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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일요일 오후의 '뉴게이트' 카페는 활기차다.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심플한 인테리어와 차분한 분위기, 그리고 도형 위주의 디자인이 인상적으로,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나름 입소문이 많이 난 곳이다. 카페의 주인 상훈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서이다. 상훈은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번화가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교통도 편리하고, 주민들이 많이 사는 동네와 인접해 있어 너무 시끄럽지도 않아 잠재적인 손님들이 많다. 거기에다가 상훈은 요즘 뜨고 있는 바리스타다. 대회에서도 몇 번 입상했고 최근에는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그 덕분에, 한 달쯤 전에는 원래 있던 곳에서 지금의 번화가 근처로 카페를 옮기면서 동시에 확장도 했다.
“사장님, 여기요!”
상훈을 부르는 또 한 손님이 보인다. 돌아보니 젊은 남녀가 서 있다. 한눈에 보니 남자와 여자 모두 패션에 대해서는 감각이 상당한 모양인데, 그렇다면 커피에 관해서도 그럴 것인가?
“여기 시그니처 두 잔이요.”
상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즉석에서 준비한다. 인절미가루와 떡을 가득 올린 아인슈페너가 이곳 뉴게이트의 시그니처 메뉴다. 이곳을 찾는 젊은 고객들의 주목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상훈의 가게 뉴게이트를 찾는 숨겨진 고객층이 있다.
이 카페에는, 숨겨진 층이 있다. 주 출입문인 유리문에는 1층과 2층에 대한 그림은 있어도, 지하층에 관한 내용은 어디를 봐도 보이지 않는다. 즉, 이 카페의 숨겨진 곳은 지하층. 물론 이곳에서 바로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창고가 나온다. 그러나, 창고의 뒤편으로 들어가면...
“에이, 또 연락이 왔잖아.”
상훈은 휴대폰에 온 메시지를 보더니, 뭔가가 일이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곧바로 서빙을 하던 알바생을 부른다.
“재희야, 나 잠깐 창고에 갔다 온다.”
“네, 사장님.”
알바생은 처음 겪은 일이 아닌 듯, 무미건조하게 한 마디로 대답한다. 그러자마자, 상훈은 곧장 창고로 내려간다.?
컨테이너 박스를 옆으로 밀자, 숨겨진 통로 하나가 나온다. 지하창고에서 더 밑으로 내려가는 곳. 상훈은 이런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계단을 걸어내려간다. 계단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이 세상의 공간이 아닌 듯 일그러져 보이기도 한다. 계단을 다 내려오고, 상훈이 자연스럽게 문을 열자...
“어, 왔군!”
판타지 세계에서나 볼 법한, 오크 남자 한 명과 엘프 여자 한 명이 상훈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다가, 둘은 상훈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손까지 흔들어 가며 상훈을 보고 인사한다. 물론 상훈도 둘을 잘 알고 있는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인사한다.
“한... 한 달 만이지?”
“그래, ‘압그룬트예거’ 상훈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은색 갑주를 옆에 놔둔 오크 남자는 꽤 익숙하게 지하에 있는 또 하나의 카운터 앞에 선 상훈에게 주문을 넣는다.
“어디, 자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맛보고 싶군!”
“그래. 결제는 거기 키오스크로 하면 되고.”
오크 남자는 꽤 자연스럽게 키오스크를 이리저리 조작한다. 그 광경을 보던 엘프 여자가 한 마디 한다.
“야, 트루칸, 넌 또 그 ‘아아’만 마시냐?”
“아니, 타리엘, 우리 세계에서는 이런 얼음 든 음료는 못 마신다고.”
“어... 그렇지.”
“마찬가지잖아? 너도 이제 그런 거 시킬 거면서.”
어느새, 키오스크 앞에 선 타리엘이라는 엘프 여자는 아인슈페너를 고르고 있다.
“봐봐, 너도 고르고 있잖아.”
상훈에게 트루칸과 타리엘은 꽤 친하다. 이 지하실 너머의 세계에서 괴물들과 여러 번 싸우며 친해졌고, 특히 2주 전 마왕군의 요새에 습격하러 갈 때는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게 하며 저쪽 세계에서 친해져서, 지금은 거의 의형제를 맺어도 될 정도의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다들, 여기는 왜 왔어?”
상훈이 보니, 트루칸과 타리엘 모두 그렇게 여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다들 조금씩 숨이 거칠어 보인다. 특히 트루칸은 꽤 근접해서 싸운 건지 갑주에 여기저기 긁힌 흔적도 보인다. 타리엘 역시 연신 거친 숨을 내쉬며 천천히 아인슈페너를 마신다.
“아무래도 마왕 녀석이 이곳의 존재를 알아낸 것 같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
상훈은 둘을 훑어보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2주 전, 마왕군 요새 습격의 여파 때문에 마왕군은 상훈의 일행을 손봐주겠다고 벼르고 있었고, 어찌어찌하다가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들의 위치까지 알아낸 모양이다.
“좋아, 그러면, 너희들은 그 마물들하고 상대하다가, 궁여지책으로 여기까지 온 거고. 맞지?”
“아... 맞아.”
타리엘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트루칸 역시 동의하는 듯, 상훈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쉰다.
“염치도 없이 또 이렇게 부탁을 해서 정말 미안하다!”
트루칸과 타리엘은 상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긴장을 품고 상훈의 입만을 바라본다. 그러나, 상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다.
“아니야. 너희들은 커피나 마셔.”
“아니, 너는 그래도 원치 않게 휘말린 건데, 같이 싸워 주는 게 예의지!”
“그러니까.”
트루칸과 타리엘이 같이 싸우겠다고 마시던 커피잔까지 놓고서 일어서지만, 상훈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카운터 뒤쪽에서 뭔가 꺼낸다. 팔뚝 정도 크기의 묵직한, 금속성의 무언가다. 원래부터 이쪽 세계에 있던 건 아니고, 상훈이 저쪽 세계에서 마왕군과 싸우다가 주운 블래스터다. 어째서 그쪽 세계에 블래스터가 떨어져 있었는지는 상훈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지금까지 마물들을 잡는 데 꽤 유용하게 썼다.
그리고, 지금도...
“어, 오는 것 같은데?”
트루칸이 심상치 않은 진동을 감지했는지 전투태세를 취한다. 이미 갑주는 입은 상태다. 그 상태에서도 커피잔에 있는 커피는 미동도 없는 게 기묘하지만.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아!”
타리엘 역시 일어서더니, 곧바로 주문을 외울 준비를 한다. 그리고 몇 초 후, 지하실 한쪽의 통로가 우르르 하고 진동하더니...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마물들이,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중 상당수는, 정확히 상훈을 향해 노려보며!
“에이, 왜들 그래. 이거 하나면 된다니까.”
“어... 어? 그래도...”
“보고나 있어. 한두번 해 봐?”
상훈이 익숙한 자세로 블래스터를 장전하더니, 이윽고 블래스터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잠시 후....
팟-
한 줄기의 광선이 정면을 향해 뿜어나오더니, 다음 순간 앞에 보이는 건 마물이었던 잔해들이다.
“충전이 다 된 상태였으니까, 아마 효과는 확실했을걸.”
상훈은 그렇게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지만, 트루칸과 타리엘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각오를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상훈까지 세 명만으로 버티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역시... 압그룬트예거네. 배짱도 그렇고...”
“나갈 때 여기 문단속 잘 해줘.”
“아...”
상훈의 말에 트루칸은 머리를 탁 친다.
“맞다... 문단속 철저히!”
한편 그 시간, 1층 카운터.
“네, 다음 손님?”
알바생은 지금같은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닌지, 꽤나 능숙하게 손님을 받고, 커피를 만든다.
“여기! 카페라떼 아직 안 됐는데요.”
“네, 나갑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서도 알바생은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상훈이 지하실로 내려간 것에 대해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뭔가 큰 일이 일어난 건 분명하다는 직감이 선다. 곧바로 상훈을 부르려고 전화를 드는데...
“재희야!”
상훈이, 지하창고에서 나오며 알바생을 부른다.
“어, 사장님 오셨네요?”
“아, 그래. 손님들 많이 왔네?”
“네.”
그리고 알바생은 상훈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말한다.
“괴물들 많이 안 왔어요?”
“나를 당해낼 정도는 아니더라.”
“그리고...”
알바생은 엘프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거기서 그냥 멈추고 커피를 마저 만들기로 한다. 상훈도 다시 원래 세계의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 한참 손님들을 응대하고 커피를 만드는 상훈에게, 어느새 아래층의 마물들의 일은 스쳐가는 것처럼 지나가 버린다.
카페 뉴게이트는 ‘평화롭다.’ 오늘도.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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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10-01 15:55:39
기묘한 카페네요. 통상적인 소개에는 빠져 있는 숨겨진 지하층이 있고 그 곳의 고객은...
게다가 압그룬트예거라는 말이 나오네요. 이것이겠죠? 심연의 사냥꾼을 의미하는 독일어 Abgrundj?ger. 그리고 그곳은 마물들을 상대로 한 싸움도 벌어지지만 그건 늘 있는 일같네요. 갑자기 발밑이 불안해지는 듯하는 느낌이...
판자 한장 밑은 지옥이라는 일본 속담이 다시 생각나고 있네요. 저 카페의 정체를 알면 도저히 못 갈지도요...시어하트어택
2022-10-23 23:25:44
지하층의 숨겨진 고객들이 지상으로 나올 일은...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오게 된다면 어떤 일이 펼쳐질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작중에 나오는 상황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만요.?
SiteOwner
2022-10-22 16:03:25
카페 뉴게이트가 왜 이름이 뉴게이트인지 이해했고, 그 실체를 알고 경악했습니다.
게다가 상훈에게는 마물 퇴치는 일상의 일이고...
이세계식당이라는 애니에서는 이세계로 열린 여러 문을 통해 여러 손님들이 양식당 네코야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고 그러는데, 카페 뉴게이트처럼 마물들이 쳐들어온다면 그건 싫을 게 분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평화롭습니다. 그리고 그래야지요.시어하트어택
2022-10-23 23:30:55
저 문을 통해 마물들이 가끔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작중의 주인공이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런 대로 세상의 평화는 지켜지기 마련이겠죠. 감당을 못 할 정도까지라면 그건 동료들이 도와 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