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980년대의 미래예측 중에는 이런 게 있었습니다. 미래의 세계에서는 자동차들이 중앙관제센터의 지령을 받아서 교통체증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에 더해 자동차가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세대 넘게 지난 지금은 미래의 자동차기술은 자율주행으로 가고 있고 이미 몇몇 자동차 제작사들은 수년 전부터 실용화시킨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단계는 적어도 자율주행만큼 숙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30여년 전의 예측과 지금은 완전히 다릅니다.
왜 이렇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출입이 자유로운 공도에서의 중앙관제라는 게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 것이며 또한 그 중앙관제센터가 언제나 온전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에서 자문자답이 가능해졌습니다.
사실 중앙관제가 위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철도처럼 물리적으로 구속되어 배타적으로 운용되는 교통망이나 물리적으로는 구속되지 않더라도 운용인력 및 관제인력에 모두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지식 및 숙련도가 필요하여 사실상 배타적인 성격이 강한 해운이나 항공입니다. 대부분의 일반인이 운전자로서 참여가능한 공도에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도 많은데다 중앙관제의 신뢰성조차 의문입니다. 이 경우는 현장의 판단에 맡기고, 정부는 심판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 더욱 효과적입니다.
그렇다 보니 결국 교통기술의 발달은 일단 2차원인 평면 위에서 진행되는 자동차의 자율주행으로 가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것을 좀 확장해 보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제시스템이 왜 계획경제가 아니라 시장경제로 수렴하는가, 사회의 네트워크화가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되 네트워크 종속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사안도 비슷하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이고 전통적인 주요행위자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국적기업, 시민단체, 개인 등이 영향력을 넓혀간다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소멸이나 무용론을 논할 수 있는가도 추론범위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과거의 미래예측과 현재의 기술조류를 대응시켜 보니까 다르게 흐르는 것도 보이고 또한 이런 것들로 기술 이외의 영역, 특히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추론이 가능해진다는 게 스스로도 놀랍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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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키
2022-05-31 23:42:17
한편으로 이런 것을 보면 21세기는 정말 미래구나 라는 실감이 들기도 하네요.
사진은 JR서일본에서 철도시설의 고공작업용으로 개발중인 범용 인간형 중장비 "공간 중작업 인기(人機)?(다기능 철도 중장비)" 汎用人型重機「空間重作業人機(多機能?道重機)」 의 사진으로 보행기구는 없지만 어엿한 인간이 탑승하는 인간형 로봇이자, 고공에서의 중량물 작업을 인간의 팔동작을 모방하여 따라하는 로봇이라고 하죠. 2024년 실용화 예정이라는듯 합니다.
관련기사는 이쪽(https://news.mynavi.jp/article/20220415-2323108/) JR西日本、人型重機ロボットと工事用車両を融合させた鉄道重機開発 / JR서일본, 인간형 중장비 로봇과 공업용 차량을 융합한 철도 중장비 개발.
로봇 스타트 주식회사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시연 영상(https://youtu.be/2iiwJsr4_0E)
애칭(?)은 "0식 진키(零式人機, Reishiki jinki)"로도 불리는 모양입니다. 사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인간형 로봇이라는 점이 색다를 뿐 인간이 탑승하여 조종하는 중장비라는 기본 개념 자체는 굴삭기나 크레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인간의 동작을 모방해 인간의 작업을 따라한다는 로봇의 특성을 "인간과 기계가 힘을 합친 존재"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아나운스가 백미.
SiteOwner
2022-06-01 00:04:19
이런 훌륭한 장비가 개발되다니, 그것도 인간이 탑승하여 팔동작을 따라하는 인간형 고공작업로봇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고 JR서일본에 대한 인식도 이것으로 확실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역시 인간과 기계가 힘을 합친 존재가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래예측 중에 이런 것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이 각종 창작물에 등장하긴 했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 잘 쓰이는 로봇은 고정된 위치에서 정해진 작업을 수행하는 것들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한된 공간내에서 이동이 가능하고, 그 이동 또한 2차원 이동에서 3차원 이동으로 확장되고 형태도 제한된 작업에의 특화에서 소개해 주신 범용인간형중기처럼 기존의 산업용 로봇과 창작물 속 인간형 로봇의 중간형으로 발전하고...이렇게 또 세계가 달라지는 게 아주 흥미롭게 보입니다.
좋은 사례를 소개해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Lester
2022-06-01 10:16:56
중앙관제센터의 지시에 따라 교통체증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조라, 그럴 거면 아예 말씀하신 것처럼 철도와 비슷하게 사실상 국립택시 같은 게 되어버리지 않나 싶네요. 애초에 '교통체증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말 자체가 '철저하게 지시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에게 국립택시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간 도로가 꽉 차버릴테니 나온 게 대중교통이고, 그것도 자기 집 바로 앞까지 오지 않거나 기타 여러 불편함 때문에 마련하는 게 자가용이니...
살짝 얘기를 돌려서 자가용에 대해서는 '답답하니 어디로든 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지만, 한편으론 관리비도 관리비지만 주차 때문에 정신사나울 것 같아서 포기하는 상황의 반복입니다. 애초에 밖에 나가는 일이 별로 없다보니 있으나마나한 판이지만요. 집 자체가 호캉스나 마찬가지지만, 어쨌거나 집이 곧 직장이다 보니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해진 환경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계속 있습니다.
SiteOwner
2022-06-01 13:41:10
당시 그런 예측이 나왔던 것은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과 그에 동반한 철도퇴조의 영향이 상당히 짙었기에 그렇게 유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동차는 글자 그대로 도어-투-도어(Door-to-door), 즉 출발지와 도착지를 직결하는 데에는 다른 교통수단이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월등한 기동성과 유연성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제1세계를 주도하면서 자동차를 정책적으로 보급한 것도 상당히 큽니다. 우선 유럽에서는 마셜플랜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을 부흥시키면서 유럽의 철도네트워크는 전반적으로 전간기보다 다소 줄어들게 되었고 노면전차도 도시재건과정에서 노선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길을 맞았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GHQ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국민총동원체제의 근간이 철도에 있다고 보고 전후부흥에서 철도를 배제하고 자동차를 보급하는 방안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의도가 없었더라도 당시의 일본은 도로가 상당히 부실해서 도쿄나 오사카같은 세계 유수의 대도시 번화가조차도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될 정도로 도로포장이 부실했다 보니 전후부흥에서 도로건설은 필요했겠지만요. 역시 일본에서도 유럽과 같이 노면전차가 퇴조의 길을 맞아서 대도시에서 노면전차가 사라져 버스와 택시로 대체되고 개인 승용차도 전국 각지의 도로에 자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기묘하게도 정반대로, 그 시대는 전체주의의 잔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든지, 제2세계와 제3세계는 물론 제1세계조차도 권위주의의 시대인데다 인간이성에 대한 과신도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파시즘 체제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살아 있었던 1975년까지 유효했다든지, 공산국가인 소련 및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져서 세계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든지,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 및 미국발 항공 대량수송의 혁명 등이 연속적으로 성공한다든지 해서 인간이성에 대한 과신 또한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강력한 통제가 고효율로 이어진다는 믿음 또한 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철도가 옛 문물이라고 퇴조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 인류의 미래는 그렇게 철도처럼 중앙에서 관제하는 자동차들이 도로를 달린다는 식의 기묘한 모순이 미래상에 투영된 것입니다. 그래서 철도를 밀어내고 있던 자동차가 그 구시대의 문물이라는 철도의 운용방식을 닮은 미래가 제시된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Lester님께서 말씀하신 우려는 상당부분 사실입니다.
외부인과 만날 때 약속을 잡으면 가장 중요한 게 주차장이 있는가.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시작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외여행 때가 속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 해외여행에서 자동차를 렌트한 적도 없는데다 숙소의 선택이나 여행장소의 설정도 공항이나 철도역을 기준으로 하면 되니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