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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능의 조건(Conditio sine qua non)에 의한 발화(発話)는 여러 효과를 탄생시켜요.
우선, 그런 화법을 구사하는 의도가 결국 상대를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게 명백해지죠. 듣는 사람은 그 의도로 인해 마음에서 발화(発火)하는 분노를 느끼거나 화자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기 마련이죠. 바로 그래서 불능의 조건을 내건 발언은 특단의 사정이 있지 않은 한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아요. 정말 다시 안 볼 불구대천의 상대가 아닌 한.
물론 불능의 조건을 담은 발화 자체가 늘 심각하지만은 않아요.
실수로 나오는 이런 경우가 있죠. 학교에서 출석체크를 할 때 "안 온 사람 손들어?" 라는 말이 나온다든지. 결석한 사람이 손을 들 수도 없고 이미 손을 든 이상 그 자리에 있으니 결석일 수가 없는 터라 그런 경우는 그냥 웃고 넘어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런 특단의 사정이 있지 않는 경우, 그리고 정책입안자가 공식적인 견해를 말해야 할 경우라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요.

오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하나 나왔어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장(이하 전 위원장)의 발언이 바로 그것.
관련보도를 하나 소개할께요.

전 위원장은 오늘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북송어민도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내려야 한다" 라는 질의를 했어요. 이에 대해 전 위원장은 "권익을 침해받았다고 생각되는 국민이 이를 직접 호소해야 권익위가 나설 수 있다" 라는 발언을 한 것이죠.

문제의 귀순어민 북송사건은 2019년에 발생한 것. 2019년 11월 2일에 귀순한 북한의 어부 2명은 11월 7일에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소환되었어요. 그들은 이후 북한에서 사형당해서 현재는 살아 있지 않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이 사건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주민을 추방한 첫 사례로 기록되었고, 그들이 16명의 동료 어부를 살해한 흉악범이니 북송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도 없는데다 재판 등도 전혀 없었어요.
당사자가 직접 호소해야 한다면, 결론은 그것이죠. 2019년 11월 7일 이전에 이미 대리인 등을 선임해 있었거나 이미 죽고 없는 그들이 부활해서 권익침해를 직접 호소해야 하는 것.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불가능했어요. 그렇게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놓고 당사자가 직접 호소하라니, 이제 인권이란 1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주창된 천부인권에서 후퇴해서, 당사자가 직접 호소하지 않으면 지켜질 수 없는 것으로 재정의되었어요.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

혹시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그러나 그런 것은 시효취득의 행위가 있는 민법이나 국제법 등이 기본영역이고, 각종 형사법 등에 있는 공소시효를 논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죠.
게다가 그렇게 잘 논의되던 무죄추정의 원칙은 이럴 때만 안 보이네요.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이 진짜 흉악범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는지 그 방법을 사법체계에 도입하면 안될까요? 그러면 수년동안 재판하면서 쓰이는 비용과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는 혁명적인 수단이 확보되는데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여러모로 모범국가로 여겨지는 독일에 비슷한 사례가 있으니 하나 소개해 볼께요.
동독의 군인이었던 베르너 바인홀트(Werner Weinhold, 1949년생)라는 인물이 있어요. 지금 생존해 있는 인물로 1975년 12월 19일에 동독 국경수비대원 2명을 살해하고 동서독 경계를 돌파하여 서독에 귀순했어요. 그는 서독에 귀순했지만 바로 재판을 받아야 했어요. 살인죄에 대해 재판을 받은 결과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되었지만 이후 2년이 감형되었어요. 즉 이미 당시의 서독에서는 그가 살인범이라고 해서 다짜고짜 내쫓지도 않았다는 것인데, 그 1975년의 서독보다 2019년의 대한민국이 후퇴해 버렸고, 2022년에는 당사자가 직접 호소하라는 불능의 조건의 궤변까지도 이렇게 나오네요. 이렇게 인권은 재정의되었어요. 가히 "K-인권" 이라고 불려도 좋을만한, 천부인권이 부정된 채 재정의된.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의 2020년 6월 26일에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어요.
그리고 계속 임기를 채우겠다는데, 앞으로 또 어떤 업적을 세울지가 기대되고 있어요. 진심으로.
그나저나, 1996년의 페스카마 15호 살인사건이 다시 생각나네요. 당시 재판관할권은 우리나라에서 행사되었는데, 역시 북한이 들어가니까 모든 기준이 리셋되네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2 댓글

대왕고래

2022-07-27 23:29:54

권익 침해는 당사자가 직접 호소해야 한다... 원래 인권에 대한 침해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라고 있는 기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이게 신고제였을 줄은 몰랐어요. 31년 동안 아무도 저한테 말을 안해줬네요.

아니면 저 발언이 비정상적인 것이고, 제가 31년동안 상식적으로 살아온 것일지도 모르고요.

혹시 북한에서 월북했기 때문이라면, 북한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라는 말 처럼 들리는데...

마드리갈

2022-07-28 00:29:23

그러게요. 예의 발언은 권익침해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임에 틀림없어요. 정말 좋은 교육이네요. 이러니 정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렇죠.

글로벌 시대에 어느 사람이 언제나 계속 같은 국적을 보유한다는 보장은 없죠. 우리나라의 인구가 31개월째 연속감소중이라든데, 그 감소분에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여 더 이상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게 되는 사람이 늘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그 이유에 국민권익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점만큼은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어요. 그런 사태가 벌어져도 태연히 있을지 지켜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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