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야입니다. 오랜만에 안부 인사 드립니다.
작성했던 글을 돌아보니 제가 2013년? 2014년부터 여기에서 활동했더군요. 왕성하게는 아니지만, 종종 찾아뵈었던 걸 보면,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걸 보면 어쩌면 제게는 무언가 단순한 커뮤니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족적 중 하나가 있는 곳 정도의 의미였다가, 신기하고 예의범절과 질서 그리고 규칙이 온존한, 현 인터넷 세계에서 찾기 힘든 장소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다시 오게끔 되는 그런 공간이며, 또한 뭔가, 마치 명절때와 같이 귀성한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는 느낌입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사 년 간.
대학은 제 이상과 기대와는 다른 커리큘럼과 교수의 됨됨이에 질려 중퇴했고, 최종학력 고졸로서의 삶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퀴어니스에 대해서는, 직장 외 공간과 직장 외 인간관계 대다수에 오픈한 오픈리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키 184에 중저음을 내며 올블랙 수트를 선호하는 여성도 있어야지"가 삶의 모토이자 미적 태도입니다. 추구미는 비록 피어싱을 많이 달고 오프숄더를 선호하며 단발에 스모키 화장을 하는 여성이고 싶었지만, 주어진 것이 욕심 그리고 이상과 다르더라도 제게 주어진 것을 제가 잘 부리면 그건 제 지향점보다 더더욱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저만의 고유한 것이 되리라 깨닫고 살고 있습니다. ☺️
이런저런 육체노동을 전전해오다가, 삶을 한 번 놓고 싶어 확실히 시도했지만 신이 결국 또 다시 저더러 생을 이을 것을 명령한 것만 같아 다시 일어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결정 끝에 올해 가을부터 경북의 어느 지역에서 쇳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을 서른이라는 나이에, 그리고 투박하고 무뚝뚝한 특성을 지닌 지역의, 현장직으로 몇십 년을 지내오신 분들 사이에서 여리고 예민하며 감성적인 사람인 제가 적응하기는 정말 쉽지 않으나, 그럼에도 버티고 노력하며 어쨌든 일원으로써 서서히 인정 받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서 삼사 년은 더 일하며, 제 인생이 서른인 지금에서야 꽃피기 시작했음을 알기에,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앞날의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여전히 과도한 소비와 사치로 자존감을 채우고 자기표현을 하고 있는지라, 그 점에서는 개선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금속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옛부터 세상을 움직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심과 열망이 있었기에, 이번 국내에서 일어난 일은 저를 드디어 일어서게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직업은 사회운동가나 적어도 그러한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합니다.
소수자로서 타이틀이 이미 하나 있지만 다른 하나를 더 가시화하고 오픈리로 살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자격은 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구원을 바라고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언제나 옆에 있겠으며, 또한 모든 아픔과 눈물과 상처를 내가 짊어져줄 것이고, 제가 아는 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끔 지도하고 멘토링하는 사람이고자 싶다는 그런 성향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습니다. 졸업식을 세 번째 하고 있으며, 이제는 제가 타인에게 그러한 걸 해주는 역할로 사는 건 충분하고 족했으니, 제게 그러해줄 사람이 없어 그리 살아왔으니, 나도 이젠 슬슬 졸업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하에 찾고 찾다가, 드디어 다른 사람의 지도와 예속 하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어떻게 느껴질지 몰라 상당히 에둘러 말했지만 그런 성향입니다.
올 한 해를 이리 보낸 것도 아니고, 올 여름, 무덥고 아지랑이가 후끈거리며 하늘 높이, 마치 이카루스처럼 팔을 뻗어올리며 갈구하고 닿기를 소원하는 것만 같던 팔 월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서른에야 꽃필 것만 같다고 막연히 느껴온 제 삶이 드디어 막 첫 울음을 뗀 것처럼 느껴져서, 지난 사 개월이 정말 생경하고 꿈만 같습니다.
곧 서른 하나가 되겠군요. 그 때의 저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우아하고 기품과 위엄과 매력을 지니고, 얼마나 더 당당하고 솔직하며 옳음을 추구하고 선하고자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생각을 몇 퍼센트나 실제로 이루어낼지, 예전이었다면 걱정했을 것을 지금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게임 해설을 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때 저는 참 가진 것 하나 없이 빈곤하고 그 빈곤은 막연하고 또 막연해서 타개할 수단을 아무리 강구해도 절대 찾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지금 또한 온전히 타개하진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암 삼 차를 지나 사 차에 접어들고 계시고, 저를 옥죄는, 집안의 빚은 아직도 크고 육중합니다. 지난 사 년의 시간 동안 제 인생에 있어 절대 지울 수 없는, 회한과 속죄의 낙인으로만 남아 저를 고행에 걷게 할, 그럼에도 겸허히, 결코 억울하다고 할 자격이 없는 일에 종사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시절의 꿈을 매일 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삶에서 저는 이리 느껴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내가 인복이 참 많아"
여태까지는 내가 뭐라고 그리들, 이라는 생각을 하며 침잠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러니까 나또한 그대들처럼 빛나고 찬란하리라, 하며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시금 붙잡고 기도하게 된 십자가와 같이. 이냐시오 데 로욜라라는 세례명을 받았던 유년 시절의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악수하며 화해한 것과 같이.
새벽 다섯 시 십육 분.
크리스마스는 제게 휴일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야간조 출근을 위해,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 애쓰며 밤을 새는 지금 새벽.
문득 이곳 생각이 나서, 하루 늦었지만 인사를 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안온한 꿈자리, 행복한 잠자리 되시길.
柔夜였습니다. 종종 뵙겠습니다.
Smoothi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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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갈
2024-12-26 20:03:55
안녕하세요, 유야님. 정말 오랜만에 뵈어요. 포럼을 기억해 주시고 이렇게 와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크리스마스를 휴식에 잘 활용하셨군요. 다행이예요. 이제 2024년도 얼마 안 남았고 다음주는 수요일부터가 2025년 새해가 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누구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죠. 자신이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또한 그 다른 누군가도 자신이 될 수 없듯이. 그럼요. 잘 생각하셨어요. 그리고 환영해요.
"신이 결국 또 다시 저더러 생을 이을 것을 명령한 것만 같아" 라는 대목에서는 확실히 울컥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저는 1년 전에 건강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전신마취 상태로 수술을 받았고 수일간은 물조차도 마시지 못했음은 물론 의식도 몽롱하고 다리에 힘도 안 들어가서 자력으로 일어나 걷지도 못했어요. 그러다가 5주 이내의 입원생활을 마친후 재활에 성공하여 여러 활동을 영위하다 지난달 말에 또다른 이유로 아파서 또 요양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번은 입원할 것까지는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치료도 순조롭긴 해도 아직은 보행장애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서 장거리 이동은 불가능하지만...
여러모로 공감해요. 선택받지 못한 인생이었다고 자조한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일이 있고 포럼을 운영하는 입장이 되면서 타력본원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고 있어요. 비록 작게 보이더라도, 세월이 쌓이면 자라갈 이 힘을 믿고 있어요.
柔夜
2024-12-27 05:33:34
오랜만에 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둘러보다가 늦게나마 그 소식을 접하고 많이 놀랐습니다. 진심으로 걱정했고 쾌유를 빌었고 무탈하시길 바라는 중입니다.
비록 제가 이 공간에 머무른 시간은 짧지만, 규칙과 형태를 단단히 하고 그것을 최대한 관리자라는 위치에서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가꾸시는 모습에 저는 큰 감화를 얻었어서요. 마음만큼은 포럼 분들 안에 있는 빛에 대해 대단하다, 멋있다, 흠모해왔기도 하고요. 제게 결여된 능력인 꾸준함이라는 요소 또한 만연해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정말로, 수많은 부분에 있어 선택받지 못한 인생이었고, 어중간한 지점에 걸쳐있어 어중간하게 고통받으며 어중간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삶과 사람을 사랑하고 놓지 않으려 하며 스치는 모든 것에 상냥하려 노력했기에 지금 이 정도나마 자신을 가꾸어낼 수 있었다고 돌이킵니다. 선택받지 못했다는 게 제 이마에 주홍글씨가 되어버리는 게 싫었기도 하고요. 그러한 마음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비록 한없이 작았더라도, 세월이 쌓이고 쌓이니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네요.
2024년 한 해는 제게, "살아있길 잘 했어." 같은 해입니다. 마드리갈님의 2024년이 비록 큰 산이 앞에 놓여있고, 산이 있으면 으레 구름이 넘다 지쳐 비를 뿌리고 바람을 차게 불듯, 그리고 안 좋은 일은 으레 그렇듯, 겹쳐서 오게 마련이지만, 제가 감히 바라건데 행복하고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SiteOwner
2024-12-26 23:00:13
오랜만입니다, 柔夜님. 잘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귀중한 휴식에 쓰셔서 다행입니다. 저도 잘 쉬었습니다.
포럼이 다시 찾아오고 싶은 장소로 기억되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포럼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여러모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돌아보는 것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정립하는 것도 모두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길에 대해 비록 완전히 동의하지만은 않더라도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미덕이겠지요. 포럼에서도 그것을 구현해 나가기 위해 여러모로 생각하고 또한 시도하고 있습니다.
삶의 여러가지는 기적의 연속이기도 하지요.
탈무드에 나오는 불운의 대명사 격으로 불리는 슐레밀도 결코 마냥 불행한 것만은 아니지요. 정말 불행하다면 슐레밀은 불운을 더 겪기 전에 어디에서 비명횡사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Dum vita est spes est. 살아 있으면 희망도 있다는 이 라틴어 격언의 힘을 믿습니다.
柔夜
2024-12-27 06:14:03
그간 격조했음에도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분기점마다 포럼이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 제가 미루어 짐작하기에, 이 공간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떤 나로써 찾아와도, 이곳은 언제나와 같다는. 그러한 공간이 요즘 세상에는 참으로 드물기에. 그래서 제 마음 한 켠에 이리도 오래 자리하여 제가 찾아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의 모토는, 기억은 희미하고 활자는 영원하다, 입니다. 그 말인즉슨, 제가 본디 기억력이 좋지 못한 편인지라, 있었던 일을, 일보다는 사람을 돌이켜보는데에 기억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안개 낀 자욱한 편린의 늘어놓음인지라, 스치는 모든 인연을 기록했었습니다. 하고 있고요.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소중함으로 남아 제 보물이 되고, 제가 초라하다 못해 추락했을 때 저를 다시 빛내주었기에, 즉 돌아볼 수 있는 이정표가 있었기에 이럴 수 있었다 싶네요. 헨젤과 그레텔처럼.
저는 욥기를 정말 좋아합니다. 탈무드는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 기억나지 않네요, 아쉽게도. 여하튼 전 고통 끝에는 언젠가, 반드시 언젠가는 낙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리 살아왔고, 그거 말고 기댈 게 없기도 했고요. 다만 이제 스스로 항상 나은 사람이고자 노력한다면. 노력하지 않더라도 그걸 추구하고 갈구한다면. 낙이 그제야 네 조건이 되었으니 내가 가겠다, 한다 믿습니다. 그게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주어 기쁨에 종종 눈물을 흘립니다. 살아있으면 희망도 있다는 라틴어 격언, 소개 감사합니다. 마음에 새기고 항상 감사하며 살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내년은 올해보다 더 행복하고 더 무탈하고 더 안온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