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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에, 눈뜨다] 5화 - 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해!

시어하트어택, 2019-01-26 10:49:43

조회 수
135

미린고등학교의 점심시간. 구름 몇 점만 떠 있는 하늘은 여느 날과는 다르게 매우 맑다. 교실이나 야외 벤치, 분수대 같은 곳에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세훈과 주리는 분수대 옆, 햇볕이 따스한 곳에 앉아서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다. 정오가 가까운 시간인데도, 세훈의 얼굴은 아직도 졸린 기운이 좀 남아 있다.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이룬 탓이다.
“왜 그래?”
세훈의 얼굴을 본 주리가 말한다.
“뭐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세훈은 둘러댄다.
“어제 학원 숙제 어땠어?”
“학원... 숙제?”
세훈의 질문에 주리가 무심한 듯 말한다.
“에이... 겨우 그것 때문에 그래? 별거 아니던데. 너는?”
“다 좋은데, 한 문제는 푸는 데 좀 시간이 걸리더라.”
“하... 그거? 어디 보자...”
주리는 AI 시계의 홀로그램 모드를 켠다.
“주리야, 내가 뭐 찾아 주면 되지?”
주리는 아무 말 없이 세훈을 가리킨다.
“아.”
어느새 세훈의 AI 시계에 나타난 HANA가 말한다.
“여기서 네가 어렵다는 문제를 한 번 찾아 봐.”
세훈이 자기 AI 시계에 홀로그램으로 나타난 학원 숙제 문제들 중 하나를 고른다. HANA는 그 문제를 보고 별것 아닌 듯 대답한다.
“이거 3초 만에 답이 나오는 거잖아. 참고로 이거 푼 사람들 평균은 10초 나와.”
세훈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 HANA는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쉽다는 거지? 어떨 때는 조금 고민해서 풀 때도 있는 법인데.”
“그러게 왜 그런 걸로 고민하고 있어.”
주리가 핀잔을 준다.
“그런 거 고민할 시간에 풀겠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바로 그 때.
“얘들아! 얘들아!”
누군가가 숨가쁘게 세훈과 주리 쪽으로 달려온다. 두 사람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니, 디아나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고 있다. 머리는 정리를 안 했는지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벌게져 있다.
“왜 그래?”
“지금... 지금 교실로 들어가면 안 돼!”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세훈과 주리는 동시에 반문한다. 교실로 들어가면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그러니까... 교실에 들어가면...”
“들어가면?”
“들어가면... 누가 있는데...”
“말을 왜 그렇게 더듬고 그래? 좀 똑바로 말해 봐!”
디아나가 말을 제대로 못 잇고 있을 때, 또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 나온다.
“얘들아! 지금... 교실로... 교실로 들어가지 마!”
세 사람이 돌아보니, 미셸이 달려오고 있다. 얼굴은 온통 뻘겋고 입에서는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봐봐... 내 말이... 맞지?”
“무슨 일인데 그래?”
“겨우겨우 도망쳤어...”
“도망치다니, 누구한테서?”
그 순간, 세훈은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어제 학원가에서 봤던 그 남학생.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 눈빛 때문에 세훈은 새벽에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어쩐지 그 남학생이 좀 이상하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클라인과 같이 다니던 것도 그렇고...
“그... 그 녀석 아니야?”
“그 녀석이라니, 누구?”
주리가 세훈의 질문에 반문한다.
“내가 어제 학원가에서 봤는데...”
세훈이 주리의 질문에 답한다.
“늘 클라인하고 함께 다니던 녀석 말이야, 꼭 어제가 아니더라도, 나하고 같이 다니면 자주 보이던 녀석 있잖아?”
“아... 알겠다. 누군지. 갈색 머리에 깡패 같은 얼굴 하고 다니는 녀석 말하는 거지?”
“아... 맞아.”
“그런 선배 후광이나 보는 녀석이 뭐가 대단하다고...”
“야!”
주리의 말에 미셸과 디아나가 얼굴을 잔뜩 붉히며 소리 지른다.
“지금 심각한 상황이라고!”
“어떻게 심각한 상황인데?”
“그러니까... 교실에 들어가면... 그... 그 녀석에게... 조종당하게 돼!”
“조종... 당한다고?”
“무슨 소리야.”
세훈과 주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아무리 그 재수 없게 생긴 동급생의 초능력이 강력한 능력이라고 해도, 설마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려고? 두 사람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디아나가 두 사람을 붙들고 표정을 고치고 나서 말한다.
“맹세할게. 내가 본 걸 있는 그대로 말해 줄게.”
“아... 알았어. 말해 봐.”
“그러니까... 말이야. 여기 나하고 미셸하고, 다른 친구 몇 명이 잠시 교실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너희가 말한 그 녀석이 교실 한가운데 버젓이 앉아 있더라.”
“그런데, 그 녀석은...”
미셸이 말을 잇는다.
“눈으로 친구들을 조종하고 있었어. 그 녀석의 눈을 보니 다들 정신을 잃거나 아니면 그 녀석이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하더라.”
“그래?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눈을 직접 봤다면 지금도 조종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우리가 직접 그 녀석의 눈을 본 건 아니야. 하지만 그 녀석이 친구들을 조종하는 과정은 확실히 봤어.”
“어... 어떻게?”
“먼저 친구들이 우리들보다 앞서 교실 문 안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드는 거야. 그래서 살짝 교실 쪽을 봤지. 그런데 친구들이 모두 눈에 초점을 잃고 그 녀석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거야. 너무나도 놀라서 다리에 쥐가 나고 입은 벌리고 덜덜덜 떨면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어. 그런데 그 녀석이 갑자기 우리 쪽을 홱 돌려보는 거야. 순간 잽싸게 뛰었지. 오늘처럼 빠르게 달린 적은 나도 디아나도 아마 없었을 거야. 그리고 여기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온 거야.”
“그럼... 그냥 여기 있다 갈까?”
세훈이 입을 연다.
“어차피 그 녀석, 수업시간 되면 자기 교실로 돌아갈 거 아냐.”
“너는 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세훈의 무심코 던진 말에 미셸이 버럭 소리 지른다.
“우리 반 애들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그러면...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겠네.”
주리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을지 좀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거야?”
디아나가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무모하게 갔다가는 그 녀석한테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 그것도 그렇구나.”
주리는 머리를 긁적거린다.
“눈을 봐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얼굴을 직접 보이지 않는 게 좋겠지?”
“그런데 어떻게 얼굴을 보이지 않고 가겠다는 거야?”
“......”
주리는 말을 못 하고 머뭇거린다. 미셸과 디아나는 한숨을 내쉰다. 말은 안 하지만 둘의 얼굴은 ‘그럼 그렇지’라고 소리 없이 말하고 있다. 어색하게 고개만 돌리고 딴 데만 바라보는 이 상황. 이 중에도 각자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다. 세훈은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서서 G반 교실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주리는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을 보고 있다. 디아나는 땅만 바라보고 연이어 한숨을 내쉬고 있다. 미셸은 저 멀리 운동장 너머 학교 정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약 1분쯤 후, 세훈이 뭔가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돌린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제의 그 모습. 그 불량한 동급생을 만났던 때도 그 즈음. 그렇다면...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 동급생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 그 실마리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세훈은 주리에게 말을 건다.
“너, 오늘도 오토바이 타고 왔지?”
세훈의 말에 주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헬멧 쓰고 왔지?”
주리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오토바이 주차해 둔 데로 한번 가 보자고. 너희 둘도 따라와.”
주리가 앞장서고 미셸, 디아나는 세훈의 뒤를 따라간다.

그 시간, 1학년 G반 교실. 한 남학생이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고, 그 남학생을 몇 명의 학생들이 둘러싸고 있다. 다른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있거나, 문 앞에 서 있거나, 아니면 교실 뒤에 서 있거나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교실 안의 학생들의 눈, 그 눈들은 모두 초점을 잃고 흐리멍덩하다. 오직 창밖을 바라보는 남학생 한 명만이 그렇지 않다.
“아까 그 두 명... 어디로 도망간 거지...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네... 분명히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텐데...”
짧은 갈색 머리에, 험상궂은 눈매를 하고 있는 이 남학생의 이름은 베리 비숍. 늘 클라인과 함께 다니는 1학년 F반의 학생이다. 바로 전날 세훈 일행과 마주친, 바로 그 동급생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클라인과 함께 다닌 지도 이제 2년째 된다.

그가 그의 능력을 언제부터 깨닫게 되었는지는 비숍 자신도 잘 모른다. 그러나 최소 중학교 1학년 때, 혹은 그 전후였던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가 처음 클라인을 만났을 때, 그는 대단히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가 가진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타인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동급생들은 모두 그를 피했다. 심지어 그의 옆자리 학생까지도. 지금의 그의 모습과는 반대로, 그는 때때로 불량한 동급생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일이 많았다. 때문에 그는 등교할 때나, 하교할 때, 길거리를 다닐 때, 아니 남들 앞에 보일 필요가 없을 때면, 어두운 곳만 골라 다녔다. 그것도 그냥 어두운 곳만 다닌 것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했다. 처음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나 개 같은 동물들이 실험 대상이었다. 개나 고양이들은 그가 능력을 사용하면 평소 자신들의 습성대로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명령을 잘 따랐다. 점점 자신감이 붙은 그는 이제 실험 대상을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확대했다. 실험 대상은 주로 밤에 혼자서 길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취객이나, 아니면 오후에 인적이 없는 골목길을 혼자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였다. 그들 역시 비숍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면 비숍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노예가 되었다. 그의 실험이 잇달아 성공하자 그는 자신감을 점점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가 클라인을 처음 만나게 된 건 바로 그 시점이었다. 클라인은 비숍이 가진 능력을 어떻게 알아봤는지는 몰라도, 그가 가진 능력에 주목하고 그에게 접근했다. 비숍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클라인과 처음 만났을 때를. 미린 중앙공원에서 혼자 산책하고 있을 때, 클라인도 혼자 걸어오며 그에게 접근했다. 맨 처음 만난 그 때는 클라인을 자기 능력으로 조종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클라인이 그의 능력을 살짝 보여 주자, 비숍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클라인은 비숍을 손수 일으켜 세워 주었다.
이후 클라인은 비숍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클라인이 비숍에게 베푼 건 기껏 해 봐야 밥자리를 같이 한 것과 같은 사소한 것이었지만, 비숍에게는 그것으로도 우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가족들 말고는, 아니 어쩌면 가족들도 포함해서, 우호적인 인간관계가 없다시피 했던 비숍에게, 클라인은 구세주와도 같았다. 클라인은 끊임없이 비숍이 자신감을 되찾도록 격려해 주었고, 그런 클라인의 호의에 비숍은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어느 날, 클라인은 비숍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 때가 중학교 3학년이 막 시작되던 때, 그러니까 딱 1년 전이었다. 클라인은 일부러 미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비숍을 데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수하들을 시켜, 그 지역의 불량한 중학생 몇 명을 공터로 꾀어내고, 그곳에 비숍을 보냈다. 비숍은 많은 수의 불량배들이 자신을 해치려 달려드는 모습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클라인이 알려 준 대로 평정심을 찾고, 앞에 있는 불량배들을 조종하기로 마음먹고 그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몇 초 전만 해도 자신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던 불량배들이 전부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비숍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기까지 했다. 거기서 그는 그의 진정한 능력을 깨닫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수년 간 잃었던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클라인과 함께라면, 그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후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동급생들을 조종 능력을 통해 굴복시켰다. 그가 가진 능력을 통해 동급생들 위에 서고 좀 만만해 보이는 선배들 위에서 군림하기까지 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설령 누군가가 그를 막아서려고 한다고 해도, 클라인이 뒤를 봐주고 있었기에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했다. 그를 막을 만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미겔 블랑코, 조셉 앤더슨, 천리웨이, 그리고... 후지타 케이타.”
비숍이 교실 한쪽에 있는 키가 큰 남학생 네 명을 부른다. 네 사람 모두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다. 비숍의 명령이 떨어지자, 네 사람은 마치 공업용 로봇과도 같이 한 발 한 발 정확히 맞춰 걸어 나온다.
“너희 네 명, 운동부지.”
네 사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러면 아까 도망간 디아나 릴리엔탈하고 미셸 카스티유를 잡아 와.”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교실을 나선다. 그러자마자 비숍이 교실 뒤에 있는 학생들에게 눈짓을 주고, 두 명의 남학생이 더 뒤따라 나선다. 비숍은 교실을 한 번 돌아본다. 우등생도, 문제아도, 쾌활한 사람도, 소심한 사람도 누구 할 것 없이 가만히 비숍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비숍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지만, 이내 그 미소는 얼굴에서 사라진다. 클라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겸해서, 오늘부터 시작해서 며칠간에 걸쳐 G반을 완전히 자기 밑에 굴복시키기로 마음먹었는데, 정원 30명 중에 몇 명이 안 보인다. 블랑코, 앤더슨, 천리웨이, 후지타는 도망간 디아나와 미셸을 잡으러 갔고... 그렇게 쳐도 이 교실에 있는 사람은 20명. 4명이 없다는 뜻이다.
“이봐.”
비숍은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안경 쓴 남학생을 부른다.
“이름이... 앤드루 카터랬나?”
“아니오. 앤드루 카슨입니다.”
앤드루 카슨이라는 남학생은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네 명이 비는데... 여기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 있나?”
“한 명은 결석했고 한 명은 조퇴입니다.”
“그럼... 나머지 두 명의 신원을 알 수 있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 시간, 학교 지하 주차장. 세훈과 주리를 비롯한 네 명은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오토바이 주차하는 곳이 어디였더라?”
“야... 공주리! 오토바이를 몰고 온 사람이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하냐!”
세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주리에게 핀잔을 준다.
“안 그래도 지금 HANA한테 찾아 달라고 했는데...”
“그런데 왜 결과가 바로 안 나와?”
“주차장을 스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뭐? 평소에 그런 것도 안 하고 있었어?”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어떻게 생각했냐.”
“하... 그래? 그럼 나는 따로 가서 찾아볼게.”
갈림길이 나오자 미셸은 멈춰 선다. 미셸이 눈짓을 주자 다른 세 사람은 갈림길의 왼쪽으로 달려간다. 미셸은 가만히 서서 세 사람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다. 이윽고 세 사람이 미셸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미셸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 정도 달렸을까. 미셸은 주위를 한 번 돌아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미셸은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너... 너희들...”
“......”
미셸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3명. 조금 전 미셸과 디아나를 잡으러 떠난 여섯 명 중 다섯 명이다. 이윽고 세 명이 미셸의 뒤로 돌아가, 미셸을 완전히 둘러싼다.
“어떻게 된 거야? 여기는 무슨... 일이야?”
미셸은 이들의 눈을 보고는 이들이 조종당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애써 말을 걸어 보려 한다. 이들은 미셸의 말에도 미동이 없고 그 중 후지타가 입을 연다.
“그 분의 명령으로... 너를... 데리러 왔다.”
후지타의 목소리는 마치 기계음과도 같이 딱딱하다. 평소 투박하기는 해도 유머 넘치는 말을 많이 했던, 그 목소리가 아니다. 그의 머릿속이 순간 캄캄해진다. 순간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미셸은 도망을 그만두기로 한다. 자신이 도망가면 다른 3명이 위험해진다. 또 퇴로는 이미 막혔을지도 모른다. 미셸은 자신의 앞에 선 3명의 얼굴을 한 번씩 돌아보고는, 순순히 3명을 따라간다.

그 시간, 지하 주차장의 다른 구역.
“어디쯤... 온 거지?”
“방금 보니까, 이제 내 오토바이가 있는 곳에 거의 다 온 것 같아.”
“그런데... 미셸은?”
디아나가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게... 연락이 없네.”
“설마...”
디아나는 몇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려다 그만둔다. ‘그 경우’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런 건 지금은 생각하지 말고.”
세훈이 걱정스럽게 말을 떼자 주리가 얼른 입을 연다.
“지금은 일단 교실까지 무사히 갈 생각을 하자고.”
“그런데... 오토바이 주차해 둔 곳은?”
“어... 바로 앞이야.”
“바로... 앞? 여기가... 번호가 어떻게 되지?”
“B-5번.”
주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당연하겠지만, 내 오토바이에는 내 헬멧 하나밖에 없어.”
“그럼... 어떡하지? 한 명만 쓰고 갈 수도 없고.”
“봐. 여기는 오토바이만 주차해 두는 곳이야.”
주리는 말과 동시에 오토바이들 옆의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주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보관대가 있고, 헬멧들이 거기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런데... 남의 물건을 훔쳐서 쓰고 가는 건 아무래도 조...금 양심에 찔리는데...”
세훈이 망설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여기 있는 것들은 확실히 남의 건데...”
“그럼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세훈과 디아나. 잠시 후, 세훈이 입을 연다.
“그러면... 잠시 양해를 구하자고. 나중에 갖다 놓는 걸로 하자. 어때?”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헬멧들이 놓여 있는 보관대로 간다. 그런데, 디아나가 헬멧 몇 개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이거... 못 쓰잖아. 이 헬멧들 가지고는 쓰지를 못해. 주리 거 빼고는 다 얼굴이 보이는 거라고.”
“어... 정말?”
세훈도 보관대 쪽으로 가서 헬멧 몇 개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하... 이거 어떡하지.”

1학년 G반 교실. 비숍은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주차장 쪽.
“안 보인다... 그리고 소식도 없다. 어떻게 된 거지?”
그 말을 하며 비숍은 교실 쪽으로 몸을 돌리려 한다. 바로 그 때, 남학생 다섯 명이 건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 가운데 있는 금발 머리의 남학생은... 다름아닌 미셸이다. 이제 한 명을 데려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 이제 한 명 오는군.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은 안 보이는데...?”
비숍은 생각을 바꿔 당분간은 창밖을 주시하기로 한다.
“디아나 릴리엔탈, 조세훈, 그리고... 공주리.”
그는 세 명의 이름을 되뇌며 말한다.
“너희들도 곧 너희 반 친구들처럼 될 거다.”

그 시간, 교내 지하 통로. 세 사람이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한 사람은 옆에 뭔가를 끼고 걷고 있다.
“이런 데가 있다는 건 몰랐는데. 어떻게 찾은 거야?”
“몰라. 그냥 문 아무거나 열어보니까 있던데.”
세훈과 주리의 목소리다.
“설마 여기까지 찾아오지는 않겠지? 그 쫓아오는 애들은 어디 갔지?”
디아나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모르겠네. 미셸은 무사하려나...”
세 사람은 이윽고 계단에 다다르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신속하게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1층까지 올라가는 데까지 10초 정도. 그렇게 2층, 그리고 1학년 G반이 있는 3층까지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가던 중, 주리가 말을 꺼낸다.
“너희들...”
“왜?”
“얼굴 가릴 거 생각은 해 놨어? 나야 헬멧을 쓰면 되지만, 너희 둘은 어떻게 하려고?”
세훈이 생각해 보니 얼굴을 가리는 일이 가장 급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얼굴을 가릴 만한 물건이 뭐가 있지? 아까 전에 보관대에 있던 헬멧들은 주리 것 말고는 얼굴을 가릴 게 못 되고...
“잠깐. 생각난 게 있어.”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디아나가 말한다.
“우리, 우선 연극부실로 가 보자.”

한편, 비숍은 팔짱을 끼고 조용히 교실 한쪽 벽에 기대서서 아까 보낸 여섯 명 중 다섯 명과 미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따금 눈을 깜박거리거나, 침을 삼킬 뿐이다. 교실 안을 한 번 둘러본다. 모두 조용히 앉거나 교실 벽에 기대서서 비숍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따금씩 그는 클라인이 했던 말들을 되뇌어 본다. 평정심을 유지하라, 내가 그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이미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네 뜻대로 될 것이다. 모든 게 생각대로다. 선배님이 말한 대로다. 그는 G반의 장악이 성공하면 반드시 클라인에게 가서 감사를 드리고 다시 한 번 충성을 다짐하리라 생각한다.
이윽고, 복도 쪽에서 사람 몇 명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비숍은 팔짱을 풀고 교실 앞문 쪽으로 걸어간다. 이윽고 문 앞에 서서는 문 너머를 잠시 본다.
“흠.”
비숍은 이내 확 하고 문을 연다. 문 앞에는 아까 보낸 다섯 명이 서 있고, 그 가운데에 미셸이 둘러싸여 있다.
“미셸 카스티유, 네 다른 친구들은 어디 있지?”
“모른다.”
“정말?”
비숍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묻는다.
“그래... 정말로... 모...”
미셸의 말은 여기서 더 나오지 않는다. 입을 벌린 채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비숍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 그리고 편안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에 압도당한 것이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혀도 깨물어 보고, 눈에 힘을 주기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그대로 미셸의 의식은 몽롱해지고, 이내 정신을 잃고 만다.
비숍이 다시 입을 연다.
“미셸 카스티유.”
“예. 말씀하십시오.”
미셸의 목소리는 매우 딱딱하고, 다른 사람 같다. 아니, 마치 기계로 합성된 목소리같이 들린다.
“네가 우선 할 일은...”
비숍이 미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바로 그 때, 복도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흥, 벌써 왔나...”
비숍은 일단 교실 문에서 조금 떨어져 교탁 쪽으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조용히 3명이 어떻게 올 것인가를 예상해 본다. 교실의 출입문은 2개. 분명히 2개의 문 중 하나로 들어온다. 만약 그의 능력을 어떤 경로로든 알고 있다고 가정하면 얼굴을 뭐로든 가리고 들어올 것이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비숍은 아까의 운동부 다섯 명을 나누어, 세 명은 앞문, 두 명은 뒷문 가까이에 서도록 한다. 다른 G반 학생들 역시 교실 앞쪽에 모여 있도록 한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도 비숍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만약 세 명이 동시에 앞뒤에서 들어오면 어떡하지? 아니, 접근하기도 전에 미리 막아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라면...
쿵!
바로 그 때, 교실 앞문이 세게 열린다. 비숍의 눈앞에는 문을 열고 들어온 두 사람이 보인다. 두 사람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한 사람은 알록달록한 물방울무늬의 가면, 또 한 사람은 흰 바탕에 한쪽에 검은 점을 찍은 가면이다. 그리고 교복을 보아 한 명은 남학생, 또 한 명은 여학생. 비숍은 확신한다. 지금 저 두 사람은, 디아나 릴리엔탈과 공주리 둘 중 한 명과, 조세훈이다! 이렇게 제 발로 와 주다니! 이것이야말로 기회다! 비숍은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얼굴 표정을 바로 한다.
“야, 너!”
남학생의 목소리. 이건 분명, 조세훈이다!

“좋은 말 할 때 우리 반 친구들 원상태로 돌려놔라.”
“훗.”
비숍은 태연하게 음료수의 캔을 따며 비웃음 섞인 웃음을 짓는다.
“혹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신발을 핥는다거나 하면 생각해 볼지도 모르겠는데.”
“너, 지금 장난조로 그러나 본데, 이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야. 확실히 깨닫게 해 주마.”
세훈은 그대로 비숍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10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세훈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끝내야겠다는 일념이 세훈의 마음속을 사로잡고 있다.
비숍은 문 옆의 운동부원 3명에게 눈짓을 한다. 비숍의 신호를 받은 운동부원들이 곧바로 세훈에게 달려들어 세훈의 양팔과 몸통을 우악스럽게 잡는다.
“뭐, 뭐야! 이거... 이거 안 놔?”
“훗, 놔 줄 리가 없지.”
비숍은 세훈을 꽉 잡고 있는 운동부원 옆에 있는 학생들을 보다가 한 사람을 지목하며 말한다.
“미셸 카스티유, 그 가면을 벗겨.”
“이... 이 자시이이익!”
비숍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미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세훈의 얼굴에서 가면을 잡아뗀다. 순식간에 세훈의 맨얼굴이 드러난다. 비숍은 세훈의 눈을 응시하며 입가에 가득 승리의 확신이 담긴 미소를 짓는다. 순간, 세훈의 머릿속 깊은 곳이 짓눌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대로 그의 의식이 점점 어두워지는, 말 그대로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세훈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 본다. 하지만 그것도 헛수고일까. 세훈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이게에에에!”
문 앞에 선 가면 쓴 여학생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음료수를 마시는 비숍을 향해 소리 지른다.
“당장 세훈이를 원래대로 해 놓지 못해?”
“하하하, 어쩌나.”
비숍은 능글거리는 말투로 대답한다.
“그게, 내가 내 능력을 풀고 싶을 때만 푸는 거라서. 그리고 나는 풀어 줄 생각이 없는데.”
말을 마침과 동시에 비숍은 자신을 향해 오는 여학생의 가면에 마시던 음료수를 뿌린다.
“뭐 하는 짓이야!”
“뭐기는. 이제 그만 내 앞에 무릎을 꿇어 주실까?”
“이... 자식이...”
여학생은 다시 한 번 비숍을 향해 달려들려 하지만, 몸이 마비된 듯,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대로 어딘가로 굴러 떨어진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발걸음을 옮겨 보려 하지만, 여학생은 비숍의 바로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비숍은 천천히 여학생의 가면을 벗긴다.
“호... 이게 누구야. 디아나 릴리엔탈이군.”
비숍은 승리의 확신에 가득 찬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알겠어? 가면도 아무 소용없다고. 단지 내 눈을 보는 것만으로, 너희들은 내게 복종하게 돼. 저항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럽지.”
“그래... 네 말대로, 고통스럽겠지. 지금 당장은... 고통스러울지도 몰라.”
들려오는 건 세훈의 목소리다.
“호오?”
비숍은 세훈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아까보다 더욱 비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직도 나한테 마음 속으로 복종하지 않았다 이거지?”
“해... 볼테면... 해... 보든가.”
세훈을 둘러싼 반 친구들은 다 비숍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심지어 미셸도! 세훈은 이 절망스러운 상태에서도 정신을 놓지 않으려, 계속 말을 해서라도 어떻게 해 보려 하지만,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따위 말이라면 말이지.”
비숍은 무릎을 구부리고 세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비웃음을 가득 흘리며, 승리를 확신하며 큰 소리로 말한다.
“몇 번이고 ‘Yes’라고 대답해 줄 수 있다! 네가 나한테 복종하게 될 때까지 말이다!”
비숍의 눈을 보자, 세훈은 다시 한 번 심연을 느낀다. 다시 한 번, 그나마 조금이나마 되찾았던 의식도 점점 그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려 한다. 그걸 잃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디아나를 본다. 디아나는 교실 바닥에 엎드려 있고, 역시 눈의 초점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디아나 역시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디아나의 노력도 역부족이다. 이윽고, 디아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 바닥에 털썩 쓰러진다.
“이제 하나 남았군그래. 자, 공주리.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오면 아주 좋은 광경을 보게 될 거다.”
주리는 아직 무사하구나... 세훈은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세훈 자신과 디아나 또한 당했다는 걸 알릴 방도가 없다. 이 절망적인 상황, 어떡해야...
“호오, 이 눈, 애원하고 있는 건가?”
비숍은 세훈의 앞에 앉아, 세훈의 턱을 손으로 받치고, 한껏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
세훈은 뭔가 말해 보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네 친구, 공주리의 신변이 걱정스러운 건가?”
“......”
이제 비숍은 승리의 확신을 내보이며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뭐 어느 쪽이든 좋아. 하지만 분명한 건, 너희들에게 희망은 없다. 이건 사실이지. 그렇고말고. 흐흐흐흐흐.”
“......”
비숍은 다시 한 번 세훈을 똑바로 보며 말한다.
“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오래 걸렸지만, 이제 됐군. 너도 이제 내 노예가 되는 거다.”
“으... 으...”
세훈은 정신줄을 붙잡아 보지만, 역부족이다.
“참, 빈센트 형님이 너를 두고 말하더군. 반드시 형님 앞에 무릎을 꿇리라고 말이야. 아, 내가 형님의 뜻을 드디어 이루어 드릴 수 있게 됐군!”
세훈의 의식이 완전히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그 순간.
“후... 오느라 고생했네.”
비숍의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비숍은 확신한다. 내 앞에 있는 이 여학생은 디아나 릴리엔탈. 그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 여학생은... 공주리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은 뒤쪽. 그렇다면...
“어떻게 벽을 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이제 끝이다!”
이 말을 하며 비숍은 뒤로 돌아설 준비를 한다.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상관없다. 사람을 조종하려면 그 사람이 눈을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대로 능력을 발동하면 된다! 비숍이 그대로 뒤로 돌아서며 주리에게 자기 능력을 발동하려는 찰나...
뭔가 날아온다! 아뿔싸! 이대로라면 얼굴에 정면으로 맞는다! 비숍은 팔을 올려 얼굴을 막으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주리가 창문에서 자신 쪽으로 뛰어내리며 날아차기를 하고 있다! 주리의 다리가 막 비숍의 얼굴에 닿으려는 그 순간...
턱-
이럴 수가, 선제공격이라니. 비숍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두 손으로 주리의 한쪽 다리를 강하게 잡는다. 주리는 두 팔로 창문틀을 잡고 버틴다.
“이... 이게...”
“그냥은 못 당하지. 내가 이런 것도 예상 안 했을 줄 알고?”
비숍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리의 다리를 더욱 세게 쥐어 잡는다.?
“그렇지, 그렇지! 이제 됐다. 내 능력은 헬멧을 써도 소용없다는 것, 혹시 알고 있나?”
“이걸 놔... 놓지 않으면..”
“오, 왜 그러나? 애원을 다 하고.”
비숍은 승리를 확신하며, 웃음을 띠고 말한다.
“어차피 알려 줄 친구들은 내가 다 무릎을 꿇렸거든. 그러니까, 너도 순순히 내게 무릎을 꿇으란 말이다!”
비숍의 눈이 주리의 눈과 마주친다. 비숍이 막 능력을 발동하려는 그 때.
“내가 놓으라는 말은, 애원이 아닌데.”
“뭐... 뭐라고? 하하하,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이제는 헛소리를 다 하는군?”
“아닌데... 남은 한쪽 다리도 잘 잡았어야지.”
“뭐... 뭐...”
비숍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리의 발차기가 그대로 비숍의 얼굴에 들어간다. 이... 이런!
쿵!
뒤통수를 뭔가 둔탁한 것으로 세게 후려치는 느낌이다. 뭐지? 뭐지? 세훈과 디아나는 분명히 쓰러졌을 텐데... 뭐지... 뭐...지... 비숍은 그렇게 자신의 뒤통수를 가격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만다.
“하아...”
세훈과 디아나는 몸을 비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죽는 줄 알았다.”
세훈이 일어나며 주위를 돌아보니, 친구들이 벽에 기대서거나 바닥에 주저앉아서 머리를 긁거나 머리를 흔들고 있다. 비숍이 쓰러지며 그의 능력이 해제된 것이다. 디아나는 역시 쓰러져 있는 미셸 쪽으로 가서 미셸을 일으킨다. 세훈은 쓰러진 비숍 쪽으로 가서 그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교탁에 머리를 맞은 게 결정타였나 보네.”
세훈은 이렇게 말하며, 조금 전의 충격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듯, 몸을 조금 비틀면서 주리 쪽으로 다가간다. 주리는 방금 헬멧을 막 벗었다. 머리는 조금 헝클어져 있고, 얼굴에는 땀도 흐른다.
“후...”
“야, 창문으로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학교 외벽을 타고 온 거라서 눈에 잘 띄었을 거 아냐.”
“아... 그거? 간단해. 우선 다른 반 교실로 들어가서 양해를 구했지. 그리고 창문 밖으로 나와서...”
“그래서? 벽을 타는데, 안 무서웠어?”
주리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한 번 눈을 딱 감고 벽을 타니까 되긴 되더라.”
“아니... 눈을 감고 했다고? 야!”
세훈은 주리의 태연한 말에 더욱 놀라서 목소리를 높인다.
“너... 우리 구하는 건 둘째 치고 거기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했어!”
“뭐 끝났잖아.”
주리는 몸을 돌려 창밖을 보며 말한다.
“아... 모처럼 맑은 날이네.”
세훈은 주리의 태연한 태도에 할 말을 잃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반이 모두 위험에 빠졌다가 구출되었는데, 저렇게 태연하다니...
“이... 이 녀석은 왜 여기 있지?”
쓰러졌던 운동부원 중 후지타와 블랑코가 비숍이 쓰러진 걸 보더니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이 녀석은 F반의 베리 비숍이잖아...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몰라. 어느 새인가 비숍이 우리 반 교실 안에 들어와 있고, 저 녀석의 눈을 보자 정신을 잃고... 그것밖에 기억 안 나.”
한편 교실 앞 책상에서도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앤드루 카슨도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든다.
“어? 저 녀석... F반의 베리 비숍? 왜 우리 반에 쓰러져 있는 거지? 그건 그렇고... 다들 왜 쓰러져 있는 거야?”
세훈은 교실 한구석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서서 비숍이 자신에게 말한 것을 떠올려 본다. 반드시 클라인 앞에 무릎을 꿇리겠다... 하필이면 왜 나일까? 왜 클라인은 나를 꼭 찍어 말한 것일까?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개학식 날 백화점에서 만난 그것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번의 위기는 넘겼지만, 언제, 누구를 통해, 무슨 수단으로 클라인이 또 나를 공격해 올지 알 수 없다. 나 또한 클라인의 대략적인 능력은 알고는 있지만... 그뿐이다. 아무튼, 클라인은 나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세훈의 머릿속은 온통 시커메진다. 세훈은 머리를 흔든다. 잊자... 잊자. 아니, 잊으면 안 되지. 조금 이따가 생각해 보자.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3 댓글

마드리갈

2019-01-26 17:00:20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은 양날의 검이죠.

자신이 그 능력을 가지게 되면 아주 유리한 입장에 있게 되고, 타인이 보유하면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되죠. 게다가 능력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고,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행위의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니 여러모로 긴장을 안 할 수가 없겠어요. 어떤 사람이 능력을 가질지, 그리고 그 능력에 자신이 영향하에 놓이게 될 지 알 수가 없는 이런 상황이 현실임을 알았을 때에는 정말 불안해서 무엇이 감각기관에 느껴지는지도 모를 듯 할 거예요.


문명이 더욱 고도로 발달한 미래라고 해도 삶 속의 불확정성은 여전하네요.

SiteOwner

2019-01-26 23:38:12

어릴 때 했던 상상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주변에서 저를 우호적으로 보는 시각은 별로 없고, 그저 욕하고 폄하하기 위해서 온갖 간계를 동원하여 광분하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초능력 등이라도 지녀서 그들을 제압해서 비참하게 만들어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자들이 저의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으니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것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하다는 말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시어하트어택

2019-02-17 23:19:11

이제야 답하네요...

저도 예전에 그런 경험이 좀 많았죠. 이 에피소드는 제 과거의 경험과 기억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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