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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자문자답은 이게 문제입니다.


사실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내용을 다 쓰고 나서 제목을 마지막에 붙이고 점점 고쳐나가는 게 맞습니다만, 옴니버스라는 구조 탓인지 아니면 언제부턴가 익혀버린 잘못된 습관 탓인지 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나서 글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하면 문제가 없겠는데, 생각해 보니까 멋있거나 의미심장한 제목을 짓고 나서 내용을 거기에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악화된 경우는, 바로 그럴듯한 제목과 개요만 적어두고 실제 연재로는 옮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단 후자의 문제는 창작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설정놀음에 가까워서, 극약처방을 써서라도 그만둘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전자 즉 내용보다 제목을 우선하는 문제는 마냥 나쁘다고 하기엔 뭐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에피소드의 내용을 축약하여 독자가 기대하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본 에피소드는 무엇의 패러디입니다'하고 광고하는 셈도 되거든요. 패러디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소재를 보충하기도 하고(원작존중에 너무 목을 매버린다는 다른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예전에 팬픽을 쓸 때 그렇게 제목으로 사소한 애드립을 치며 썼던 게 기억납니다. Peacemakers of the Caribbean이라든지... 그런 잔재미 덕분에 글을 쓸 맛도 나고요.


정작 옴니버스 방식을 사용한 고전 명작이나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제목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이 문제의 가장 큰 문제이자 아이러니는 그러한 제목이 넘쳐난다는 것은 소재가 넘쳐난다는 뜻이지만 정작 줄거리는 허술하다는 점입니다. 제목 그 자체가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을 풀어내거나 부풀리기가 어렵다는, 태생적인 한계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제목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 게 좋을까요? 제 질문과 별개로, 제목이 정말로 제 값을 하거나 반대로 제 값을 못한 경우를 알고 계신가요?

Lester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8 댓글

마드리갈

2018-06-23 14:48:34

순간 러시아식 유머인줄 알았네요. 글을 살리기 위해 제목을 쓰는 게 일반적인 게 아닌가 하는 의문과 같이.

근대까지의 서양 창작물이 그런 경향이 있어요. 이를테면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원제가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로 되어 있어요. 즉 작중인물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그 행위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전해준 이후 일어난 온갖 변화처럼 큰 파문을 일으킨다는 것을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어요.  

사실 이러한 제목 작성은 학술서에서는 지속되고 있긴 하지만, 창작물에서는 이미 상당부분 퇴조해 있어요. 제목이 창작물을 감상할 때의 사고영역 및 방식을 제한할 수 있으니까요.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그것을 제목에서부터 보여줘야 할 학술서와는 목적이 다르니 표현양식도 달라지는 게 필연적이겠죠.


제목을 소홀히 해도 안 되겠지만, 제목과 글의 관계에서 가치전도가 일어나도 그건 곤란하겠죠. 약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면,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이나 소재를 택하는 게 좋겠어요.

모범이 될 만한 것으로는 이런 게 있겠죠. 한국영화 장화.홍련의 일본명 箪笥(탄스, 옷장), 소련-러시아의 솔제니친(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1918-2008)의 장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암병동, 수용소군도 등의 것들.

Lester

2018-06-24 04:11:11

제가 얘기하는 것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한 작품에 들어가는 에피소드입니다. 뭐 에피소드도 크게 보면 작품들 중 하나에 해당하고 또 말씀대로 작중의 핵심 요소를 제목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 적어도 제목을 먼저 짓고 내용을 거기에 맞추는 것은 피해야겠죠. 흐음, 일단 제목에 너무 치우친 것부터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SiteOwner

2018-06-23 19:02:54

창작물을 만들던 학술자료를 만들던 간에 중요한 것은, 동원할 소재가 낭비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지요.

또한 요약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해야 합니다. 독자들은 그렇게 인내력이 강하지 않고, 따라서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것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요즘 긴 제목의 라이트노벨이 유행하는데 라이트노벨의 제목은 응집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구매자가 이것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잘 나가느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개 라이트노벨의 경우는 표지, 본문중 삽화 등에 쓰이는 캐릭터 일러스트가 긴 제목의 태생적 약점을 보완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각 이미지의 전달력은 텍스트를 가볍게 압도하니까요.


각종 부제가 버리기 아깝다면, 각 챕터에 그 부제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재활용하는 방법도 구사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상당히 잘 만든 창작물의 제목이라면 저는 이런 것을 선정하고 싶습니다.

일본 창작물의 경우는 이 정도 되겠습니다.

만화로서는 마츠이 유세이(松井優征, 1979년생)의 암살교실.

소설은 오자키 코요(尾崎紅葉, 1868-1903)의 금색야차, 마츠모토 세이쵸(松本?張, 1909-1992)의 지방신문을 사는 여자, 이케이도 쥰(池井?潤, 1963년생)의 변두리 로켓.


번역 일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어에서 어떻게 간결한 표현을 구사하는지를 생각하셔도 도움이 크게 됩니다.

가령 이런 문장을 영역하려면 어떤 형식으로 몇 단어를 써야 할까요?

"B-47 스트라토제트 폭격기의 실전기록은 운용기간중 전혀 없다."

이것을 영역해서 제 코멘트에 답해 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저 폭격기 이름의 영어표현은 The B-47 Stratojet으로 쓰면 됩니다.

Lester

2018-06-24 04:17:00

확실히 근래의 라이트노벨 제목이 점점 길어지는 것은 내용이나 소재가 죄다 비슷비슷해지니까 제목으로라도 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부제까지 달면 가뜩이나 풍성한 제목이 더욱 길어질 것 같아서 곤란하겠네요. 일단 제목이 너무 멋질 필요는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제목을 굳이 영어로 쓰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참고로 제가 하는 것은 영한번역입니다. 그래서 한영번역 실력은 매우 안 좋은 편입니다. 굳이 해보라면 B-47 Stratojet has no actual combat record during employment.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SiteOwner

2018-06-24 17:08:16

한영번역에 숙달되면 영한번역도 상당히 수월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한영번역은 간결한 표현을 익히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기에 이것도 시도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시한 답은 이렇게 쓰시면 아주 좋습니다.

The B-47 Stratojet bomber never saw combat throughout its operational history.

여기서 핵심이 되는 것은 see combat이라는 표현. 주어+see combat은 실전기록이 있음이고, 아예 없다면 see 앞에 never를 붙이면 됩니다. 사실 문장의 골자는 3단어이면 다 되고, 그 3단어 주변에 살을 붙이는 것이 문장 쓰기. 이렇게 영작을 연습해 보시면 골자 요약이 매우 잘 되니까 참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Lester

2018-06-24 18:33:36

사실 영어로 제목을 짓다보니, 영어 특유의 특이한 구어체 내지 관용어구를 활용한 제목도 몇 가지 있습니다 .실제 회화에서는 생각이 안 나서 쓰지 못하지만요.


으음, 일단은 에피소드 제목은 최대한 간단하게 짓는 쪽으로 하고 그런 쓸데없는 창작력은 내용 보완에 쏟아봐야겠습니다.

마키

2018-06-23 19:29:08

유명한 로빈슨 크루소나 걸리버 여행기는 원제가 요즈음의 문장형 제목을 가진 라이트노벨 뺨치는 수준이죠.


로빈슨 크루소: "《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


걸리버 여행기: "《세계의 여러 외딴 나라로의 여행기. 네 개의 이야기. 우선 외과 의사이자 여러 배의 선장인 레뮤엘 걸리버 지음》"


이쯤되면 문장형 제목이고 뭐고 작품 내용 전체를 한 줄로 압축시켜놓은 수준. 간결한 제목도 문장형 제목도 뜻 모를 조어도 그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갖고있으니 한번쯤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제목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를 생각하고 지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Lester

2018-06-24 04:18:16

그것도 한 방법이겠군요. 에피소드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거기서 핵심적인 것만 쓰는 것. 아주 멋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주객전도가 생기진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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