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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아?”
비앙카는 잔뜩 악을 쓴다.
“응, 아니지. 비앙카 너부터 시작해서, 파울리를 포함한 네 모든 패거리는, 결국 내 능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거든!”
비앙카는 잔뜩 눈에 힘을 주고 에곤을 노려본다. 하지만 손동작은 그렇게 모순될 수가 없다. 한 손으로는 AI폰을 열심히 조작하고 있지만, 또다른 손으로는 그걸 막는다! 비앙카 자신도 의아해하고 있긴 하지만...
“왜 가식이야. 그래봤자 네 손이 찌릿거리고, 네 몸 전체가 전기가 되어 버리는 건 이제 시간 문제라고?”
얼핏 에곤이 보기에, 비앙카의 얼굴이 약간 풀어지는 것 같다. 잔뜩 적대감을 품고 노려보는 표정은 확실히 아니다. 금방이라도 뭐라도 하고 싶지만, 움직일 수가 없으니 입꼬리를 가득 올린다.
“어쩔 수 없는 네 현실은 인정한 건가? 좋아, 그 점은 현명해. 어떻게든 몸부림쳐 보려고 했던 파울리 녀석 쪽이 조금은 재미있었지만.”
그렇게 말해도 비앙카는 아무 반응도 없다. 그저 에곤을 노려다볼 뿐이다. 반응이 아예 없는 비앙카가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모든 건 에곤의 의도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 열어라, 내가 보낸 메시지를.”
“......”
“거부할 수는 없을 거다. 자, 열어!”
비앙카가 메시지를 연다. 그리고...
“뭐야.”
아무 반응도 없다. 손이 찌릿거린다든가 하는 느낌도 없는 듯하다.
“참지 말라고, 너. 그래봤자 나는 다 아니까!”
“응? 뭘 참아?”
“손에 전기가 오른 것 같지 않냔 말이다.”
“아닌데? 전혀.”
에곤의 표정이 확 바뀐다. 움직이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여유가 느껴졌지만, 3초도 안 되는 시간에 확 일그러져 버린 것이다.
“헛소리 마라. 다 알고 있다고. 그렇게 허세나 부려서 얻는 게 뭐가 있지?”
“허세 아니라고 했잖아. 볼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비앙카는 손을 쫙 펴서 보여 주기까지 한다. 확실히, 전류 같은 게 흐른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에곤의 얼굴이 잔뜩 질려 버린 건 물론이다. 비앙카는 곧이어 메시지를 눈을 훑어 확인하고는, AI폰을 에곤의 눈앞에 들어 보인다.
“자! 이건 반송.”
비앙카가 그 자리에서 바로, 메시지 반송 버튼을 누르자...
“뭐... 뭐지?”
에곤의 두 팔이 자유로워졌다. 비앙카가 어째서 그의 두 팔을 풀어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팔을 흔들어서 확인해 본다. 아무런 이상한 느낌도 없다.
“왜 풀어 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이렇게 이죽대고 나서, AI폰을 켜 본다.
“무슨 메시지를 반송했다는 거야. 내 능력으로 만든 메시지는 반송받은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의심스럽게 말하면서도, 에곤은 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그러자마자...
“으, 으아앗!”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에곤의 오른손으로부터, 냉기가 덮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어깨까지 덮어 버린다!
“이런... 어떤 녀석이... 이런 짓을...”
“이야, 너, 모르는 거야?”
비앙카는 얼어붙어 가는 에곤을 불쌍하다는 듯 보며 말한다.
“참 딱하기도 하지, 자기가 여태 누구를 상대하는지도 몰랐다니!”
“이.. 개... 같은...”
에곤은 입에서 나오는 단말마 같은 말도 다 하지 못한 채, 몇 초 뒤, 온몸이 얼어붙어 마치 얼음상처럼 되어 버리고 만다.
“휴...”
완전히 얼어버린 에곤을 보자, 그제서야 비앙카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배어나온다.
“역시 그 애였나. 미켈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그나저나, 다른 쪽은 어떻게 되어 가나...”
그 시간, 제10호 사원의 두 번째 방.
“그러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질문하시면 되겠습니다!”
현애가 다시 돌아왔을 때, 미켈의 설명은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랐고, 일행은 이제 각자 구경거리를 찾아가고 있을 시점이다.
“어? 왔어?”
현애를 보자마자, 미켈은 일행에게 들리지 않도록 손을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어때, 좀 괜찮아?”
“아, 조금 찌릿거리기는 하더라. 양손이 전기가 되는 것 같았어.”
“그래... 무사하니 다행이네.”
“그런데... 이건 누가 한 거지? 메시지로 전기 같은 거 보내는 거 있잖아...”
“아, 그거? 누군지는 알고 있어.”
미켈의 말에 따르면, 에곤 슬라니와는 전에도 몇 번 충돌한 적이 있었다. 미켈이 가만 생각해 보니 에곤은 그때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유형이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같은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살벌하게 경쟁하는 경쟁자가 아닌 거래처 사이이기는 했지만, 그때도 에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최면으로 미켈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미켈의 동업자의 두 손을 저리게 한다든지 하며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했다. 물론 미켈 역시 가만히 당하고 있을 성격은 아니었기에, 에곤에게 적극적으로 맞서며 협상에 임했고 덕분에 협상에서 비교적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곤은 그때 미켈에게 당했던 수모(?)를 꾹꾹 눌러담았다가 이번에 한번에 표출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미켈은 추측했다.
“그런데, 협상을 좀 유리하게 하려고 했던 게 그렇게 원한을 살 일인가?”
“모르지.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 에곤이라는 사람은 또 아니었을 수도...”
“그래...”
미켈은 잠시 후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누군가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비앙카?”
“왜? 나 지금 바리오한테 가는 중이야.”
“뭐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 거기는?”
“큰일났어.”
“왜 그래?”
“여기 현장 소장이라는 녀석이, 제10호 사원 유적 발굴권을 몽땅 슈뢰딩거 그룹에게 넘겼지 뭐야!”
“뭐야... 정말?”
미켈은 순간 큰 소리를 지를 뻔하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겨우 참는다.
“일단 비앙카, 다른 크루들에게 한번 연락해 봐. 그쪽에 혹시 슈뢰딩거 그룹의 공격이 있으면 좀 신경써 주고.”
“아니, 왜 나보고 자꾸 하라고 하는데!”
비앙카는 이제 노골적으로 짜증을 낸다.
“좀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응?”
“알았어, 네가 짜증이 나는 것도 이해가 가는데...”
미켈이 다시 몇 마디 하려는데, 비앙카로부터의 전화는 어느새 끊겼다.
“하... 짜증내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그 시간, 제10호 사원의 또다른 출입문 앞.
흰 헬멧과 푸른 색의 작업복, 검은 부츠 등, 작업자들의 복장을 갖춰 입은 두 사람이 서 있다. 헬멧 아래로 드러난 두 사람의 얼굴은, 다름아닌 비토리오와 파라.
“오, 그림자 안에 그런 것도 다 넣고 다니시네요?”
파라가 그림자 안에서 음료수를 꺼내 주자, 비토리오는 신기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한다.
“도대체 넣을 수 있는 한계가 얼마나 되는지...”
“글쎄요, 이론상으로는 이 거대한 사원도 넣을 수 있겠죠...?”
“에, 정말요?”
비토리오의 눈이 일순간 휘둥그레진다.
“저 큰 사원이, 다 들어간다고요?”
“무전 여행할 때는 컨테이너까지 넣어 본 적이 있어요.”
“컨테이너...요?”
“화물선에 들어가는 컨테이너 있잖아요.”
“아...”
어찌나 놀랐던지, 비토리오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한다. 물론 벌어진 입은 다물지 못한 채다.
“그럼 비토리오 씨, 이제 갈까요?”
“네... 가죠!”
“왜 나보고 다른 녀석들까지 상대하라는 거야, 참!”
비앙카는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낸다.
“안 그래도 정신이 온통 태양석에만 쏠려 있는 판에...”
그렇게는 말하지만, 비앙카 역시도 바리오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혹여나 누군가가 바리오를 납치해 가서 정보를 불라고 요구하기라도 하면 어쩌잔 말인가!
“그래... 한번 찾아보기는 해야겠는데...”
비앙카가 그렇게 금세 마음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비앙카 블랑샤르 아닌가?”
어느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비앙카의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모르는 목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비앙카에게 있어서는 많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익숙한 목소리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떨리는가 보군?”
“누구야,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왜기는, 당연한 건데.”
“당연하다니...”
비앙카는 반문하며 뒤를 돌아본다.
한편 일행은 두 번째 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 현애도 세훈과 니라차 옆에서 사진도 찍고, 포즈도 취하고 있던 참이다.
“참.”
세훈이 문득 말을 꺼낸다.
“너 아까, 갑자기 화장실은 왜 갔다 온 거야?”
“뭐, 그런 일이 있었지. 누가 메신저로 공격을 하더라고.”
“메신저?”
“그래. 그러니까... 지금은 상황은 다 끝났기는 한데...”
“아니, 그럼 또 밑에 누가 있다는 거야?”
“맞아. 미켈을 노리는 건 확실하고.”
“그럼 우리는 또 뭘 해야 되지?”
니라차가 문득 말한다. 이미 옆에 메고 있는 가방에서는 드론을 꺼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야, 드론 넣어!”
흰 드론의 날개 끝이 보이자마자, 세훈이 당황하며 손짓한다.
“그거 넣으라고!”
“아니, 왜? 우리가 먼저 뭐라도 좀 해야 하지 않아?”
“안돼. 넣어! 혹시 드론 때문에 네가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아까 그 초능력자는 전자기기를 통해 초능력을 썼잖아!”
“아니, 내가 먼저 시야에 들어온 사람을 조종하면 되지 않아?”
“그래도 안 돼. 드론에도 사각이 있잖아.”
세훈의 단호한 말에 니라차는 결국 다시 드론을 집어넣는다.
“알았어, 알았어.”
니라차가 막 드론을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을 때.
“거기 세 분!”
현애, 세훈, 니라차의 귀에 미켈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일행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방 어디에도 말이다!
“아직 다 안 보셨나요?”
“이제 가요!”
미켈의 부름에 두 번째 방을 떠나기 전, 현애는 고개를 돌려 두 번째 방을 한 번 더 돌아본다. 마치 사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미술관 같아 보인다. 그런 두 번째 방을 뒤로 하고, 현애도 세훈과 니라차를 따라 방을 나온다.
세 사람이 두 번째 방을 나오자, 첫 번째 방의 입구가 보인다. 미리 나와 있던 미켈은 일행이 이제 어디로 갈지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말한다.
“어떻습니까, 1층을 다 돌아보신 소감은?”
“1층... 1층이요?”
“그렇습니다. 이제 지하 공간도 한번 둘러볼 텐데요...”
“지하 공간은... 아직 발굴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했죠?”
“네, 맞습니다.”
니라차의 어머니의 말에 미켈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따라서 지하 공간의 탐방은 한 곳에 머물러서 보는 게 아니라, 지나가면서 유적 발굴 현장을 둘러보는 식으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지하 공간 탐방은 허가가 나야 들어갈 수 있고, 여행 가능 인원도 제한되는데, 여러분은 미리 허가 절차를 다 마쳤으니, 들어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계단 쪽에 헬멧이 비치되어 있으니 잊지 말고 꼭 쓰시기 바랍니다. 그럼, 10분 정도 쉬었다가 출발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08-18 14:20:51
에곤이 갖가지 추태를 부린 결말이 저거라니...
겨우 저게 목표였던가요. 정말 한심하네요. 한심(寒心)이란 말이 "마음을 차게 하다" 라는 뜻이니 냉기능력에 당한 그 모습을 묘사하기에는 딱 맞네요. 게다가 초범이 아니었던 듯...
파라의 그림자 능력, 정말 대단하네요. 컨테이너는 물론이고 사원 전체를 넣을 수도 있다는 게...
그런 능력, 갖고 싶어지네요.
유적발굴현장이 동시에 관광지인 것인 건 확실히 새롭기도 하지만 위험부담도 만만찮아 보이네요. 아무리 안전장구를 갖추어도 그게 정말 괜찮고 또 갈 의향이 있냐고 반문해 보면 글쎄요...
시어하트어택
2021-08-22 20:14:28
에곤 나름대로는 동료들을 돕기 위해 이것저것 했지만, 애초에 그가 생각했던 목표와 실제 상대가 달라져 버렸으니 나름 예정된 결과이기는 했죠.
우리나라 같으면 유적 발굴 현장 같은 곳은 대개 통제가 이루어지고 언론 등을 통해서 공개하는 게 일반적인데, 저곳은 민간에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저렇게 유적 발굴 현장도 당당히 관광 코스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는 걸로 설정했습니다.
SiteOwner
2021-09-03 23:31:39
회심의 찬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대상의 특정을 잘못해 버리니 아주 황당한 상황이...
이게 실제상황이라면 진짜 큰일납니다. 자칫하면 적을 공격하려다 적에 공격당해서 당장 앞날을 도모하기 힘들어져 버리고 말아 버리니까요.
이렇게 정신없는 관광지, 저라면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일단 쾌적해야 하는 게 전제니까...시어하트어택
2021-09-05 20:31:48
공격할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그걸 확인조차 하지 않고 공격을 가했으니 에곤 자신을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습니까.
테르미니는 현실에 있다면 정말 훌륭한 관광지입니다. 돈냄새 맡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달려들어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