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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즉석에서 구호를 만들라고?”
윤진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들은 치히로는 당황했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치히로가 듣기에도 많이 황당했던 건지, 얼굴이 벌게진 건 덤이다. 치히로는 곧이어 무언가 생각이 든 건지, 다시 윤진에게 말한다.
“에이, 싫어! 그런 거 하면 우리 체면이 안 서잖아.”
“뭐야... 나는 너희들이 히어로 동아리라길래 구호 같은 거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하나의 편견이지 뭐.”
그리고 치히로는 가운데에 다시 서서,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을 보더니 손을 올려 일어나라는 듯한 손짓을 보낸다. 라일라를 시작으로 다들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려고 하자, 윤진이 급히 제지하고는 치히로에게 말한다.
“뭐 이런 것까지 다 시키냐! 그냥 수고했다고 하지. 내가 할게.”
“에이, 무슨 소리냐? 우리가 초대받았으니까 우리가 해야지.”
그리고서 치히로는 마치 윤진의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말한다.
“내가 어제 말했지? 보여 주겠다고. 그리고 우리가 뭘 했는지 다 보여 줬잖아? 그 피날레도 우리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아, 그건 그런데...”
윤진은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치히로의 말을 가로막고는 뭔가 말을 더 하려고 하나, 치히로는 윤진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자기 후배들을 마저 일어나게 하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만화부원들의 박수가 이어진다. 마치 윤진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도 않겠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만화부실을 빠져나가는 만화부원들과 히어로 동아리 부원들을 보며, 윤진은 ‘하’ 하고 큰 한숨을 내뱉는다.
“아... 왜 못 말했지? 이거저거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 버렸잖아!”
하는 수 없이, 윤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만화부실을 정리하고는, 문을 잠그고 만화부실을 나선다. 그러면서도 중얼거린다.
“그래... 치히로 녀석 주인공 시켜 줬으니 됐지 뭐.”

만화부실을 정리하고 후배들보다 늦게 만화부실을 나선 윤진이 문득 운동장에 나와서 보니, 운동장에서는 오스카가 기술 하나를 RC브라더스 부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윤진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기술인데, 매우 능숙하게 해내는 것으로 봐서는 한두 번 해 본 기술은 아닌 것 같다.
“어... 저런 것도 했던가? 오스카 선배님이...”
윤진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걸 오스카가 봤는지, 오스카는 곧바로 착지하더니, 윤진을 보고 손짓한다. 윤진은 오스카를 보고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못 본 척을 하려고 하지만, 이내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오스카의 앞으로 가 본다.
“이야, 너희들 행사는 다 끝난 거지? 나는 이거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네.”
오스카는 보드에서 내려오더니, 윤진 쪽으로 오며 말한다.
“혹시 내가 너한테도 내가 갈고 닦은 새로운 기술을 보여준다고... 했었나?”
윤진에게는 그런 기억은 없다. 그래서 윤진이 고개를 가로저으니, 오스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치 윤진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입을 연다.
“사실, 저기 보이는 사비하라는 애하고 내기를 했는데, 그만 내가 져 버렸지 뭐야. 그래서 그 애가 가장 어려운 기술을 한번 보여 달라길래, 막 그 애하고 RC브라더스한테 기술을 보여주던 참이야. 너도 한번 볼래?”
윤진은 대답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서 RC브라더스 부원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운동장 한쪽의 계단을 본다. 오스카가 말한 문제의 사비하를 비롯한 RC브라더스 부원들은 오스카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윤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오스카에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윤진의 반응을 확인한 오스카는 보드에 다시 탄다.
“자, 그럼 보여줄게. 내가 지금까지 갈고닦은 기술인데, 너도 이제 보면 놀랄 수밖에 없겠지.”
오스카가 그렇게 다시 보드를 타려 하자, 스케이팅 부원들뿐만 아니라 RC브라더스 부원들까지 오스카를 말리기에 바쁘다.
“저기, 선배님 오늘 너무 많이 탄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저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몰라!”
그리고 그 옆을 지나는 민과 친구들은, 오스카가 다시 보드를 타는 모습을 잠시 보더니, 곧 교문을 나선다. 잠시 동안은 오스카의 묘기를 뚫어지라 구경했지만, 금방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민과 친구들의 발이 교문에서 떨어지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 민의 입에서 나온다.
“너희들, 오늘도 오락실이나 PC방 같은 데 갈 거냐?”
“어... 글쎄?”
민의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토마가 입을 연다.
“어... 글쎄. 오늘 시간이 있는지 좀 봐야겠는걸. 오늘 부모님이 어디 가자고 하는 것 같아서.”
“어... 그래?”
민은 뭐라고 대답하지를 못한 채, 어느새 발걸음은 교문에서 떨어져서 소공원 근처를 지나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따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고민을 하는 것 같다.

한편 그보다 조금 앞선 시간, 치히로와 올리버, 베로니카와 재연이 교문을 나서는데, 라일라는 자기 혼자 느릿느릿 걷더니 운동장으로 막 나오려던 참이다.
“라일라냐? 너희 오늘도 출동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
라일라가 학교 건물을 나서던 차, MI스터리의 지우가 라일라를 보고 말을 건다. 도발적으로 들리기는 해도, 지우의 표정은 매우 밝다.
“에이, 그런 거 아니야. 당분간 휴식이라고, 휴식.”
“응? 과연 그럴까?”
“야, 불길한 말은 좀 하지 말고. 우리가 출동할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냐?”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지우와 라인하르트를 한번씩 보고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그런데 너희는 혹시 취재 같은 거 하러 안 가냐?”
“무슨 취재야. 우리가 무슨 기자라도 되는 줄 알아?”
“왜, 요즘 한참 폐건물 탐사가 화제잖아? 그래서, 너희도 혹시 관심 있나 하고.”
“폐건물하고 우리는 왜?”
“그런 폐건물 같은 데 혹시 나쁜 녀석들 잡으러 가지 않냐?”
뜬금없는 그 말에 라일라는 ‘하’ 하고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에이, 그럴 시간 없어. 거기 갈 시간에 숨은 초능력자나 하나 더 찾지. 안 그래?”
“어, 그것도 그렇지. 내가 귀찮게 될 일이 늘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만...”
라일라가 학교 건물 쪽을 한번 돌아보고는 지우, 라인하르트와 눈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리고 계속 길을 간다.
한편 오스카는 열심히 보드를 타는 중인데, 문득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막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라일라다. 마침 오스카가 후배들에게 보여 주는 기술이 막 끝난 참이다.
“어, 라일라냐?”
오스카의 눈에 라일라가 보이자마자, 오스카는 곧바로 라일라를 불러세운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 자신이 숨겨온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보드에서 잠깐 내렸다가 다시 보드에 올라탄다.
“어... 선배님?”
라일라는 아까 점심시간에 오스카가 했던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 오스카가 왜 자신을 불러세운 건지 다시 물어보려고 한다. 그러자 오스카는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내가 너한테 어제 뭔가 보여 준다고 했었지? 이제 보여 줄게.”
“네? 제가... 그랬었나요?”
“네가 그랬다니까? 분명히 나보고 내가 수없이 연습해 온 기술을 보여 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보여 준다고.”
라일라는 아직도 자신이 했던 말이 기억나지는 않는 건지, 잠시 멍하니 서 있다. 그런 라일라를 본 오스카는 딱하다는 듯 머리를 흔들고는, 곧바로 보드를 타고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워밍업을 한다.
“어... 선배님...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야, 내가 뭐럤어! 보여 준다고 했잖아! 설마 내 말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 아니죠! 저는 당연히 그걸 기억하고 있고...”
라일라는 오스카에게서 풍겨오는 아우라에 압도되었기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있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기 시작한다. 라일라 자신도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이 아예 안 날 정도로 말이다.
“당연히 선배님을 봐야죠!”
“좋아. 그러면 간다!”
오스카는 빈말이라고는 해도 후배의 그런 말에 고무가 되었던 건지, 자신의 기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라일라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다른 후배들에게도 오스카가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라일라로서도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다른 게 아니라 히어로 동아리 후배들과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데...’
하지만 오스카가 마치 라일라 자신만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대놓고 벗어나기에는 부담감이 크다. 그런데... 마침 라일라의 눈에 자동차 연구 모임의 슬레인과 준후가 나오는 게 보인다. 둘은 라일라를 보자마자, 수군거리며 시선을 슬슬 피한다. 그걸 라일라가 놓칠 리가 없다. 
“그래...”
라일라에게는, 자동차 연구 모임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곳에서 벗어날 명분을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곧장 라일라는 그곳을 벗어나, 슬레인과 준후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런데 라일라가 자리를 막 벗어나려는 걸, 오스카가 봐 버린 모양이다.
“야! 라일라! 끝까지 본다며! 네 다른 후배들도 다 보고 있는데 너만 가 버리면 어떡하냐!”
“죄송해요, 선배님! 그럴 일이 있어서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라일라는 이미 오스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문을 벗어나 슬레인과 준후를 쫓아가고 있다. 슬레인과 준후 역시도 라일라가 쫓아오는 걸 눈치챘는지, 조금 걸어가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라일라가 오는 쪽을 돌아본다.
“야, 라일라! 왜 쫓아와!”
“그러게. 왜 쫓아왔을까?”
준후가 볼멘소리로 말하자, 라일라는 마치 자신이 수수께끼라도 낸 듯, 아니면 준후를 일부러 골탕먹이기로 작정하기라도 한 듯, 말끝을 높여 말한다.
“그래. 너 왜 쫓아왔냐? 그 선배가 보드 탈 때는 가만히 있더니, 왜 우리를 보자마자 쫓아왔냐?”
슬레인도 억하심정이 있었던 건지 대뜸 라일라를 보고는 그렇게 말한다. 물론 슬레인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다. 라일라는 둘이 나타난 걸 명분으로 삼아서 오스카가 있는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이리로 온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분명히 있다.
“혹시 오늘도 그거 만들러 가는 건 아니겠지?”
“야!”
슬레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더욱 얼굴이 붉어져서는 큰 소리를 내지른다.
“너 솔직히 한번 말해 봐. 너 우리들 때문에 이리로 온 거 아니지?”
“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라일라는 일부러 뜸을 들인다. 슬레인과 준후가 어떻게 반응할지 보기 위해서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6 댓글

마드리갈

2023-10-08 15:32:02

구호 운운한 게 그거였군요. 히어로 동아리니까 구호 정도는 있어야 한다...

확실히, 구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선입견으로 보이네요.


오스카는 확실히 다재다능한 게 보이네요.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어요. 게다가 그것을 넘어서는 능력도 있어 보이고. 그래서 라일라가 없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을지도요?

슬레인과 준후는 저질러 놓은 게 있으니 항상 저렇게 용의자 취급을 받네요. 그들이 정말 세계를 구했다고 할 정도로 공헌하지 않는한 저 의심의 눈초리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어하트어택

2023-10-09 23:03:39

히어로물에서 많이 나오다 보니 일종의 클리셰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히어로 동아리는 사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다 보니 구호라고 해도 제대로 된 구호는 아니었을 겁니다.


라일라가 오스카의 재능에 압도될 정도로, 오스카의 재능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SiteOwner

2023-10-08 21:43:45

운영진으로서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로그인 상태에서 코멘트가 달려 있는 경우에 제목이 길어서 목록의 레이아웃이 변형됩니다. 그러니 이용규칙 게시판 제8조에 및 추가사항에 따라 제목을 보다 짧게 수정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내용에 대한 코멘트는 아트홀의 이전 게시물 코멘트가 순차적으로 완료되는대로 별도 게재하겠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10-08 23:11:01

수정했습니다.

SiteOwner

2023-10-14 20:50:55

윤진이 저렇게 행동한 것은 역시 치히로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했던 것인지...

워낙 심모원려한 인물이라서 섣불리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냥 내뱉은 말은 아닌 듯합니다.

오스카는 정말 다재다능하군요. 게다가 과시욕도 정말 대단하니까 그가 한번 포착한 관객은 그의 쇼맨십에서 탈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빌런 취급을 받는 슬레인과 준후가 이렇게 도움이 될 수도 있군요. 

계명구도(鶏鳴狗盗)는 과연 옛말인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10-15 22:24:36

일종의 편견일 것입니다. 미디어에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보이니 그걸 따라한 동아리도 으레 그럴 것이라는 거죠.


슬레인과 준후는 단지 라일라의 도구였죠. 벗어나기 힘든 오스카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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