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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토 근교의 소도시 ‘테마리’에 있는 한 주택가. 세라토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길도 넓지 않아 외부에서 보기에는 군사 요새를 연상하게 할 수도 있는 곳이다. 새벽 시간이라 다들 잠에 들어 있고, 불이 켜진 집은 한 곳 정도뿐이다. 이곳 역시도 다른 방의 불은 다 꺼져 있고 한 방의 불만 켜져 있을 뿐이다.
“어디, 연락은 받으려나...”
가장으로 보이는 40대 중반의 남자는 초조한 표정을 하고서 자기 방의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진리성회의 강사였다. 이름은 양웨이신, 홀리네임은 세베루스. 그가 속한 세라토 북부회당에서 주임 강사의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었고, 포교에 힘쓴 공로로 총회장으로부터 표창도 여럿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집회에 출석하지도 않고, 다른 강사들과 지역장, 장로의 연락도 받지 않아, 진리성회 측에서는 그가 배교한 것으로 의심하던 차였다.
사실, 그 역시도 진리성회 교단 측에서 그를 추적할 것을 의심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전화번호도 모두 바꾸게 하고, 다른 의심스러운 연락도 모두 미리 차단하는 등, 나름대로 철저히 그의 존재를 숨겨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은밀히 진리성회 피해를 상담하는 ‘종교관계상담소’를 그가 사는 지역에서 운영해 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상담소에 첩자가 다녀갔다는 것으로, 그 시점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교단측에 의해 감시되기 시작했다. 그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바로 며칠 전. 은밀히 자료를 모아오고 있던 그는 얼마 전 방영된 <이슈의 눈>을 보고 용기를 얻어, 사전에 접촉한 정보원에게 자신이 모은 자료를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이거면 치명타를 가할 수 있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이중 삼중으로 보안장치를 해 놓는 걸 잊지 않는다. 그 작업도 어느새 끝나고, 그는 이제 초조히 연락을 기다린다.
“이제 연락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폴첸 씨는 늦은 저녁에 전화를 준다고 했으니... 그건 그렇고...”
막 그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전화가 울린다.
♩♪♬♩♪♬♩♪♬
“뭐지? 폴첸 씨가 이렇게 일찍 전화를 준다고 했었나?”
10초 동안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재차 확인한다. 틀림없는, 폴첸이 연락하기로 한 그 번호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아 본다.
“소장님? 저 폴첸입니다. 조금 일찍 거기에 다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심하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폴첸 조사원님입니까? 우리의 ‘애정’은 무엇입니까?”
웨이신은 곧바로 사전에 약속된 ‘암호’를 부른다. 곧바로,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들린다.
“‘갈증’이지 무엇입니까.”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때 뵙겠습니다.”
리암의 일행은 진리성회 북부성당 근처의 수산물 식당에서 나오는 길이다. 리암의 계획대로라면 8시 정도까지 거기 있으면서 이것저것 염탐할 생각이었지만, 진언이 리암이 하는 걸 보고는 막아서는 바람에 계획보다 빨리 나오게 된 것이다.
“큰일 날 뻔했어. 그러니까 리암, 너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
“아니, 나는 그냥 그 사람들을 좀더 지켜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말은 하지도 마! 너 뉴스도 못 봤냐? 저런 거 고발하던 전 신도가 실종됐다는 거 나오잖아.”
진언의 그 말에, 리암 역시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이지만, 지금은 딱히 뭐라고 대꾸하지 않고 있다. 진언은 아무래도 현직 경찰이니만큼, 진언이 막아선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뭔가 좀 많이 얻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네. 기껏 시간을 좀 냈더니만.”
타마라 역시 아쉽다는 반응을 보인다.
“너 아까 생선 요리가 끔찍하게 맛이 없었다며?”
“아니, 요리 말고, 볼트 선배가 도대체 뭘 알려고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려고 했는데 말이지!”
“곧 알게 되겠지.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말이야.”
리암의 그 말에, 타마라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말한다.
“뭐, 볼트 선배를 조금 더 알게 되는 계기라고 해야 하나.”
어느새, 리암과 일행은 지하철역 앞에 다다른다. 리암이 먼저 서언과 진언에게 인사한다.
“또 봐. 에이, 오늘 별 수확이 없는 것 같아서.”
“리암, 네 몸부터 잘 챙겨. 또 전에처럼 이상한 일 겪지 말고.”
“응? 전에 무슨 일이 있다고?”
타마라의 그 말에, 진언은 손을 가로저으며 말한다.
“너는 몰라도 돼. 리암하고 나만 아는 이야기니까.”
“아, 그래...”
그렇게 리암, 타마라와 헤어지고 나서, 진언은 주차장 한쪽에 세워진 검은색 차로 가더니, 문을 열고 탄다. 그 옆의 조수석에는 서언이 앉는다.
“내가 이상한 데는 따라가지 말랬지!”
“이상한 데 가려고 한 거 아니라고. 나는 그저 친구를 돕고 싶었을 뿐인데...”
“뭐, 아무튼 다음에는 혹시 리암이 가자고 해도 따라가면 안 돼. 이제 할머니네 집에 가 보자.”
그 길로, 진언의 차는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떠난다.
그리고 예담의 집이 있는 아파트.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예담의 집이 있는 층에 다다른다.
“이 아파트 승차감은 내가 올 때마다 똑같네.”
“무슨 소리야. 얼마 전에도 고쳤는데.”
“그건 그렇고 이제 뭘 하려고?”
“좀 기다려 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아직 차가운 기운은 있지만, 문 앞에는 아무도 없다. 예담이 텀블러를 들고 서성이는 모습을 보자, 예희는 불안하게 말한다.
“너 왜 그러는 거냐? 정말 뭐라도 있어?”
“어, 있어. 누나는 안 보는 게 나을 거야.”
예담은 어느새 계단참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텀블러의 뚜껑을 열자, 어느새 물은 끓고 있다. 그 물을 냅다 계단참 아래쪽에 쏟아 버린다.
“야, 너 그게 초능력이냐? 그리고 그걸 왜 계단에 쏟아?”
“이제 됐어. 엘리베이터에 차가운 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예담은 그쪽에 다시 눈길을 주지도 않고서, 집으로 바로 들어간다.
그리고 예담의 예상대로, 아파트 현관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이를 갈며 중얼거린다.
“이 자식... 최고의 눈사람 정예병들을 녹여? 일단 오늘은 후퇴다. 하지만 각오해라! 내일도 모레도 있으니.”
그는 곧, 아파트 입주민으로 행세하며 그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그의 뒤로 조그만 눈사람도 여러 기 졸졸 따라간다.
한편, 그 시간, 민의 집 앞.
민에게 말을 건 정장을 입은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자, 민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민의 둘째형, ‘인영’은 평소 이 시간에는 밖에 나올 일이 거의 없다. 회사의 일을 도맡아 하느라 밖에 다닐 틈이 별로 없는 것이다.
“에이, 깜짝이야!”
물론 평소 있지 않을 법한 시간과 장소에 있으니 못 알아볼 뻔한 것이고, 몇 초도 되지 않아 민은 그게 자기 둘째형 인영임을 알아챈다.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는 웬일이야?”
“집에 가는 길인데, 잠깐 짬을 내서 들렀어. 내가 무슨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러는 게 아니야. 알잖아? 1분 1초도 허투루 쓰기 싫어하는 거.”
“아, 그랬지.”
인영의 말대로다. 그러지 않았으면 어머니의 회사를 물려받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동네는 사고 치는 초능력자들 없냐?”
“아니, 왜 없겠어...”
“그래, 네 주변에는 별로 안 꼬일 것 같아 다행이네. 집에 같이 들어가 볼까?”
“아, 그래.”
민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한숨을 깊게 내쉰다. 인영을 만나지 않았다면 얼른 집에 들어가자마자, 방문을 잠가 놓고서, 실컷 더 놀아보든지, 아니면 만화 같은 걸 보든지 하려고 했더니만, 아무래도 다른 누가 옆에 있으면 눈치 때문에 그런 걸 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집으로 가는 길에, 인영은 공원 쪽을 돌아보고 말한다.
“하여튼, 우리 동네에도 사고치는 애들이 많아. 너같이 센 녀석도 없으니까 더 설치는 거 이지. 네가 거기 한번 가 보면 다들 조용히 할걸?”
민은 인영의 그 말을 듣고서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참 너답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민의 집 대문 앞에 다다른다. 그런데, 집의 불이 켜져 있다.
“반디인가? 얘도 학교에 일이 많다는데, 또 벌써 온 건가.”
그런데 집 안에서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반디 얘가 친구도 데리고 온 건가. 웬일이래.”
인영은 그 길로, 슬금슬금 집의 정원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민도 뒤따라 그 안으로 들어간다. 예상과는 다르게, 누가 또 집에 있던 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건 확실하다.
“에이, 이렇게 방문도 안 닫고 떠들어 대서야, 내가 뭐 방해할 수도 없잖아.”
어느새 로봇이 냉장고에서 꺼내온 음료수를 마시며, 인영은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다. 반디에게는 비밀로 하려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혹시 내가 반디 누나한테...”
“쉿!”
인영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렇게 말하자, 민도 더 말하지는 않고 가만히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초 정도 지나자, 그 깔깔거리는 소리가 별안간 멈춘다. 그리고 방에서 반디가 나온다.
“아니, 오빠!”
반디는 인영이 와 있는 그 상황이 의외였는지, 잠시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말이 없다. 그러더니, 문득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는, 시계를 본다. 시계는 오후 5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 다행이다!”
“뭐가 다행인데?”
“저녁에... 하... 학교에 다시 가 볼 일이 있는데... 후... 그것 때문에...”
“좀 숨은 쉬고 말해. 누구하고 전화하길래?”
반디는 곧바로 ’후‘ 하고 날숨을 크게 내쉬고서 말한다.
“그러니까... 대학 동창이야! 오해는 하지 마!”
“뭐, 알겠어. 이제 또 누구 오니까, 준비 잘 하고 있어.”
“누가 오는데? 나 이제 가 봐야 된다고!”
그렇게 반디가 말하자마자, 현관 쪽이 요란한 것 같더니, 이윽고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인영은 그게 누구인지 알아보고서, 곧바로 뒤돌아보고서 말한다.
“오, 너희들 이렇게 일찍 밖에 돌아다녀도 되냐?”
“삼촌이야말로요. 그런데, 이 시간에 집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서언과 진언이 동시에 묻자, 인영은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듯 말한다.
“그야, 나도 짬이 나는 김에 좀 들렀지! 금방 다시 회사로 갈 거야.”
“어, 그래요?”
“에이, 너희들은 회사 경영 같은 거 하지 마.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인영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언에게 눈짓을 준다. 진언이 곧바로 자기 수첩 사이에 껴놓은 무언가를 꺼내 인영에게 준다. 30대 정도 되는 남자의 사진이다.
“삼촌이 이걸 좀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요.”
“아, 그래. 내가 이 녀석 얼굴을 좀 보고 싶었거든.”
“가져가면 안돼요.”
그런데, 인영의 눈에 민이 슬금슬금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는 게 보인다. 얼른 인영은 민의 발을 잡아챈다.
“어딜 가.”
“에이...”
민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거실에 와서 앉는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1 댓글
마드리갈
2025-04-18 22:45:25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사람이 원래부터 적이었던 사람보다 더 무섭다죠. 양웨이신은 진리성회의 입장에서는 배교자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이비교단의 입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수집해 온 자료가 세상에 공개되면 진리성회만 불행하고 세계는 행복한 상황이 열릴 거예요.
생활의 여러 단면에서도 정보전은 치열하게 벌어지네요. 게다가 많은 사안은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 틀림없어요. 진언도 뭔가 단서를 찾은 듯하고, 예담은 그의 열 능력을 이용하여 위험한 상황을 제압하고. 아직은 설명해도 이해가 가능할지는 의문일 듯해요.
민의 둘째형인 인영은 좀처럼 집에 있지 않군요. 뭔가 워커홀릭인 줄 알았는데 거의 일에 치여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