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올려보는 단편입니다. 원래 1화~2화로 계획했으나 조금 길어지게 되었군요.
그럼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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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곤 공화국’의 한 험준한 산지에 있는 신무기 연구시설.
“어때, ‘신무기’는 잘 완성되어 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각하. 지금까지의 성과가, 모두 각하의 위대한 영도 덕분입니다.”
준장 계급장을 단 이 시설의 책임자의 영접을 받는, 정장을 입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남자는 다곤 공화국의 대통령이자 독재자, ‘나소프’. 10년 전까지 다곤 공화국의 독재자로 군림해 오던 ‘콜리아노’ 가문을 축출하고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다.
비록 정치적으로 대립한 콜리아노 가문을 축출하기는 했지만, 그도 콜리아노 가문의 정책을 이어가는 게 적어도 하나는 있다. 그것은 바로 ‘제국’에 대항할 결전병기를 갖추는 것이다. 제국과 다른 나라들은 이런저런 작당을 해서 다곤 공화국의 신무기 개발을 규제했다. 위성 방어체계도 딱 필요할 만큼만 허용했고, 행성 단위 국가라면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핵미사일도 가지지 못하도록 이런저런 방해 공작을 펼쳤다. 그 결과 다곤 공화국은 외교가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한 콜리아노 가문은 수십 년 전부터 몰래 비밀 병기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나소프 대통령이 콜리아노 가문을 축출하고 권력을 잡은 다음 콜리아노 가문에 충성한 인사들을 거의 모두 숙청한 상황에서도, 이 연구시설의 인력은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이 시설 책임자인 ‘카바로’ 준장 역시 콜리아노 가문에 충성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인물이었고 이 연구시설에서 승승장구했음에도 나소프 대통령은 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었고, 이후 지금의 준장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이 시설의 총책임자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오늘은 예의 그 비밀 병기 1호를 한번 참관해 보고 싶네. 괜찮겠는가?”
“저, 각하...”
준장은 대통령의 말에 난색을 표한다.
“그건 지금은 어렵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심이...”
“그게 무슨 말인가? 당장은 어렵다니?”
“아직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각하께서라도 보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오늘 프로젝트가 완성된다고 해서 이렇게 시간을 내어 오게 되었네. 들여보내 주게.”
“그건...”
준장이 그렇게 말하자, 대통령의 옆에서 듣고 있던 참모총장이 준장에게 넌지시 말한다.
“각하께서 원하시는데 안 될 게 어디 있나? 카바로 연구소장, 잔말 말고 들여보내 주게. 각하께서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여주는 게 우리의 기쁨 아니겠는가? 자, 카바로 연구소장, 어서!”
준장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암묵적인 압박이기도 하다. 참모총장의 그 말을 거절할 경우에는, 그의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하는 수 없이, 준장은 대통령 일행의 출입을 허가하기로 한다.
“고맙네, 연구소장. 각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야. 자, 같이 가지.”
준장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설 안으로 들어가 대통령 일행을 수행하기로 한다. 대통령이 한 마디 덧붙인다.
“어려운 결정 해 주어서 고맙네, 준장.”
다곤 공화국의 비밀 병기 개발 프로젝트는 극비리에 진행되어 왔다, 시설은 대외명칭을 어느 기업의 연구개발 센터로 위장하고, 지상부 역시 위장 기업의 로고를 크게 박아 놓고 입구로부터 이어지는 시설 역시 평범한 기업처럼 보이게끔 만들어 놓았다. 지하에 있는 원래의 시설은 몇 가지의 보안 절차를 거쳐야 통과하도록 만들었고, 또한 차폐막을 전개해 놓았다. 이 정도로 꽤 정성을 들여 보안을 구비하여 놓으니, 다음은 실험체를 찾는 게 중요해졌다. 조건에 맞는 실험체는 초능력에 대한 강대한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했지만, 다곤 공화국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우선은 인구가 900만 정도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많이 적은 편이었다. 1개 여단 정도의 전력이 되는 초능력자도 찾기 어려웠으며, 이 프로젝트에서 목표로 하는 ‘1개 행성을 홀로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을 가진 초능력자는 더더욱 그러했다. 국가 내의 초능력자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당시 ‘허버트 콜리아노’ 대통령은 잠재력을 지닌 자들을 준비하여 최고의 병기를 양성하도록 명령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생겨도, 또 몇 명이 죽어도 신경 쓰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나고, 정권도 1번 바뀐 지금, 극비리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 연구에 모두 관여한 카바로 준장은 승승장구하여 사관학교 동기들보다 3년은 빨리 준장에 진급할 수 있었다.
한편, 시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통제 구역.
한 남자가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구속 벨트에 묶여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남자의 주위로는 마치 남자가 저항하면 사살해 버리겠다는 메시지를 나타내기라도 하는 것 같은 블래스터 장치들이 감시를 멈추지 않고 있고, 그것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던 건지 주위에 배치된 경비병들이 24시간 내내 그를 지키고 있다. 남자가 이곳으로 온지는 꽤 되어 보이지만, 계속 이곳이 어디인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
구속구 때문에 말도 하기 힘든 것인지, 그는 때때로 신음인지 아니면 거친 숨소리인지 알 수 없는 저음을 입에서 뱉어내고 있다. 그의 눈은 어딘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데, 그 응시하는 방향이 어떤 곳인지는 알기 힘들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리우스’, 20년 전부터 시작된 초인 프로젝트의 실험체 중 하나다. 그가 알기로는 다른 실험체들도 있었지만 모두 죽거나 처분되었고, 최종적으로 그 하나만 남게 되었다.
그 경위를 간략히 써 보자면 이렇다. 마리우스는 어릴 적부터 그가 살아온 지역에서 초능력자로 이름이 높았다. 동네 어른들 몇 명이 달려들어도 못 할 일을 혼자서 거뜬히 해 내서 명성이 다른 지역에도 널리 퍼졌다. 당연히 다곤 공화국의 정보망이, 그렇게 명성이 높은 마리우스에 대해 놓칠 리가 없었다. 그 때는 마침 신무기 개발 프로젝트가 막 발을 내딛은 때이기도 했다.
특수정보국이 그의 존재를 인지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그는 막 완성된 이 시설에 붙들려 왔다. 특수정보국의 초법적 권한도 있기는 했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수십 명의 특수부대원을 파견하여 그를 제압했다. 그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그를 이곳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여러 가지 혹독한 훈련과 약물 주입, 정신 조작 등이 병행되었다. 기억은 대부분이 지워지고, 그의 초능력을 증폭시키고 적에 대한 적개심을 키울 수 있는 기억만 강화되었다. 훈련에는 함께 끌려온 다른 실험체들과 일종의 배틀 로얄을 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모두 함께 살아나가자고 다짐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희망사항에 그칠 뿐이었고, 훈련과 육체 강화가 반복될수록 그 과정을 견뎌내지 못한 다른 실험체들은 이곳에서 자기 목숨을 다했다. 마지막 2명만 남았을 때, 그 다른 한 명은 꼭 이곳에서 같이 살아나가자고 몇 번이고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다른 한 명과도 역시 배틀 로얄을 진행하게 되었고, 그는 싫었지만, 그 상대방의 목숨을 그의 손으로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을 절망 속에 살았다. 마지막 희망이 끊어진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이 실험 시설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또다시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이제는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으로 계속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워서 버티기 힘들었던 약물 주입도 이제는 버틸 만했다.
한편, 시설의 상층부에서는 이제 실장과 대통령 일행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가며 마리우스가 있는 최심부의 실험장까지 내려가고 있다. 지금 타고 있는 이른바 ‘급행 엘리베이터’는 다른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화물 엘리베이터처럼 꾸며졌지만, 실상은 이 시설의 최중요 시설인 최심부까지 바로 연결해 주는 엘리베이터다. 원래라면 수많은 보안 절차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지금 여기에 타는 사람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런 절차는 거의 생략되고, 곧바로 최심부로 안내되고 있다.
“내려가는 길이, 의외로 빠르군. 보통 이런 시설이라면 보안 절차가 수십 가지는 되지 않나?”
“모두 각하를 위한 것이지요.”
참모총장이 매우 자신 있게 말한다. 사실 준장은 이곳의 보안 규정을 무시하고 ‘프리패스’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내비쳤지만, 대통령의 뜻이 뜻인 데다가, 참모총장이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은근히 협박을 넣으니, 준장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최심부에 다다르고 문이 열리자, 준장은 경비병의 경례를 받은 다음, 경비병을 앞장세워 대통령을 실험장으로 안내한다.
“이쪽입니다, 각하.”
“시설 자체는 내가 전에 갔을 때에서 그렇게 크게 바뀌지는 않았군.”
“당연하지요. 보안에 관련된 시설은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기 떄문입니다.”
“그래도 신경을 써 주니 고맙군. 이 프로젝트가 잘 끝나면 귀관에게는 큰 보상이 있을 걸세.”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니 준장은 한편으로는 안도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지금의 이 실험은, 아직도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보고 싶다고 하니 그건 어쩔 수가 없지만.
한편, 최심부에 있는 마리우스는 누군가가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큰 기회가 된다는 것도 알아챈다. 하지만 그는 구속 벨트에 묶여서 행동에 큰 제약이 따르는 상태다. 이 구속 벨트는 밖에서 오는 어떤 대단한 존재들이 이곳으로 오면 풀리게 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그를 제약하는 공간인 ‘특수 구속공간’에 들어가게 될 것이기에,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상 없지?”
“예, 이상 없습니다.”
밖에서 경비병 한 명이 자기 소대장에게 보고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서 자주 보이는 경비병이다. 마리우스는 알고 있다. 이 시설에서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감시하는 경비병들은 모두 초능력자만을 투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보이는 저 코가 크고 입술이 두툼한 경비병은, 그가 평소에 점찍어 둔 사람이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그 경비병이 하는 지시에도 잘 따르지만, 사실 마리우스는 기회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능력을 확인해 볼 좋은 기회라고, 그는 판단한다. 다름 아닌, 마리우스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래... 내 능력은 지금을 위해 존재해 왔던 것...”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4-01-08 18:22:56
이 세계, 무섭네요. 일단 행성단위 국가라면 핵미사일 정도는 기본으로 가진...
하긴 현실세계의 핵보유국을 생각해 보면 행성단위가 아니더라도 가진 나라가 좀 있긴 하지만요.
정적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그 정적이 추진했던 프로젝트까지 버리지 않고 도움이 되니까 받아들인 것을 보면 나소프가 마냥 꽉 막힌 사람만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무서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어요. 게다가 문제의 그 신무기는 초인 프로젝트에 기반한 사실상의 생체실험이라는 것도 확실히 끔찍하네요. 인간이 도구화되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런 방식의 것은 그 위험성에 비해서 심각성의 인식수준은 극히 낮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죠.
암살교실의 살생님이 같이 생각나네요. 원래 사신이라고 불렸던 문제의 암살자는 어느 분쟁지역의 슬럼가에서 태어난 자로 인적사항이 불분명한데다 반물질생성실험을 통해 이전의 기억도 거의 사라졌고 아예 인간의 모습조차 잃어버렸죠. 마리우스는 아직 살생님처럼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린 단계는 아니겠죠?
시어하트어택
2024-01-14 23:04:18
자기 필요에 따라서 자신의 적이 행했던 것을 인정하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경우는 꽤 많이 있죠. 대통령은 그게 국익에 도움이 되니 자신이 그대로 이어서 추진했던 것이고요.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칼날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 뻔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리우스는 아직 인간의 형태입니다. 아직은...
참고로 또 말씀드리자면 연재작들과 같은 세계, 같은 시간대입니다.
SiteOwner
2024-02-04 20:59:58
군복무를 하면서 사격장에서 느꼈던 여러가지가 다시 생각나면서 무서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무기는 누군가에게는 절박함이자 누군가에게는 공포. 총구 뒤에서 총을 쏘는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총구의 존재를 알면서도 돌진하는 사람은 쟁취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라도 일단 그 무기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두려움을 느낄 법한데, 현장 책임자의 말보다 정치인의 말이 더 우선하는 이 사회에서는 그런 두려움이 없는 것 같아서 우려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화국이 독재에 더 취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곤 공화국의 전임 대통령도 현직 대통령도 모두 독재자라는 것이 역설적으로 그 생각을 강화시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2-11 22:51:37
대통령은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정적을 쫓아내고 권력을 잡았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고, 자신의 치적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을 겁니다. 준장이 일견 식견이 있어 보여도, 결국은 독재자의 주구일 뿐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악착같이 새 권력에 붙어서 살아난 것이죠. 표면상으로는 '연구에 필요한 인력'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