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정부과제 심사가 다가와서 그런지 점점 빡세게 굴러가고, 휴가도 쓰면 곤란하다고 눈치주는 걸 반차로 타협(?)하고 쉬었습니다. 참 기분이 묘하더군요. 회사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쉬어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품고 있으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해가 안 된다기보다는 '이런 데이터로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더 드는거죠. 분명 설명을 들으면 괜찮겠다 싶은데 막상 작업으로 돌아가면 납득이 안 되는... 그렇다고 높으신 분과 회의를 하자니 바빠서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고... 일단은 시키는 일은 다 하고 있습니다만,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그에 비해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게임 번역을 마무리지었네요. 이제 개발자한테 넘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 쪽도 내용 전개를 약간 이해하지 못해서 개발자한테 추가자료를 요청했더니 답변이 "보내준 동영상이면 충분하지 않냐. 다른 언어 번역자들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다른 번역자들과 얘기할 때 그들이 영어를 잘 못해 언어장벽 때문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너는 그런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전편도 충분히 잘 번역하지 않았냐. 그런데 '추가자료를 일찍 보냈어야지' 같은 소리나 하는 건 좀 당혹스럽다. 너야말로 다 끝나긴 한 거냐"라고 왔더군요.
뭐 요새 제가 회사 핑계대고 정신상태가 많이 해이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게임이 이해가 잘 되는 편은 아니거든요. 캐릭터 둘셋이 이름도 없이 서서 다짜고짜 대화만 읊어대는데 어쩌라는 건지... 그렇다고 보내준 동영상이 1개도 아니고 여러 개로 쪼개서 보내준데다, 이상한 데에서 끊어지다 보니 다음에 무슨 대화가 오는지 일일이 찾아야 됩니다. 그나마 추가자료(엑셀)에 '이 다음에 무슨 동영상이 이어짐'이라고 적혀 있어서 바로 알 수 있었지만요. 어차피 작업은 끝났으니 더 왈가왈부할 것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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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길게는 3월, 짧게는 6월 중~하순에서 지금까지 농담 안하고 일에 치이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글을 쓰든가 그림이라도 그려야겠다 했는데 어버버버 하는 사이에 벌써 반 년이 지났네요. 지난 달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초조함은 느껴지는데 정작 뭘 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황. 뭐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렇게 열심히(?) 살면 어른답지 않을까 합니다만, 뭔가 저답지 않다(??????)는 게 있어서요. 저다운 게 뭐냐고 물으시면 저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만, 일단 지금은 확실히 뭔가 괴리가 있어요. 반차를 내고 폐인(!) 생활을 좀 하고 나서야 뭔가 제정신이 돌아온 느낌. 이런 걸 보면 제 본질은 구제불능의 니트족일지도.
뭐 아무튼 밀린 번역도 끝났겠다 뭔가 창작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내일부터 또 회사에서 갈려나갈 걸 생각하니 또 막막해지네요. 생계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만요. 사실 글이니 그림이니 해도 어차피 프로도 아니니까 대충 휘갈겨서 올리면 그만인데, 뭐 얼마나 엄청난 걸 만들겠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원... 그 와중에 창작용 노트까지 회사에 두고 왔네요. 뭐 그림이야 어디에 그리든 상관은 없지만요.
그래서 무엇을 그려야 하나,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이네요. 문자 그대로 손 가는 대로 하고 싶은데, 사소한 결정 하나조차 내리지 못하니 원...진짜 퀄리티 포기하고 뭐라도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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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0-07-07 13:34:07
오랜만에 포럼에 잘 오셨어요.
그리고, 바쁘신 한가운데에서도 이렇게 근황을 남겨 주신 점에 깊이 감사드려요.
장고 끝의 악수도 많이 있는 한편으로, 우연의 산물이나 직관 등이 좋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어요. 세계 각지에서 사랑받는 파운드케익이라든지, 물에 뜨는 아이보리 비누같은 것도 그런 것이죠. 각종 창작물 컨텐츠 또한 다를 것은 없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일단 시도해 보기로 하신 것 자체가 아주 좋은 결정이라고 믿고 있어요.
Lester
2020-07-16 02:44:48
그래서 그 때 한 컷을 올리긴 했습니다만, 생각한 만큼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요. 원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인데 너무 의미를 부여하나 봅니다.
SiteOwner
2020-07-11 14:33:21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하루는 길고 일년은 짧다는 역설이 그대로 통하는 것같기도 하고, 특히 올해는 그런 감이 강해서 코로나19 사태로 벌써 상반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지나버렸고 이미 하반기에 접어들어 2주째이기도 하다 보니 정신없이 살았다는 것을 이제 다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아트홀에 소개해 주신 그림, 잘 감상했습니다.
일단 무엇인가 해 보는 게 확실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크든 작든...
Lester
2020-07-16 02:46:11
나이를 먹어갈수록 정신없이 살게 되다보니 세월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는 게 느껴지긴 합니다. '별로 한 게 없기에' 더더욱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고 막막해지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