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20년도 드디어 끝을 고했군요. 솔직히 저 자신에게도, 사회적으로도 그리 긍정적인 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021년은 좀 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 아트홀에서 쓰고 있는 “시프터즈”의 연재 주기가 줄어든 이유는 사실 다른 작품을 쓰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프터즈"는 제가 세운 기준으로 일종의 실패작이거든요. 그런데 그쪽 진행은 잘 되질 않는군요. “시프터즈”가 제 취향을 담아서 쓴 거라면, 다른 건 그냥 흔한 내용으로 써볼까 하는데 잘 되질 않아서 고민입니다.
3. 기왕 시프터즈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시프터즈의 주요 등장 인물의 이름은 전부 패러디입니다. 대충 이런 식이에요.
그레고르-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에스텔-에우슈리의 에로게 "히메가리 던전 마이스터"의 히로인 에스텔.
오드리-영화 "흡혈식물 대소동"에 등장하는 흡혈식물.
그리고 특히 4대 가문은 공포 영화 살인마들에서 따왔습니다..
소여 가문: 공포 영화 "텍사스 전기톱 학살"의 살인마 가문 소여 가.
보어헤스 가문: 공포 영화 "13일의 금요일"의 살인마 제이슨 부히스의 성 "부히스"를 살짝 틀어서 사용.
크루거 가문: 공포 영화 "나이트메어" 시리즈의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
마이어스 가문: 공포 영화 "할로윈" 시리즈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
그 외에도 많은 패러디들이 있습니다.
4. 실패작 때문에 다른 글을 쓴다고 하다보니 최근 애니메이션인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가 생각났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 라이트노벨이 꽤 기묘한 뒷배경이 있거든요.
해당 작품의 작가는 사실 이전 작품을 5화 만에 연중당했습니다. 인기가 없었거든요. 충격을 받은 작가는 머리를 식힐 겸 "그냥 뻔한 클리셰로 대충 써볼까?" 라고 생각해서 글을 씁니다. 그게 바로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입니다.
이러다보니 작중 설정은 정말 대충한 것에 가깝고, 내용도 편의주의적인데다가 클리셰 범벅입니다. 그런데 이게 역으로 적용합니다. 이걸 읽은 독자들이 "부담없이 편하게 읽기 좋다"라고 생각하고 호평했거든요. 그 때문에 작품은 대박이 나고, 애니화까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작가 역시 당황했다고 하더군요. 세상 일이라는 건 참 알 수 업습니다.
5. 애니메이션 하니 생각나는 건데 오랜만에 애니메이션 하나를 정주행했습니다.
해당 애니메이션은 바로 “켄간 아슈라”.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되는 애니메이션으로 현재 파트 2(총 24화)까지 볼 수 있습니다.
아래의 영상은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입니다.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키” 같은 일종의 초인 격투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법이나 기 같은 오컬트적인 설정은 없지만, 비현실성이 강한 격투기라고 할까요? 다만 “바키”의 경우 기술보다는 신체 능력이 더 중요시된다면, “켄간 아슈라”는 기술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기에 특유의 기괴한 그림체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바키”와는 달리 캐릭터들이 미형인 편이기도 하고요.
여담인데 이 “켄간 아슈라”는 같은 작가의 작품인 “덤벨 몇 킬로까지 들 수 있어?”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예를 들어, “덤벨 몇 킬로까지 들 수 있어?” 의 등장 캐릭터인 쿠레 야크샤는, “켄간 아슈라”에 등장하는 암살자 가문인 쿠레 일족의 일원입니다. 덤으로 쿠레 야크샤의 딸인 쿠레 카루라(예고편에서 후드를 쓰고 웃는 캐릭터)가 “켄간 아슈라”에 히로인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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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SiteOwner
2021-01-01 14:27:45
안녕하십니까, Papillon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 또한 2021년 한해가 작년의 불행을 극복하고 좋은 일이 이어지는 한해이기를 기원합니다.
물에 뜨는 아이보리 비누라든지, 3M의 포스트잇 같은 유용하고 혁신적인 발명품이 실패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재소설 시프터즈 또한 그렇게 의외로 성공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재미있게 읽고 있는 저로서는, Papillon님의 소설이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취향을 담아서 자유로이 쓰셨으면 합니다.
꽤 막나가는 부분도 있지만, 히라사카 요미의 라이트노벨 "여동생만 있으면 돼." 의 하시마 이츠키와 후와 하루토의 경우를 대비해 보면 적절한 솔루션이 도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시마 이츠키처럼 여동생모에라는 일관성도 중요하고, 후와 하루토처럼 시장의 상황을 노려치는 트렌드추종도 중요합니다. 그 둘이 너무 양극단으로 가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긴 합니다만...
역시 그러셨군요. 이골로냑, 이드라 등은 크툴루 신화에서, 그리고 주인공 그레고르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에서...히로인 이름인 에스텔이 특히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아픈 건 싫으니까 방어력에 올인하려고 합니다." 의 경우는 정말 기묘한데, 사실 클리셰라는 게 대중적으로 선호되는 게 많다 보니 그냥 막 생기는 것은 아닌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됩니다. 간혹 클리셰를 파괴하는 것도 재미있긴 한데, 이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역효과가 나서 대중적인 인기가 확 떨어진다든지 설령 인기가 있다 하더라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레벨에는 도달하지 못할 위험이 커집니다. "마왕님, 리트라이!" 라든지, "신중용사"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켄간 아슈라" 가 그 화제의 "덤벨 몇 키로까지 들 수 있어?" 의 작가의 작품이자 세계관을 공유하기까지 하는군요. 이것도 재미있습니다. 트레일러를 보니 오노 다이스케의 목소리가 들리다 보니 죠죠의 기묘한 모험 3부의 주인공 쿠죠 죠타로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특이한 작품소개에 감사드립니다.
Papillon
2021-01-04 12:24:29
일단 힘을 내야겠지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겠습니다.
에스텔 자체가 사실 여기사라는 점에서 패러디한 캐릭터와 가장 닮은 캐릭터이기도 하지요. 다만 운명만큼은 다르게 틀어보려고 합니다. 히메가리 던전 마이스터에서 에스텔은 대부분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거든요. 해당 게임은 플레이어의 선택지에 따라 주인공의 질서/혼돈 레벨이 달라지는데 에스텔 엔딩을 보기 위한 조건은 "극도로 혼돈에 치우칠 것"인지라…….클리셰 비틀기는 단편으로는 재미있지만 장편으로 가면 오히려 소재 고갈로 고생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대부분은 결국 클리셰로 회귀하거나(고블린 슬레이어) 이야기를 억지로 이어가는 꼴이 됩니다. 그렇기에 클리셰대로만 만드는 것이 오히려 좋은 방법일 수 있지요.
그 덕에 덤벨 몇 키로까지 들 수 있어?에 나오는 개그성 연출이 사실 개그가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죠. 켄간 아슈라랑 같은 세계관이라면 딱히 이상할 것이 없기도 하고요.
마드리갈
2021-01-03 20:42:50
안녕하세요, 빠삐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2020년도 이미 과거가 되었고, 이제 2021년의 첫 주말이 끝나가고 있어요. 내일부터는 바쁜 일상으로 다시 달려나가야겠죠. 건강에 특히 유의하시길 당부드릴께요.
시프터즈의 캐릭터들은 이름도 참 잘 지어진 것 같고, 게다가 읽으면서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이 잘 어울려서 감탄하고 있어요. 이렇게 이름의 기원을 듣는 것도 참 귀중한 기회예요. 오빠가 언급한 것처럼 실패에서 탄생한 혁신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좀 더 자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제안한 제목을 채택해 주신 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소재가 독특한데 의외로 상당히 몰입해서 감상가능한 창작물도 있죠. 그리고 그런 것들이 소재는 독특하지만 보편적인 정서 등에 호소하는 것이 많다 보니 인기를 끄는. 이를테면, 1년 늦게 고교에 입학한 이치노세 하나가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인 슬로우 스타트, 패션디자이너를 꿈꾸지만 가난한 환경에 허덕이는 남자아이와 패션모델이 되고 싶어하지만 작은 키로 인해 번번히 가로막히는 여자아이가 한 학교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런웨이에서 웃어줘, 일본의 전통현악기 코토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학생들이 엮이면서 전국대회를 꿈꾸게 되는 이 소리에 모여 같은 작품. 역시 독창성과 보편성을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는지가 창작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켄간 아슈라는 저도 알고 있어요.
처음에는, 덤벨 몇 키로까지 들 수 있어와 너무나도 이질적인 분위기라서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도 몰랐는데 알고 나서 놀랐어요. 같은 작가가 저렇게 다른 스타일로 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참 대단하다고 할까, 그러해요.
그러고 보니, 그리자이아의 과실/미궁/낙원 애니의 감독 텐쇼(天衝, 본명 타나카 모토키(田中基樹), 1976년생)는 금빛 모자이크의 감독으로도 활동했어요. 특히, 같은 해인 2015년에는 그리자이아의 미궁/낙원과 헬로! 금빛 모자이크 애니를 동시에 만들고 있었는데, 작품의 기원도 화풍도 주된 소재도 분위기도 정반대인 것을 한 감독이 지휘중이었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었어요. 그 충격을 덤벨 몇 키로까지 들 수 있어와 켄간 아슈라에서도 동시에 느끼고 있어요.
Papillon
2021-01-04 12:30:48
마드리갈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가끔 이 두 작품의 작가나 제작자가 같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작품들이 있지요. 영화 쪽에서는 매드 맥스 시리즈의 감독인 조지 밀러 옹의 경우, 꼬마 돼지 베이브의 감독이기도 합니다. 좀 나쁜 의미의 경우,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면모가 있던 "낙제기사 영웅담"과 극도의 극우 이세계물인 "초인 고교생들은 이세계에서도 살아가나 봅니다!"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켄간 아슈라와 덤벨 몇 키로까지 들 수 있어의 경우 원작자의 운동 경험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해당 작가는 격투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데, 격투기에 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수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한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