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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이시명 감독의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9 Lost Memories, 2002)"의 패러디.
1994년 10월 21일. 부슬비가 내리는 늦가을 아침이었습니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강남북의 교통을 책임지던 성수대교가 붕괴되었죠.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는 부실시공과 관리소홀이 빚어낸 합작품이었고, 그 피해는 그저 여느때와 같이 학교와 직장을 위해 다리를 건너던 시민들에게 들이닥쳤죠.?
이런 일이 두번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성수대교 붕괴 당시의 상황과 대처 노하우, 대응 매뉴얼등을 백서로 묶어 낼 예정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95년 6월 30일에 말이죠...
백서 발간 하루 전 날이자 한여름인 7월을 이틀 앞둔 1995년 6월 29일 오후 17시 57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먼지폭풍이 서초구 서초동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먼지가 걷히고 나서 사람들은 깨달았습니다.?
6.25 전쟁 이래 희대의 재난이라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멀쩡한 건물이 저절로 붕괴할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알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삼풍백화점이 왜 무너졌는지를.
삼풍백화점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아 강남을 대표하는 초호화 상권이 되어 고급 중에서도 최고급 상품만을 취급하는 초호화 백화점이었습니다. 이런데다 지어진지 채 5년 밖에 안된 건물(1989년 12월 1일 개점)이 저절로 주저앉았을리는 없었을겁니다. 제대로 지어지기만 했다면요. 차라리 북괴의 소행이었다면 그놈들이 그렇지 하고 욕이라도 했었을겁니다. 차라리 자연재해에 휘말렸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체념이라도 했었을겁니다. 드러난 진실은 오직 돈에 눈이 먼 괴물의 소행이었으니까요.
백화점의 붕괴와 함께 드러난 진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 본래 주거용 부지로 계획되었던 땅에 본래라면 근처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로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여기서 당시 삼풍 건설 산업 창업주였던 이준 회장이 개입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당초?건설사조차 반대한 무리한 증축과 설계변경, 뇌물을 통한 공무원 회유 등을 통해 원래라면 존재해선 안됐던 건물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죠.
차라리 여기에서 끝났다면 그래도 사고는 뒤늦게 터졌거나 수습이라도 가능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하중 제어라는 본래 역할을 상실해 백화점 자체의 무게조차 견디는 것이 한계였던 기둥에 중량 36톤, 냉각수 포함 87톤에 달하는 에어컨 냉각탑 3기가 올라섭니다. 이들의 무게는 이미 건물이 버틸 수 있는 무게를 넘어선지 오래였고, 이에따라?완공 직후부터 건물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하고 있었죠. 거기에 5층 식당가를 위해 설치된 온돌 난방과 서점을 위해 들어찬 책장과 책들의 무게가 더해지며 기둥은 더더욱 뭉게지게 되었습니다. 화룡점정으로 근처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냉각탑을 옮기게 됐는데 돈 몇푼 아끼겠다는 이유로 이것들을 굴려서 반대쪽으로 옮기게 됩니다. 대당 12톤이나 되는 냉각탑들이 옥상을 굴러가며 압박하는 진동과 부하는 기둥이 버틸 수 있는 부하를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었죠.
그렇게 삼풍백화점은 이미 태어나자마자 자기 몸 조차 가누지 못하는 지경이었고, 그런 몰골로도?5년을 버텨왔습니다.
기어이 건물의 수명이 한계를 넘어선 1995년 6월 29일 오후 17시 57분, 단 10여초만에 백화점은 주저앉았죠.
막으려면 진작에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습니다. 회장님의 돈에 대한 욕망만 아니었다면 말이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부터 27년이 흐른 2021년.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재개발을 위해 철거 공사중이던 건물이 붕괴해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조사 결과 이것도 결국에는 비용 문제와 하청 구조,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였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부터 27년.
우리는 대체 그 사고로부터 무엇을 배웠던걸까요? 아니, 배우기는 했던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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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06-16 13:58:09
먼저, 이달에 일어났던 광주 건물붕괴참사에 대해서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의 건을 인용해 주셔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글을 써 주신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어요.
갑자기 백화점이 무너져서 없어져 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이 일이 벌써 26년의 과거이지만도 않네요. 그게 이번에 광주에서 발생한 건물붕괴였고, 그 건물 바로 옆길을 가던 버스는 잔해에 깔려 승객 9명이 무참히 희생되었어요. 그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이래 얼마나 많은 참사가 끊이지 않았는지, 매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다짐이 그저 공염불이었다는 걸까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든지 삶이 불의의 사고로 중단될 수 있고 그 원인 중에 저런 붕괴사고같은 참사가 여전히 있다는 것에 할 말이 없어지고 있어요...
마키
2022-01-13 23:36:57
이제야 겨우 이 글의 답글에 코멘트를 남길 마음을 먹었네요.
2021년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에서는 철거 공사 도중 건물이 길을 가던 시민들을 덮치더니 바로 얼마전인 2022년 1월 11일에는 역시 같은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건설중이던 화정 아이파크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또 발생했죠. 13일 현재 시점에서 붕괴당시의 현장 작업 인원 6명 중 한 명은 소재가 확인됐으나 접근 불가능이라 신원 및 생사불명, 나머지 다섯명은 아직 수색중이라네요.
삼풍백화점 사고로부터 벌써 27년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백화점 붕괴 당시의 생존자와 유족분들이 그랬죠. 자기들도 이런 일에 휘말릴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그럼에도 당사자로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고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셨죠.
SiteOwner
2021-06-19 16:03:56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정말 끔찍했습니다.
게다가 그날 당일은 저 개인에게도 매우 힘든 날이었습니다. 교내에서 어떤 불량학생이 느닷없이 저를 습격해서 저에게 주먹질을 했는데, 저는 갑자기 맞아서 망연자실하고 주변에서는 "저놈은 자존심이 세서, 보복하려 들면 네가 위험해지니 참아라" 하고...
그나마 그렇게 1995년 6월 29일 저녁에 저에게 폭력을 휘두른 불량학생은 이후에 폭력사고에 휘말려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나 버렸습니다만,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음해 6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한 저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현장을 찾았습니다.
사건 1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에. 그 화려하게 광고해서 가보고 싶었던 백화점이 그렇게 폐허가 될 줄이야, 그리고 건물 외벽에 붙어있던 광고판이라든지 각종 행사안내 현수막은 빛바래져 가는 채 참상을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10대의 마지막 수년간이 흐르고 있었고, 20대가 된 이후에도 씨랜드 수련원 화재사고 등의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화재참사는 1999년 6월 30일,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이후 4년하고도 1일 뒤의 일...
대체 그때와 비해 나아진 건 인터넷이 발달한 것밖에 더 있나 싶습니다.
매번 사고가 나면 등장하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말은, 공공연한 거짓말로 전락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정직하게 벌어 저축해서 부자가 되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명문대에 갔다, 그리고 참사가 나고 나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
광주 건물붕괴참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가...
과연, 그렇게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나서도 바뀐 게 없는 이 현실이 정말 우리가 추구해온 것인가 싶습니다. 아예 남은 사람들이 다 죽어서 희생될 사람도 슬퍼하고 추모할 사람도 없어야 해결될지...
마키
2022-01-13 23:55:45
이제야 코멘트 할 마음을 먹은 2022년 오늘에조차도 또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생겼죠.
정녕 27년전 초여름의 삼풍백화점이 가르쳐준 교훈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걸까요. 어릴때부터 관련 다큐멘터리를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인두겁을 쓴 마귀조차 이거보단 인간적일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붕괴라는건 회사의 재산이 망가지는 것이라면서 사람의 생명을 그깟 재산 따위와 같은 가치로 두던 고 이준 회장의 인터뷰는 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