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창작물 또는 전재허가를 받은 기존의 작품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 EP32.jpg (258.4KB)
수민은 식은땀을 흘리며, 남자가 방금 사라진 자리와 벌벌 떨고 있는 미터마이어를 번갈아 본다. 그런데, 카르토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카르토, 너는 왜 웃어?”
수민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카르토를 향해 소리높여 말한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진정해, 진정하라고.”
카르토는 태연히 말한다. 수민은 카르토에게 달려든다.
“이 상황에 진정이 되냐고!”
“제 말 좀 들으십시오, 수민 씨.”
미터마이어가 카르토에게 달려들려는 수민을 잡는다. 수민은 흥분을 풀고 미터마이어를 본다. 그런데, 미터마이어는 금세 원래의 얼굴로 돌아와 있다. 사색이 된 방금 전의 표정은 어디 가고...
“이건 모두 작전입니다.”
“자... 작전...”
“그렇네, 수민 군. 우리 모두가 무사히 여기서 탈출하고, 론도 녀석에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최대한의 타격을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작전이지. 더 이상의 희생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네.”
수민의 뒤에서, 카림의 차분하면서도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가 들린다. 수민은 그제서야 조금은 흥분을 푼다.
“그래... 작전은 작전인데... 그... 미터마이어 씨, 당신의 후배들은 어디에...”
“흠... 여긴가 보군.”
한편 바로 그 시각. 남자는 반대편의 사막 지대에 서서,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며 말한다.
“아무래도 이제 ‘특전대’를 부를 때가 된 것 같군. 안심하고 있는 참에 급습해서, 최고의 절망을 주며 죽이기에는 특전대가 딱이지. 그 전에, 그 두 녀석은 내 손으로 직접 없애서 퇴로를 차단해야지.”
남자의 눈에, 사람 2명이 바로 들어온다. 약 30m쯤 밖에 떨어져 있고, 한밤중이라 어둡게 보이기는 하지만, 둘 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확실하다. 그 발레리와 조셉이라는 자들이다! 남자는 바로 발레리와 조셉이 있는 곳으로 간다. 공간을 접으면 금방이다.
“자! 이렇게 금방이다. 너희들도 이제...”
그런데!
“어... 뭐지?”
발레리와 조셉은, 또 남자와 3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태연히.
“이 녀석들,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딱 봐도 애송이 녀석들이던데, 그럴 리가...”
남자는 다시 공간을 접고 발레리와 조셉이 옮겨간 자리로 이동한다. 그런데, 발레리와 조셉은 또다시 남자의 시야에서 30m 떨어진 거리에 있다! 마치 어떤 곳에 서로 묶여서 움직이는 것처럼, 발레리와 조셉은 남자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로 추격전을 벌인다. 그렇게 몇 번을 움직였을까. 아직도, 발레리와 조셉은 여전히 그대로 거리를 벌리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30m의 거리를 두고 있는 발레리와 조셉을 뒤쫓지 않고 노려보며 말한다.
“너희들의 능력은 잘 알았다. 하지만 너희에게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해 주었을 뿐, 그것 외에는 아무런 보람도 없었군.”
남자는 살의를 띤 강력한 에너지를 손끝에 모아 지면으로 흘려보낸다.
“이걸로 너희들은 끝이다.”
잠시 후, 발레리와 조셉이 있던 자리에서 큰 폭발이 일어난다. 마치 어깨에서 짐 하나를 덜어낸 듯, 남자는 팔짱을 끼고 후련하다는 듯 폭발이 일어난 자리를 연기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이윽고, 폭발의 연기가 다 사라진다. 그런데...?
“어, 어째서냐? 어째서...”
또다시 30m 밖에, 발레리와 조셉이 서 있다. 그것도, 아주 태연히!
“하지만 두 번 나를 속이지는 못한다!”
다시 한번, 남자는 손끝에 에너지를 모아 날린다. 또다시 발레리와 조셉이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의 연기가 사라지고, 이번에는 발레리와 조셉이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는 그제야 다시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손바닥 안이지.”
한참을 웃으며 폭발이 일어난 자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남자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간다.
“아, 그 녀석들! 그 녀석들을 마저 잡아야 하는데!”
남자는 아까 지하 갱도에서처럼, 또 발을 구르고 씩씩거리려다, 수민 일행이 있을 곳을 뒤돌아본다. 하늘에서 뭔가 내려오는 것 같다. 자세히 본다. 우주선이다. 조금 작아 보이지만, 6명 정도는 거뜬히 태울 수 있는 우주선이다.
“아, 이제 특전대를 부를 필요도 없겠군.”
남자는 다시 자신감을 찾은 목소리로 말한다.
“네놈들의 수작은 잘 알았다. 어디 갈 테면 가 봐라. 잠시 후면 그 실낱같은 희망도 저 용암에 녹아버리듯 사라질 것이니.”
한편, 수민은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본다. 아무리 돌아봐도, 발레리와 조셉은 보이지 않는데...
“미터마이어 씨,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당신의 후배들은?”
카르토가 수민의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아, 미터마이어의 후배들? 여기 있어.”
카르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민의 발 바로 앞에서 암청색의 공간이 입을 벌린다. 그 안에서, 발레리와 조셉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아... 입안이 다 마를 정도였어요, 선배님.”
“너희들, 거기서 안 떨렸어?”
미터마이어는 오히려 후배들의 안부부터 묻는다.
“떨리긴요. 오히려 선배님이 더했겠죠.”
“그 녀석은요?”
“일단 내가 주의를 좀 돌렸어. 이제 이 근처에 숨어 있는 셔틀을 찾으면 돼.”
“주의를 돌렸다니, 그건 그것대로 다행인데...”
수민은 아직 경계를 풀지 않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녀석이 금세 눈치채 버리면 어떡하지? 금방 이리로 올 거 아니야!”
“잘 들어.”
카르토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이건 호렌이 기획한 작전이니까.”
“호... 호렌이라고?”
“맞아.”
“아까 그 우주선 신호는? 그것도 호렌이 가져다 놓은 건가?”
카르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어떻게 가져다 놓은 거지? 그것보다도, 어디 있는지 영 안 보이잖아!”
“저기 보이는 것 같군.”
카림이 손가락으로 정제공장과 저장고의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말한다. 하지만 수민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보인단 말인가?
“한번 금속 감지 스캔을 해 보라고.”
수민은 AI폰을 꺼내 스캔을 해 본다. 과연, 카림이 가리킨 자리에, 우주선의 윤곽이 보인다. AI폰을 치워 본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눈앞으로 AI폰을 가져간다. 다시, 눈앞에 우주선의 윤곽이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수민이 의아해하며 어쩔 줄 몰라 서 있는 찰나, 카림이 수민의 손을 잡아끈다.
“지금 한시가 급할 때야! 일단 타라고! 자세한 건 탈출하고 나서 말할 테니!”
카림은 한참 뛰다가 뒤를 돌아본다. 카르토와 미터마이어 일행은 그제야 카림을 따라 뛰기 시작하고 있다.
“뭐해? 너희들도 어서 뛰어!”
수민 일행의 반대편. 남자는 팔짱을 끼고, 조용히 정제 공장과 착륙장 쪽을 응시한다. 우주선은 이제 착륙했고, 사람 몇 명이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주선이 지금 막 착륙한 모양이군.”
사람들이 한 명 한 명씩 우주선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모두 우주선에 타기까지는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이윽고, 6명이 모두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자, 우주선 문이 닫힌다. 곧바로 엔진이 작동하는 모습이, 멀리 떨어진 남자의 눈에 훤히 들어온다.
“도망치려고? 무의미한 짓이다.”
그의 오른손에서 또다시 살기를 띤 파동이 형성되고 있다. 이윽고 그 이글거리는 불꽃과도 같은 파동은 남자의 전신을 가득 두르고, 푸른빛을 띤다. 남자는 오른손을 뻗어 이륙하려는 우주선을 겨눈다.
“잘 가라.”
푸른빛의 파동은 3초도 안 되어 이륙하는 우주선을 덮친다. 그런데...
“어? 뭐야.”
파동은 이륙하는 우주선을 그냥 지나친다. 폭발도, 뭣도 없이. 그러나 다음 순간...
펑-
지각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폭발이 일어난다.
“그럼 그렇지.”
남자는 비웃음을 섞어 말한다. 하지만 잠시 후.
“잠깐... 방금 터진 건 뭐였지?”
폭발의 연기는 금세 걷히고, 뭔가 불타고 있는 게 드러난다. 뼈대만 남아 불타고 있는 것... 남자는 알아챈다. 베라네 저장고와, 정제 공장이다! 남자가 수백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보수해 왔고, 특히 그의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시설이며, 그것도 이곳 단 한 곳뿐이다. 그 시설이 지금,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있다!
“이... 이건...”
남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불타고 있는 시설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이건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애써 부정하려 하나, 이것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의 몇백 년에 걸친 수고가, 다름 아닌 그의 손으로 허망하게 날아가 버린, 이 현실이.
“네놈들... 특히 김주경과 김수민 놈들... 영원히 잊지 않을 테다... 가장 고통스러운 저주를 네놈들에게 내릴 테다!!!”
남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주가 가득 섞인 말을 내뱉으며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뿐이다.
“겨우 벗어났군요.”
셔틀 안에, 수민 일행과 미터마이어 일행이 모여앉아 있다. 수민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창밖에 보이는 가네샤 행성을 내려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자네 심정은 잘 아네.”
카림은 수민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리고 론도 녀석이 앞으로 자네한테 어떤 걸 할지도 잘 알지. 그래서 더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괜찮아요. 혼자서도 이겨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민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왜 너 혼자야. 나도 있고, 여기 카림 씨도 있잖아.”
카르토도 수민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주경 씨는 안타깝게 됐지만, 우리는 판을 바꿨어. 결국, 녀석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데도 성공했고.”
수민은 눈물을 참아 보려 하지만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그건 그렇고, 호렌과 아이샤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잖아.”
수민이 카르토를 돌아보며 묻자, 카르토는 말없이, 우주선 안의 모니터를 켠다. 잠시 후, 모니터에서 호렌의 얼굴이 나온다.
이걸 볼 때쯤이면, 너희들은 내가 만든 환각 안에서 셔틀을 무사히 찾아 탈출에 성공했을 거야. 나와 아이샤는 또 다른 셔틀에 타고 먼저 길을 떠났어.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수민이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됐어. 따지고 보면 내가 끌어들인 건데, 잃은 게 너무 많았지.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정말 미안해.
당분간은 못 볼 거야. 하지만, 신이 허락해 준 이 우주 안에서라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거야. 나는 언제건 등불을 밝혀 놓고 있을 테니, 너희들도 내가 찾아갈 때면 너희들이 가진 등불을 밝혀 주기를 바라. 그럼 이만.
영상을 다 본 수민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저는 이제 어느 길을 가야 할지...”
“김수민 씨.”
미터마이어가 수민의 어깨를 짚으며 말한다.
“네... 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면 됩니다. 그거면 돼요.”
“감사합니다...”
수민은 울먹이며 모두를 돌아보다가, 창밖을 다시 내다본다. 어느새, 가네샤 행성은 보이지 않는다.
-----
이제 에필로그 2편만 남았네요.
에필로그는 2편인데, 짧습니다. 그리고 전작과 후속작의 연결고리를 살짝 보여 줄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2 댓글
마드리갈
2019-12-10 17:10:32
이 거대한 작전은 호렌의 기획이었군요. 게다가 호렌은 아이샤와 함께 먼저 길을 떠났다지만, 그 먼저 떠난 길이 무엇인지,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길은 아닐지...
영상편지는 여러모로 마음이 아프죠. 지금껏 본 국내외 영상물에서 접한 영상편지는, 비록 영상 속의 인물은 최대한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메시지를 남겼지만 보는 사람들은 아무리 감정을 억눌러도 절대로 억누를 수 없게 되고...
SiteOwner
2019-12-15 22:04:02
카르토의 웃음에서 역전재판에서의 아야사토 치히로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위기에 빠졌을수록 웃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의 웃음의 의미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베라네 정제공장과 저장고는 부서졌고, 그것에 공을 들였던 그의 오랜 숙원은 끝장이 났습니다. 주경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호렌이 남긴 영상편지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 당분간이 얼마나 길지는 말한 본인도 모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