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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1층 앞에 있는 파라솔.
“진작에 모른 채로 끝까지 넘어간다고 했으면, 끝까지 불편하게 여행했겠지.”
니라차가 무겁게, 그러나 담담하게 말한다.
“차라리 이게 나아. 불편하게 모른 척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잘 선택했어, 니라차.”
현애는 그렇게 한 마디만 한다. 하지만 시선은 니라차에게서 떼지 못하고 있다. 니라차는 다른 파라솔 쪽에 앉은 부모님과 친구들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다. 아직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과 친구들 때문인지 니라차의 눈은 흔들린다.
“걱정되어서 그런 거야?”
세훈이 묻자 니라차는 애써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에이, 다 알아.”
그렇게 말하자 니라차도 세훈의 말이 싫지는 않은 듯, 걱정스럽게 향하던 시선을 거둔다.
그 시간,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2층의 레스토랑.
“좀 알아낸 건 있나, 메이링 양?”
샐러드를 먹고 있던 발레리오가 노트북을 열심히 두드리는 메이링을 보고 말한다.
“하긴, 우리가 온 지 아직 하루도 안 되었는데 크게 알아낸 게 있다면 그게 대단한 거겠지만...”
발레리오가 막 혼잣말을 하고 넘기려는데, 메이링이 문득 말한다.
“어, 있어요, 발레리오 씨.”
“응? 뭐가 있다는 건가?”
“인력 관리 업체들 있죠? 거기 지금 동향을 쭉 파악해 보니까...”
“보니까?”
“오늘이면 나올 것 같군요.”
메이링이 주어는 말하지 않았지만, 발레리오는 그게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이곳 업계에서 모두가 바라 마지않는, 바로 그것.
“확실해?”
“네.”
메이링은 단정적으로 말한다.
“자네, 근거 없이 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발레리오 씨, 저는 이래봬도 변호사예요. 저희 직원들이 아니더라도 정보 수집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요.”
“그래...”
발레리오는 샐러드를 먹다 말고 메이링의 뒤로 간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지, 설명을 부탁하지.”
“여기를 한번 봐 주시겠어요?”
메이링이 가리킨 건 서부 유적군의 개황도. 붉은 점으로 표시된 유적들 사이로, 파란 점들이 3개 보인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아, 여기서요? 오늘 이곳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빨간 점들은?”
“빨간 건... 이미 작업이 이루어진 곳들이죠.”
“그래... 그러면, 오늘 그것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는 근거를 알 수 있을까?”
“여기 한번 보세요.”
메이링은 인터넷에 나온 기사 하나를 가리킨다.
[단독: 유적 발굴 인부가 초능력 발현?]
[인부의 주변에 물이 차오르는 현상 발생... 초자연적인 현상인가?]
“이건 그냥 루머 아닌가? 어디에서나 볼 법한 밑도 끝도 없는 의혹제기성 기사잖아.”
“저기, 발레리오 씨.”
메이링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그래서 준비했지요. 여기 다른 기사들 좀 봐요.”
“어디...”
메이링이 모아 놓은 언론 기사 스크랩은 초능력을 발현했다는 현장 인부들에 대한 기사들로 가득하다. 물론 내용은 염동력을 쓴다느니, 시간을 왜곡한다느니 등 과장과 왜곡이 가득 섞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기사들이 다 신빙성이 0에 수렴하는데.”
“하지만 공통적으로 뽑아낼 수 있었던 게 있죠.”
“그게 뭐지?”
“이 사람들이 작업한 구역은, 모두 여기 파란 점이 있는 유적이라는 거죠.”
“그것뿐인가?”
“그리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장비로 봐서는, 작업 진행도는 95% 이상이고요.”
“과연.”
메이링의 노트북에는 파라와 비토리오가 찍어 온 사진들이 스크랩되어 있다. 검은 트럭들이 두 대 정도씩 사원 입구에 주차되어 있다.
“저 트럭들 안에 유물 선별 설비가 갖춰진 거겠군.”
발레리오가 잠시 자료들을 훑어보더니, 금세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어? 발레리오 씨, 어디 전화하세요?”
“우리 재단 요원들.”
그 시간, 제10사원의 한 출입문.
대형 버스 한 대가 사원 앞에 멈춰선다. 버스 안에는 다양한 종족의 작업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앉아 있다.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꽁지머리를 한 이레시아인 남자가 뒤에 앉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여러분, 도착했습니다.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남자가 먼저 버스에서 내리자, 작업자들이 뒤를 따라 한 명씩 차례대로 내려서 헬멧을 쓴다. 이레시아인 남자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헬멧을 쓰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와 인사를 나눈다.
“바리오 카로노 씨, 맞죠?”
“예, 접니다. 여기 현장 소장, 매코이 씨 맞으시죠?”
매코이라고 불린 키가 큰 남자는 헬멧을 벗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바리오를 처음 본 것은 아닌 것인지, 전혀 어색하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테르미니 퍼스트와 저희 업체는 몇 번 거래한 적은 있습니다만, 오늘 오후의 작업에 함께 하게 되니 영광이군요.”
“저야말로요.”
바리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이제 사원에 들어가면 저희 크루들의 안내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비앙카 블랑샤르 씨도 만날 수 있는 겁니까?”
“네, 물론이죠. 저희보다 먼저 와 있을걸요.”
“아,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매코이는 비앙카의 이름을 듣자 바로 반색한다.
“행운이 있으면 좋겠군요.”
“예, 저야말로. 꼭 오늘 찾아낼 수 있기를.”
바리오와 매코이가 다시 한번 인사한 다음, 매코이는 버스에서 내린 작업자들을 이끌고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어디...”
작업자들이 사원 안으로 다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바리오는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AI폰을 꺼낸다. 막 전화를 걸려는데...
“잠깐.”
누군가가 바리오를 불러 세운다.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누구...”
바리오가 돌아본다. 거기 서 있는 사람은 웬 민머리의 선글라스를 쓴 남자다. 순간 바리오의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다.
“아... 저는 그쪽하고 볼 일은 없는데요.”
“그쪽이야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있습니다!”
민머리의 남자가 단호하게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는다. 그 순간, 바리오는 그 민머리의 남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낸다.
“리브... 리브 맞지?”
“역시나.”
“뭐지? 그 반응은.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한테 그게 어울리는 인사야?”
바리오가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말하자...
“어울리는 인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야.”
“응? 뭐가 예상했던 대로라는 거냐?”
“첫째로는, 몇 년이 지났어도 말투는 내가 예상한 그대로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로는, 예상대로 내 이름을 아직도 미들네임으로 알고 있다는 것.”
“하, 그럼 뭐로 불러 줘야 하는데?”
“뭐, 너는 내가 한 번도 풀네임을 안 알려 줬으니 알기는 어려웠겠지만.”
민머리 남자가 꺼낸 명함에는...
[키릴 리브 싱클레어]
[슈뢰딩거 그룹 유물 전문 매니저]
“이게, 네가 지금 맡은 직함이로군?”
“맞아. 여기에 ‘키릴’을 강조한 것도, 내 퍼스트 네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지.”
“키릴이라고 불러 주면 되겠군...”
바리오는 키릴을 보고 한번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내게는, 역시 리브라는 이름이 더 입에 착착 감기고 말이야.”
“젠장! 키릴이랬지!”
바리오의 말을 듣자마자 키릴이 성을 낸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을 텐데!”
“아니, 왜 성을 내고 그러시나? 나는 그저 내 감상을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나는 최대한 좋게 이야기해 주려고 했더니만 안 되겠군! 각오는 되었나?”
키릴이 성을 낸다. 이마와 정수리를 포함한 온 머리가 빨개지려고 한다.
“그렇게 나올 줄은 알고 있었지.”
바리오도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그래서 너를 위해 준비했다고.”
“무슨 소리를...”
키릴이 막 바리오의 말을 받아치려는데...
발밑이 점점 꺼지는 것 같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너?”
키릴은 조금 당황은 했지만, 예상은 한 듯 침착한 표정으로 말한다.?
“속임수까지는 아니야. 리브 너의 발밑에 개미귀신을 몇 마리 보냈거든. 그것도 아주 큰 걸로 말이지.”
“뭐... 뭣? 개미지옥?”
“그래. 한 3분 정도는 네 발을 묶어 놓을 수 있겠지.”
“뭐야, 이 자식! 이러기냐!”
키릴은 심히 당황했는지, 외모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버둥거리며 소리지른다.
“서로 껄끄럽게 만났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전의 동료인데!”
“예전에 동료였던 건 중요하지 않지. 중요한 건 현재고.”
바리오는 이 말만 남기고는 작업자들을 따라 사원의 출입문으로 들어간 다음, 문을 잠가 버린다. 그것을 막지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하는 키릴은 잔뜩 성을 낸다.
“바리오 카로노, 내가 이 자식을 가만두나 봐라! 응!”
키릴이 성을 한껏 냄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노는 문 너머까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어느덧 1시 30분. 일행은 또다른 사원 앞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아까의 사원이 지하 위주여서 지상부는 그렇게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이곳은 겉으로도 눈에 잘 띌 정도의 웅장한 외관이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황금빛의 색깔과 각종 부조로 장식된 기둥 4개. 그 기둥 사이로 들어가면 사원의 출입문이 나온다.
“자, 여러분! 잘 쉬셨나요?”
사원의 입구에 선 미켈이 앞에 선 일행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한다.
“점심도 다들 맛있게 드셨으니, 이제 또 움직여 봐야죠!”
분명 미켈은 점심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텐데, 식사를 제대로 한 다른 일행보다 더 힘이 나는 목소리로 말한다. 어떻게 저런 정도의 에너지가 솟아 나오는가, 니라차의 부모님은 걱정스럽게 미켈을 보지만, 현애나 세훈 같은 다른 일행은 신기하게 본다. 그러든 말든, 미켈은 마치 에너지가 어딘가에서 솟아나오기라도 한다는 듯, 더욱 신나게 말을 이어 간다.
“혹시, 이번에 가는 곳이 어디인지 아시는 분?”
몇 명은 미켈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고, 또 다른 일행은 멀뚱멀뚱 미켈의 입에서 나올 말만을 기다리고 있다.
“저, 저...”
한 명이 수줍어하는 얼굴을 하고는 손을 든다.
“응, 또 외제니야?”
시저가 바로 알아보고 말한다.
“하여간, 그쪽 지식이 많은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깐. 돌아가면 마르코한테 취재라도 하게 해야 하나?”
외제니는 시저의 말은 들은 척 만 척하며, 미켈이 자신을 봐 주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미켈이 본다. 외제니를.
“외제니... 르루아 양이었죠?”
“아... 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외제니는 더욱 들뜬다.
“여기 사원은... 조각상으로 유명한 곳이었죠?”
“맞습니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10호 사원은 초입부의 금빛 기둥부터가 인상적인 곳이죠. 안으로 들어오시면 더욱 입이 벌어질 만한 구경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자, 들어가실까요?”
“들어가고 있군. 파울리 녀석이.”
금발의 여자가 먼발치 높은 곳에서 10호 사원을 확대경으로 보며 말한다. 금발의 여자는 다름아닌 슈뢰딩거 그룹의 소니아.
“하필이면... 우리 작업 구역하고 겹치는 곳이로군.”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7-28 21:23:27
간만에 메이링이 등장했네요. 그리고 정보수집에 일가견이 있고, 온갖 억측과 과장이 가득하여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정보에서도 의외의 사안을 포착해 낼 수 있었네요. 역시 이런 사람이 있으면 든든하기 마련이죠.
그나저나 바리오 카로노와 키릴 리브 싱클레어에 무슨 악연이 있었길래...
여행자 일행이 향하는 곳을 보니 또 사건이 진행될 것 같네요. 무슨 마가 끼면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저런 식으로 위험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예요. 그나저나 요즘은 여행도 할 수 없으니...시어하트어택
2021-08-01 22:50:45
바리오와 키릴의 악연도 짬을 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바리오가 좀 얽힌 데가 많군요.
일행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다만 여행지에서 아귀다툼이 일어나고 있었을 뿐...
SiteOwner
2021-08-10 20:10:35
사람이 특정의 장소에 많이 모인다면 반드시 거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사건의 수사에도 그 점이 잘 감안됩니다. 허름하고 사람들이 많이 출입할 리가 없는 외진 곳에 있는 공장이 알고 보니 불법도박장으로 쓰이고 있었다든지 등등. 역시 메이링은 그 점을 잘 간파하는군요.
미들네임에 화낸다는 건, 그 미들네임의 유래가 되는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시어하트어택
2021-08-15 15:23:55
별 쓸모없는 정보라도 그걸 취합하면 의외의 사실을 얻어낼 수 있죠. 아무래도 변호사라면 경찰 수사관 정도는 아니더라도 정보 수집에는 타 직종보다는 좀더 밝은 법이니까요. 미디어에서 본 것이긴 합니다만, 때때로 보면 정보기관에서 온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그런 데에 밝은 사람들도 충분히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