도 계속 혼자 먹다보니(4월 상순부터 그랬습니다) 삼각김밥 하나로 때웠거든요. 심지어 우울증 증세가 보이기 시작한 후로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에 깼습니다... 한시간정도 일찍 깨서 선잠잤어요. 오늘도 그것때문에 피곤해서 제때 못 일어나고 스누징*했습니다.?
+그 잘생긴 분이랑요? 시작도 안 했는데 결말이 있을 리가요.?
애초에 제가 인사하면 놀라면서 받고, 가위 빌리려고 불렀더니 아이 깜짝이야 하시던 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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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든링, 다크소울: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만드는 게임인데, 이 개발사 게임은 난이도가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2) 시그모이드 함수: 인공지능의 활성화함수 중 하나. 정의역에 상관 없이 출력이 0 or 1입니다. 형태는 알파벳 S나 적분기호를 길게 늘어트린 형태.?
3) 스누징: 엄마 나 10분만 더 잘래의 알람 버전입니다. (알람을 끄지 않고 일정 시간 후에 다시 울리게 할 수 있는데 그게 스누징입니다)
4) 백준: Baekjoon Online Judge(개발자들이라면 한문제쯤은 풀어본다죠...)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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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SiteOwner
2022-04-30 16:07:53
우선,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한달만에 손바닥 뒤집듯 태세전환하는 그런 직장은 오래 있으면 몸과 마음이 급격히 상합니다. 힘들 때는 사람의 이해심에 의존하고, 상황이 좋아진다면 그때는 그간의 노고에 보상을 안해주려 하고 그렇습니다. 하멜른에 피리부는 사나이가 나타나서 쥐를 퇴치해 주고 나니 그 도시 주민들은 나중에 딴 소리를 하고 말지요. 바로 그런 것처럼.
요즘 덥다가 갑자기 싸늘하다가 날씨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인 5월 5일은 입하입니다. 당분간 정양하시면서 몸과 마음을 잘 추스리시길 바랍니다.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
국내산라이츄
2022-04-30 21:35:04
일하면서 한번도 그간의 노고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은 받은 적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질적인 보상은 뭐… 월급이나, 회사 30주년 컵이 있지만… 심리적인 보상이랄 건 배정해주시는 분들이 공지로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것 말고는 없죠. 적어도 저는 그것 외에는 아무런 심리적인 보상도 받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월급날이 되면 사람들이 ‘오늘 금융치료 받는 날’이라고 했고요.?
계약서에 적혀있는 연봉을 보고 뭔가 쎄하긴 하더라고요. 보통 연차와 포지션에 적합한 연봉보다 비싼 경우에는 뭔가 많이 힘든 요소가 들어있는거라는 얘기거든요. 그런 걸 떠나서 똑같은 월급 받는데 일은 더 적게 한다고 공기취급 하는 사람들이 정당화 될 리는 없겠습니다만.?
마드리갈
2022-05-01 14:34:13
그러셨군요. 퇴사하셨고 당분간 휴식을 가지기로 하셨군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잘 치유하시리라 믿어요. 자신을 잘 돌보는 게 역시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요.
회사의 태도를 4자성어로 요약하면 "적반하장" 그 자체네요.
자기들이 처음부터 무리해 놓고 그걸 왜 못하냐 운운하는 건 그 회사 안에서는 통할지는 몰라도 그 회사 바깥의 세상에서는 절대로 통용되지 않는 건 알려고 하지도 않겠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릴께요. 그 회사는 국내산라이츄님에게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할테니까요.
국내산라이츄
2022-05-01 19:10:49
인격적으로는 좋은 분들이지만… 글쎄요. 몇몇 분들 말고는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가 애매합니다. 제가 오미크론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되었을때도, 격리되었다가 출근했을때도 저한테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봤던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고, 저는 다 끝냈는데 다른 팀에서 급한 건이라고 말했음에도 끝내지 않아서 발급이 지연됐을때도 그것때문에 좀 더 일찍 말할걸 그랬나, 하면서 자괴감 들어서 식사를 안 할때도 저한테 식사 안 하시냐고, 괜찮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하셨던 건 한 분뿐이었습니다. 오미크론때문에 격리되었다가 돌아왔을 때 같이 식사하자고 해놓고 ‘근데 아직 바이러스 남아있는 거 아냐?’라면서 밥 먹는동안 말도 못 하게 한 사람도 있었어요.?
에리본씨나 뮤츠씨와 달리 이후로도 일적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최소한 그 직장 내에서는 말이죠.?
YANA
2022-05-02 00:39:12
라이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 직장에서 힘드셨다니 위로의 말씀 드려요. 푹 쉬시고 빠르게 회복되셨으면 합니다.
역량에 맞지 않는 일을 시켜놓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교육도 감독도 아무것도 없다니. 경력직이라 해도 책임자의 직무 유기 아닌가요... 여러모로 좋은 곳은 아니었네요. 한 달만에 알아서 일을 잘하길 바라는건 대체...
국내산라이츄
2022-05-02 03:17:35
교육이 있긴 있었습니다만, 그걸로 커버가 전혀 안 되는 수준의 일이었던거죠. 보통 이런 경우에는 퇴근 후나 주말에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 특성상 내부 문서를 밖으로 가져갈 수도 없고 유튜브, 와이파이, 테더링도 안 되는 상황이라... 사실상 힘듭니다. 입사 후 한달째 될 때까지는 짬이 좀 났지만, 한달 후부터는 말 그대로 숨만 쉬고 일만 해야 겨우 제 시간에 퇴근하는 정도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