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스 영주 성 최하층. 빛조차 도달할 수 없는 지하 감옥의 최심부. 범인은 영원토록 도달할 이유도, 방법도 없는 그곳.
본래라면 죽어 마땅한 범죄자와 그런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병사들만이 있어야 하는 장소이건만, 오늘 그곳에는 예기치 않은 손님이 하나 있었다.
객의 이름은 죽음.
오늘 그것이 이곳에 도래했다.
죽음의 형상은 실로 단순하였다.
얼굴이 존재치 않았다. 사지를 비롯한 부속지 역시 존재치 않았다. 생물이라면 당연시 있으리라고 생각한 기관 역시 결핍되어, 그저 흘러 다니는 물처럼 바닥을 길뿐이다.
색 또한 단일. 자그마한 무늬도, 소소한 명암조차 따로 없이 녀석은 마치 누군가 균일하게 물감을 바른 것처럼 단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랬기에 만약 이곳이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 속이 아니었다면, 녀석의 생김새를 본 자는 누구나 놈에 대해 이리 말할 것이다.
그저 검은 물이 흐르고 있을 뿐이라고…….
겉으로 보기에도, 그리고 실지로도 정말 단순한 한 마리의 생명체. 자기 스스로 생각조차 할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하등 생명. 하지만 그 형태 없는 존재는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죽음이리라.
으적-! 으적-!
제일 먼저 통신을 맡은 병사가 죽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유체에 깔려, 전신의 뼈와 살이 곤죽이 되어 뒤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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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 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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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바로 옆 방에 있던 죄수가 죽었다. 어린아이를 익사시키길 좋아하던 중년 여성은 얄궂게도 입과 코로 파고든 검은 물에 폐가 터져서 사망했다.
하나씩 하나씩 확실하게 생명의 불꽃이 꺼져갔다.
처음에는 맞서는 이도 있었다.
병사는 무기를 들었고, 수감자는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저항은 무가치했다.
누군가는 체내를 파고든 검은 물에 내장이 터져나갔다.
누군가는 검은 물에 잡힌 팔다리가 산채로 썩어서 뜯어졌다.
단순한 생김새와는 달리 놈은 실로 잔학하고 창의적이라, 같은 형태의 시체 따위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찢고, 뜯고, 짓밟고, 삼키고, 부수고, 으깨고, 녹이고, 터뜨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인간이었던 것들이 서서히 고깃덩어리로 변해가길 한참. 결국, 감옥 안에는 녀석과 녀석이 목표로 하는 단 한 명의 인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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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드디어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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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일어난 참상에도 불구하고 그자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것을 넘어 살짝 지루하기라도 한지, 반쯤 졸고 있던 그의 입가와 눈가에는 작은 액체가 흐른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이곳에 들어오기 전, 그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 하지는 않은 참상을 만들어 왔던 존재니까. 오히려 이 단순한 괴물이 만든 살육의 제사를 보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유명한 화백이 길거리에서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를 지켜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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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할배랑 같이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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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어. 카다스 역사상 최악의 살인귀이자, 혼자서 네 자릿수 단위의 인간을 살해한 대량 살인자. 그리고 한때, 옛 군주 이골로냑과 계약했던 사도. 그는 자신을 찾아온 죽음을 상대로도 태연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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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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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일까? 블레어의 질문에 죽음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 녀석은 블레어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시체를 한곳으로 모으던 녀석은 작업이 끝나자 서서히 커지더니 마치 비눗방울이 터지듯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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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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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썩은 물이 터져나가는 것과 같은 광경. 하지만 그 안에는 일반적인 오수가 만든 것과는 다른 결과물이 남았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두 사람의 그림자.
하나는 사내의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인의 형상이었다. 명백히 다른 성별인 두 그림자. 하지만 그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만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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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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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사내의 모습을 한 이를 향해 블레어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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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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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오랜만에 재회한 손녀와 건장해 보이는 노인처럼 보이는 조합. 지금의 참상에는 절대 어울리지는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그런 것을 지적할만한 정신을 지닌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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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구나, 나의 사냥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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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블레어를 향해 그리 말했다.
사람을 고작해야 개로 취급하는 태도. 이에 다른 사람을 장난감으로밖에 대우하지 않는 블레어가 화를 내는 것이 정상으로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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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멍멍! 할부지의 강아지입니다~! 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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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만큼은 달랐다.
블레어, 그는 적어도 자신이 ‘할배’라고 부르는 존재만큼은 진정한 가족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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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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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블레어의 눈이 옆에 있던 여인을 향했다.
언뜻 보기에는 키가 작은 여인으로만 보이는 존재. 그녀의 육신에는 조금 전까지 참상을 일으키던 ‘죽음’과 비슷한, 하지만 크기가 작은 존재들이 휘감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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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있지. 너는 누구~? 혹시 내 새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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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여인의 목을 조르듯이 감싸는 블레어. 평범한 사람은 목숨의 위협을 느낄 상황이건만, 여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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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거라. 녀석은 이제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될 테니.]
“함께?”
[그래, 네 녀석의 ‘후배’라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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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중간의 후배라는 단어에 처음으로 여성이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블레어는 그 말에 바로 흥미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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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흥, 장난감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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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에게서 시선을 완전히 뗀 블레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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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볼까~. 다시 놀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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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재로부터 약 한 달 전.
최악의 살인귀가 다시 세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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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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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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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나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감옥에 들어오자마자 마주친 저것. 저것을 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굳이 저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건 고기의 언덕이었다.
피와 내장, 고기와 뼈. 생명체의 일부로 보이는 무언가를 억지로 뭉쳐놓은 물건. 이미 죽은 게 분명해 보이는 그것은 아직 신경질이 살아있는지 갓 도축한 고기처럼 움찔거리며 한 덩어리로 합쳐져 있었다.
실로 기괴하기 그지없는 모습. 하지만 기묘하게도 나는 그 형상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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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로프(Meatlo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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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밀가루를 뭉쳐서 마치 빵처럼 한 덩이로 만들어 구워낸 음식. 이 눈앞에 있는 물건은 재료가 사람이었던 것들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누군가를 위해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더 역했다. 이것이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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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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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나름대로 참상에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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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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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아니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 아니, 그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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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이걸 모르고 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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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앞에 ‘음식’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억지로 신선하게 유지해 놓았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 크기를 보아 이 감옥에 있던 모든 생명을 몰살하고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성에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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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올 때까지 감옥에 이런 게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었어. 아니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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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옥에 침투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이곳은 영주 성 최심부의 지하 감옥. 아무리 둔갑술을 사용한 잠입이 기존 보안 체계의 허점을 노린다고 해도, 쉽게 진입할 수는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몇 번씩이나 주의를 기울이고, 또 병사들의 동선에 집중하며 조금씩 나아갔다.
그래, 그랬어야 했다. 아무도 감옥 자체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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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감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만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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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란 건 사람이 있는 시설이다.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간수와 죄수 이상의 인원이 필요하다.
교대를 위한 인원, 청소를 위한, 보급을 담당하는 보급관까지……. 그중 누구도 감옥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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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꼭.’
“모두가 오드리를 잊어버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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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도 나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오드리를 지워버린 존재, 그 녀석은 감옥을 이렇게 만든 자와 아마도 같은 자일 것이다. 녀석이 손을 쓴 이후로 감옥은 완전히 잊혔으며, 그 안에 있던 이를 기억하는 자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오드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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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없잖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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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자신의 얼굴에 주먹질해 그 엿 같은 가능성을 잊어버리려고 하면서, 나는 주변을 살폈다.
블레어. 분명 녀석은 아직 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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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이 정도로 죽었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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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는 단순한 감.
딱히 이성적인 증거 따윈 존재하지 않았고, 그저 어렴풋이 드는 생각일 뿐이다.
녀석이라면 이런 곳에서 죽었을 리가 없다.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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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면서 참여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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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참상을 일으킨 존재가 녀석이 불러낸 지원군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고려하면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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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녀석이라면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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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고 내가 보았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블레어의 표정과 어투. 하지만 그런 녀석이 어째서인지 재회한 나에게만은 특별한 감정을 보였다. 마치 내가 녀석의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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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녀석이 나를 친구로 여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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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마지막 단서 정도는 남겨놓고 갔겠지. 그리고 녀석의 성격상 그 위치는 아마도 자신이 있던 감방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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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걸 밟고 지나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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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인간 살덩어리를 보며 표정을 한없이 구겼다.
마음 같아서야 피해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이 좁은 감옥 복도를 채운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거대했다.
아마도 밟고 지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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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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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살아있는 존재도 아닐 터인데, 나는 본래 인간이었을 그들에게 속으로 사과의 말을 건네며 질척한 고깃덩어리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발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감촉이 사라지고 단단한 바닥이 느껴질 때쯤, 나는 녀석의 감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보이는 것은 그 빌어먹을 살인귀가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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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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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본 순간 다시 한번 구토가 올라왔다.
거기에는 글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글자는 잉크나 흑연 따위로는 새겨져 있지 않았다.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은 아마 저 ‘고깃덩이’를 만들고 남은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척추와 뇌수. 그것들을 검은빛이 도는 무언가로 벽에 고정해 놓아 녀석은 나에게 글을 남겼다.
‘곧 만나러 갈게.’라는 한 문장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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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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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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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는 지금 자신이 놓인 상황에 속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오늘 아침, 그레고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더니 곧바로 휴가를 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기행에 불과한 행동. 하지만 그레고르가 지금 어떤 ‘비현실적인’ 세계에 걸쳐있는지 아는 그녀로서는 무언가 새로운 사건의 시작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문제는 그레고르가 그녀와 또 한 사람에게 남긴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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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우리 집으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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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따르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퇴근한 빅토리아는 일행과 함께 이곳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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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는 좋은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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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상황만 보면 두근거리는 것이 없진 않았다.
무언가 다른 일이 엮여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초대. 그것도 저녁 시간대에 남자가 여성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낸 것이다.
두 사람의 사이가 남녀 사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 좁은 방에서 무언가 ‘사건’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 거기에 그녀가 노리고 있는 사내의 초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이번에 초대받은 게 그녀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현재 이곳에 있는 또 한 사람의 여인.
에스텔.
빅토리아와 마찬가지로 그레고르의 동료이자, 빅토리아에게 있어 최강의 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슬쩍 고개를 든 빅토리아의 눈에 에스텔의 모습이 담겼다.
아름다우면서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생기가 넘치는 얼굴. 늘씬한 키와 탄력이 넘치는 몸매. 비단결과 같은 머리카락과 당당한 태도. 끊임없이 꺼내서 물고 있는 저 약간의 간식만 없었다면 누가 여신이라고 사기를 쳐도 믿어버렸을지도 모를 외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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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이 있기는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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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가는 자신을 느끼는 빅토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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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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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함께 초대받은 것만으로도 비겼다고 생각하면서 빅토리아는 상황을 좋게좋게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에스텔의 입안으로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한 끼 식사 이상의 간식이 사라졌을 무렵, 갑작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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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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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는 문득 그레고르가 아닐까 싶었지만, 이내 그 가능성을 접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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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형씨 집이니까 문을 두드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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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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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가볼게,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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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일단 열어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빅토리아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밖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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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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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이 섞인 짧은 금발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병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자랑하는 퇴폐적인 미녀. 몸매가 빈약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여성인 빅토리아조차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 미녀가 갑자기 찾아왔다는 것만으로 놀랄 상황이긴 한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본 순간 빅토리아는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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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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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가 빈민가를 살아가면서 수없이 보았던 옷. 폭력배들의 근거지에서 자주 보았던 여성들의 의상. 춤을 파는 무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을 팔던 여인들이 입던 노출이 심한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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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형씨가 부른 건가? 하지만 왜?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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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 같은 충격에 빅토리아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왜 그레고르는 그녀와 에스텔을 불러놓고 갑작스럽게 매춘부를 호출했단 말인가? 설마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이 판단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그렇고 그런 걸 즐기던 남자였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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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흥~. 예상하지 못한 게 하나 더 있네? 재미있긴 한데, 그냥 치워버릴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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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미소 짓는 매춘부 복장의 여성. 그런 그녀의 미소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진다고 빅토리아가 떠올린 순간.
우웅-!
특유의 마력 공명음과 함께 두 자루의 빛의 칼날이 상대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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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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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상황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빅토리아. 그런 그녀의 시선은 빛의 칼날의 근원, 에스텔의 두 손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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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어째서 네 녀석이 여기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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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노호를 터뜨리는 에스텔. 빅토리아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에스텔의 눈빛은 단순한 분노 이상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 감정은 경계심과 증오,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지금 에스텔의 눈동자는 마치 괴물이라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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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 여자가 누구지?’
“야하~! 그때랑은 달리 제법 강해졌네. 그래 봐야 진짜 사도보다는 못하지만 말이야~.”
“닥쳐라! 지금 네 녀석에 묻고 있는 건 나다. 대체 왜 너 같은 사마외도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거지?”
“아하하핫! 사랑하는 남자네 집에 내가 찾아와서 삐졌어요~? 우쭈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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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지 않은 듯, 행동하는 여인. 그런 여인을 향해 에스텔은, 빅토리아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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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블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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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스 역사상 최악의 살인귀를 부르는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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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설정 이야기.
블레어가 이번에 입고 온 옷을 보고 빅토리아가 놀란 것은 저 의상이 단순한 무희 의상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빅토리아의 시점이다 보니 이런 세세한 묘사를 생략하긴 했는데, 평소에 노출도가 높은 의상을 입고 있는 빅토리아가 보기에도 기겁할 의상이거든요.
빅토리아가 입고 있는 의상은 튜브탑+돌핀 팬츠에 가까운 의상으로 현실에서도 입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 옷입니다. 그런데 오늘 블레어가 입고 온 옷은 T.M.Revolution의 "Hot Limit" 앨법 커버에 나온 복장과 유사합니다(이미지 링크#). 참고로 해당 이미지의 복장은 콜라보로 슈퍼 소니코, 시마무라 우즈키, 사와무라 스펜서 에리리가 입기도 했지요(이미지 링크#). 확실한 건 그냥 평범한 사람이 입을 복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P.S. 실수로 대강당 쪽에 올려서 삭제하고 이쪽으로 옮겼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7-11 14:02:40
끔찍하네요. 얼마전에 시작한 신작애니 피치보이 리버사이드를 결국 2화까지 보고 중단한 게, 마물이 인간을 죽이는 방법이 너무나도 창의적으로 잔인해서였는데 그게 생각나네요. 그나마 텍스트로는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지만...
게다가 블레어의 재등장이 무섭게 여겨지고 있어요. 잔인한 행각, 역겨운 말투와 그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용모...
그를 이름으로만 알지 마주한 건 처음인 빅토리아도 그의 등장에 경악했는데, 그의 실체를 확실히 아는 에스텔의 분노는 역시 끝간데를 모르겠죠. 역시 에스텔은 위대한 무인이예요. 저는 일단 혐오감에 당장 피하고 싶었는데 말이죠...에스텔의 분노는 역시 군자의 분노 그 자체예요.
확실히 저런 의상이면...
일상생활에서 저런 옷을 입고 다니면 정상이 아니라는 건 확정이예요.
저도 입는 옷에 노출이 많긴 하지만, 역시 저런 옷은 못 입겠네요.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겠죠.
운영진으로서 말씀을 하나 드릴께요.
원칙적으로는 어느 게시판을 이용하더라도 문제없고, 이것은 이용규칙 게시판 제13조의 내용으로 구체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느 게시판을 이용해 주시더라도 상관없을 뿐만 아니라 회원의 의사나 운영진의 판단으로도 옮길 수 있어요. 즉 이번처럼 대강당에 올리셨다가 직접 삭제하시고 새로이 아트홀에 올려 주셔도 무방하고 따로 이동을 요청하셔도 된다는 것을 알려드릴께요. 그러니 이동을 원하시면 운영진에 요청하셔도 되어요. 회원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도 운영진의 업무영역이니까요.
Papillon
2021-07-14 02:42:03
피치보이 리버사이드는 캐릭터 디자인이 취향이 아니라서 보고 있질 않았는데, 의외로 내용이 제 취향이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고어한 내용을 좋아하는 편이라 한 번 볼까 생각 중입니다.
도저히 평범한 사람이 입고 다닐 의상은 아니죠. 아마 현실에서도 무대 의상이 아닌 한 입고 다닐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SiteOwner
2021-07-18 00:02:19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건가 봅니다.
인간이 인간이었던 시체로 변하는 것은 정말 끔찍합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를 집행하는 사형장일지라도. 사형을 집행해야 할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장 좋겠습니다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블레어와 그가 할배라고 부르는 사람, 그리고 여인이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는 것도 지금은 보류해야겠습니다. 이것까지 상상하면 정말 잠 못잡니다...
미트로프, 참 좋아하는 음식이고 간혹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당분간은 못 먹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레고르는 오드리가 잊혀지고 있는 이 상황까지 있으니 더욱 참담할 것 같습니다.
범죄자는 꼭 돌아온다지요. 하지만 환영받아서는 안되겠지요.
에스텔의 분노에 응징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험난할 게 보여서 참으로 무섭게 여겨집니다.
블레어의 옷, 정말 특수한 목적이 아닌 이상 저런 옷을 입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Papillon
2021-08-01 03:53:03
유감스럽게도 블레어는 아마 한동안은 멀쩡히 살아서 움직일 것입니다. 한동안은 그가 저 '할배'의 개가 되어서 움직일 예정이거든요. 일단 할배, 이전까지 그림자로 등장하던 이는 이 이야기의 최종 보스인만큼 대충 중간 보스 정도의 역할을 맡게 될 예정입니다. 대신 그 결말을 굉장히 비참해질 예정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