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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36화 - 2% 부족했던 계산

시어하트어택, 2021-07-24 11:50:04

조회 수
118

그것은, 1초 정도 되는 순간이다.
나오미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더니...
왼손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뭐야!!”
나오미는 순간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려다가, 문득 한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건... 분명히...”
그렇다, 이건 자라의 능력이다. 다른 것도 아닌, 나오미가 몇 년 전 직접 경험한 것이다.
몇 년 전, 자라와 대판 싸웠을 때가 얼핏 떠오른다. 한참 말다툼을 벌이다가 문득 눈앞을 보니, 자라의 앞에서 의자와 수저, 물잔 같은 것들이 허공에 고정되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마치 시위대가 경찰 진압에 맞서 조악한 바리케이트를 친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런 것 정도는 간단히 치워 버리고 자라를 상대하기는 했지만, 거기에서 오는 심리적인 부담감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오미의 머릿속이 점점 새카매지는 것 같다. 자라가 뭐든 자신에게 할 거라는 예상 정도는 했었다. 하지만 초능력을 쓰다니... 공격에 대응하는 건 둘째치고, 어떻게 초능력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나오미의 능력으로 충분히 자라가 초능력을 쓰지 못하도록 막아 놨을 텐데?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자라. 어쭙잖은 속임수로 나를 속여넘기려는 건 이미...”
나오미는 악을 써 가며 자라의 기선을 제압해 보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야, 나오미.”
자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의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내 손을 허공에 붙여 놓은 게 네 능력 아니면 뭔데!”
“그래, 그건 내 능력이 맞아. 하지만, 내가 한 게 아니야.”
“뭐야, 네가 한 게 아니면 도대체 뭐냐고! 내 앞에서 자꾸 말장난 할 거야?”
“말장난이 아니라니까. 나도 내가 어떻게 한 건지 몰라. 뭔가가 나를 움직이게 했다는 것만 알아. 네 능력은 확실히 내 능력을 묶어두고 있었으니까.”
“그게 무슨...”
그 순간, 나오미는 깨닫는다. 조금 전에 나오미의 귀를 스치던 잔잔한 바람의 정체를.
“저... 저 드론은...”
나오미는 급히 고정되지 않은 오른손을 들어 드론을 손으로 내리치려 한다.
“어딜 끼어 들어와!”

바로 그 시간, 레스토랑 3층.
미켈이 3층으로 막 올라와 다시 테이블에 앉으려는데, 옆 테이블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보니, 니라차가 드론을 조종하며 AI폰의 화면을 보고 있고, 현애와 세훈이 그런 니라차를 유심히 보고 있다. 니라차가 뭐를 하나 뒤에서 슬쩍 본다.
“아우...”
드론의 화면을 보던 니라차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수그린다. 카메라로 보이는 나오미는 드론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지 않아서 조종이 어렵다. 거기에다가 오른손으로 드론을 막 내리치려고 하고 있다. 피하려다 보니 화면이 흔들린다!
“야, 왜 그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까봐, 현애와 세훈은 그냥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척하며 니라차에게 말한다.
“뭐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 아니...”
“잘 좀 해 봐!”
니라차는 다시 한번 카메라를 자라 쪽으로 향한다.
“크... 큰일났다...”
나오미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지 카메라의 초점이 잘 잡히지가 않는다. 카메라가 맞춰야 할 자라의 얼굴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나오미를 조종하자니, 그 짧은 순간에 드론을 돌려 나오미 쪽으로 카메라를 향하느니 차라리 자라를 조종하는 게 낫다. 시간은 별로 없다. 몇 초밖에!
“왜 눈이 안 마주치냐... 왜!”
한참 속을 태우려는 찰나, 한순간이지만 자라의 얼굴이 선명히 들어온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니라차는 자라의 눈을 응시하고 자라를 조종한다. 나오미의 오른손도 고정시키도록.

“이건...”
나오미의 입에서는 이제 격한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왼손에 이어 오른손마저 고정되어 버리니, 나오미의 살기가 확 죽어 버린다. 그와 동시에, 자라의 온몸을 감싸는 듯했던 붉은 줄들의 힘도 약해졌다. 자라 자신도 놀랐는지, 붉은 줄이 느슨해진 두 손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다. 마치 나오미의 꼭두각시 같이 느껴졌던 온몸도 이제 꽤 자유롭다. 턱턱 막혔던 숨이 일순에 확 놓이는 듯하다.
“어떻게 한 거야, 이 자식...”
“말했잖아. 나도 모른다니까?”
자라는 이제 허리도 곧게 폈고,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것 같은 나오미를 똑바로 노려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적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조종해서, 내게 강제로 초능력을 쓰게 했다고.”
“흐으...”
나오미가 분했는지 이 가는 소리를 낸다. 허공에 고정된 두 손을 어떻게든 풀어내 보려고 하지만, 허공에서 버둥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이제는 고개조차 돌릴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좌우 45도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마치 뭔가가 나오미의 목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등 뒤에 있는 문 너머의 햇빛이 보일락말락 하는데, 볼 수가 없다!?
?“자라...!”
나오미가 으르렁거린다.
“네 녀석을 이렇게 해 줬어야 하는데... 아까 말할 때처럼 공포 속에 묶어놨어야 하는 건데... 계산이란 건 좀더 철저히 해야 하는 거였는데...”
나오미가 후회와 한이 반반씩 섞인 넋두리를 내뱉는 걸 보자, 자라의 눈이 잠시 흔들린다. 몇 년 전 방송에 나간 것과 식당에서 만났던 것을 포함해서 나오미와 충돌했던 모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듯 생각난다. 그 생각이 미치자, 자라의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하다. 잠시 후, 자라는 나오미를 돌아보며 한 마디 한다.
“미안하게 됐어, 나오미.”
“뭐라고?”
“미안하게 됐다고.”
자라의 힘빠진 말을 듣고서도 나오미는 오히려 악을 쓴다.
“기억해 둬, 자라! 언제 또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이것까지 철저히 계산할 테니!”
“......”
자라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두 팔이 허공에 고정된 나오미를 창고 안에 남겨두고 창고를 나선다. 가는 길에 잠시 멈춰 나오미의 뒷모습을 한 번 돌아보지만, 그것뿐이다.

레스토랑 지하 창고 밖으로 나오자, 자라는 눈이 부신 걸 못 참고 잠시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몇 초 후,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자...
“네... 네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야!”
“그건 내가 할 소리라고!”
자라가 에곤과 마주쳤다.
둘 다, 이 상황이 반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얼굴을 서로에게서 돌리고 시선을 피한다. 마치 눈앞에 봐서는 안되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먼저 돌아보는 사람은 에곤이다.
‘지금이다... 지금 기선제압을 해야...!’
지금 바로 투명한 벽을 설치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그러나...
에곤의 두 손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푹 박혀 버린 듯, 전혀 움직일 수 없다. 손이 고정되어 있으니 두 팔에 쥐가 나고, 팔이 찌릿거린다.
“뭐야,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뭐기는. 네가 좀 걱정되니까 거기 묶어 놓은 거야. 시간이 좀 지나면 풀리니까 걱정은 말라고!”
자라는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버둥거리는 에곤을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자리를 뜬다.

그 시간, 레스토랑 3층.
“파울리 씨! 오셨군요!”
미켈을 본 니라차의 부모님이 반갑게 미켈을 부른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걱정했잖아요.”
두 사람 모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미켈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아, 별 거 아닙니다. 그저 업무차로 누구를 좀 만났을 뿐인데요.”
미켈은 제법 능청스럽게 말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이다.
“화장실을 갔다 나오는데, 제 동료의 거래처 직원이 보이더군요. 그것 때문에 좀 늦었지 뭡니까, 하하하...”
“바쁘셨군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걱정했는데...”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죄송하다고 해야죠.”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1층에 있는 여러 개의 파라솔 아래에서 다들 오후의 일정을 기다리며 쉬고 있다. 그 중 한 파라솔에는 현애와 세훈, 니라차, 그리고 미켈과 자라가 앉아 있다.
“뭐야, 벌써 알고 있었다고?”
입을 여는 사람은 자라.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하지는 않지만, 시선은 니라차를 향하고 있다.
“말해 주지도 않았을 텐데...”
“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된 거죠.”
니라차는 담담하게 말한다.
“물론 여기 친구들이 말해 주거나 한 것도 아니고요.”
“어... 그래?”
“파울리 씨 말고 다른 사람들이 더 있다는 건 지금 처음 안 거고요.”
“우리가 말을 안 해 줬는데도...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는 거지...”
미켈이 막 입을 열려는데...
“잠깐, 잠깐.”?
현애가 끼어든다.
“하나만 묻자, 니라차.”
“왜?”
“네가 어제나 그저께도 알고 있었다고 했지.”
“아... 맞아.”
니라차의 대답은 잠시 망설이지만, 바로라고 해도 좋을 순간 나온다.
“그렇다고 하면 이 시간 이후로, 네가 겪게 될 위험이 많을 텐데, 그것도 각오는 했겠지?”
“어? 위험이라니...”
“네가 앞으로의 위험한 사건에 휘말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함께 해도 좋아. 아니면, 이 시간 이후로는 모른 척하고 있든가.”
“아니, 말이 좀 거칠지 않아?”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에 니라차의 반응도 조금 더 격하게 나온다.
“꼭 그렇게 거칠게 나와야겠어?”
“네 판단에 맡길게. 하지만 하나만 더 이야기할게. 네가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더라도 언젠가는 휘말릴 수도 있어.”
니라차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진다. 분명히 여행을 하러, 그것도 패키지 여행을 온 건데, 이런 데에서까지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싸워야 한다니!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바로 해 버렸을 것이다. 지금 와서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많이 늦어 버렸다...
이윽고, 니라차가 입을 연다.
“그래... 모른 척하고 가만 있기에는 늦었어.”

한편 그 광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 민머리의 남자, 그리고 금발의 여자. 민머리의 남자가 확대경으로 레스토랑 쪽을 보고 있다.
“보여, 키릴?”
“보이는군. 역시... 파울리였나?”
키릴은 확대경을 유심히 보더니, 미켈 옆에 있는 한 명을 더 확인한다.
“미켈 파울리... 자라 아티크도 있군.”
“저 녀석들도 여기 발굴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것 맞지?”
“맞아. 콘라트 뮐러가 죽고 나서 그가 갖고 있던 권리를 모두 가져갔지.”
키릴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 중에 서부 유적군은 우리하고 충돌할 여지가 많고.”
“그 녀석들하고 충돌할 여지가 더 늘어났어. 아즈탄이 당했을 때부터 충돌은 예견했지만. 우리도 좀 더 각오를 하는 수밖에.”
“네 말이 맞아, 소니아.”
키릴은 확대경을 거두고 말한다.
“어쩌면 내 생에 가장 긴 하루가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이야...”
“왜?”
“왜 나오미하고 에곤은 안 오는 거야?”
“연락해 봐야겠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7-24 23:06:14

갑이라는 누군가가 특정능력을 을에게 사용했다. 이 경우는 능력의 작용방향은 갑→을이죠.

하지만 위의 상황은 갑이라는 누군가가 특정능력을 을에게 사용했지만 갑은 병에 조종당해서 결과적으로 갑→을으로...결과는 같은데 원인이 다르니, 갑이든 을이든 누구든지 미치고 펄쩍 뛸 일 같네요...


단체여행에서 저렇게 의견이 틀어지는 것, 정말 우려스러운 상황이죠.

게다가 그간의 제사정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와 버렸고...

시어하트어택

2021-07-25 23:09:20

둘 다 좀 찜찜한 상태로 끝나기는 했죠. 이번 만남이 끝은 아니겠습니다만... 자라에게는 요행히도 위기를 벗어날 기회였습니다만, 나오미에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SiteOwner

2021-07-31 22:19:31

악연이라는 게 해소안되고 또 다른 곳에서 이어질 것이 예상되니 갑자기 오싹해집니다.

진짜 징그러운 악연, 정말 모범정답은 없는 것인지...


여행을 인솔하는 입장에서도, 단순참가자의 입장에서도 의견대립이 나오면 정말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플랜B도 준비하고 때로는 플랜C 이상의 것도 준비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게 다 어그러져서 정말 답없는 경우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학생 때 조직했던 팀프로젝트 여행도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던 게 생각나는 터라 일행의 어려움도 느껴지고 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1-08-01 22:46:31

만약 악연이라는 게 확실히 해소된다고 해도, 그 다음에 남는 건 공허함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놔두면 그 아픔은 더 커지게 되고... 그러니까 골치아픈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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