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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보기에도, 윤진이 보기에도, 아론은 여전히 휘청거린다. 아직도 정신을 잘 못 차리고 있는 듯한 아론을 보고, 윤진이 잡아 주며 말한다.
“자, 아론, 오늘 혹시 시간 괜찮니?”
평소라면 아론은 딱 잘라 거절했을 것이다. 놀러 가기도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이것저것 할 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아론의 편은 아닌 듯하다. 아론을 위한 일정은, 지금 없다.“어... 오늘 딱히 학원도 없고...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아론이 얼른 대답하지 못하자 바로 기다렸다는 듯, 윤진은 입을 연다.
“그럼 좋아. 나하고 오늘 오락실 갔다가, 저녁식사라도 같이 할래?”
아론은 사실 어떻게든 이유를 들어서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윤진이 아론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치 매가 먹이를 노리는 듯 보이는 데다가, 거절했다가는 또 무슨 일을 당할 것만 같다. 그래도 아론은 몇 마디라도 해 보려고 한다.
“저기, 그런데...”
“왜? 뭐 할 이야기라도?”
“저만 그런 건 아닌데, 왜...”
변명을 하려던 아론의 말은, 다음 순간 윤진의 말에 가로막혀 버린다.
“아론, 나는 네 얼굴이 더 보고 싶은데. 다른 애들 얼굴은 많이 보는데, 네 얼굴은 그러지 않은 것 같아서. 너도 내 얼굴을 좀 더 익혀 둬야 하지 않겠어?”“그... 그렇죠! 당연히 같이 가야죠!”
아론은 얼떨결에 대답한다. 그리고 아론이 윤진을 따라가는 걸 확인한 민은 곧장 윤진과 아론의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 미린고 근처의 주택가. 토니는 안젤로의 뒤를 쫓고 있다.
“하, 이거 내가 무슨 형사가 된 느낌도 아니고.”
조금 걷다 보니, 안젤로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눈앞에 보이는 건 확 트인 사거리. 사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촬영이 모두 끝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거리는 텅 비었다.
“어디 갔어, 이 녀석. 방금 전까지 여기 있는 거 다 봤는데, 내 눈은 못 속여.”
애써 그렇게 말하며, 토니는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안젤로의 모습은커녕, 비슷하게 생긴 사람조차도 토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어디 간 거냐... 분명히 있었잖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모를 정도로.
“어디 간 거냐, 안젤로! 빨리 나와!”
“응? 토니 형이잖아?”
바로 토니의 옆. 민과 유가 토니의 옆을 지나가다 말고, 토니를 한번 흘끗흘끗 돌아본다. 분명히 토니는 사거리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옆을 민과 유가 태연히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뭐야, 방금 토니 형 뭐라고 한 거야?”
“거리가 뭐가 어쨌다고 한 것 같았는데.”
유가 옆을 돌아보니, 토니는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확실히 들리는 말이 있다.
“뭐야... 왜 사거리가 다 비었지... 다 비었어...”
분명히, 민의 눈에도 유의 눈에도 이 사거리는 비록 동네의 조그만 사거리에 불과하지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몇 명은 있다. 그런데 사거리가 텅 비었다니?
“에이, 헛소리하는 거겠지.”
“어... 그런가?”
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위를 스윽 둘러본다. 시야가 차단되었다든가 하는 건, 누군가의 초능력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짚이는 사람은, 한 명.
“안젤로 형이지, 분명히?”
“으... 으응?”유가 궁금한지 묻는다.
“안젤로 형은 왜?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어?”
“어... 그런 일이 있어.”
민은 한번 더 사거리를 돌아보고는, 그 자리를 떠나려다가, 보이지 않는 안젤로를 찾아 헤메는 토니가 신경이 쓰였는지, 가까이서 토니를 지켜보기로 한다.
“안젤로 이 자식, 어디 갔어! 보이기만 해봐!”
토니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안젤로를 찾아 헤메고 있을 즈음, 안젤로는 어딘가에서 숨어서 토니를 몰래 살펴보고 있다. 안젤로가 있는 곳은, 엉뚱하게도 자기 집. 애초에 안젤로는, 그 사거리 쪽으로 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좋았어. 토니 선배, 거기서 계속 혼자서 버둥거리고 있으라고.”
드론으로 촬영하는 영상을 통해 토니를 보는 안젤로의 시선은 다분히 경멸을 품고 있다.
“계속 그렇게 만만한 후배들한테 집적거리기나 하다가 당해 보니까 어때?”
안젤로가 보는 영상 속의 토니는, 사람들이 지나가건 말건 계속 안젤로만 찾으며 정처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여전히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이는 건지,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서 말이다.
“선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하지만 계속 나나 다른 친구들에게 집적거리면,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닐 줄 알아.”
안젤로가 묘한 손동작을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간, 사거리에서 열심히 안젤로를 찾아다니며 목청을 높이던 토니는...
“어... 엇?”
일순간, 토니에게 보이던 텅 빈 사거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다시 토니의 눈에 그대로 들어온다. 분명히,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거리였을 텐데...?
“어... 뭐야... 이건...”
다시 한번 눈을 비벼 봐도, 껌벅거리며 눈을 여러 번 감았다 떴다 해 봐도, 앞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분명히, 토니 혼자서 소리를 지르고 정신없이 찾아다니고 한 것은 여기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였을 것이다.
“안젤로... 안젤로 너 이 자식! 잘도 내게 이런 굴욕을...”
그러던 토니의 눈에 들어오는 건, 한쪽에서 토니를 지켜보던 민과 유.
“뭐, 뭐야, 너희들!”
토니는 적잖이 놀란 듯, 눈을 확 뜨고 입도 그만큼 벌린다. 단순히 놀라서 그런 건 아니다. 아는 사람들에게 이 모습이 보여져 버렸다는 게, 토니에게는 체면을 꽤나 구기는 일이다.
“토니 형이야말로.”
민이 태연히 말하자, 토니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진다. 마치, 토니 자신은 이곳에 처음부터 없었어야 할 존재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선을 애써 민에게서 거두려고 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
“나... 나는 여기 없었던 거야. 알겠어?”
그러고서, 토니는 어디론가 휙 달려가더니, 마침내 민의 시야에서 멀리 벗어나 버린다.
“무슨 일이야, 토니 형은 또?”유가 토니의 행동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갑자기 우리가 다 보인다고 하지를 않나, 거기에다가 또 무슨 죄라도 졌는지 도망이라도 가지 않나...”
“아, 그럴 일이 있어.”
“으... 응?”
“그리고 안젤로 형한테 생긴 능력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안젤로 형?”
“아, 그런 일이 있어.”
“뭐야, 자꾸 그런 일이 있다고만 하고...”
한편 그날 저녁, 나디아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상가 근처 공원. 퇴근 시간 이후라 사람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올 시간이다. 나디아는 산책을 하고 막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음?”
막 공원을 가로질러 가던 나디아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안젤로 선배님?”
안젤로는 손목시계 위에 나오는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아닌 것 같고, 드론으로 뭔가를 촬영한 영상을 보는 것 같다.
“어, 나디아, 너는 어째서?”
“선배님이야말로. 여기는 어쩐 일이죠?”
“나는... 산책 중이었지. 너도 분명, 산책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
안젤로는 나디아에게 딱히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또 어딘가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안젤로의 시선이 자꾸만 향하는 홀로그램 영상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또 그걸 이야기했다가는 지금의 이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얼핏 그 홀로그램 화면에 익숙한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지금 여기서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언뜻 또 보니, 안젤로는 무슨 기기를 조작이라도 하려는 듯이, 손목시계를 계속 두드리고 있다. 얼핏 봐서도 왜 저러는 건지, 무엇을 조작하려는 건지, 짐작도 안 된다.
“어... 그러면, 내일 보자.”
나디아는 어색하게 인사한다. 안젤로는 그런 나디아의 어색한 시선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나디아에게 손을 흔들고는 제 갈 길을 간다. 안젤로가 나디아의 시선에서 사라지자, 나디아는 아까 봤던 그 얼굴이 누군지 떠올려 보려고 한다.
“아까 그 사람... 누구지? 누구였지... 분명 꽤 익숙한 얼굴이었을 텐데...”
그리고 그날 늦은 저녁, 토니의 집.
“안젤로 이 녀석, 도대체 내게 무슨 수를 부리는 거냐...”
토니는 잔뜩 열이 받은 나머지, 이 시간쯤이면 침대에 누워서 이것저것 보고 있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누워 있지도 않고 의자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서 뭔가를 향한 초조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짜증나게 자꾸 말이야. 아까는 입을 봉하지 않나, 시각을 이상하게 왜곡시켜 놓지 않나. 그리고 이제는 눕지도 못하게 하고!”
토니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토니는 아까 자리에 누워서 빈둥거리려고 했지만, 토니의 몸 속에 있는 무언가가 토니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도대체 안젤로 이 자식이 어떤 수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다. 토니의 귀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까부터 계속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방 안이 조용해진 덕분에 토니가 그 소리가 들려오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뭐야? 자꾸 웅웅대고. 아까부터 계속.”
커튼을 걷어 보니, 드론 하나가 토니의 집 창문 앞에 정지비행을 하고 있다. 곧바로 인공지능을 드론에 연결해 본다. 조금 있다가, 그 드론을 어떻게든 제어해 보려고 하지만, 드론은 그것을 알아챈 건지 이리저리 휙휙 날아다닌다.
“하, 그럴 줄도 알고 있었지. 어디서 나를 농락하려 들어.”토니는 기다렸다는 듯 드론을 향해 손을 뻗는다. 금방, 드론은 마치 공중에 멈춰 버린 듯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어진다. 그걸 본 토니는 코웃음을 치더니, 커튼을 친다.
“그럴 줄 알았어, 안젤로. 네가 무슨 능력으로 나를 이렇게 농락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았어. 네 능력은 무적은 아니야.”
커튼을 치고 드론이 완전히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까지 쳐 놓으니, 한결 낫다. 거기에다가, 누울 수가 있다!
“어, 한결 낫네!”
이제, 안젤로의 능력은 신경 쓰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토니는 그대로 침대에 온몸을 파묻고,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토니의 집.
“어...”
토니가 잠에서 깨 보니, 토니는 지금 막 집 현관문을 나서려는 참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토니의 의문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토니는 지금까지, 잠든 상태였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씻고, 밥도 먹고 한 건 물론이다. 거기에다가, 거울을 보니, 머리는 토니가 평소에 빗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되어 있다. 마치 지금 이 상태, 토니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아... 안젤로 이 자식이...”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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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2-10-20 15:44:38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못 본다는 고대 중국의 격언이 있죠. 그것이 초능력으로 구현된 것 같네요.
게다가 안젤로의 행방을 뒤쫓는 토니는 그 자체로도 시야가 제한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에 더해 시야를 차단하는 초능력이라는 덫에 걸렸으니 이건 더욱 위험하고 섬찟해져요. 민과 유가 아니었다면 정말...
토니의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드론 또한 양동작전이 아니었나 싶네요.
정말 곤란하네요. 저렇게 시야뿐만이 아니라 행동까지 조종하다니, 완전히 좀비가 된...
안젤로는 이름의 의미는 천사이지만 하는 행동은 완전히 악마네요. 디아볼로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기도 해요.
시어하트어택
2022-10-30 20:06:36
토니 같은 상황이 되면 미치지 않을 수가 없겠죠. 남들에게 다 보이는 것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그것만큼 답답한 일도 별로 없을 겁니다. 거기에다가 행동까지 마음대로 조종하니, 미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겁니다.
SiteOwner
2022-11-21 23:37:18
특정인의 행동과 시야를 조종한다...생각만으로도 끔찍해지는군요.
게다가 이제 안젤로의 타겟은 아론에서 토니로 옮아간 듯한데, 대체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이상한 짓을 벌이는지는 아직 모르겠군요. 저라면 원한있는 자를 직접 제 앞에서 굴복시켜 두번다시 고개를 못 들게 만들어 버리겠습니다만...
이 회차를 읽고 있으면서 입안이 떫어집니다.시어하트어택
2022-11-26 23:56:43
토니가 뭔가를 한 게 있어서일지, 아니면 안젤로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저러는 걸지는, 아마도 안젤로가 잘 알겠죠. 다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것이기는 하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