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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맞이하여 시작된 폴리포닉 월드 포럼의 프로젝트인 100년 전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열아홉번째는 캐나다 및 북극편으로 결정되었어요. 이번에도 이 지도의 편집에 TheRomangOrc님께서 힘써주셨어요. 이 점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원본 및 편집된 지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원본이 일본어 사용자를 상정한 일본국내의 출판물인만큼 1924년 발행 당시의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보일 수 있도록 원문표현은 가능한 한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을 명시해 드릴께요. 해당 표현에 대해서만큼은 저의 주관이 배제되었으니 그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길 부탁드려요.
그러면 원본을 소개할께요.
당시 표기방식은 가로쓰기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예요. 게다가 현대일본어가 아닌 터라 한자 및 히라가나의 용법도 현대일본어와는 차이가 여러모로 두드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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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TheRomangOrc님께서 편집해 주신 한글화 지도를 소개할께요.
손글씨로 표기된 것은 자연관련 사항으로 갈색은 산지, 청색은 수면, 청록색은 육상지형, 보라색은 도시, 검은색은 기타 특기사항인 반면, 고딕체로 표기된 것은 각 지역의 특이사항이니까 참조해 주시면 좋아요.
원문자에 대해서도 이런 원칙이 있어요.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는 각 지역의 상황, 그리고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는 추가설명이 필요한 각 지역에 대한 표시임에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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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tesy of TheRomangOrc
이번 편에서 중시해야 할 자연환경을 먼저 설명드릴께요.
우선 캐나다 본토의 경우 지도 왼쪽인 대륙서부에 위치하고 삼림이 울창한 록키산맥(Rocky Mountains), 그리고 지도 오른쪽인 대륙동부에 형성되어 밀 농업 등에 활용되는 넓은 평원지대 및 로렌시아산맥(Laurentian Mountain Range) 등으로 구성되는 캐나다순상지(Canadian Shield)가 눈여겨볼 포인트.
그리고 북극권의 경우 수많은 랜드(Land)의 존재가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캐나다 이외에도 지도의 오른쪽 위인 북동부에 덴마크의 속령 그린란드(Greenland/영어, Grønland/덴마크어, Kalaallit Nunaat/그린란드어)가 있어요. 이것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을 거예요. 영어를 제1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인 캐나다의 경우는 지명의 발음을 랜드로, 그렇지 않은 덴마크의 경우는 란드로 표기하는 등으로 달리했으니 이 차이를 기억해 두시면 편리해요.
사실 여기에는 캐나다 동단의 뉴펀들란드(Newfoundland) 남부에 존재하는 프랑스의 역외영토인 생피에르미콜롱(Saint-Pierre-et-Miquelon)이 존재하지만 워낙 작은데다 인지도 또한 낮다 보니 이 지도에서는 편찬자들이 존재를 모르고 지나친 것 같네요.
그럼 여기서 예상되는 의문을 좀 정리해 볼께요.
1. 동서의 두 산맥 인근은 어떻게 다른가?
2. 왜 랜드라는 지명이 많이 있을까?
이 예상되는 질문들에 따라서 자연환경을 자세히 설명드릴께요.
1번째 질문에 대한 해설.
서부의 록키산맥은 상당히 젊은 지형인데다 급격한 조산운동으로 만들어진 험준한 습곡산맥으로, 지구상 지진 및 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한 퍼시픽림(Pacific Rim)이 위치하고 있어요. 이 퍼시픽림에서는 1906년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및 1923년의 일본 칸토대지진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전반의 대지진이 일어나는 등 불의 고리(Ring of Fire)라는 이명이 적합할 정도로 여러모로 불안정해요.
반면에 동부의 로렌시아산맥은 수십억년 이상 지각변동 자체가 거의 없고 그 범위도 캐나다 및 미국의 동부에 걸쳐져 있는 매우 안정적인 캐나다순상지에 위치하고 있다 보니 그만큼 침식이 많아 지형 자체가 기복이 적은 것은 물론 암석의 구성광물에 결정 형성에 필요한 시간도 충분히 확보되어 각종 광물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보고(宝庫)이자 농업에도 필요한 각종 광물질이 많이 함유된 두터운 토양이 형성되어 밀 농업 등에도 발군의 생산성을 보이고 있어요.
그런데, 지도 원문에는 예의 로렌시아산맥이 워치시산맥(ウォチッシ山脈)이라는 유래를 알 수 없는 표현으로 나타나 있어요. 대체 무슨 자료에 근거했는지는 알 길이 없네요.
2번째 질문에 대한 해설.
인간이 육지 지형을 발견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땅" 이라는 가장 단순한 표현일 거예요. 그게 게르만어 계통에서는 독일어의 란트(Land) 내지는 영어의 랜드(Land), 라틴어 계통에서는 라틴어의 해당어휘인 테라(Terra)에서 파생된 어휘인 프랑스어의 테르(terre) 등이 되고, 러시아어에서는 젬랴(Земля), 페르시아어에서는 스탄(Stan) 등으로 나타나기 마련이죠. 그러니 새로이 발견한 땅에 발견자 자신이나 그 발견자가 신봉하는 대상인 군주나 종교지도자 등의 이름을 붙이거나 하는 게 아주 당연할 거예요. 그리고 그 땅에 대해 적극적으로 국가주권을 투영하게 되면 영토(領土, Territory)로 규정되고 그 영토가 본토(本土, Mainland)나 속령(属領, Dependency) 등의 차별적인 지위를 얻기도 하고 그런 것이죠.
이렇게 볼 때, 캐나다의 북극도서지역인 퀸엘리자베스제도(Queen Elizabeth Islands)의 많은 도서지역에 영국의 왕가나 귀족 등에서 유래하는 지명을 가진 랜드가 도처에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당시에는 측량기술의 수준도 지리정보의 축적량도 낮아서 단일도서지역을 여러 랜드로 본다든지 반도를 섬으로 잘못 인식하거나 그 반대로 인식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이 사실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잔존해 있다든지 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어요. 이를테면 반도라고 인식되었던 카라후토(樺太, 사할린)가 에도시대 후기 일본의 탐험가 마미야 린조(間宮林蔵, 1780-1844)의 일주항해 이후에 섬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든지, 반대로 북미대륙 서안의 캘리포니아반도가 한동안 긴 섬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든지 한 것들.
그러면 지도에 나온 랜드들을 여기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둘테니 참고를 부탁드릴께요. 지도의 왼쪽인 서부에서 오른쪽인 동부의 순으로
- 뱅크스랜드(Banks Land) = 뱅크스섬(Banks Island)
- 프린스앨버트랜드(Prince Albert Land) +빅토리아랜드(Victoria Land) +왈라스턴랜드(Wollaston Land) = 빅토리아섬(Victoria Island)
- 코크발룬랜드 + 배핀랜드(Baffin Land) + 포클랜드(Falkland) = 배핀섬(Baffin Island)
문제는 배핀랜드 북부의 코크발룬랜드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정보가 없다는 것이지만...
그리고,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문환경 관련사항도 있어요. 이건 하나뿐이예요.
3. 캐나다는 캐나다인가 아니면 영국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때의 캐나다는 지금의 캐나다와는 다른 영국령 캐나다(英領加奈陀, British Canada)였어요. 즉 영국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않은 상태이고, 지금의 사탕단풍나무의 잎이 가운데에 있는 홍백의 그 국기는 1965년에 캐나다의 군인이자 역사학자였던 조지 스탠리(George Stanley, 1907-2002)가 디자인한 것인데다 완전히 주권국가가 된 것은 1982년 4월 17일이 되어서야 달성된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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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1세기 전과 현행의 캐나다 국기가, 그리고 그 사이에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잭(Union Jack)이 게양된 모습이 보일 거예요. 당시의 국기는 1895년에서 1956년까지 사실상의 국기로 쓰인 캐나디언 레드엔사인(Canadian Red Ensign/영어, Red Ensign canadien/프랑스어)로 불리는 것으로, 저 사진 속의 것은 1922년에 개정되어 새 국기가 채택될 때까지 사용된 역사가 있어요.
지도 원문의 한자표기는 지금도 국내언론에서 캐나다를 加로 약칭하는 관행으로 살아 있어요. 예의 한자표기인 英領加奈陀의 일본어 발음이 에이료카나다(えいりょうかなだ)인 것이 이렇게 관행화된 것.
적색 테두리의 흰 원 내의 검은색 알파벳 원문자 항목은 A에서 G까지 7개가 있어요.
지도 왼쪽 위의 북극권에서부터 오른쪽 아래로 가로지르듯이 읽어나가시면 마지막 항목은 지도 오른쪽 아래 끝단의 뉴펀들란드 부근에서 찾으실 수 있으니 참고를 부탁드려요.
A. 북극곰이 활약한다
북극을 상징하는 동물 하면 역시 북극곰(Polar Bear/영어, Ursus maritimus/라틴어)이 대표적이죠. 희고 귀엽게 생겼지만 아주 큰 맹수로, 일어서면 2m(=6피트 7인치) 넘는 큰 키에 앞발의 일격으로 물개의 두개골이나 척추 정도는 간단하게 깨부술 수 있는 무력을 지녔고 100m 스프린터의 1.5배 정도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거예요. 총을 겨눈 사람들이 묘사되는 것도 역시 그 북극곰이 북극지방의 도처를 지배하고 다닌다는 것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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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Good news for polar bears in Canada’s central Arctic, 2020년 11월 13일 WWF 기사, 영어
지도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허드슨만(Hudson Bay) 서안의 북위 58도선 북부에 있는 매니토바주 처칠(Churchill, Manitoba)이라는 마을이 세계 북극곰의 수도(Polar Bear Capital of the World)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다 그 마을의 상징 또한 북극곰이예요. 아래의 지도에서 연두색으로 칠해진지역이 북극곰의 서식지라는 점에도 주목해 보시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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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CC: Polar Bear, National Conservancy Canada 웹사이트, 영어
B. 자북극
원문에서는 자석극(磁石極)이지만 자북극(磁北極, North Magnetic Pole)으로 옮겼음을 미리 밝혀둘께요. 참고로 현대일본어에서는 저 용어를 영어표현과 어순이 같은 북자극(北磁極)으로 표기하는 식으로 달라져 있어요.
자북극은 글자 그대로 자석이 가리키는 북극이라는 의미. 사실 극점에는 어떠한 특별한 지형지물도 없고, 자북극은 지구 내부의 구조에 따른 자기장의 상태에 따라 정의되었다 보니 더더욱 밖에 드러날 일이 없어요. 저 지역에서는 나침반의 S극의 극성을 띠는 한쪽 바늘 끝이 그대로 지면 쪽으로 붙어 버리고 말아요. 당연히 항법에서는 나침반을 쓸 수 없고 별의 위치를 관측하거나 자이로스코프(Gyroscope) 등을 사용해야 하죠.
그런데 사실 저 지도에 표기된 부시아섬은 정확히는 부시아반도(Boothia Peninsula). 북미대륙과 지협(地峡)으로 이어져 있는 정확한 지리상황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지도의 편찬자들을 탓할 수도 없어요. 실제로 부시아반도 앞바다인 부시아만(Boothia Bay)과 당시에 맥클린톡해협(McClintock Strait)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레이해협(Rae Strait)은 모두 알려져 있었지만 두 바다를 잇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전체에 대한 항해는 1940년에서 1942년에 걸쳐 노르웨이 출신의 캐나다인 탐험가 헨리 라르센(Henry Larsen, 1899-1964)이 처음으로 성공시켰으니까요. 극지방이란 그 정도로 탐험에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어요.
자북극은 유동적이예요. 사실 지구내부의 외핵(外核, Outer Core) 자체가 철이나 니켈 등의 강자성체가 용융된 고밀도의 액체이다 보니 자북극이 달라져도 이상하지 않아요. 1세기 뒤인 지금은 그 자북극이 시베리아 방면으로 기울고 있다고도 하네요.
C. 임업성행
캐나다는 세계 삼림면적의 9%를 차지하는 국가. 달리 말한다면 세계의 숲의 1/11이 캐나다에 몰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게다가 그 숲의 면적은 캐나다 전토의 39%에 달하는데다 산지는 물론 평지에도 자연림도 인공림도 많이 존재하고 있어요. 이것은 미국의 개척시대 당시 평지의 삼림이 화전농업(火田農業, Slash-and-burn Agriculture)을 위해 사라져 이후 미국의 거대한 빵바구니(Great American Breadbasket)이라는 이명의 농업지대로 전환된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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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Canada’s Industrial Policies Need a Forestry Branch, 2024년 9월 16일 Policy 기사, 영어
캐나다의 임업은 아이슬란드의 탐험가인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on, 970-1025)이 뉴펀들란드에 도달했던 11세기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다 대부분 유럽에서의 이민자들이 주도하였고, 일찍부터 지속가능한 임업을 추구하면서 번영을 구가해 오고 있어요. 특히 각재는 물론 종이 제조에 사용되는 펄프 중 10%가 캐나다산일 정도로 임업이 성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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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ew report shows emissions from Canada’s forestry sector are vastly underreported, 2021년 11월 1일 CANADA'S NATIONAL OBSERVER 기사, 영어
D. 나이아가라 폭포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영어, Chutes du Niagara/프랑스어)는, 정확히는 나이아가라 협곡(Niagara Gorge)의 남단에 있는 3개의 폭포에 대한 통칭으로, 미국의 뉴욕주와 캐나다의 온타리오주(Ontario) 사이의 국경수면을 형성하는 편자 모양의 호스슈 폭포(Horseshoe Falls)가 특히 유명해요. 다른 폭포인 아메리칸 폭포(American Falls) 및 브라이달베일 폭포(Bridal Veil Falls)는 모두 미국내에 있어요.
이 폭포는 세계최대의 담수호인 오대호(Great Lakes) 수계의 이리호(Lake Erie) 및 온타리오호(Lake Ontario)를 잇는 폭포답게 유량도 북미최대로, 하루에 흐르는 물이 2억 4천만톤이 넘어요. 높이는 57m(=187피트)로 세계의 유명 폭포 중에서는 별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폭이 790m(=2,591피트)에 달하는 특이한 형태는 매우 보기 힘든 절경. 덕분에 이미 19세기부터 유명한 관광지로 잘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1881년부터는 수력발전도 시작되었는데다 양국이 공동관리하는 수력발전소도 있어요.
지도원문의 일본어표기에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으니 언급해 둘께요.
현대일본어에서는 폭포를 타키(滝)로 표기해요. 그래서 일본내의 명승지인 토치기현 닛코시(栃木県日光市) 소재의 케곤폭포(華厳の滝) 및 와카야마현 힉가시무로군(和歌山県東牟婁郡) 소재의 나치폭포(那智の滝)의 표기에서도 타키가 쓰이는 게 보여요. 그런데 저 지도에서는 나이아가라 부분은 현대일본어와 동일한 카타카나 표기를 쓰되 한자 부분은 瀑布로 되어 있어요. 이 어휘의 일본어발음은 바쿠후(ばくふ)인데 전근대의 일본사회를 지배한 막부(幕府)와 같은 발음이라서 혼동의 여지가 있기도 하고 타키라는 말 자체가 일본의 고대의 노래를 모은 책인 만엽집(万葉集, 만요슈)에도 나오는 유서깊은 옛말이다 보니 요즘은 바쿠후 대신에 타키로 대체하는 듯해요.
그 결과, 나이아가라 폭포의 일본어표기가 저 시대에는 나이아가라노바쿠후(ナイアガラの瀑布), 현대에는 나이아가라노타키(ナイアガラの滝)로 달라져 있어요.
E. 물개가 많이 서식한다
북극의 해안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대형 포유류에는 앞에서 언급된 북극곰 이외에도 바다표범이 있어요. 특히 배핀랜드 동안 및 그린란드 서안은 고리무늬물범(Ringed Seal/영어, Pusa hispida/라틴어)이라든지 턱수염물범(Bearded Seal/영어, Erignathus barbatus/라틴어) 등이 많이 서식하는 등 그 동물들에게는 천국 그 자체.
그런데 왜 "물개" 라고 번역했으면서 정작 바다표범의 설명만 했을까요?
사실 이런 문제는 기각류(鰭脚類, Pinniped)에 대한 번역이 불러온 오역 아닌 오역. 네 발이 지느러미처럼 변했으면서 고래와는 달리 제한적이나마 육지에 올라올 수도 있는 포유류인 기각류는 씰(Seal)이라는 영단어로도 통칭되는데 이 영단어의 일본어 역어가 물개를 의미하는 옷토세이(オットセイ)라서 이런 혼선이 벌어져요. 실제로, 네 발이 모두 독립적인 물개(Fur Seal)는 태평양안에 주로 서식하는 이외에는 남미대륙의 양안 및 남극 주변을 주활동무대로 하고 북대서양에는 살지 않는 반면 뒷발이 하나로 붙어 지면을 기어다니는 바다표범(Earless Seal, Phocidae)은 서식지의 범위가 훨씬 넓은데 이것의 일본어 역어는 아자라시(アザラシ)로 전혀 달라요. 즉 이것은 영어 등으로 작성된 정보와 생물학적 지식이 겸비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혼선을 일으킬 수 있어요.
F. 이 부근에서 고래가 자주 숨을 쉰다
포유류인 고래는 정기적으로 공기를 호흡해야 하는 이상 떠올라서 숨을 쉬는 경우가 늘 있어요. 흔히 물을 뿜는다고 여겨지기 쉽고 본문에서도 그런 의미의 문장(潮を吹く)이 쓰여져 있지만, 사실은 물을 뿜는 게 아니라 호흡을 위해 내쉰 숨이 찬 공기에 응결된다든지 주변의 물을 튕겨낸다든지 하는 등이 뒤따르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죠.
후술하는 호프데일(Hopedale)은 그 고래 출몰지역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린 포경업 거점으로 번성했지만, 석유의 상업적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1880년대 이후로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사실 서구권에서의 포경업의 주된 목적은 고기 및 식용유 확보를 위한 일본에서의 용도와는 크게 다른, 조명용 연료나 윤활유 등의 확보에 집중되었지만, 캐나다 동부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의사이자 지질학자로 후술하는 핼리팩스(Halifax)에서 생을 마친 아브람 피니오 게스너(Abraham Pineo Gesner, 1797-1864)가 석유에서 추출한 등유(灯油, Kerosene)가 석유의 대량생산에 따라 쉽게 확보가능해지면서 저렴하고 우수한 조명용연료의 주류로 정착하다 보니 고래기름이 쓰여야 할 이유도 없어졌고 윤활유 또한 석유를 정제하면 보다 안정적으로 고품질인 것이 얻어지니 고래를 잡아야 할 이유도 없어졌어요.
G. 거대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하다
1912년 4월 15일, 당대 최대의 여객선이자 첨단기술의 총아였던 영국의 대서양횡단 여객선인 타이타닉(RMS Titanic)은 뉴펀들란드 앞바다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했어요. 참사 5일 전인 1912년 4월 10일 여객선의 모항이자 소속 해운회사인 화이트스타라인(White Star Line)의 근거지인 영국의 리버풀(Liverpool)을 출항한 이 여객선은 불침선으로 여겨졌지만 이렇게 첫 항해에서 이 사고로 2,224명의 탑승인원 중 1,514명이 목숨을 잃은 당대 최대규모의 해난사고로 기억되어 있고, 12년이 지난 이 지도의 발행시점인 1924년에도 이렇게 지도에 특기될만큼 전세계에 충격을 안겼어요.
게다가, 같이 건조된 다른 2척의 여객선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운명이 엇갈렸어요. 3번째로 완성된 브리타닉(RMS Britannic)은 1915년에 취역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해 있었던 터라 군용 수송선 및 병원선으로 용도변경되었고, 다음해인 1916년에 실시된 제6차 항해에서는 에게해에서 독일 잠수함이 부설한 기뢰에 맞아 폭침되고 말았어요. 탑승했던 1,066명에서 1,036명이 생존한 것은 불행중다행이지만...
반면, 1번째로 완성된 올림픽(RMS Olympic)은 1911년 취역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의 여러 임무에 투입되었고 전후에는 여객선으로서 재취역하여 1935년까지 운용되어 이후에 해체처분되었어요. 이 올림픽은 1918년에 영불해협에서 독일 잠수함 U-103과 조우했고, 임시로 거치해둔 함포로 사격을 가한 뒤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격침시켰어요. 이것이 여객선이 잠수함을 잡은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어요. 또한 당시의 잠수함은 잠수가 가능한 수준의 군함에 지나지 않아 항속능력이 미약하고 속도도 항속거리도 형편없었지만, 대형여객선에는 19세기말에 영국의 발명가 찰스 파슨스(Charles Parsons, 1854-1931)가 발명한 혁신적인 추진기관으로 연속적인 고속고회전에 특화된 대형 외연기관(外燃機関, External Combustion Engine)인 증기터빈(Steam Tubine)이 속속 탑재되어갔고 올림픽 또한 왕복식 증기기관 및 증기터빈을 장비하고 있었다 보니 잠수함보다는 월등히 빨랐어요.
청색 테두리의 검은 원 내의 흰색 번호 원문자 항목은 1부터 15까지 15개가 있어요.
지도 왼쪽 아래에 해당되는 서부의 밴쿠버부터 철도를 따라서 시선을 옮기시면 되어요. 물론 철도변에만 주요도시가 소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주변에도 시선을 옮겨 주시면 되어요. 그렇게 마지막에는 지도 오른쪽 아래의 세인트존스까지 따라가실 수 있어요.
1. 밴쿠버
캐나다 서부의 최대도시인 밴쿠버(Vancouver)는 캐나다의 유일한한 태평양안 지역인 브리티시컬럼비아주(British Columbia)의 최대도시로 원주민들이 정착촌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은 물론 유럽인의 방문도 이미 1579년에 영국의 사략선장 겸 탐험가인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가 방문한 사실이 알려져 있는 등 캐나다 서부를 대표하는 인류의 거주지로서 유명했어요. 단 지금의 이름은 1791년에서 1795년에 걸쳐 전세계 일주항해를 달성한 영국 해군의 장교인 조지 밴쿠버(George Vancouver, 1757-1798)를 기념하여 캐나다 대륙횡단철도의 열차가 도착한 날인 1886년 4월 6일에 정해졌어요. 그 이전의 이름은 1870년 이전에는 가스타운(Gastown), 1870년부터 1886년까지는 당시 영국 식민지대신이었던 그랜빌 레버슨-고어(Granville Leveson-Gower, 1815-1891) 제2대 그랜빌공작에서 유래한 그랜빌(Granville). 그 해에 대화재를 겪는 바람에 그 때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도시는 단기간에 재건되었고 1911년에는 드디어 인구 10만명을 돌파했어요.
이 도시는 금과의 인연이 각별해요. 일단 1858년에는 도시주변의 프레이저강변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시작된 프레이저 골드러시(Fraser Gold Rush) 및 1898년의 클론다이크 골드러시(Klondike Gold Rush)도 있어서 그때마다 일확천금을 노리던 사람들이 캐나다는 물론 미국에서도 몰려들었어요. 이런 국제도시의 위상만큼이나 일찍부터 차이나타운(Chinatown) 및 재팬타운(Japantown)이 조성되었지만 차이나타운이 아편굴로 전락했다는 문제 등이 겹친데다 도시내에서 일본출신의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경향도 크게 일어 그때 파괴된 재팬타운은 영영 재건되지 못하고 말았어요. 비록 페미니즘이 일찍부터 대두하여 이미 1918년에 캐나다는 물론 영연방 전체에서도 여성으로서 첫 각료로 발탁된 진보성이 있었지만, 그 그늘에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이 있었어요.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는 밴쿠버가 아니라 빅토리아(Victoria).
2. 웨스트민스터
여기에 언급된 웨스트민스터는 전술한 밴쿠버의 광역권에 속하는 뉴웨스트민스터(New Westminster). 프레이저강 연안의 이 도시는 밴쿠버의 급성장 이전까지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최대의 도시로, 이 주의 설립자인 영국 육군의 장교이자 군사학, 토목공학, 건축 및 음악 등의 다방면에 능통했던 폴리매스(Polymath)로도 유명했던 리차드 클레멘트 무디(Richard Clement Moody, 1813-1887)가, "태평양안에 제2의 잉글랜드를 발견했다" 라고 기록할 정도로 자연이 아름다운 것으로도 유명해요. 그리고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프레이저 골드러시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사람들의 목적지도 바로 이 뉴웨스트민스터였고, 밴쿠버는 중간경유지로서 발달하게 된 것이었어요. 그러나 골드러시는 오래가지 못했고, 캐나다태평양철도(Canadian Pacific Railway)가 바로 이어지지 않았는데다 1898년의 대화재로 파괴된 이후에는 밴쿠버의 급성장에 밀리게 되었어요.
3. 캠루프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톰슨강(Thompson River) 유역에 있는 이 인구 10만명 규모의 소도시인 캠루프스(Kamloops)는 비록 작기는 하지만 캐나다태평양철도가 1886년에 이 도시를 경유하게 되면서 서부권의 교통의 요지로 급상승했는데다 농업, 임엄, 축산업 등이 발달한 것은 물론 학원도시이자 관광도시로도 정평이 나 있어요. 일례로 학생수 25,000명이 넘는 캐나다의 종합대학인 톰슨리버즈대학(Thompson Rivers University)가 이 도시에 있음은 물론 캐나다인들이 사랑하는 각종 스포츠인 아이스하키, 야구, 컬링(Curling) 등의 토너먼트가 매년 100여건 이상 열리는 캐나다 유수의 스포츠의 성지로도 매우 잘 알려져 있어요.
이 도시는 위에서 언급된 프레이저 골드러시로 흥했다가 1862년의 퍼시픽 노스웨스트 천연두(1862 Pacific Northwest smallpox epidemic)로 궤멸 직전의 위기로 몰려 토착원주민들의 2/3이 목숨을 잃기도 했어요. 이후 1908년에는 결핵이 대유행하자 요양원이 세워져 캠루프스가 의료도시로도 발전하는 계기로도 이어졌어요.
4. 위니펙
매니토바주(Manitoba)의 주도이자 최대도시인 위니펙(Winnipeg)은 "진흙물" 을 뜻하는 현지 원주민의 언어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 내륙의 대도시로, 서부로의 관문(Gateway to the West)이라는 별칭이 붙은 전통있는 도시예요. 이미 18세기 전반에 프랑스인들이 이 지역을 찾기 전부터 위니펙은원주민들의 모피교역거점으로 유명했는데다 영국의 북미영토가 된 이후로는 1881년에 캐나다태평양철도가 이 도시로 연신되면서 한때 캐나다 제3의 도시로까지 성장했어요. 인근지역의 제1차산업 또한 대규모이다 보니 위니펙 또한 캐나다의 거대한 빵바구니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파나마운하가 1914년에 개업하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무역루트의 주도권이 해운과 철도의 연계에서 해운만을 쓰는 방식으로 넘어가 버린 바람에 위니펙은 불황을 맞고 인구는 밴쿠버 등지로 급속히 빠져나갔어요.
과거의 위니펙은 1869-1870년의 레드리버 반란(Red River Rebellion)이라든지 1890년의 프랑스 가톨릭계 학교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이라든지 1919년의 위니펙 총파업(Winnipeg General Strike) 등의 불안으로 여러모로 얼룩지기도 했지만, 현재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축제의 도시로 명성이 높은 등 변화가 극적이예요. 1872년 이래 기상관측 데이터에서 최저기온 섭씨 -47.8도(=화씨 -54.0도) 및 최고기온 섭씨 42.2도(=화씨 108.0도)를 기록할만큼 극단적인 날씨로 악명높은 위니펙의 자연환경이 이런 극적인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일까요?
5. 윌리엄
온타리오주(Ontario)의 이 도시는 정확히는 포트윌리엄(Fort William). 오대호 중 가장 큰 수피리어호(Lake Superior)의 북안에 위치했던 이 도시는 한때 캐나다태평양철도의 부설에 힘입어 임업이 대거 성장한 온타리오주 북부 최대의 도시였지만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는 아직 독립된도시로 존속중이었지만 1969년을 기해 폐지되어 포트아서(Fort Arthur)에 합병되었고 현재는 인구 1천명 남짓한 호반의 촌락으로 남아 있어요.
6. 요크
정확한 지명이 요크팩토리(York Factory)인 이 정착촌은 매니토바주 북부의 허드슨만(Hudson Bay) 서안의 헤이즈강(Hayes River) 하구 북안에 있었어요.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는 아직 존재했던 이 마을은 1670년에 설립된 식민지 경영회사인 허드슨즈베이컴퍼니(Hudson's Bay Company/영어, Compagnie de la Baie d'Hudson/프랑스어)가 1684년에 설립하여 모피무역 및 서부해안의 밴쿠버로 통하는 4,200km(=2,610마일) 길이의 내륙항로의 기점으로서 육성되었지만 남부의 위니펙이 성장하면서 중요성이 급감하였고 이미 1911년에는 남서쪽의 내륙에 있는 노르웨이하우스(Noway House)로 물류거점이 옮겨가면서 치명타를 맞았어요. 결국 이 요크팩토리는 운영사인 허드슨즈베이컴퍼니가 1957년에 폐쇄했고, 1968년부터는 국유지로 전환되어 역사유적으로 기념되어 있고, 캐나다 내의 영구동토(永久凍土, Permafrost) 위애 지어진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오래되고 큰 건물이 1831년 이래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 요크팩토리가 273년의 역사를 마쳤지만 그 설립자였던 회사는 오늘날에도 HBC라는 약칭으로 통하는 캐나다 유수의 백화점, 부동산 및 투자사업 기업으로 354년째 존속해 있다는 사실,
7. 무스니
허드슨만 남단에 있는 온타리오주 북부의 정착촌인 무스니(Moosonee)는 온타리오주에서는 유일하게 바다로 직접 통하는 항구로, "북극으로 통하는 관문(The Gateway to the Arctic)" 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북위 51도로 캐나다에서 그렇게 북쪽에 있지도 않지만, 인구 최다의 온타리오주의 항구이다 보니 중요성이 매우 커서 그 중요성이 보다 부각되었다고 봐야 옳을 거예요.
이 정착촌은 19세기의 마지막해인 1900년에 개설되어 지도에서 가장 새로운 지역이죠. 놀라운 것은 이 지역이 여성의 힘으로 처음 개척되었다는 사실. 앤 하드스티와 그녀의 두 딸들이 이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했고, 3년 뒤인 1903년에 프랑스의 모피제품 제조사인 르비용 프레르(Revillon Frères)에서 파견된 21명이 새로이 합류해서 이 지역을 모피무역의 거점으로 발전시킨 것이 오늘날의 이 마을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죠.
8. 벨스
위치를 찾는 데에 고생했던 두 지역 중 1번째가 바로 이 벨스.
사실 이 지역을 정확히 특정해 내는 데에는 실패했어요. 단지 퀘벡(Quebec) 북서부해안으로 흘러가는 하천에 벨강(Bell River)이 있다는 것이 유력한 후보일 정도였어요.
9. 오타와
캐나다의 수도는 1826년에 바이타운(Bytown)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던 오타와(Ottawa). 이 이름은 "교역" 을 의미하는 현지 원주민의 언어에서 유래된다고 알려져 있었고 1855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정착해 있어요.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나라들의 전통답게 수도는 행정기능에 충실한 편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인구는 100만명을 넘어요.
사실 오타와가 캐나다의 수도가 된 계기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1841년에 캐나다 총독이 온타리오호 북동부의 도시 킹스턴(Kingston)을 수도로 지정했지만 영국계 위주의 토론토(Toronto)도 프랑스계 위주의 몬트리올(Montreal)도 이전의 로워캐나다 수도였던 퀘벡시티(Quebec City/영어, Ville de Québec/프랑스어)도 모두 불만을 품어 투표로 그 결과가 거부되는 일도 벌어졌고 총독이 몬트리올 천도안을 거부하는 등의 혼탁한 사정이 이어졌어요. 1844년에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이 의회의 투표결과를 바탕으로 몬트리올 천도를 승인했지만 5년 뒤에 몬트리올에서 의회방화사건이 일어나 버렸어요. 그 이후에는 한때 탈락했던 킹스턴도 바이타운도 다시 수도의 후보로 거명되는가 하면 퀘벡시티와 토론토에 수도기능을 분산시키는 안도 제안되었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당시의 캐나다총독인 에드먼드 헤드(Edmund Head, 1805-1868)의 검토결과를 수용했어요. 그 결과가 바이타운에서 오타와로 개명된 신도시로, 영국군이 1826년부터 밀어붙여 1832년에 개통된 리도운하(Rideau Canal) 덕분에 수운이 편리하여 겨울을 제외하면 몬트리올이든 킹스턴이든 접근이 가능했는데다 도시 주변이 조밀한 숲과 절벽에 둘러싸여 미국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도 적합하다는 이유가 있어서였어요. 대도시가 아니라서 폭동진압도 용이했는데다 1854년에는 캐나다태평양철도가 개통되어 겨울에 막혀 버리는 수운의 문제도 극복되었고 그 이후로 오타와는 1866년부터 캐나다의 새로운 수도로 정착했어요. 그 직전에는 퀘벡시티가 임시수도였어요.
오타와는 당시 캐나다 최대의 도시계획 프로젝트로 빅토리안고딕(Victorian Gothic) 스타일로 지어졌어요.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서는 불과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 시점에서도 200년이 채 되지 않죠. 그런데 이 계획도시가 1900년의 대화재로 인해 40% 정도 소실되고 주민의 1/7 가량이 주거지를 잃는 등 대거 파괴되었다 1922년에야 재건이 완료되었어요.
10. 몬트리올
캐나다의 프랑스어 사용주인 퀘벡(Quebec) 최대도시인 몬트리올(Montreal)은 "왕의 산" 이라는 뜻으로, 로렌시아고원 및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에 있는 해발고도 233m(=764피트)의 낮은 산으로 라틴어로 몬스 레기우스(Mons Regius)로 명명되어 프랑스어로 다시 옮겨지며 만들어진 지명인 몽루아얄(Mont Royal)이 그 기원이 되어요.
지도가 나온 시점인 1924년 당시에는 캐나다의 최대의 도시였던 몬트리올은 미주에서 프랑스어 사용자가 가장 많은데다 거주민의 절반 이상이 영어도 같이 사용가능할 정도. 이미 유럽인들의 도래 이전에도 수천명이 거주했던 이 지역은 1642년에 프랑스인들이 성모 마리아의 도시라는 의미의 빌마리(Ville-Marie)라는이름으로 정착촌을 설립하면서부터 모피무역 및 임업으로 발전했지만 1756년에 시작된 7년전쟁으로 모든 상황이 달라졌어요. 1760년에 몬트리올이 영국군에 함락되어 항복한 이후로는 영국에 복속되고, 1775년에는 베네딕트 아놀드(Benedict Arnold, 1741-1801) 휘하의 친영파 세력이 타이콘데로가요새(Fort Ticonderoga)를 함락시킨 이후로는 미국의 침공을 받아 아놀드의 군대가 로드아일랜드(Rhode Island)로 철군할 때까지는 일시적으로나마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기도 했어요.
몬트리올이 본격적으로 도시화된 것은 1832년부터의 일이었지만 초기인 1849년에는 의회방화사건 등의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등의 정국불안도 있었고 상하수도가 정비되기 전까지는 인구가 수만명 수준에 머물다가 19세기말에 정비가 완료되자 수십만명 규모로 급증하기도 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술을 마시러 국경을 넘어온 미국인들을 위해 주류를 판매하는 북방의 주요 거점이 되는 등의 기묘한 붐이 일어났어요.
11. 리비에르 뒤 루
위치를 찾는 데에 고생했던 두 지역 중 2번째가 바로 이 리비에르 뒤 루(Rivière-du-Loup).
오대호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하천인 세인트로렌스강(St. Lawrence River) 남동쪽 연안에 위치한 이 도시는 1673년에 설립되었다가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1850년에는 프레이저빌(Fraserville)로 개칭되다 1919년에서야 원래의 이름을 찾았어요. "늑대의 강" 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이 도시에는 한때 늑대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어요.
지도의 발행시점에서 26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지역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미 공군의 B-50 전략폭격기가 비행중에 엔진고장을 일으켰고 원자폭탄에 사용된 우라늄이 임계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일부러 폭발되었어요. 다행히도 핵폭발은 없었고 핵물질인 우라늄이 흩뿌려지는 원자력사고로 마무리돠었어요.
12. 핼리팩스
핼리팩스(Halifax)는 동부의 노바스코시아주(Nova Scotia/영어, Nouvelle-Écosse/프랑스어)의 주도이자 최대규모의 도시로 캐나다의 대서양안에서는 인구가 가장 많아요. 게다가 미국과의 기이한 인연이 있는 도시로서도 유명해요.
여기에서는 당대 세계최대의 폭발사고가 발생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7년 12월 6일, 프랑스의 화물선 몽블랑(SS Mont-Blanc)과 노르웨이의 화물선 이모(SS Imo)가 충돌하여 피크린산(Picric acid) 2,300톤, 트리니트로톨루엔(TNT) 500톤 및 면화약(綿火薬) 10톤에 불이 붙어 폭발사고가 일어났어요. 이것이 바로 핼리팩스 폭발사고(Halifax Explosion). 1,728명이 목숨을 잃고 9천여명 이상이 부상을 입은 이 사고는원자폭탄의 등장 이전까지 가장 큰 폭발로 기록되었어요. 이 참사의 보도를 접하고 핼리팩스를 찾은 미국 보스턴(Boston) 출신의 의사 윌리엄 E. 래드(William E. Ladd, 1880-1967)의 의료지원활동이 핼리팩스 시민들을 많이 구했음은 물론 핼리팩스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어요. 이후 래드는 귀국하여 보스턴 어린이병원의 원장이 되는 등 소아의학의 아버지로 역사에 남게 되었어요. 또한 보스턴시 및 매사추세츠주(Commonwealth of Massachusetts) 차원의 인원, 물자 및 재정지원도 부상자의 치료 및 도시재건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핼리팩스에서는 1918년에 감사의 의미로서 보스턴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냈어요. 이것이 지금도 살아있는 보스턴 크리스마스트리(Boston Christmas Tree). 이후 1세기 넘게 두 도시간의 유대는 더욱 깊어져 두 도시간에 정기 카페리 및 항공편이 개설되어 있고 여행 및 스포츠행사도 빈번한 것은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같은 권역이기도 하죠. 비록 1895년의 미영 양국간의 대화해(Great Rapprochement) 이후로 양국간의 관계가 개선되기는 했지만 1812년의 미영전쟁(War of 1812) 이후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꽤 데면데면한 편이었죠. 그러나 핼리팩스의 비극을 적극적으로 도운 보스턴의 움직임 이후로 양국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했어요.
13. 호프데일
호프데일(Hopedale)이란 캐나다 동단의 뉴펀들란드-래브라도주(Newfoundland and Labrador/영어, Terre-Neuve-et-Labrador/프랑스어)의 중부해안에 있는 작은 어촌. 다른 지역과는 이어진 도로도 없는데다 공항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오로지 선박으로만 왕래할 수 있었던 이 어촌은 19세기말까지는 포경업의 거점으로 번성했던 적이 있었어요.
14. 시드니
이 시드니(Sydney)는 그 유명한 호주의 시드니와는 무관한, 동부 노바스코시아주의 촌락이자 1820년까지는 케이프브레턴섬(Cape Breton Island) 식민지의 수도이기도 했던 도시였어요. 이 지도의 제작시점에서 20년 전인 1904년에는 도시(City)의 지위를 얻었지만 1995년 8월 1일을 기해 도시의 지위를 잃었고, 이미 앞서 1820년 이후로는 식민지 수도의 지위가 전술한 핼리팩스(Halifax)로 넘어가 있었던 상태였어요.
이 시대의 시드니는 천혜의 항구로서의 좋은 입지는 물론 인근에 다수 존재한 탄광의 존재 및 발달된 철도망 덕분에 세계최고의 철강생산단지로서 번창했고 세계대공황(Great Depression)이 업습하기 전까지는 대호황을 누렸다 보니 지도에 나온 것처럼 유럽과 이어지는 대서양항로의 기항지이기도 했어요.
15. 세인트존스
캐나다 동단의 뉴펀들란드-래브라도주의 주도이자 최대도시인 세인트존스(St. John's)는 북미대륙 본토의 최동단 도시이자 두 의미에서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이기도 해요. 포르투갈의 아조레스제도(Azores)와 2,000km(=1,242마일) 정도 떨어진 것은 물론 남서쪽으로 281km(=175마일) 떨어진 곳에 프랑스령의 역외영토이자 서두에서 언급해둔 생피에르미콜롱(Saint-Pierre-et-Miquelon)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이 도시는 유럽과의 최단거리라는 사정상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탐험가들이 이미 16세기부터 왕래하였고 지명의 기원으로 유력한 것이 세례자 요한의 포르투갈어 표기인 상쥬앙(São João). 이 지역에 도달한날이 세례자 요한 축일이었다는 것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또한 미주의 영국인 정착촌으로서 가장 긴 역사를 기록하는 세인트존스는 1812년의 미영전쟁 당시에는 영국군의 해군거점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20세기가 시작한 1901년에는 영국을 거점으로 활동한 이탈리아의 발명가 겸 기업가인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6)가 영국과의 무선통신에 처음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1919년에는 이 도시에서 출발한 영국 공군의 폭격기가 무착륙 대서양횡단에 처음으로 성공하여 아일랜드에 도착했어요. 흔히 알려진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 1902-1974)의 대서양 무착륙횡단기록은 1927년에 뉴욕-파리 구간을 논스톱으로 주파한, 미주대륙과 유럽대륙을 처음으로 무착륙비행으로 이은 세계최초의 대륙간 논스톱비행이었다는 것도 말씀드릴께요.
이 도시는 같은 캐나다 동부의 뉴브런즈윅주(New Brunswick) 소재 세인트존(St. John/영어, Saint-Jean/프랑스어)와 혼동되기 쉽지만 엄연히 다른데다 세인트존스 쪽이 인구 11만명으로 규모도 더 크다는 점에서 혼동하지 않을 게 필요해요.
이렇게 캐나다 및 북극편을 마쳤어요.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지역인 남미대륙으로 향할께요.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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