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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사이트 공모전 제출을 위해 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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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내 두 눈으로 보게 된다니. 이것은 꿈인가?
내가 탄 이 성간 크루즈 우주선, ‘더 호라이즌’ 호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이른바 ‘심연의 입’이라고 불리는 곳.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그저 평범한 블랙홀 중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심연의 입’은, 확실히 사람들을 끌어모을 만한 매력이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심연의 입, 그것의 본래 이름은 ‘라그나로크’다. 왜 심연의 입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다른 블랙홀에도 충분히 붙을 법한 별명이, 유독 이 라그나로크에만 특별히 붙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추론해 보건대, 그 크기와 모양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라그나로크는 다른 알려진 블랙홀들에 비해 10배는 넘는 크기를 자랑한다. 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블랙홀에서는 보기 힘든, 마치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듯한 그 모양이, 마치 그것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우주 공간에 달려있는 입’과도 같은 인상을 주었으리라.
은하계 내 세력 간 각축의 장이 되었던 라그나로크 항성계의 역사 또한 수많은 종족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라그나로크를 공전하는 행성들에는 자원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그중에 ‘미스틸테인’이라는 행성은 풍부한 자원뿐만 아니라 거주에도 좋은 환경이라 여러 종족들이 눈독을 들이던 곳이었으며, 100년도 더 전에는 인류의 국가 ‘노이에란트 연방’과 옥타콘인의 국가 ‘라투라’는 이곳을 놓고 전쟁까지 벌였다. 그 외에도 ‘레바테인’이라는 행성은 ‘양 탐사단’을 포함한 수많은 탐험대가 실종된 행성으로 탐험가들에게 악명이 높은 곳이다.
어찌 됐든, 나는 그 심연의 입을 직접 보기를 갈망한 나머지, 본래 하고 있던 미개척 행성 ‘갈로’의 부동산 중개사무소도 내팽개쳐 둔 채로, 이른바 ‘블랙홀 덕후질’에 열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대로, 내 활발한 활동을 눈여겨본 여행사의 눈에까지 들게 되어, 이 크루즈 여행을 싼 가격에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심연의 입을 바로 눈앞에 두게 된 지금, 내 몸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많지만, 그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어쩌면 이 세계의 깊은 근원으로 들어가야 그 편린이나마 알 수 있을까 말까 한, 그런 황홀감이, 젖어 든다.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더 호라이즌 호는 잠시 후 라그나로크의 근거리 궤도에 진입합니다.”
안내방송이 들렸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관람석 쪽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를 대비해 좋은 자리에 미리 앉아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가간다, 그것에.
마침내 투명한 보호막을 두른 거대한 창밖으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이것보다 더 불타오른 적이 있단 말인가?
그것이, 보인다.
“자, 여러분! 바로 저것입니다!”
창 앞에 선 승무원이 승객들을 향해, 나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십시오, 여러분 앞에 보이는, 고고하고도 찬란한, 마치 황혼과도 같이 빛나는, 저 블랙홀, 라그나로크를!”
?
이 순간! 모두가 기다려 온 이 순간! 관람석에 앉은 모두가,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라그나로크를 담고 있다. 사진을 찍든, 동영상을 찍든, 인공지능으로 저장하든, 아니면 나처럼, ‘능력’을 사용하든. 그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나 빼면 한 명뿐이지만. 살짝 보니, 그 사람의 능력은 내 것과는 판이하였던 것 같다. 고정대나 와이어 같은 것도 없이 카메라들을 공중에 고정해서 썼는데, 내 능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시간을 몇 번이고 되감을 수 있는 내 능력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무튼, 라그나로크를 담아내는 데 내 온 정성을 다 쏟다 보니 도대체 바깥의 시간이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것은, 마치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뭔가 갑자기 기우뚱하는 느낌.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은 잠시 들었다. 왠지 모르게 그 심연의 입에 너무 가깝더라는 걱정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단지 블랙홀을 감상하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내 본능으로부터 온 그 경고를 무시해 버린 게 큰 잘못이었다.
그리고 보았다. 사람들의 몸이 바닥에서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을. 그리고 들려오는 승객들의 울부짖음과 고함, 흐느낌.
내 몸도, 점점 바닥에서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것은 사건의 지평선에 다다르기 위한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한순간 보였다. 단 한 사람, 흰옷을 입은 중년의 여성이 바닥에 여전히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것을. 공중에 떠다니는 승객들과 승무원 모두의 눈이, 그 여성에게 쏠리는 것도. 보니, 내 옆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이었다. 여성의 입은 힘겹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공중에 뜬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그냥 떠다니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발 또한 바닥에서 막 떨어지려는 그 상태 그대로였다.
“이봐요, 당신!”
그 여성이, 나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당신도 능력이 있지?”
“아... 그건...”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분명, 그 여자는 내가 능력을 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터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을 것이다.
“빨리 뭐라도 해 봐요! 여기 사람들 떠다니는 거 안 보여요?”
그 순간, 나의 저 깊은 곳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왜 고개를 그렇게 흔들어요?”
나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시간을 되감는 능력을 처음 깨달았을 때, 내 능력은 바로 조금 전과 같은, 내 삶에 길이 남을 그 순간들을 더욱 오래 느껴 보기 위해 쓰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건, 고작 이렇게 위기를 벗어나자고 능력을 쓰는 것이, 너무도 같잖았고 값싸 보였기 때문이다. 초능력을 얻어 자신의 부와 영달을 위해 쓰다가 몰락해 버린 경우를 숱하게 보아 온 나로서는, 그런 용도의 사용은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남들은 억지라고 하고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그게 지나쳐서, 지금 같은 상황에 와서도 이런다는 게 문제지만...
내가 본 그녀는, 조금은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분명히 희망은 있었다. 그녀의 힘은 매우 압도적이었다. 점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이 상황 속에서도 두 발을 바닥에 딛고 서 있을 정도라면, 분명 이 우주선 자체도 멈출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탈출도 불가능한 건 아니리라...
다음 순간, 내 희망은 여지없이 박살났다.
“안돼... 이 상황에서는... 더...”
그녀의 눈빛이 점차 흐려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힘없이 바닥에서 떨어져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뒤이어 그녀가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서 두 다리가 떨어져 갔다. 그것도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마치 자유 낙하하듯 이리저리 온몸이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우주선의 공간 안에, 사람과 사람의 몸이, 사람들과 물건들이 서로 부딪히고 있다! 뭐란 말인가, 이 참극은!
그 심연의 입이 나를 향해 점점 입을 벌렸다. 이제 ‘사건의 지평선’에 이르는 건 시간문제다...
그때였다. 심연의 입과 내 눈이 딱 마주친 그때. 한순간 느꼈다. 내 얼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근본적인 공포감과 경외감. 그것이었다. 심연의 입은 그 자체로, 나와, 이 우주선 자체를, 완전히 삼켜 버릴 듯, 압도했다. 내 몸은 공중에 뜬 채로, 내 입은 벌려진 채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눈꺼풀조차도 파르르 떨릴 뿐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 방법밖에.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던 방법. 그것을 쓰면, 분명 모두가 무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으로부터의 모든 기억은 없어질 것이다. 심연의 입을 들여다보며 밀려왔던 황홀감과 희열도 당연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싫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저마다 블랙홀을 보며 느꼈던 기억들을 없애 버리는 거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
주위를 돌아봤다. 더욱더 참혹하다. 정신을 잃은 채로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 이미 숨이 끊어진 것 같은 사람들... 거기에, 점점 가까워지는 그 심연의 입까지! 해야만 한다... 되돌려야만 한다... 10분 전으로!
...
...
...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더 호라이즌 호는 잠시 후 라그나로크의 근거리 궤도에 진입합니다.”
시계를 본다. 오전 10시 30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좋은 자리에 미리 앉아 있기를 잘했다.
다가간다. 그것에.
하지만 이상하다. 무엇일까, 이 기시감은? 분명 처음 보는 것일 텐데, 이 자주 본 듯한 느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윽고... 그것이... 보인다. 심연의 입, 라그나로크가.
그리고...
그것도, 나를 보고 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3 댓글
SiteOwner
2020-02-14 20:37:20
어우, 깜짝이야...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국내산라이츄님의 단편소설에서도 무서움을 느꼈는데, 시어하트어택님의 심연의 입도 읽고 나서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정도로...역시 이런 게 코즈믹 호러인가 봅니다.
어릴 때의 일인데, 누군가가 저를 보는 것 같은 굉장히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확인해 보니 멀지 않은 이웃집 담 위에서 고양이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무서운 존재가 아닌데도 그런데, 거대한 우주의 심연이 그렇게 보고 있다면...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건승을 기원합니다.
마드리갈
2020-02-15 23:07:20
읽다가, 텍스트만으로도 무서울 수 있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어요.
뭐랄까, 하늘을 봤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커다란 것이 불쑥 나타나서 저의 존재를 아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그런 감각...
특히, 토요일 밤은 많이 피로하다 보니 그 공포가 더욱 표면적으로...
공모전에도 출품하셨군요. 좋은 결과를 기대할께요.
마키
2020-02-15 23:28:30
코즈믹 호러의 분위기를 제대로 담아낸 짧지만 담백한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