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tbomb Sparketti - 고기폭탄 발파게티
"그렇다는 거요."
"뭐가 말입니까?"
존 휘태커John Whittaker가 심드렁하게 되묻자 참을 만큼 참은 상대방이 화를 터트렸다.
"지금까지 뭘 들은 거요! 그 자식이 공권력을 이용해 내 음식점을 짓밟았다고 하지 않았소!"
"아아, 실례. 장황한 이야기는 싫어해서."
"그렇다고 해도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 할 것 아니오!"
"그래요?"
상대방은 존의 심드렁하다 못해 무심한 태도를 보자 탁자라도 뒤엎을 듯 벌떡 일어섰지만, 존의 싸늘한 눈빛과 태도를 보자 그새 수그러들었다. 상대방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침묵을 지켰다. 존이 먼저 안달을 내서 침묵을 깨도록 유독할 셈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이야말로 존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다. 존으로서는 이렇게 날뛰는 의뢰인보다는 순순히(?)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는 의뢰인이 더 나았다. 보수가 적더라도 얼른 작업을 끝내고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지만 결국 상대방, 즉 의뢰인이 먼저 침묵을 깨고 말았다.
"알았소. 그럼 용건만 간단히 얘기하지. 그 썩을 놈한테 이것을 보내주시오."
의뢰인은 들고 온 플라스틱 서류가방을 탁자 밑으로 내밀었다.
"뭡니까, 이건?"
"그 자식한테 보내는 나의 선물이오."
"오, 무게가 좀 나가는군요. 내용물은 뭐죠?"
"말할 수 없소. 그냥 놈에게 전달해 주면 알 거요."
"뭐냐고 물었습니다."
존이 아까처럼 싸늘하게 나가자 의뢰인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놈의 짓거리에 대해 내가 그동안 모아온 증거요. 정확히는 복사본. 영화에 많이 나오잖소? 놈이 잘못을 털어놓지 않으면 내가 매스컴에 뿌려버릴 셈이오."
"그렇군요. 확실하겠죠?"
"이 이상 숨기지 않겠소. 나는 그 공무원이라는 놈들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소. 집, 직업, 가족! 이 이상 뺏기고 살 순 없소. 나는 그 자식에게만큼은 꼭 복수하겠소!"
"네네, 알겠습니다. 이걸 그 썩을 놈... 누구라고 했었죠?"
"내 말을 무슨 콧구멍으로 듣는 거요! 아서 W. 스콧Arthur W. Scott이라고 했잖소!"
"새겨 들었습니다."
존은 무심하게 얘기를 듣고는 보수에 대해 설명했다. 의뢰인은 이번에도, 하지만 정당하게 화를 냈다.
"사람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서 돈은 받아 처먹겠다니, 공무원 놈들이랑 다른 게 뭐요?"
"일을 제대로 한다는 거죠."
"공무원 놈들도 늘 그렇게 얘기하지. 그리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항상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같은 개소리나 지껄이고. 보나마나 당신네도 그럴 거 아니오?"
"그건 좀 실례 아닙니까."
"흥, 방금까지 개같이 무시해놓고. 아무튼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반드시 처리하시오."
"알겠습니다."
의뢰인이 자리를 떠나자 존이 말없이 앉아 있다가 물었다.
"지금쯤이면 끝났겠지."
"어떻게 알았어?"
존과 의뢰인이 만났던, 중국식으로 꾸며진 방의 병풍 뒤에서 자홍색 치파오를 입은 여자가 노트북을 들고 걸어나오며 물었다. 키아라 토Kiarra To는 존이 거래를 튼 수많은 정보상들 중 하나였다. 이 바닥에서는 정보상들과 대개 직접 만나는 일이 없는데, 대개 특정 집단에 소속되거나 고용되기 때문이었다. 411로 전화번호를 물어보듯이 정보를 요구하고 요금을 나중에 청구받는 핫라인이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 앞서 말한 집단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검색을 논하면 구글이 곧바로 떠오르듯, 정보에 대해서는 소수의 선택받은(?) 집단들이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외에도 정보상이라 할 사람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도매점과 소매점의 관계처럼 규모의 차이만 다를 뿐이었다. 키아라의 경우는 소매점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존과는 그럭저럭 친해서 서로를 자주 '애용(?)'하는 관계였다. 존의 앞에서 나이(그녀는 곧 대학교 입학을 알아보고 있었다)에 어울리지 않는 인공적인 관능미를 뽐내는 것만 빼면.
"그런 거 좋아하잖아, 숨어서 하는 거."
"어머, 난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는데?"
키아라가 탁자에 올라앉아 유혹하듯 손을 뻗었지만 존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만. 여긴 음식점이지 홍등가가 아니야."
"흥. 너는 항상 멋대가리 없더라. 여자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얼씨구나 하고 달려들어야지."
"홍등가는 여기서 두 블록이야."
"난 비싼 여자거든?"
"그만하고, 뭘 알아냈어?"
존이 무표정하게 묻자 키아라도 포기하고는 노트북을 두드리며 읽었다.
"대런 코제니오프스키Darren Kozeniovski. 나이 40세. 아까도 얼핏 봤지만 생김새가 완전 퇴물이네. 아내랑 딸이 있는데 이혼해서 따로 살고. 밤에 안 '서나' 봐. 집은 융자담보로 뺏겼고, 직업은 이것저것 전전하다가 음식점을 하고 있고. 딱히 더 알아낼 게 없는데?"
"그 사람의 주소는?"
"로진스카 로드, 13번지. 우와, 번지수까지 재수없어."
"개인 의견까지 안 물어봤다."
존의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가 담겼다. 키아라도 얼른 눈치채고는 말을 돌렸다.
"네네, 적당히 할게요, 주인님. 더 궁금한 건?"
"그 고쟁이... 뭐시기가 노리는 사람."
"아서 W. 스콧? 나이 38세. 이 사람도 퇴물이네. 시청에서 일하는 하급 공무원이야. 가족이나 형제 없이 혼자 살고, 부모님은 캘리포니아에 산다네. 주소도 알려줘?"
"당연한 거 아냐?"
"워딩턴 스트리트 35번지. 내가 알기로 여긴 거지 동네인데, 공무원이 적게 버나?"
"계급이 짱먹는 너네 나라하고는 절대적으로 다르지. 방금 그 사람이 공무원 욕을 한 것도 어느 정도 공감은 가."
"나는 홍콩 출신이거든요?"
"거기나 거기나 똑같지 않아?"
"홍콩이 어느 나라의 지배를 받았는지는 알아?"
"지배를 받았었어? 거 참 안타깝네."
키아라는 말없이 존을 바라보았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무식한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생각했지만 아닌 모양이었다. 키아라는 탁자에서 내려오며 한숨을 쉬었다.
"됐어, 더 말하고 싶지도 않네. 어쨌든 더 궁금한 건 없지?"
"없어. 수고했다."
"그 가방엔 뭐가 들었다고? 증거? 대체 얼마나 모았길래 그렇게 크대?"
"증거는 무슨, 거짓말이지."
존은 코제니오프스키가 건네준 서류가방을 탁자 위로 올리고는 열었다. 키아라도 가방 안에 있는 것을 보려고 존의 뒤로 돌아갔다. 내용물은 일단 종이가 아닌 전자기기였다. 그렇다고 CD나 하드드라이브도 아니었다. 키아라는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리려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노트북을 떨어트릴 뻔했다. 키아라가 더듬더듬 말했다.
"...이런 거 처음 봐."
"나도 이런 건 오랜만에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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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의뢰, 즉 리퀘스트를 받은 내용을 구체화한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전개 과정에 대해선 딱히 문제가 없었는데, 오히려 의뢰인과 목표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부분에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영화나 다른 작품처럼 정보상에 해당하는 캐릭터야 만들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을 글로 묘사한다는 것은 많이 어렵거든요. 물론 창작물이 그렇듯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로 일관해도 되겠지만, 정보상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캐릭터가 확고할수록 새로 엑스트라를 꺼내들 필요 없이 계속 우려먹으면 되니까요. 저 '키아라 토'라는 캐릭터는 오랜만에 시도하는 주연급 여성 캐릭터입니다. 창작물이니까 비현실적이어도 괜찮겠다 싶지만, 그래도 성격을 만들어 내려니 항상 어렵네요;;;
그거 알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유야 어쨌든 고독을 즐겨서 그러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계속 실망해서 먼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는 거야. - 조디 피코
4 댓글
마드리갈
2018-04-16 20:23:19
묘사된 상황이 뭔가 기묘하게 코믹하네요.
첫번째 장면은 거친 말이 오가긴 하지만, 그래도 거래는 성립했으니 일은 해 주겠다는 게 드러나는데, 저렇게 툴툴거리지 않고 그냥 조용조용한 게 더 무섭겠다 싶네요. 저 상황을 실제로 본다면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꾹 막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두번째 장면은 미모의 여성 정보상이 등장하고 있네요. 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어떤 캐릭터인지 구체적으로 연상되고 있어요. 듀라라라의 오리하라 이자야같이 능글맞은 정보상인데 성별만 다른...적절하게 묘사되었다고 보여요.
대체 서류 가방 속에 든 게 무엇인지, 다음 회차가 궁금해지고 있어요.
Lester
2018-04-18 18:06:36
원래 예전에 글을 썼을 때는 흐름에 상관없이 대부분 우울하거나 심각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뭐 제가 잘 쓰는 편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고 옛날의 명성(???)에 의지해봤자 사람이 성장을 못하기에 완급조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최근에 본 미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저도 모르게 심각한데 웃긴 장면을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캐릭터는 정말 새로운 시도를 해본 케이스입니다. 제 모든 글쓰기에서 정말 몇 안 되는 '자기 주장대로 살아가는 여캐' 중 하나네요. 다른 여캐들은 엑스트라이거나 남들의 결정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캐릭터가 생생해야 스토리를 이어가기 쉽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는 막장 소리를 듣더라도 이야기가 전개되는 쪽으로 끌고 가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정보상으로만 활용하면 얼굴을 비추기 힘드니, 뭔가 더 떡밥거리를 달아봐야겠네요.
서류가방에 든 것은 의외로 별 게 아닙니다. 아마도.
SiteOwner
2018-04-20 23:38:34
본격적으로 뭔가가 전개되려 하는 것 같군요.
그리고 오가는 말이 좀 막 뱉는 것 같아도, 최소한 듣기 좋은 거짓말보다는 수십 배는 나은 것 같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대런 코제니오프스키는 사정이 많이 불운하군요. 최소한 저는 저 상태가 아니니 안심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
키아라 토는 여러모로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잘 만든 캐릭터같습니다.
그런데 문장의 호흡이 약간 긴 것 같군요.
설명을 넣을 때에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도 있기에 제언을 해 봅니다.
해당 부분은 이것입니다.
"존의 앞에서 나이(그녀는 곧 대학교 입학을 알아보고 있었다)에 어울리지도 않는 관능미를 뽐내는 키아라는 소매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걸 약간 간결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게 해도 되겠군요.
"그 중에서도 그녀는 소매점 격으로, 대학 진학이 목전인 나이로 안 보일 관능미가 존 앞에서 빛나고 있었다."
Lester
2018-04-21 11:42:01
사실 이 에피소드는 모 님의 리퀘스트를 받아서 연재한 내용이기 때문에, 일종의 DLC마냥 전체 줄거리와는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뭐, '키아라 토'라는 캐릭터는 잘만 되면 우려먹겠지만요. 저도 때에 따라선 듣기 좋은 거짓말보다 돌직구가 낫다고는 생각하지만, 글쎄요... 지금 같은 시대(?)에선 좋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려했던 것보다 좋게 보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해당 부분은 미리 써놓은 문장에 새로 '캐릭터에 관한 서술'을 추가하다 보니까 호흡이 좀 길어졌네요. 캐릭터 묘사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늘어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몇 개의 문장으로 나눠서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