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기름칠한 목재 바닥에 하얀 서리가 내렸다. 바닥 위에 내린 살얼음 위로는 실내임에도 작은 눈보라가 몰아쳤는데,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작은 눈보라의 이름은 빅토리아. 한때 눈과 바람을 권장하는 옛 군주의 사도였던 그녀는 지금 눈앞의 적을 향해 자신의 전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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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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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휘두르는 미약한 힘을 느끼며 빅토리아는 살짝 고소를 머금었다.
현재 그녀가 휘두르는 권능은 이전에 지녔던 것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비유하자면 사도 시절 그녀의 힘이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보화라면, 지금 그녀가 지닌 것은 한 줌이 되지 않는 동전 수준일 터.
물론 지금 그녀의 힘조차 어지간한 비전투 계열 마법사 정도는 압도할 수 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상대에게 그런 힘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철퍽-! 철퍽-! 철퍽-!
벽에 물주머니를 후려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고, 빅토리아의 발에는 기분 나쁜 감촉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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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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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시선을 돌려 발을 흘끗 바라보니, 검게 물든 진흙이 발목을 타고 오르다가 동결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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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발끝에 붙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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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을 지속할수록 냉기에 적응하는 것일까? 상대를 감싸고 있는 부정형의 진흙, ‘형태 없는 자손’이란 이름의 괴물은 서서히 빅토리아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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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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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성이 지나치게 나쁘다.
사도 시절 때와 같은 초월적인 속도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식으로 싸우다간 적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채 그녀가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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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길, 저 자식 대체 뭘 원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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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토하는 건지, 빅토리아는 가속 때문에 흐릿해진 시야로 목표를 노려보았다.
그레고르를 찾던 저 이상한 여성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빅토리아를 상대하고 있었다.
전투를 원한다면 해주겠다고 선언하던 호전적인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적지근한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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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좀 자세하게 살피고 싶긴 한데…… 무리겠지.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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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할 때마다 서서히 흐려지는 자신의 시야를 느끼며 빅토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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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약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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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시절에는 가속할수록 오히려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육체는 조금씩 망가졌지만, 그래도 바람을 느끼는 이타콰의 사도 특유의 감각이 이를 보충했다.
이제 그녀는 육체가 망가질 정도로 가속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가속된 세계에서 상황을 제대로 관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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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꾸미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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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일까? 나름 고민을 해보아도 답은 나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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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머리 쓰는 일은 맞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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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도달한 결론에 빅토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태생을 생각한다면 애초에 그녀가 그런 품종으로 계획되었던 건지,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나쁘고 판단력이 좋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결국, 그녀가 도달했던 곳은 파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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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없었다면 거기서 끝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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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이 적이 아닌 에스텔을 향했다.
에스텔은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경쟁자지만 동시에 함께 싸우는 전우이기도 했다.
빅토리아는 에스텔을 믿었다. 그녀의 실력을 믿고, 그녀라면 자신이 다치더라도 최선의 행동을 하리라 믿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그녀는 무리 없이 도박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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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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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빅토리아의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그와 함께 몸의 속도는 더욱더 빨라지고 심장의 고동은 미친 듯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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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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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콰의 힘의 영향인지, 혈액이 흐를 때마다 이상하게 몸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워졌다. 이 이상 이타콰의 힘을 끌어왔다간 몸이 얼어서 부서져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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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그래도 저 진흙 자식을 뚫고 녀석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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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 본인이 싫든 좋든 녀석 또한 무언가 행동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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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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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의 근육이 한계까지 수축했다가 그 힘을 해방한다. 바람을 타고 가속한 몸이 냉기를 휘감은 채 적을 향해 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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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라면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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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의 저 진흙 따위는 손쉽게 꿰뚫어버릴 터.
확신과 함께 뻗은 발끝에서 물컹거리는 감촉이 느껴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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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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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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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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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침에 대답하려는 순간, 덮쳐오는 강렬한 충격. 그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얼음으로 보호하면서 빅토리아는 한순간 정신을 잃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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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속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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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와 사냥개의 싸움이 계속될 무렵, 에스텔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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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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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때문에 흐려진 빅토리아의 감각과는 다르게, 에스텔의 육감은 확실히 상대방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은 지금 그녀를 보고 있었다. 빅토리아와 싸움은 그저 저 부정형의 괴물이 대신하고 있을 뿐, 저 여인은 계속 에스텔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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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상대가 평범한 이었다면, 그런 시선 따위 무시했을 수도 있으리라.
그간의 연습으로 에스텔과 빅토리아 두 사람이 합공 능력은 무척 뛰어난 수준에 도달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전설에서나 나오는 초월자가 아닌 이상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여인의 팔에 자리 잡은 지네 형상의 팔찌는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지네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기묘하기 그지없는 장신구. 그리고 그에 새겨진 문양.
신기, 사도의 증명.
다루는 힘을 보아 저 여인의 정체는 아마도 그레고르를 공격했던 차토구아의 사도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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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림을 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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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사도의 모습을 취하는 순간, 에스텔과 빅토리아는 끝장이다.
그렇기에 에스텔은 움직이지 않았다. 적어도 빅토리아를 상대하는 동안 상대는 딱히 모든 힘을 쓸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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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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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가 힘을 끌어올린 순간, 에스텔은 상대가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의 정체는 투명한 색상의 물약이 든 플라스크. 그 병을 꺼내자마자 상대는 이를 자신을 보호하는 괴물에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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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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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은 느껴졌지만 어째 전투에는 응용하지 않는다 싶더니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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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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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연금술사인 것을 가정하면 맨 처음 떠오른 가능성은 독액일 터. 하지만 오래지 않아 에스텔은 이를 부정했다.
연금술로 만든 독 중 대부분은 사도나 고위 마도기사를 상대로 통하지 않는다. 일부 예외인 강력한 극독들은 저런 유리병 따위로는 보관할 수 없을뿐더러, 저 괴물에게도 타격을 줄 것이다.
잠시간의 고민.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코끝에 퍼지는 짙은 냄새에 에스텔은 답을 찾을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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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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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하기도 전에 빅토리아는 이미 상대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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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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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상대가 꺼낸 것은 폭약. 그것도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는 계열의 즉효성 폭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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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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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다가는 건물이 통째로 붕괴해버린다. 빅토리아와 에스텔은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집 안에는 그녀와 빅토리아뿐만이 아니라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치료 중인 아이들이 있었다.
더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만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
우웅-!
완전 마력검 특유의 공명음이 울리며, 허공에 빛으로 빚어진 무기가 무수히 떠올랐다.
그중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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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 식 소여 부술(斧術).
거상(巨象)의 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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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수십 개의 도끼가 폭발의 반대 방향으로 휘둘러지며, 충격파가 폭발을 절반 정도 상쇄했다.
이후 거대한 방패들이 수십 겹 겹쳐지며 성벽이 되어 충격을 3할 정도 막고 소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스텔 본인과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움직였다.
그리는 것은 거대한 원이자 소용돌이.
마력을 휘감은 검은 폭발의 충격을 휘감고, 이를 다시 상대방을 향해 대다수 되돌린다.
이제 남은 건 1할 정도도 되지 않는 위력. 그리고 그것은 에스텔의 몸이 그대로 방파제가 되어 막아낸다.
주륵-.
내장이 상한 것인지 에스텔의 입가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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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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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건물의 한쪽 벽면이 무너지긴 했지만, 아이들이 있는 공간만큼은 아무런 타격 없이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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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는 어떻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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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빅토리아의 위치는 폭심지 그 자체. 재빠르게 방패 하나를 구현한 것 외에 에스텔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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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악! 아파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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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빅토리아의 비명 아닌 비명이 들려왔다. 저 정도로 크게 소리칠 수 있는 것을 보아 그리 큰 부상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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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제 신경 써야 할 것은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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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심한 표정을 지은 에스텔의 얼굴이 다시 굳으며 그녀의 시선이 폭발의 진원지를 향했다. 에스텔이 보호한 쪽과는 달리 흩날리는 먼지 때문에 보이질 않지만, 기감으로 상대가 살아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먼지가 걷히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기괴한 인간형 생명체. 그것은 처음 그레고르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늪의 토지를 이용한 괴뢰(傀儡,Golem)과 비슷한 형상을 한 저 괴물은 이전에 본 것보다 살짝 작은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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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사도강림은 하지 않은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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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작은 건 아무래도 사도의 갑주를 입지 않고 괴물의 형상을 취했기 때문일 터. 그 사실에 살짝 안도하는 것도 잠시 녀석은 폭발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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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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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머리 부분이 열리며 가면이 모습을 드러내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얼굴조차 모사하지 않은 텅 빈 무면탈.
그 너머의 시선이 에스텔은 그저 무심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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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는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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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고저 하나 느껴지지 않는 냉혹한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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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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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여전히 싸울 생각이란 것을 확인한 에스텔은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녀석은 저 폭발 속에서도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걸 고려하면 에스텔이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게 가능한 방법 역시 손에 꼽힐 정도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울 터인데 현재 그녀는 내상까지 입은 상태다. 이런 몸 상태로는 제대로 된 싸움이 성립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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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간을 끌 수밖에 없겠지.’
“어째서 그레고르를 그렇게 감시하고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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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에스텔은 상대가 한 말에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운이 좋아 상대가 대답한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 수 있을 터.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그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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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지 않으면 그저 죽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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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자신의 제안을 거절당한 것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여인.
한동안 이어지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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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허가’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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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침묵이 끝나는 순간, 불길한 말이 상대의 입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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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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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사도 강림을 하지 않는 것이 고작해야 위에서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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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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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에스텔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어지는 상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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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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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이 빠르게 검을 휘둘렀지만, 형태 없는 자손이 이를 모조리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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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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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보이던 순간.
쾅-!
가면을 쓴 여인이 갑자기 엎어지며 입고 있던 부정형의 갑주 또한 터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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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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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에스텔. 그런 그녀의 귓가에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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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았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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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내의 살짝 화가 난 짐승처럼 들리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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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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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가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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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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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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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쓰러진 것을 확인하자, 나는 한숨을 쉬며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내 의학적인 지식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대충 보아도 팔의 상태는 엉망 그 자체. 사도로 변신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던 다중 부분 둔갑이건만, 맨몸으로 사용하니 반동으로 오른팔이 완전히 망가졌다.
아마 사도 특유의 재생력이 없었다면 근육이 모조리 녹아내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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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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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로 변할 수 있었다면 훨씬 간단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는 길에 몰래 변신할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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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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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해야 하룻밤 자리를 비울 뿐이라고 생각했건만 이런 일이 생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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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사도를 보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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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블레어 그 자식은 내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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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지금 할 일은 해야겠지.’
“둘 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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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에스텔과 빅토리아의 안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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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다.”
“나도 일단은 괜찮아, 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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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두 사람. 하지만 얼핏 보아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에스텔의 입가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색을 보아하니 내상을 입은 것 정도는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빅토리아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한쪽 다리는 살을 찢고 뼈가 튀어나와 있었으며, 그것을 억지로 얼음으로 고정해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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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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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울컥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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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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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냉정하게 움직여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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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상태가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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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가 갑작스레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대체 계속 왜 이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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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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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섬뜩한 가능성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간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가설.
어쩌면 내가 오드리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느리고 잊어버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래서 서서히 성격이 변해가고 있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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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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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는 안 된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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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서둘러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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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지로 마음을 다독이며 천천히 쓰러진 적을 향해 다가갔다.
비록 사도 상태에서 한 일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건물 정도는 부숴버릴 공격이다. 여기에 에스텔의 공격을 막느라 형태 없는 자손 역시 대비하지 못했으니 녀석에게 직접 공격이 들어갔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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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없는 자손도 움직이질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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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가 기절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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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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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것이야 많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다른 것을 신경 쓸 때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녀석의 가면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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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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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면이 움직이고, 녀석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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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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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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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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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토록 찾고 있던 사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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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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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너머에는 그녀의 얼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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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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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냥개의 정체가 나왔군요. 사실 초기 구상 단계에서는 이 Act 후반부에서는 밝힐 내용이었는데, 문제는 그러고 나니 이 에피소드가 오드리 에피소드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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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다시 잠시 설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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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는 이 세계관에서 전투 병력으로 활약하는 일이 드뭅니다. 애초에 고급 인력이다 보니 직접 싸울 일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만 한다면 보통 셋 중에서 하나의 방법을 택합니다.
첫째는 이번 에피소드처럼 본인이 만든 공격용 비약을 사용하는 법. 이른 공격용 비약은 폭약이나 독 등 다양한 것이 있습니다.
둘째는 자동인형(오토마타)이나 합성수(키메라), 괴뢰(골렘) 같은 본인이 제작한 전투 병력을 동원하는 방법.
셋째는 강화용 비약이나 본인이 만든 마도구를 사용해 본인이 직접 싸우는 방법. 이 셋입니다.
물론 이 중 여럿으로 섞어서 사용하는 방법 역시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국가와는 달리, 북부인의 경우 연금술을 제외하고는 다른 마법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부인들의 경우, 전사 계급이 이 연금술을 이용해 거의 개조 인간 수준으로 강화되어서 활약합니다.
P.S. 12시에 외출 예정이라서 미리 임시 저장을 해놓고 외출했는데, 어째서인지 핸드폰으로는 계속 패스워드가 틀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금 늦었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8-15 17:33:53
우선, 운영진 권한으로 게시물 주소를 변경해 두었음을 알려드릴께요.
오늘 업로드가 늦어진 데에 사정이 있었군요. 포럼에서는 누구도 예정과 게시시점이 달랐다고 해서 비난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니 걱정하시지 않으셨으면 해요.
빅토리아가 갑자기 의식을 잃을 정도로 위기에 처하고 에스텔조차도 바로 1초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그레고르가 나타나 줬어요. 그리고 분골쇄신을 각오하고 싸워서 문제의 가면을 쓴 "사냥개" 를 제압해서 정체를 확인했는데, 그 정체가 오드리였을 줄이야...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왜 오드리는 자아를 잃고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말소된 오드리가 이런 형태로 나타나다니,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네요...
Papillon
2021-08-26 02:58:13
사냥개의 정체는 나름대로 복선을 깔아두긴 했는데, 생각보다 잘 느껴지지 않았나 보군요. 한 번 좀 더 연구해 보아야겠습니다.
SiteOwner
2021-08-16 00:09:17
한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설마 오드리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 설마 등등 하고 사냥개의 정체를 의심해 왔습니다만, 정말 오드리일 줄이야...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운 것이고, 또 그 이전에 대체 무엇을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오드리가 그렇게 되어 버린 건가 싶은 생각에 할 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절체절명의 전투를 담은 이 회차의 제목이 왜 "변질" 인지 이제 파악되고 있습니다.Papillon
2021-08-26 02:58:29
말씀하신 것처럼 제목이 ‘변질’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지요. 변질의 이유는 비밀입니다만, 이번 장(Act)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소재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