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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근처의 번화가 마운틴 로드.
“어이, 에시모!”
금발의 단발머리의 여자가 옆에 있는 꽁지머리를 한 이레시아인을 보고 쿡쿡 찔러대며 말한다.
“대책이 있으면 좀 이야기나 해 봐. 얼버무리지만 말고!”
“우리도 똑같이 해 주는 거야.”
“뭘 똑같이 하는데?”
“카이린은 혼자서 녀석들을 상대하려다가 저렇게 되어 버린 거 아니야! 아무리 자기 능력을 믿었다지만, 너무 무모한 짓을 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일단은 쪽수를 좀 많아 보이게 하자 이거야.”
“그래서, 뭘 어떻게 하게? 내가 아는 인력업체에 연락해서 용병들이라도 고용해?”
“용병?”
에시모라고 불린 남자가 금발머리 여자의 말에 잠깐 머리를 굴리는 듯하더니, 잠시 후 손뼉을 친다.
“그래, 그거야! 그거야, 페넬로페.”
“뭔데?”
“잘 들어 보라고.”
에시모는 페넬로페라고 불린 여자의 귀에 뭔가 속삭이기 시작한다.
약 30분 후, 테르미니 호안의 쇼핑몰 ‘레이크 원’. 통유리로 이루어진 호수 쪽의 벽면은 아직 완전히 지지 않은 햇빛이 비쳐 붉게 빛나고, 마주보고 있는 호수 사원 역시 저녁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난다. 식사나 쇼핑을 하러 온 것이 아닌, 오로지 그 광경을 보기 위해 쇼핑몰에 온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현애와 세훈은 6층의 스카이라운지로 향한다.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5층이다. 막 6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6층이 다 보이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를 다 올라가니, 6층 스카이라운지가 확 눈에 들어온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 통유리 너머의 호수와 호수 사원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얼핏 보면 공중정원인지, 콘서트장이나 파티에 온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신전 같은 데에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시끌벅적한 한가운데서...
“야! 여기야, 여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두 사람은 얼른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간다. 통유리 창이 가까운 곳에 있는 기다란 테이블 앞에 일행이 둘러앉아 있다. 시선은 다들 통유리 창 쪽을 향하고 있다.
“왜 이제 와!”
조제가 두 사람을 보고 마치 핀잔이라도 주듯 손짓한다.
“기다렸잖아. 자리 잡아 놨으니까, 와서 앉아.”
외제니는 의자까지 빼 주며 앉으라고 한다.
“그래도 다들 늦지 않게 왔네. 이제 5분 있으면 시작하거든.”
“어? 뭐가?”
“여기 사원하고 호수에 조명이 볼 만하거든!”
“아... 그랬었나?”
“궁금하면 안내책자 한번 봐.”
“어, 너희들 마침 잘 왔구나.”
니라차의 부모님도 현애와 세훈을 돌아본다.
“안 그래도 파울리 씨가 좀 늦는다고, 한 지금쯤 올 거라고 했는데, 너희들 혹시 봤니?”
“어... 저희요?”
세훈이 대답한다.
“글쎄요... 여기 오면서 파울리 씨를 딱히 봤다거나 그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세훈이 막 얼버무리려 하는 그때...
“다들 기다리셨죠?”
미켈... 미켈의 목소리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일행이 일제히 뒤쪽을 돌아보니, 미켈이 손을 흔들며 서 있다.
“오늘은 어디 한눈팔지도 않고 잘 왔습니다. 걱정 마세요.”
“에이, 파울리 씨가 더 걱정하시겠죠. 파울리 씨에게는 이런 게 일일 테니까요.”
찻차이의 말에도 미켈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는다.
“자,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저녁 시간의 메인 이벤트, ‘레이크 원 레이크 쇼’가 시작됩니다. 일몰 시간에 맞춰 시작되는 이 이벤트는, 화려한 조명이 볼 만하죠!”
그러고 보니, 스카이라운지 안에 있는 사람들 중 통유리 창 쪽을 향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미 일행이 앉은 테이블 뒤쪽에 마련된 관람칸은 사람들로 꽉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이 유리창 너머와 시계를 번갈아 본다.
그리고...
“우와!”
통유리 창 너머를 내다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호수 수면이 마치 금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이 황금색으로 바뀐다. 사원이 보이는 호수 상공에는 드론들이 하나둘씩 떠서 마치 사원 주변에 별이 가득 떠 있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이야, 저것 봐, 저것 봐!”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세훈도,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옆에 앉은 현애를 쿡쿡 찌른다. 얼핏 세훈이 보기에, 현애는 턱을 오른손에 괴고 딴 데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좀 딴 데 좀 신경팔지 말고, 저거나 봐!”
“아, 왜 그래. 보고 있는데 네가 더 신경쓰게 만들어.”
그 광경을 일행의 뒤에서 서서 지켜보는 미켈 역시, 설명하려는 것조차 잠시 잊어버린 채, 막 드론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움직임에 빠져들려는데...
♩♪♬♩♪♬♩♪♬
전화 벨소리다. 미켈의 주머니 속에서 울린다. 크지는 않지만, 귀를 쿡쿡 찌를 듯한 소리라서 흥을 깨 버릴 수 있다. 얼른 전화를 받는다.
“어... 여보세요?”
미켈의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바리오, 전화는 왜 걸었어?”
“미켈, 조금 전에 공격을 받았는데...”
“고... 공격?”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바리오의 말투가 이상하다. 공격을 받은 사람의 말투치고는 너무 느긋하고 여유가 넘친다.
“맞아. 스코프 녀석들 말이야.”
“그런데 말투가 왜 그래? 공격받은 사람 말투가 아닌데.”
“아, 상황은 금방 종료됐거든.”
“아니, 뭘 했기에 상황이 금방 종료되었다는 거야?”
“녀석들, 뇌가 있기는 한 건가? 그냥 쪽수만 많게 보여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했나 봐.”
“하, 하하, 그래? 녀석들, 도레이한테 된통 당했겠는데.”
전화 너머의 바리오도 미켈이 그렇게 말하자 잠시 소리내어 웃는다.
“하, 하하하! 그러니까 스코프 녀석들은 무슨 수를 써도 우리한테 절대 못 이긴다는 거야. 급하게 용병을 쓴다고 썼는데, 벌레들한테 당할 줄 상상이라도 했겠어?”
“잠깐, 벌레?”
미켈은 잠깐 말을 멈추고 가만히 드론 쇼를 보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지, 참. 맞다.”
“긴장을 늦추지 마. 스코프 녀석들, 다음에는 너를 습격할 수도 있어.”
“하라지. 나는 준비가 되어 있어.”
미켈은 신경 안 쓴다는 듯한 목소리다.
“그리고 너도 각오한 거잖아. 애초에 우리 크루가 이 일을 받아들일 때, 우리를 향한 공격이 거세질 거라는 거.”
“하긴...”
“너나 조심해. 내 안전은 내가 챙길 테니.”
전화를 끊고서 미켈은 창밖을 다시 내다본다. 여전히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론 쇼에 푹 빠져 있다. 마치 폭풍이 불어올 것을 목전에 두고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10시. 일행은 이제 레이크 원에서의 드론 쇼와 불꽃놀이, 조명 쇼 등을 다 보고, 호텔로 돌아와서 쉬고 있다. 813호실에 있는 현애도 마찬가지로 소파에 앉아서 과자를 하나 까고 먹기 시작하고 있다. 한 손에 든 AI폰으로는 아까 못 본 <라리의 모험>을 보고 있다. 잠시 흐뭇하게 만화를 보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가만 있자...”
생각해 보니, 아무리 봐도, 허전하다. 역시, ‘그것’이 있어야 이 과자가 맛있을 것 같다. 이 테이블 위에는 그게 없다!
“콜라... 아니, 왜 하필이면 콜라가 왜 없는 거지? 어제 사 놨을 텐데!”
생각났다. 어제 조제와 외제니를 불러서 같이 먹었을 때 다 먹어 버렸다는 것을!
“아... 내 정신이야...”
얼른 세훈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
“제발 좀 받아라, 제발...”
한편 그 시간, 호텔 지하 1층의 아케이드. 세훈은 혼자 걸으며 뭔가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다.
“아... 왜 편의점이 안 보이냐. 뭐라도 좀 사 가야 할 텐데...”
잠시 멈춰서 여기저기 보던 세훈의 눈에, 이윽고 뭔가 들어온다.
“어, 저기다! 저기 편의점 간판...”
하지만 세훈의 말이 입에서 미처 다 나오기도 전...
“엇?”
알 수 없는 힘이, 세훈을 확 끌어당긴다. 순간, 세훈은 직감한다.
이건, 공격이다! 세훈을 향한 공격! 하지만, 누구로부터의 공격인 건가? 이 호텔 안에는, 적어도 세훈을 공격할 만한 사람은 없는데...
“누구야... 도대체 어느 녀석이야!”
“하, 하! 이거 보기 좋게 딱 걸렸군!”
누군지 모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들어도 확 잠을 깰 만한, 아주 날카롭고 거슬리는 목소리다.
“진작에 정보는 입수하고 있었지. 여기에 파울리 녀석의 패거리가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거 말이야.”
“아니, 당신은 누군데 또 그래. 나는 그냥 여기 놀러 온 관광객일 뿐이라고!”
“하하, 그렇게 시치미 떼면 누가 모를 줄 알았나?”
여자의 목소리는 무시무시한 독기를 내뿜는다.
“내가 파울리하고 좀 일해 봐서 알거든. 파울리 녀석이 즐겨 쓰는 수법이, 자기 패거리 중 몇 명을 관광객인 척 섞어놓은 거지! 모를 줄 알아?”
“아니, 그게 나는 뭔지 모르겠다니까?”
세훈이 계속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젓자...
“좋아. 말로 해도 못 알아먹는 녀석은,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줄 수밖에!”
“도대체 나보고 왜...”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세훈의 눈앞에 보인다.
단발머리를 한 금발의 여자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마치 세훈을 향해서 자신이 품고 있던 증오를 다 쏟아내기라도 하듯 세훈을 노려본다. 그 시선에서 따가운 감촉이 느껴질 정도다. 순간 세훈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려는데...
“하, 하하, 도망가려고?”
이레시아인 남자가 서 있다. 키가 크고, 하늘색에 가까운 청록색 머리, 그리고 꽁지머리를 하고 있어서 한번에 봐도 눈에 띈다.
“다, 당신은, 누군데, 또!”
“뭐긴?”
그 이레시아인 남자 역시, 금발의 여자 못지않은 적대감을 내비친다.
“우리는 너희한테서 찾아갈 게 많지. 콘라트 뮐러 녀석이 참 많은 걸 빼앗아 가기는 했지만, 콘라트가 죽어 버렸더니 그걸 얼른 챙겨간 건 너희들이잖아? 안 그래?”
“내가 뭘 했다고.”
“거기에다가, 너희가 오늘 우리 동료들한테 무슨 짓을 했더라?”
“다들 왜 그래, 아까부터?”
세훈은 그래도 뭐든 말로 해 보려 하지만, 두 사람이 들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 그래! 너도 마음속으로는 떨고 있군. 차마 우리한테 하지 못하는 말이 있으니까 말이지. 그런, 즉! 우리는 행동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다!”
꽁지머리의 이레시아인 남자는 세훈을 바로 손가락으로 가리키기까지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페넬로페.“
”에시모.“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외친다.
”간다아아아앗!“
가운데에 있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페넬로페와 에시모를 한 번씩 돌아보고는, 세훈도 마음을 굳힌다. 이건 상대해 줄 수밖에 없다.
”좋아, 너희들이 정 그렇다면...“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SiteOwner
2021-05-26 20:48:24
공격을 받았는데, 상황은 금방 종료되었다...
이것으로 끝나면 정말 다행인데, 이미 일을 꾸미는 자들은 실제보다 세력이 큰 것으로 속일 계획을 하고 있다 보니 이게 문제입니다. 여행객들은 이 사정을 알 리가 없고...
스팸전화나 문자 등을 받으면 기분이 참 좋지 않지요. 사실 소설 속에서 정말 잘 묘사해 주셨는데, 이게 그냥 1회성으로 끝날지 후속타가 있을지를 알 수 없는데다 항상 상대는 기만술책을 구사한다는 것입니다.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받은 스팸문자 중, 주거래은행에서 보내온 것 같은데 사실은 주거래은행의 계열사인 저축은행의 것이고, 영업점의 이름 또한 이용한 적이 없는 곳이라서 아주 떨떠름합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5-30 20:14:44
용병을 썼는데 제압이 금방 되어 버렸죠. 사실 이들은 초반부에 나오는 적들이니만큼 뭘 해도 안 되는 건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마드리갈
2021-05-27 18:28:24
아름다운 야경이 상상되는데, 그 야경 밖의 어둠에는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게 아름다움과 대조되어서 섬찟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그리고 야경 밖은 물론이고 야경 안에도 수상한 사람들은 섞여 있고...
역시, 바리오를 공격했지만 금방 진압된 그 공격은 성동격서였던 거네요.
이제는, 무고한 사람인 세훈에 대한 초능력 공격. 게다가 정체를 드러낸 그 사람들은 영문모를 소리나 남발하고 있고. 거리에 어쩌다 보이는,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사람들의 헛소리나 욕설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건 더 심각하네요. 현실 속의 정신이상자는 대부분의 경우 신속히 자리를 피하면 되지만 이것조차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하고...시어하트어택
2021-05-30 20:21:39
서울 같은 대도시도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여도 그 이면에서는 온갖 범죄가 벌어지고 있죠. 다만 테르미니 같은 경우는 거기에 여행업체, 유적발굴업자 등의 살벌한 싸움이 추가된 것이지만요.
스코프 컴퍼니의 멤버들은 세훈이 '미켈의 동료'라는 것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죠. 그것 때문에 공격이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