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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21화 - 점점 짙어지는 불길한 냄새

시어하트어택, 2020-06-17 07:39:53

조회 수
152

어느덧, 면접이 다 끝난 법률사무소 스텔라 사무실. 책상들도 전부 원위치되어 있다. 메이링, 앨런, 자비에는 한 테이블 앞에 모여 있다.
“그래서... 아까 장 박사님이 말씀하셨다는 게 뭐죠?”
아까부터 입이 근질근질했던 자비에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메이링은 홀로그램 모니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아, 이 영상이야.”
메이링은 홀로그램을 켠다. 잠시 후, 홀로그램에 VP재단 수석연구원, 장주원 박사의 얼굴이 나타난다. 흰 머리에 여기저기 주름이 지고 둥그런 안경을 쓴, 전형적인 과학자의 얼굴이다. 방 안이 더운 건지는 몰라도, 장 박사는 이따금 머리를 매만지며 말한다.

[모두 수고들 많네. 다름이 아니라, 재단 바깥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조사원 여러분에게 전할 말이 있네. 최근 미린구 일대에 나타난 ‘후드 쓴 정체불명의 남자’와, 북구에 출몰 중인 ‘불의 고리’ 사건, 그리고 또 세라토시 동남부 일대에 간간이 일어나는 폭발 사건, 그리고 폭증한 미등록 초능력자들, 이 모든 것 때문에 여러분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것, 고맙게 생각하네. 다만 전할 말이 있다면, 당분간은 초능력자 조사 업무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네. 지금 재단 본부에서도 조사중에 있고, 또 이 사건들을 담당할 인원들은 조만간 재단에서 따로 선발할 예정이니, 당부하겠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어요. 장 박사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상 손을 떼라는 말인데!”
장 박사의 영상을 보던 자비에의 목소리가 순간 올라간다.
“변호사님, 뭐라도 좀 말해 봐요!”
“솔직히 나도 그래. 지금 여기서 손을 떼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고 마니까. 하지만 초능력자 조사 업무를 총괄하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존중은 해야지.”
메이링은 팔짱을 끼고서, 약간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한다.
“그런데 레비 박사님은 또 다른 의견이더라. 오히려 조사원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후드 쓴 남자 같은 자들을 쫓아야 하지 않느냐는 거야.”
“저도 그게 더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앨런도 한마디 한다.
“어쩌겠어요, 장 박사님도 지금 많이 힘드실 테죠. 그간 초능력자 관련 업무를 이끄시던 엘더 박사님이 갑자기 실종되고, 또 이런저런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니, 많이 혼란스러우실 거예요.”
그때까지 얼굴이 좀 붉어져 있던 자비에도, 나름 이해했는지, 표정이 많이 누그러져 있다. 하지만 영 떨떠름한 듯, 자꾸 다른 데만 보며 시선을 피하고 있다.
“네 마음 다 알아, 자비에. 많이 혼란스럽다는 거 말이야.”
메이링과 앨런의 말에 자비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떨떠름한 얼굴은 그대로다. 메이링과 앨런은, 그런 자비에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한편, 미린역 남쪽 카페거리 쉼터.?
“외제니는 어디 놔두고 너 혼자만 왔냐니까?”
쉼터 앞에 도착한 조제에게, 세훈이 목소리를 높여 묻자, 조제는 한번 뒤를 돌아보고 말한다.
“아, 나 혼자만 오는 건 아니야.”
“너 혼자만 오는 건 아니라고? 그럼 다른 사람도 온단 말이야?”
“저... 저기, 너희 반에 있잖아.”
조제가 주택가 쪽을 가리킨다. 현애, 세훈, 주리가 모두 조제가 가리킨 쪽을 본다. 누군가가 오고 있다. 붉은색의, 사과머리...
“니라차잖아.”
곧이어, 니라차까지 쉼터에 도착한다. 니라차는 쉼터에 앉아 있는 현애, 세훈, 주리를 보더니, 잠시 발걸음을 주춤하고, 쉼터 안에 들어오기를 꺼리는 듯, 얼굴색이 하얘진다. 하지만 조제가 재촉하자, 이내 쉼터 안에 들어와 앉는다.
조제와 니라차가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하자, 현애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조제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조제가 앞에 온 현애를 보자, 매우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잘못했어, 안 했어?”
“아... 하하하... 그래... 잘못... 했지...”
조제의 뺨에 와닿는다. 초겨울의 한기가. 조제의 목소리는 더욱 어색해진다. 현애는 주위를 휙 둘러보고, 또 자신의 옷이나 신발 등 여기저기를 만져 본다. 잠시 후, 현애는 얼굴을 조금 풀고 말한다.
“그래, 잘못한 걸 아나 보네.”
조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현애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니라차를 한번 돌아본다. 니라차 역시, 머리를 긁으면서, 조제가 지은 것과 같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현애를 본다.
“너도 말이야. 잘못했어, 안 했어?”
“아, 맞아, 맞아! 잘못했어. 정말!”
니라차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현애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현애의 말에 조제와 니라차가 긴장을 완전히 풀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조제! 그 후드 쓴 녀석에 대해서 아는 걸 있는 대로 말해 보라고.”
“그래...”

조제가 그 후드 쓴 남자를 만난 건 저번 주 수요일. 조제와 외제니는 간만에 둘이서 동구 쪽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강변공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잡담을 하며 가던 길에,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앞을 보니...

그 후드 쓴 남자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뭐, 뭐야, 당신!”
조제는 후드 쓴 남자를 보자마자,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나?”
후드 쓴 남자가 입을 열자, 뒷걸음질 치던 조제는 나름 힘을 쥐어짜서 후드 쓴 남자에게 뭐라고 말해 보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으... 으...”
그 순간, 조제는, 입을 틀어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쪽에서 끓어오르던 그의 말은, 혀끝 바로 앞에서 멈춰 버렸다. 외제니 역시 뭐라고 해 보려고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저 친구가 좀 말이 좀 많은 편이더군. 그래서 좀 조용히 하라고 했지. 목숨을 빼앗아가는 건 아니니 걱정 말라고.”
남자치고는 조금은 높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위압적이었고, 한편으로는 아버지 같기까지 했던 그 목소리. 조제는 그 목소리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잘 들어라. 너희는 선택되었다. 내가 주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남자는 대뜸 말했다.
“서... 선물이라니...”
그나마 말은 할 수 있었던 외제니는 덜덜 떨며 말했다.
“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을 거다. 그리고 거절한다면!”
거기서, 그 전까지는 조금이나마 온화했던 색은 싹 사라지고, 남자의 목소리는 완연한 음산함으로 바뀌었다.
“여기 이 말 못 하는 친구 녀석을 당장 숙청해 버릴 것이다.”
순간 침묵의 공포가 들이닥쳤다. 조제가 잠깐 돌아본 외제니의 얼굴은, 공포로 눈동자가 줄어들어 있었고, 입은 벌린 채로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때가 늦은 저녁임에도, 육안으로도 그것이 잘 보일 정도였다.
“자! 그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선물을!”
남자는 꺼냈다.
등 뒤에서, 팔뚝 정도 길이의 소총을.
그리고, 묘하게 생긴 탄을 장전하고는, 쐈다. 조제와 외제니에게.

잠시 후.
“너, 조제 파울루 엔히크스!”
남자가, 대뜸 조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지...”
조제는 순간 남자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남자는 술술 말했다. 조제의 가족관계, 학교, 수상경력 등 많은 정보를. 그것을 듣는 동안에, 공포감, 위압감이 절로 조제에게 밀려 들어왔다. 그걸 다 듣기도 전에, 조제는 남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뭐든지 다 하겠다고 했다. 조제를 따라, 외제니도 남자에게 무릎을 꿇었다.
“선물을 주었으면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해야지. 안 그런가?”
“예... 예!”
“위험인물, 언젠가 너희들과 우리 모두를 해롭게 할 녀석. 누구인지 아나?”
조제와 외제니는 후드 쓴 남자의 말을 숨죽이고 들었다. 맨 처음과는 달리, ‘반드시 이 남자를 따라야겠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찬 확신이 들었다.
“5월 2일에 너희 학교에 온 전학생! 그 녀석이다.”
조제와 외제니는 귀를 의심했다. 얼마 전에 온 G반의 전학생, 남궁현애가 위험인물이라니?
“쉽지는 않을 거다. 그 녀석을 얕보면 안 돼. 벌써 2명이나 실패했으니까.”
알 것 같았다. 그 날 오후에도 슬레인 콘리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꼭 숙청해야만 한다. 반드시 이루어 주길 바란다! 만약에 너희들도 실패한다면,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으니.”
남자가 말을 마치자, 조제는 뭔가를 더 물어 보려,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조제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 남자는 난간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리면서, 남자는 한 마디만 남겼다.
“하하하하하, 내 선물이 유용한 선물이었기를!”
그 말이 들리고 얼마 후...
풍덩-
하는 소리만 났다. 그 뒤로도 약 몇 분간을, 조제와 외제니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있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말없이 헤어졌다.
다음날, 잠자리에서 일어난 조제는, 눈앞에 좀 멀리 보이는 책상 위의 컵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의 손이 몸에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손을 더듬어서 컵을 가져와, 한참을 물도 안 마시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후드 쓴 남자가 마치 신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학교에 와서, 조제는 외제니에게 은근히 물어보았다. 무슨 능력을 얻었냐고, 하지만 외제니는 말이 없었다. 그 주 내내, 외제니는 말수가 없어졌다.

“그 녀석 꽤 악랄하네그래. 꼭 그렇게 공포라는 수단을 써야 했나?”
“그러니까 말이야. 뭔가 숨기는 거라도 있는 건지...”
조제는 아직도 눈동자 한쪽에 두려움을 품고 있다.
“정말 뭐라도 있는 것 같았다니까.”
“하... 너 바보야?”
세훈이 조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그딴 협박에 무릎을 꿇을 정도냐고!”
“야!”
조제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너도 한번 그 상황 되어 보라고! 친구가 목숨에 위협을 받게 되면 안 그럴 거야?”
조제 옆에 앉은 니라차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세훈과 주리도 말이 없다. 하지만 현애는 오히려 벌떡 일어서서 목소리를 높인다.
“야! 거짓 나부랭이에 휘둘려서 남을 해치려 한 녀석이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조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어진다. 니라차는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하지만... 하지만,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 같아.”
“너도 마찬가지야!”
현애의 호통에 니라차는 그냥 말없이 머리만 긁는다.

한편 그 시간.
카페거리 쉼터 먼발치의 뒤에서, 누군가가 쉼터 쪽을 한창 지켜보고 있다. 미린고등학교 여자 교복을 입었고, 스니커즈 신발을 신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그 여학생은 재빨리 자리를 옮기며, 중얼거린다.
“지금까지 무사히 지낸 걸 감사히 여겨라. 내가 네게 제대로 예절을 가르쳐 줄 테니.“
잠시 후, 여학생은 모습을 감춘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0-06-17 22:17:08

석연찮은 이유로 프로젝트의 추진이 중단되는 것은 제3자의 눈에서도 이상하게 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는데다 그 관련자들에게는 정말 허탈할 거예요. UFO 관련 제보 등의 각종 괴현상 같은 오컬트의 영역도 그렇고, 그게 아니더라도 국내외 정치분야에도 분명 진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을텐데 후다닥 봉합되는 사례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봐 와서 묘하게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요.


그 후드 쓴 남자의 어조, 상상되네요.

게다가 숙청이라고 하니까, 더욱 기묘해지네요. "자네를 처리하도록 하지" 라는 대사로 유명한 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의 키라 요시카게 또한 매우 신사적인 태도였지만 실상은 손이 아름다운 여성을 살해하여 손을 차지하고, 그 비밀을 알게 된 얀구 시게키요를 죽이려 드는, 그래서 그게 같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사실 자신의 신상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공포인데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도 피해가 간다고 한다면 굴복하지 않기가 더욱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시어하트어택

2020-06-21 20:42:53

의외로 마드리갈님이 말한 것과 같은 경우가 많지요.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묻혀져 버린 그런 프로젝트들은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안 가죠.


후드 쓴 남자는 최대한 으스스하면서도 신비롭고, 그러면서도 선하지 않은 이미지를 가득 불어넣어 만들어 봤습니다. 사실 정체는 제가 이미 생각해 두었습니다만 이건 스포일러이므로 여기서는 밝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SiteOwner

2020-06-24 23:39:39

오래전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본 공산주의자들이 월북자를 대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아주 기품있고 신사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부지불식간에 돌변해 있습니다. 융숭한 연회장은 어느새 침침한 전등만 켜져 있는 밀실이 되어 있고, 이전에 했던 말과 나중에 한 말이 하나라도 다르면 사정없이 때리고 감전시키고, 그래서 월북자들이 수일 뒤에는 영혼이고 뭐고 없는 산송장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용당하다 버려지지요.


그 후드 쓴 남자가, 딱 이 경우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후드 쓴 남자가 예의 공산주의자, 조종당하는 학생들이 월북자.

시어하트어택

2020-06-28 21:46:51

정말 그럴 법도 하군요. 오너님의 설명을 보니 더욱더 실감이 남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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