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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석 안으로 들어온 현애와 세훈을 보자, 미켈을 뺀 나머지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은 궁금증이 들었는지, 현애와 세훈을 잠시 보더니, 옆에 선 미켈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묻는다.
“어?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어디서 온 거지?”
“그러게.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내가 자리 7개를 마련해 놓은 거잖아?”
“아, 그래서 이 예약석을 예약한 거야?”
붉은 머리의 여자가 김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또, 가브리엘하고 또 누가 오나 했지. 우리 크루는 가브리엘 빼면 다섯 명이잖아?”
“뭐, 그래도 덕분에 헷갈릴 필요는 없어졌네.”
반삭 머리의 남자가 실실 웃으며 말한다.
“가브리엘까지 왔으면, 미켈 너하고 헷갈려서 거꾸로 부르고 했을 테니까!”
“뭐, 가브리엘은 항상 바쁘지. 연락이 안 될 때가 많아서, 내 쌍둥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나하고 가브리엘이 똑같이 닮았나 신기할 때가 많다고.”
미켈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자, 이제 손님들 좀 보고. 우리 크루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우리하고 엮이게 됐잖아?”
“그래?”
피부가 흐물흐물해 보이는, 연두색 머리의 여자가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이 사람들이 왜 우리하고 엮였다는 거지? 그냥 우리 고객들 아니야?”
미켈은 바로 현애를 가리킨다.
“사실은 이 사람이... 콘라트를 쓰러뜨렸거든!”
“뭐, 정말?”
다들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반삭 머리의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내가 콘라트 녀석의 숨을 끊을 때, 완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그런 이미지는 아닌데.”
반삭 머리의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애는 살짝 능력을 발동한다. 오른손 손가락 끝에 피어나는 얼음송이들을 보자...
“아, 알았어! 저걸로 쓰러뜨렸군!”
반삭 머리의 남자뿐만 아니라 다른 크루들도 현애를 한번씩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사람이 콘라트를 쓰러뜨렸다고?”
“맞아요. 다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현애가 처음 입을 연다.
“원래는 저도 여기 여행을 온 건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엮여 버렸죠.”
“이거 놀라운데... 다시 보니까 더 놀랍군.”
반삭 머리의 남자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자, 그럼 소개할까? 나부터?”
반삭 머리의 남자는 실실 웃으며, 미켈과 다른 크루들, 그리고 현애와 세훈을 번갈아 본다.
“잠깐, 내가 다 할게. 너희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일어서지 못해 안달인 반삭 머리의 남자를 제지하고서, 미켈이 바로 그 반삭 머리의 남자 옆으로 간다.
“자! 그럼 소개하지. 여기 좀 재미있어 보이는 친구의 이름은 ‘자라 아티크’라고 해. 채굴업 에이전시를 하고 있고, 관광객들하고는 접점이 거의 없는 크루야.”
“에이, 미켈! 내가 무슨 접점이 없어.”
자라는 실실대면서도 목에 힘을 준다.
“나도 내 일 하면서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난다고. 그렇지?”
크루들의 반은 고개를 끄덕이고, 반은 가만히 있다.
“하, 그래... 내가 멍청한 사람이지 뭐.”
머리를 긁는 자라를 놔두고, 미켈은 옆에 있는 꽁지머리의 이레시아인 옆으로 간다.
“여기 이레시아인 친구의 이름은 ‘바리오 카로노’, 하는 건 많지만, 말하자면... 우리 크루에서 힘쓰는 것 담당이지.”
“힘쓰는 일? 아니, 내가 무슨 힘을 써? 기껏해야 사람들 모으는 것뿐인데...”
미켈은 그냥 대충 웃어넘기지만, 현애와 세훈은 바리오를 자꾸만 곁눈질한다.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이레시아인이라는 게. 모든 이레시아인이 친척이나 친구 관계가 아니라는 건, 둘도 잘 아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한 번씩 더 곁눈질해서 보게 된다.
“하하하, 좋아, 좋아. 다음은...”
다음으로 미켈은 금발 여자의 옆으로 간다. 머리를 손질하던 그녀는 미켈이 옆에 오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아... 내가... 내가 소개해야 하나?”
“아니, 안 그래도 돼. 내가 할 거니까.”
미켈은 뻘쭘하게 서 있는 금발 여자를 앉히고는 자신이 계속 소개한다.
“아, 이 친구는 ‘비앙카 블랑샤르’라고 해. 원래 테르미니에 사는 사람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눌러앉게 됐지. 이 친구도 유적 발굴업 쪽이라서 웬만한 관광객들은 만날 일이 적을 거야.”
“아니, 미켈? 누가 만날 일이 적대?”
비앙카가 바로 대꾸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일감이 없어서 나도 너처럼 가이드 했잖아!”
“아, 참, 참. 그랬지. 미안.”
마지막으로 미켈이 향한 쪽은 연두색 머리의 약간 커 보이는 눈동자를 한 여자. 바리오라는 이레시아인과 마찬가지로, 연두색 머리의 여자도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외계인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 마지막으로. 여기는 ‘도레이 올타가’야. 옥타콘인이라서 좀 연체생물처럼 보일 수 있어.”
“미켈! 그런 말은 안 해도 되는데.”
도레이라고 불린 여자가 핀잔준다.
“내가 무슨 처음 보는 괴물도 아니고.”
“아, 하하하! 알지, 아는데, 여기 손님들은 혹시 모를 수 있으니까.”
“그래, 말 좀 조심하고. 고객들 앞에서 말실수하면 안되지.”
도레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하다.
“자, 이제 여기 온 손님들이 소개를 해 줘야겠지?”
“그렇겠...죠?”
세훈이 얼버무리면서 막 이야기를 꺼내 보려는 찰나, 로봇이 식사를 가지고 온다. 테이블 하나를 통째로 가져온 저녁 식사에는 파에야, 샐러드 등이 차려져 있다.
“자, 자, 자! 일단은 먹으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자고.”
“그래, 그래! 일단 먹자.”
미켈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은 모두 식사를 시작한다. 미켈이 먼저 한 입 먹은 다음, 얼굴에 웃음기를 없애고 입을 연다.
“스코프 녀석들, 끝까지 우리를 노릴 모양인데.”
“그래... 그렇겠지, 뭐.”
다들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런 녀석들, 한두 번 봐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를 노릴 수 있는 녀석들은 세 명 남았어.”
“세 명? 두 명이 아니고?”
미켈의 말에 자라가 반문하자, 크루들이 틀린 걸 정정하려는 듯, 미켈은 목에 힘을 준다.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총 세 명이야. 스코프 컴퍼니에 속한 게 총 여섯 명이고, 오늘 세 명이나 쓰러뜨렸으니까, 리카이린, 페넬로페 콘토스, 그리고... 이름 모를 이레시아인 하나. 우리가 파악한 정보로는 그렇게 있잖아?”
“아, 그거?”
비앙카가 웃음을 가득 띤 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걱정 마. 이제는 두 명이거든.”
“뭐, 두 명? 어째서?”
미켈이 반문하자마자, 크루들 역시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일제히 비앙카에게 시선을 돌린다. 왜 두 명인지 궁금했는지, 미켈이 비앙카에게 눈길을 주자, 비앙카는 방 한쪽 구석에 있는 자물쇠가 걸린 상자를 가리킨다.
“사실... 나하고 자라가 카이린 녀석을 여기에 잡아 뒀거든.”
“저, 저, 저, 정말?”
다른 크루들이 화들짝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 지를 뻔했다. 현애와 세훈 역시 온몸이 떨릴 정도로.
상자 안에는, 한 남자가 갇혀 있다. 두 눈은 안대로 가렸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비좁은 상자 안에 겨우 들어간 그는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낑낑대고 있지만, 그의 뜻대로 잘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독 안에 갇힌 생쥐 꼴이 된 것이다.
“확실해...”
미켈은 남자의 푸른 조끼를 보고 확신한다.
“이 녀석은 카이린이 맞아! 그건 그렇고 어떻게 된 건데? 어떻게 된 거야?”
“그 멍청한 카이린이 우리 사무실로 몰래 망을 보러 왔더라. 그래서 얼른 잡아다가 여기 가둬 놨어. 자기 능력 같은 걸 쓸 새도 없이, 여기 그대로 갇혀 버렸지! 멍청한 녀석 같으니!”
“후, 다행이네.”
미켈이 한도의 한숨을 내쉰다.
“스코프 녀석들 중에는 이 녀석이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운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지. 그런 녀석치고는 너무 싱거웠고.”
“저, 그런데 파울리 씨.”
미켈의 옆에서 세훈이 조그맣게 말한다.
“이 사람, 도대체 누구죠? 그리고, 스코프라니요? 스코프는 또 뭐예요?”
“아, 그건 나중에 좀 천천히 설명해 주죠.”
“그 녀석들, 뭐 하는 녀석들인지는 대체 모르겠지만...”
현애가 입이 근질거리는 듯 말한다. 순간 옆에 앉은 세훈에게 닿는다. 현애가 자기도 모르게 발산하는, 미세한 냉기 말이다.
“어젯밤에는 그 콘라트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 대뜸 나를 보더니 시비를 걸지 않나, 오늘은 또 다들 나보고 여기 미켈의 동업자라고 하지를 않나... 아주 가지가지 하잖아!”
“하, 하하하, 미안...”
비앙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최근 우리 업계 상황이 좀 말이 아니라서... 그건 사과하도록 할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 같이 보여도, 요즘 업계는 전쟁터라니까?”
“그래. 오늘은 진짜 몸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자라가 몸을 떨며 말한다.
“미켈 네 말 들으니까, 스코프 녀석들, 진짜 필사적이더라. 아무래도 가장 큰 건 그 태양석 채굴권이겠지만. 콘라트가 도대체 얼마나 해 먹었으면 그래?”
“그러게. 스코프만 우리를 노리는 건 아니겠지만.”
바리오도 꽤 심각한 얼굴이다.
“내가 관리하는 업체 중 하나에도 협박장이 들어왔어. 콘라트가 훔쳐간 걸 당장 토해내지 않으면 우리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이야.”
“하라지. 우리는 각오한 거니까.”
미켈이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애초에 바리오 너도 거기에 동의한 거잖아?”
“그래... 나도 각오는 했지만, 실제로 협박을 당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자! 얼른 밥이나 먹자고.”
도레이의 말에 따라 다들 다시 수저를 들고 식사를 계속한다.
어느덧 식사를 다 마치고, 현애, 세훈과 테르미니 퍼스트 일행은 레스토랑을 나선다.
“그럼 잘 가요! 미켈 씨는 이따가 또 보고.”
“저희는 또 일행하고 어디 갈 데가 있어서...”
“그래! 또 볼 기회가 있겠지.”
도레이가 앞장서서 인사하자 옆에서 자라가 쿡쿡 찌른다.
“아니, 왜?”
“우리는 관광객들이 볼 일이 없어야 한다고!”
“아... 아니, 그래도... 어쩌다 보면 또 만날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바로 그 시간.
“저 녀석들 분명...”
“파울리 녀석하고 그 패거리들이군.”
먼발치에서 이레시아인 남자와 단발머리의 금발 여자가 연인인 척 앉아서 레스토랑 쪽을 엿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일곱 명인가, 모두?”
“하나, 둘, 셋, 넷... 맞아, 일곱 명!”
“젠장, 카이린이 그래서 졌던 건가? 여럿이서 상대하면 당해낼 리가 없잖아!”
이레시아인 남자는 대놓고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그저 주먹을 꽉 쥐고 일행을 바라본다.
“이제 뭔가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어!”
“특단의 대책? 좋아. 어떻게 하게?”
단발머리 여자도 이레시아인 남자 못지않게 굳어진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지 파울리에게서 우리 몫을 되찾을 수 있겠냐고?”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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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eOwner
2021-05-24 18:50:40
사람의 진면목은 역시 겉보기만으로는 알 수 없지요. 그 악명높은 콘라트를 쓰러트린 사람이 엄청난 인물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10대 후반의 소녀라면 정말 의외일 것입니다. 그러니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이 놀랄만도 하겠습니다. 이해합니다.
설정에서 소개해 주신 옥타콘이 이제 등장하는군요([종족] 옥타콘 바로가기). 역시 인상이 이색적입니다. 그런데 도레이라는 이름은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요? 노예의 일본어인 도레이가 떠올라서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살짝 들었습니다.
적은 의외로 가까이 있군요. 정말 방심할 수 없어 보입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5-30 20:08:03
뭐... 예를 들자면, (겉으로만 보면) 동네 조기축구회가 K리그1 축구팀을 이긴 정도의 충격이었겠죠. 예시가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도레이라는 이름은 영어 dry에서 유래했습니다.
마드리갈
2021-05-27 18:28:03
미켈은 거명된 가브리엘과 같이 쌍둥이형제군요.
이름에서 생각난 건데, 혹시 세쌍둥이라면 나머지 한 사람은 라파엘인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은 일단 전원 초능력자라고는 해도, 타인에게 의외의 요소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쉽게 예측하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문제는 신원이 아직 정확하게 파악안된 이레시아인의 존재군요. 스코프 산하에 이레시아인이 있는 게 특이하지만, 지구인도 악역이 있는데 이레시아인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납득은 되고 있어요.시어하트어택
2021-05-30 20:12:20
마드리갈님이 말해주신 건 잘 짚은 것 같습니다. 쌍둥이 형제의 이름은 의도하고 지은 것이거든요.
작중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지만, 아직은 3부가 진행이 많이 안 된 관계로 기다려 봐야 나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