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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초능력자가 수상하다!] 23화 - 도서관의 작은 불씨(2)

시어하트어택, 2024-09-25 07:49:02

조회 수
107

광포화된 비둘기는 이제 물을 다 마시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예담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아마 지금이 처음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로 초능력을 사용하는 건 말이다.
“그래, 마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쭉 들이키라고...”
예담의 그 바람대로, 광포화된 비둘기는 물을 한창 들이켜고 있다. 다 마시면 아마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흉포함을 자랑할 것이다.
“그르르...”
그렇게 먹이를 덮치기 전의 포효라도 하는 것처럼 으르렁거리더니, 다시 물을 마시는 비둘기.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르르륵...”
금세, 그 비둘기의 울음소리는 당황으로 바뀌더니, 이내 작열의 고통을 참는 소리로 바뀐다. 한순간에 물컵 안의 물이 펄펄 끓고 있다!
부리를 물컵에서 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머리를 처박고 있어서 막 거기에 고꾸라지기 직전이다. 거기에다가 비둘기가 이미 마신 물도 끓고 있다.
“하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담은 안도한다.
“자기 분수도 모르는 녀석인데 저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쌍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물컵 옆에 쓰러져 가쁘게 숨을 쉬는 비둘기를 보며 말한다. 비둘기는 뜨거운 물 때문인지 움직이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미안해. 그런데, 나도 살아야 했다고!”
그리고 이걸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생각나는 건 메이링.
“아, 가만 있자. VP재단의 그 변호사님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어디, 번호가... 번호가...”

그로부터 조금 지난 시각, 미린고등학교 운동장.
“어, 선배님? 오늘은 또 뭘 하게요?”
운동장 한쪽에서 방송부장 아멜리와 만화부장 윤진이 마주친 모양이다. 둘 다 동아리 비품을 자기네 동아리방으로 가져다 놓던 참이다. 고작해야 만화책 몇 권, 피규어 정도이고 혼자 나온 윤진과는 달리, 아멜리는 방송장비뿐만 아니라 경품도 가져가는 것 같고, 또 후배들도 카트를 끌고 있다.
“어, 작은 이벤트를 한번 해 볼까 하고! 금요일 같을 때 한 번씩 이벤트 하는 것도 괜찮지!”
그 말을 들은 윤진은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건지, 아니면 그저 무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말한다.
“선배님,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데, 이렇게 씀씀이가 크면 부모님이 뭐라고 안 그러세요? 저번에 경품 추첨 행사에 펑펑 써대고, 지금도 또 하려고요?”
아멜리는 잠시 말이 막히기라도 한 건지, 잠시 먼 산만 바라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아멜리는 지금 벌어진 상황에 위화감을 느낀 건지,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방금 벌어진 일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앰프가... 그러니까, 방금 전만 해도 있었는데 어디 갔지?”
카트에 실린 앰프가 마치 지우개로 지워진 것 같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지고 있다. 그것도 마치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장비의 아랫부분이 점차 사라지는 게 보인다.
“조셉, 이게 뭐지? 지금 내가 봤을 때는, 초능력자가 또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적이 한두 번인가요... 저번 경품 행사 때도 이상한 애들 좀 있었는데.”
조셉이라고 불린 후배는 마치 자신이 아멜리의 선배라도 되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왜 있잖아요? 이상한 사고 치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는 애들 말이죠.”
“우리 학교가 이런 학교가 아닐 텐데.”
“뭐, 어느 집단이든 적어도 100명 중 한 명은 꼭 이상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안 그런가요?”
아무튼, 다들 누군가가 장난을 치고 있음을 인지는 한 건지, 그 초능력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윤진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모양이다.
“안젤로가 말했어요. 이런 능력을 써서 장난을 치는 녀석이, 요즘 들어 한층 더 심하게 장난을 친다고요. 키가 좀 많이 작은 것 같던데...”
“안젤로? 그 애, 은근히 많이 엮이네. 그 녀석 누구냐? 잡히기만 해 봐.”
아멜리 역시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한 듯하다. 그런데, 아멜리의 눈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응? 저 사람들은 또 뭐냐?”
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 몇 명이 비닐백 같은 것을 들고 교문 안쪽으로 들어서는 게 보인다. 교직원과도 인사를 나누고,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 사라져 가던 앰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그 사람들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뭐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윤진 역시, 그 사람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저런 복장을 한 사람들을 본 건, 우연히 군부대의 화생방 훈련 시연 모습을 봤을 때 정도다. 아멜리가 그때, 누군가에게서 어떤 연락을 받은 모양이다.
“어... 여보세요? 예, 그러니까, 도서관에...요? 알겠습니다. 한번 가 보죠.”
아멜리는 그 길로 바로 도서관 쪽으로 달려간다. 그 뒷모습을 보던 조셉이 말한다.
“정말 알 수 없다니까... 아멜리 선배님은 말이야. 한편으로는 저렇게 이것저것 다 챙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엉뚱하기까지 하고.”
“야, 너 선배님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돼!”
“윤진 선배님도 참, 알면서.”

약 5분 후, 도서관 한쪽에 차단선이 쳐졌고, 거기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비닐팩 안에 그 문제의 컵과 비둘기를 넣어서 나오고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계수기 같은 것을 도서관 창문과 벽 이곳저곳에 대고 무언가를 측정하고, 거기에다가 소독까지 하고 있다.
“아니, 저기에 든 건 도대체 뭐죠?”
도서부장 리하르트가 도서관을 나서는 아까의 그 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사서 선생에게 묻는다.
“도서관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도서관에요?”
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러 온 세훈 역시, 무언가 떠올리려 하다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비닐백을 보자마자 무언가 생각난다.
“저 컵... 비둘기... 잠깐, 어제...”
그걸 떠올리자마자, 세훈은 곧바로 어제 있었던, 서가에서의 소동까지 모조리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저것... 설마... 그러면...”

한편 그 시간, 민준은 도서관으로 가는 복도에서 숨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하... 어제 그 선배가 그걸 마신 게 아니었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어제 조금 실수를 하기는 했건만, 분명히 민준은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터다. 그 알약 역시 그 의뢰인이 직접 준, ‘특제 알약’이라고 들었다. 효과는 확실하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담은, 도서부원들 사이에 끼어서 멀쩡히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거기에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충 짐작까지 한 듯하다.
“저 선배... 왜 멀쩡하게 있는 거야? 그 물을 조금이라도 마셨으면... ‘그 효과’가 나타나야 할 텐데!”
민준은 믿기지 않았는지 그 자리에서 그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투명화 능력이라도 없었으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마도, 민준의 거친 호흡 때문에 주위에는 바람 새는 소리 같은 숨소리가 들리고 있다.
‘후... 참아야... 참아야 되는데...’
그때, 리하르트가 민준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가만, 여기 왜 이렇게 노이즈가 낀 것 같냐? 아무래도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리하르트는 벌써 코앞까지 왔다. 민준이 아무리 숨을 죽여도,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애초에 체격 자체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좋아... 그렇다면!”
민준은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강하게 리하르트의 오른쪽 다리 정강이를 걷어찬다.
“어엇!”
정강이를 강하게 걷어차인 리하르트가 순간 비명을 지르고, 민준은 또다시 잽싸게 뛰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민준은 또다시 어제의 그 산책길 쪽으로 와 있다. 이번에는 한참 수업중인 시간이고, 몇 시나 됐는지도 모른다는 차이가 있지만.
“어, 뭐야... 지금 몇 시지...”
그렇게 보니, 시간은 어느새 10시 55분. 수업을 시작한 지는 훨씬 지난 시간이다. 벌써 친구들의 메시지도 몇 개나 와 있고, 그중에는 알람 기능이 들어간 메시지까지 있다. 황급히 그걸 닫는다.
“맞다, 들어가야지!”
그렇게 자기 머리를 한 대 치고서는 얼른 교실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숨이 거칠어지고, 그것 때문인지 자꾸만 투명화 효과가 풀리려고 한다. 여태까지 민준이 투명화 능력을 사용하면서 그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제된 적은 없었다.
“얼른 들어가야 돼... 들어가야 돼...”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만 들려온다.

그리고 잠시 후, 미린초등학교 5학년 E반 교실.
“자, 여기를 보면...”
E반 담임선생이 E반 학생들을 앞에 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지금 보여주는 건 하나의 도표인데, 수학 공식 자료인 듯하다. 교실 안은 한 사람의 자리만 빼고 다 차 있다. 그게 바로 민준의 자리다.
그때, 뒷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어, 저. 선생님...”
“아니, 민준아, 왜 이제 들어와? 아까 친구들이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화장실이 급했어요!”
민준은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른다. 동급생들이 민준의 그 소리를 듣자 낄낄대며 웃지만, 민준은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민준은 조금 전까지 마치 목숨이 오가는 것 같은 상황을 겪었다. 거기서 벗어났다는 데 안도할 뿐이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편다. 더 큰 무언가가 민준에게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데?”
오전 수업이 다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민은 옆 H반의 부반장 마야를 찾아간다. 민 역시도 도서관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지만, 마야는 도서부원이어서 거기에 대해 뭔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까...? 도서관에?”
마야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고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잘 모르는데, 무슨 방호복 같은 거 입은 사람들이 비닐봉지에다가 컵하고 비둘기 한 마리를 넣어서 가져가는 것 같더라?”
“비둘기...?”
마야의 그 말이 조금은 믿지 못하겠는 건지, 민은 되묻는다. 어느새 주위에 모여든 몇 명의 동급생들도 마야의 입에서 나올 말을 주목하기라도 하는지,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마야, 그걸 우리보고 믿기라도 하라고?”
“그러니까. 나는 못 봤는데? 그 흰 옷 입은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뭐 하러 왔다 가냐?”
그리고, 그 광경을 불안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민준.
‘아니, 왜 다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 보기로 한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5 댓글

마드리갈

2024-09-26 11:07:32

괴이한 현상이 장소를 가리지 않네요. 이러다가는 미린이 못된 초능력자들이 폭주하는 마굴이 될 듯...

예담을 습격한 비둘기도 결국 누군가의 조종으로 그렇게 된 것이고, 아멜리가 목격한 괴현상 또한 자연적으로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고, 급기야 방호복을 입은 요원들까지 출동했군요.

결국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민준의 얕은 꾀가 저런 소동을 만들어내네요. 무슨 보람이 있는지.


그런데 인명 중 "마야" 와 "미야" 가 혼재되어 있네요. 문맥상 같은 사람 같은데, 둘 다 도서부원 마야를 칭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따로 언급되어 있지 않은 미야라는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것인지 확인을 부탁드려요.

시어하트어택

2024-09-26 11:46:01

동일인물로 오타는 수정했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4-09-29 21:33:46

비둘기가 저렇게 된 경위를 추적하려면 결국은 저 의문의 알약의 출처를 찾아야겠죠. 그걸 찾으면 추적은 더 쉬워집니다. 그 배후가 아직 표면상으로 나온 건 아니지만, 방심은 금물이겠죠.

SiteOwner

2024-09-26 23:24:58

역시 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다 이번에는 아예 방호복을 입은 요원들이 와서 문제의 비둘기와 컵을 회수하기까지 했으니 이 소동이 없는 것으로 희석되기란 당분간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민준의 저런 사고방식은 계속 자신을 위험에 몰 게 뻔한데 저렇게도 자각이 없는 건가 싶습니다. 나이가 방벽은 아닐 것입니다.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은.

시어하트어택

2024-09-29 21:35:31

민준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기는 했지만, 그의 주체 못하는 성격 역시 크게 작용하고 있죠. 저런 성격으로 이런저런 사고를 치고 다니다 보면 끝에는 자업자득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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