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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수사대] VII-1. 갇혀버린 영웅

국내산라이츄, 2017-02-26 22:47:17

조회 수
120

느긋한 오후,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낯선 여자가 들어왔다. 긴 머리에 하얀 코트가 세련되보이는 인상을 주는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낯빛은 좋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
"여기가 혹시... 괴담수사대인가요? "
"네. 제가 오너인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부탁입니다, 제 남편을... 도와주세요. "
"남편분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
"집에서 나오지 못 하고 있어요... 일도 그만두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서, 까만 그림자같은 게 자꾸 어른거린다고... 아무리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고 해도 움직이질 않아요... "
"까만... 그림자요? "

중년 여성의 남편은 얼마 전 있었던 F시의 오피스텔 화재에서 살아남은 소방관이었다. 그 때, 화마는 그의 동료들 뿐 아니라 그 오피스텔에 있던 수많은 생명을 집어삼켰다. 분명 그의 주변을 맴도는 까만 그림자도 그것들 중 하나이리라. 

"그 안에 계신 지는 얼마나 된 건가요? "
"그 사건 이후로 계속 집에서 나오지 못 하고 있어요...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댁으로 찾아가봐도 괜찮을까요? "
"네, 괜찮습니다. "
"그럼 나중에 연락을 드리고 방문할테니 연락처 하나만 남겨주세요. "
"알겠습니다. "

여자는 포스트잇에 연락처를 적고 돌아갔다. 

"파이로 씨. "
"응? "
"혹시 예전에 라플라스가 줬던 아티팩트 가지고 계세요? "
"아티팩트? 하나는 라플라스가 회수해갔고 하나는... 아, 이거 말하는거냐? "

파이로는 품 속에서 회중시계 하나를 꺼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시계는, 인간이 사용할 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화재가 일어났던 때로 돌아가서 알아보려고? "
"네. 그 그림자의 정체가 뭔지... "
"그럼 그냥 가서 알아보지 그래. "
"가서 물어본다고 알게 될 것 같지도 않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 눈으로 보고싶어요. "
"하여튼... 옛다. 그게 몇개월 전이더라... 아아, 오늘로 딱 9개월 전이네. 시간 맞춰놨으니까 그 태엽만 돌리면 과거로 돌아갈거야. "
"네, 알겠습니다. "

시계를 건네받은 미기야가 태엽을 돌리자, 9개월 전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때는 가짜 뱀공주 일을 처리할 때라 몇 명만 사무실을 지키고 나머지는 일본에 있을 때였다. 

"사무실이 휑하군... 아, 그 떄는 일본에 있었나... 참, 그 오피스텔로 가야지. "

그는 이 날짜에 화재가 일어났던 오피스텔로 향했다. 아마 불이 난 시간은 저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면, 딱 저녁 시간에 맞춰 도착하겠지... 

저녁, 그는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붉은 화마가 건물을 집어삼킬 듯 태우고 있었다. 건물이고 생명이고 화마가 집어삼키려는 와중에도,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소방관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밖에서는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안으로 몇 명의 대원들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방열복을 입고 들어갔다. 

"저 분인가...? "

아침에 찾아왔던 의뢰인의 지갑 속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다른 대원들보다 앞장서 화재 현장으로 들어갔던 소방관이었다. 연락처를 적을 때 얼핏 봤지만, 꽤 강인한 인상의 남자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분투했고, 제일 먼저 화마가 우글거리는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 역시 그를 따라 들어갔다. 

"후우... 열기가 장난이 아니군... "

건물 내부는 플라스틱은 물론 철근마저 녹아버릴 정도로 엄청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연기와 엄청난 열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건물 잔해들... 미기야가 그를 따라 갔을 때, 그 사이에서 그는 생존자를 수색중이었다. 

그 때였다. 

-살려줘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가 보니, 어린아이가 있었다. 

"!!"

-도와주세요! 엄마가 안 일어나요! 

그 옆에는 이미 숨을 거둔 여자도 함께였다. 아마 이 여자가 아이의 엄마인 모양이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엄마를 일으키려고 애쓰면서 힘겹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아이를 보니, 미기야는 아까 그 소방관을 여기로 불러오고 싶었다. 하지만 시계의 소유주가 아닌 미기야는 과거에 관여할 수 없어, 누군가를 부르거나 아이를 구하지 못한 채 아이의 목숨이 사그러드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이 아이가... "

현장을 빠져나오고 몇시간 후, 불은 다 꺼졌으나 생존자는 없었다. 화마는 그 건물에 있던 사람들로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을 구하러 온 소방관들마저 집어삼켰고,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한 명의 소방관이었다. 

"파이로 씨라면 그 아이를 구할 수도 있었을텐데...... "

다시 현재, 그가 돌아온 현장은 빈 터로 남아있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빈터를 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는 파이로와 야나기가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여기 시계요. "
"뭐야, 너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 녀석의 정체는 알아 낸 거야? "

시계를 건네받은 파이로는 가위 손잡이에 시계줄을 걸었다. 

"네... 그 때 그 소방관이 미처 구하지 못 했던... ...파이로 씨, 파이로 씨가 그 시계를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을까요? "
"일단은 내가 소유주니까 가능은 할걸. ...가만, 무슨 말이야? 구할 수 있냐니? "
"현장에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가 도와달라고 몇 번이나 소리쳤는데 그는 결국 듣지 못 했고, 결국 그 아이는...... "
"...... 그렇게 된 건가... 그래서 살아남은 건 그 소방관뿐이었군. "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과거로 가서 그걸 바꾸는 건 불가능해. 네녀석도 알고 있겠지, 과거가 바뀌면 미래에도 영향을 준다는 건. "
"그건 알고 있죠... "
"그리고 누군가가 죽는 걸 막겠다고 일일이 과거에 관여했다간, 명계에서 우릴 먼저 죽이려 들 게 분명해... 나도 그 아이가 죽은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생사에 관여된 것은 웬만하면 그냥 두는 게 좋아. 생사는 우리가 관여할 수 없는, 생각보다 큰 영역이니 말이야... "
"그럼 어떻게 하죠...? "
"일단 그 녀석을 찾아가서 달래는 수밖엔 없어. 이미 죽어버린 이상 소속은 명계에 있고, 그걸 과거로 가서 막는다고 해도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우리는 단지 과거로 가서 그 아이를 구하면 되는거지만, 명계에서는 이미 죽어서 서류 처리까지 끝낸 사자의 사망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버려서 엄청 꼬이거든. ...그 아이를 구하는 댓가로 니가 죽을 수도 있어. "
"...... "

다음날, 미기야는 어제 찾아왔던 여자에게 연락을 했고, 오후에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우후후, 검은 그림자를 찾아 가는거야? "
"네. ...과거로 가서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네요. "
"그야 당연하지. 생사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인간의 수명도, 운명도 정해져 있는데 그걸 흐트러뜨리면 안 되는거야. "
"파이로 씨도 비슷한 말을 하셨는데요. "
"명계에 반은 몸담고 있는 녀석이니, 나보다는 잘 알겠지. "

집에 도착하자, 여자가 미기야와 애시를 맞았다. 집안은 대체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딱 한 군데만 문이 굳게 닫힌 채였다. 어딘가 이질감을 주고 있었다. 

"저 방에 계신건가요? "
"네... "
"알겠습니다. "

미기야는 문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미기야가 과거로 돌아가 봤던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과거에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의 폐인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누구...세요? "
"괴담수사대입니다. 당신을 도와주려고 왔어요. "
"...저를요? "
"네, 부인께서 부탁하셨답니다. 검은 그림자같은 게 자꾸 보인다고... "
"마, 마, 맞아요... 제가 어딘가로 가려고만 하면 꼭...... 옆에 어른거려요...... 아무리 저리 가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아요... "
"걱정 마세요, 저도 당신과 같은 걸 보고 있으니까요. "

확실히 남자의 말대로, 그의 주변에는 검은 그림자같은 게 있었다. 감은 종이로 사람 모양을 그려서 오려낸 것 같은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와 비슷한 크기. 그는 현장에서 도움을 구하다 죽어간 그 아이를 떠올렸다. 

"...... 얘야. 이 분은 너를 도와주기 싫어서 지나쳤던 게 아냐... 듣지 못 했던거야, 단지... 네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거란다. "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지, 그림자가 미기야 쪽으로 다가왔다. 

"네가 거기에서 죽게 된 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이 분을 괴롭히면 안 돼. 이 분은... 아마 이 분도, 많이 미안해할거야... "

-형, 저도 알아요... 

그림자가 미기야에게 말을 건넸다. 그것은 이윽고 점점 형체가 뚜렷해지더니, 그 때 그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너는...? "
"저는... 엄마가 일어나지 않아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너무 뜨거웠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그래서 저도 이렇게 되 버렸지만, 그 후로 아저씨가 미안해하실까봐... 미안해하지 말라고 계속 옆에 있었던 건데, 그래서 아저씨가 무서워하실 줄은 몰랐어요. "
"...... "
"아저씨는 용감한 소방관이고... 엄마가 소방관은 불이 나면 우리를 구하러 달려와주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아저씨같은 소방관이 되고 싶었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

아이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아저씨, 이제 일어나요. 아저씨는 용감한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면 도와줘야죠. 아저씨 친구들이 아저씨가 이렇게 지내는 거 알면 엄청 슬퍼하실거예요... "
"...... 동료들이...... "

그 때 죽었던 동료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떠올리자 눈에 눈물이 고여 하염없이 흐른다. 

"아저씨를 위로하려고 했던 건데, 이렇게 되서 미안해요. 아저씨를 괴롭히려던 건 아니었는데... "

아이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 원한 때문이 아니었구나...... "
"어른스러운 아이네... 안타깝구나... "
"아아... 맞아, 내 동료들 몫까지 열심히 하자고 해 놓고...... ...괴담수사대라고 하셨죠? "
"네... "
"감사합니다... 덕분에......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됐어요... "

그는 눈물을 닦고 말을 이었다,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얘기를 듣고, 사는게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있는 걸 하늘에 있는 동료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들 몫까지 열심히 일하기로 했었죠... 그러다가 그 아이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그 때 내가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도우러 갔었다면 그 아이만은 살릴 수 있었을텐데... 다시 일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

그는 미기야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국내산라이츄

엄마가 고지고 아빠가 성원숭인데 동생이 블레이범인 라이츄. 이집안 뭐야 

1 댓글

마드리갈

2017-05-31 12:33:00

트라우마, 특히 동료들이 죽었는데 혼자 살아남은 사람이 겪는 트라우마는 벗어나기가 정말 힘들 거예요. 차라리 자신이 죽었다면 이렇게까지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을 건데 하는 생각을 좀처럼 떨쳐버리기 힘드니까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누군가 홀로 살아남았다면 그 생존자가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고...


살아남은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였어요, 이번 회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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