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세계최대의 여객기, 보잉 747의 크기를 뛰어넘는 수퍼점보 등의 수식어와 동반했던 4발 대형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은 2007년 10월 25일 싱가포르항공에서 상업취역한 이래 2019년 1월까지 234대가 구매한
항공사에 인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어버스 A380의 운명은, 세계최대의 A380 운용사인 아랍에미리트의 국영항공사
에미레이트항공이 추가발주를 대거 취소하면서 2021년에 마지막 기체가 출고되는대로 생산라인이 닫힐 것이 선언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에어버스의 프레스릴리즈(영어)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사견으로는 보잉과 에어버스이 시장을 어떻게 보고 판단했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엇갈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거리
민항기 시장에 대해 보잉은 중소규모의 수송량 위주의 장거리 직항노선이 대세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2클래스 기준 300석 내외
규모의 787 드림라이너 및 400석 내외 규모의 777X를 미래의 주력기종으로 밀고 있습니다. 반면에 에어버스는 세계 유수의
항공사들이 항공동맹을 결성하여 공동운항을 실시하는 트렌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높은 수송력에 주안점을 두어 대체로 보잉의
경쟁기종보다 큰 체급의 것을 투입하여 수송단가절감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경영전략의 차이는, 한때는 보잉의 패착으로 보였습니다.
787
드림라이너에서 다발한 온갖 결함문제로 꿈이 아니라 악몽의 여객기인 Nightmareliner라는 조롱을 받는 일도 많았고
그래서 이후에 개발되어 비교적 보수적인 설계인 에어버스 A350XWB로 주문이 옮겨가는 등의 현상도 있었다 보니 에어버스가
반사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2018년말까지의 민항기 출고기록은 보잉이 806대, 에어버스가 800대로 거의 대등한
수준. 이 추세로 가면 보잉이 에어버스에 출고량으로도 다시 따라잡히는 게 아닌가 싶고, 실제로 2003년에서 2011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는 에어버스의 출고량이 매년 보잉의 것을 앞지른데다 2012년 이후 다시 보잉의 출고실적이 앞섰지만 차이가 좁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에어버스의 전략에도 패착이 있긴 합니다.
환승은
직항보다 저렴하지만 환승허브의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기피의 대상이 됩니다. 즉 승객의 수화물의 연계가 제대로 안 되어서
분실된다든지, 허브공항의 관제능력이 낮아서 정시운항률이 낮다든지, 내부 동선, 업무처리 등이 효율적이지 않아서 환승업무에 트러블이
있다든지 하면 선택지에서 빠지게 됩니다. 게다가 대형의 기체일수록 고정적인 수요가 크게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게 무슨 변수로
깨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례로, 만일 통과하는 지역이 분쟁지역이라면.
또 한가지. A380은 범용성이 낮은 기체라는 점.
A380은
원래 개발단계에서 여객기와 화물기가 상정되었습니다. 하지만 화물기 버전은 주문을 받지 못해서 제작도 못 해본 채 없어져
버렸습니다. 보잉 747의 경우 초기형의 개발시기인 1960년대에, 미래의 여객기의 주류는 초음속 여객기가 될 것이고 그 시대가
되면 보잉 747은 주로 화물기로 이용될 것이라는 전제를 이미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체 하부는 항공컨테이너를, 상부는
항공컨테이너나 팔레트 등에 수납된 화물을 적재하는 공간으로서 사용될 것도 전제되었고, 여객기로서는 퇴역한 기종을 화물기로 개조하여
운용하는 사례 또한 많습니다. 그런데 A380의 풀 더블데커 구조는 화물적재에 곤란한 면이 한둘이 아니고 무게중심이 높아져
위험해지는데다 바닥의 강도저하 방지를 위해서 구조보강을 더욱 많이 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잉 747-8F 화물기는
만재적재량 143톤의 화물을 배송하는 데에 181톤의 연료를 쓰고, A380F 화물기는 만재적재량 150톤의 화물을 배송하는 데에
A380-800과 거의 비슷하게 250톤의 연료를 소모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무엇이 유리한지는 굳이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화물기 시장에서는 보잉이 에어버스에
대해 우위에 있습니다.
이것 이외에도 고객사의 편중 또한 문제를 심화시켰습니다.
A380은
항공기 단일시장으로 가장 큰 미국에 단 1대도 판매되지 못했습니다. 이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고객사가 편중된 것도 문제입니다.
배송이 완료된 234대 중 109대가 에미레이트항공 소속이고, 2위인 싱가포르항공의 보유량은 24대. 그래서 에미레이트항공의
의중에 운명이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제작사 에어버스는 새로운 엔진 옵션을 추가한 A380neo, 운용 및 정비비용이 보다 절감된
업그레이드 패키지인 A380plus 등을 제안했지만, 에미레이트항공이 추가발주를 취소하고 A330 등의 다른 기종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제 기대할 만한 것은 업그레이드 패키지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는 보잉은 물론이고 에어버스에서도 4발 대형 여객기의 명맥은 끊기게 됩니다. 이미 에어버스가 A340을
비즈니스기로서의 주문도 더 이상 받지 않다 보니, 앞으로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4발 여객기는 과거의 유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같이 읽어볼만한 포럼 글을 링크해 둡니다.
보잉 747 여객형 시리즈의 생산 종료 (B777-300ER님 작성)
전일본공수(ANA) A380, 4발 여객기의 새출발 (마드리갈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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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마키
2019-02-14 22:17:31
무엇이든 정점에 선 것은 언젠가는 결국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마련이죠.
지금의 항공여객운수가 있게해준 보잉 747도 그렇고 과거의 대서양 정기 횡단 대형 여객선처럼 부의 상징으로 취급되던 4발 대형 여객기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후임들에 자리를 물려주고 황혼기를 덤덤히 맞이하고 있는걸 보자면 세상이 참 많이도 변해간다 싶네요.
SiteOwner
2019-02-16 20:19:27
말씀하신 것처럼 그게 사물의 이치입니다만, A380에게 온 시기는 너무 빠른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역시 현실의 상황은 4발 민항기에는 그리 너그럽지 않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교통수단의 대형화에도 이제 한계가 온 것 같습니다. 폴리포닉 월드에서처럼 불시착에 비협조적인 국가의 존재, 저규격의 활주로의 상황에 신경써야 하는 상황, 항공화물시장의 활황 등의 변수가 나타난다면 모를까, 이 추세로는 한 세대 되면 여객기에서는 4발 민항기가 사라질 게 확정사항같습니다.
세상이 참 빠르게 그리고 많이 변합니다.
이미 미래소년 코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시대배경이 된 해는 아주 오래전에 지나 있었고, 내년이면 2020년입니다. 우주의 원더키디는 등장하지 않겠지만요.
SiteOwner
2020-09-05 21:30:37
[2020년 9월 5일 추가]
에어프랑스가 자사 보유 에어버스 A380을 전량 퇴역시켰습니다.
2020년 8월 18일의 고별비행을 끝으로, 에어프랑스는 11년간의 A380 운용을 마치고 10대를 모두 퇴역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생산국인 프랑스의 플래그캐리어가, A380 생산종료 이전에 이렇게 조기 운용종료를 한 것은 분명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렇게 항공산업의 역사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하의 기사를 참조하셔도 좋습니다.
Elf Jahre nach Erstflug Letzter Flug f?r die erste A380 der Air France
(첫 비행으로부터 11년, 에어프랑스의 첫 A380의 마지막 비행, 2020년 8월 19일 FLUG REVUE, 독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