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 끌리는 힘이 작용한다는 기묘한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을 현실세계에서는 유유상종(類類相?)이라는 한자성어로 말하는가 하면 일본의 인기 장기연재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ジョジョの奇妙な冒?)에서는 3부 이후로는 스탠드 능력의 보유자끼리 끌리게 되는 것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우주개발의 역사에서 화성탐사의 역사는 의외로 아주 빨리 추진되었습니다. 첫 인공위성 발사로부터 불과 3년 뒤인 1960년에 첫 화성탐사선이 지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붉은 별을 향한 최초의 탐사선 발사국은 붉은 별로 상징되는 소련이었습니다. 이렇게 붉은 별에의 갈망은 붉은 별의 국가가 가장 먼저 구체화시켰습니다.
소련의 화성탐사는 1960년에 발족하여 소련이 망하기 3년 전인 1988년까지 18차례에 걸쳐 추진되었습니다. 특히 1980년대의 2차례의 화성탐사 프로젝트는 둘 다 1988년에 소련이 추진한 것입니다.
약사(略史)는 이렇습니다.
- Mars 1960A (1960년 10월 10일) - 근접비행 시도, 발사실패
- Mars 1960B (1960년 10월 14일) - 근접비행 시도, 발사실패
- Sputnik 22 (1962년 10월 24일) - 근접비행 시도, 발사실패
- Mars 1 (1962년 11월 1일) - 근접비행 시도, 교신실패
- Sputnik 24 (1962년 11월 4일) - 근접비행 시도, 발사실패
- Zond 2 (1964년 11월 30일) - 근접비행 시도, 교신실패
- Zond 3 (1965년 7월 18일) - 근접비행 시도, 화성까지의 거리도달 성공(추정)
- Mars 1969A (1969년 3월 27일) - 궤도진입 시도, 발사실패
- Mars 1969B (1969년 4월 2일) - 궤도진입 시도, 발사실패
- Kosmos 419 (1971년 5월 10일) - 궤도진입 시도, 발사실패
- Mars 2 (1971년 5월 19일) -궤도진입성공, 경착륙
- Mars 3 (1971년 5월 28일) - 궤도진입성공, 착륙성공, 표면탐사차량 운용실패
- Mars 4 (1973년 7월 21일) - 궤도진입은 했으나 이후 궤도안착용 엔진점화 실패
- Mars 5 (1973년 7월 25일) - 궤도진입성공
- Mars 6 (1973년 8월 5일) - 근접비행성공, 착륙실패
- Mars 7 (1973년 8월 9일) - 근접비행성공, 착륙실패
- Phobos 1 (1988년 7월 7일) - 궤도진입성공, 착륙실패
- Phobos 2 (1988년 7월 12일) -궤도진입성공 직후 교신실패, 착륙실패
이렇게 18번의 시도 중 11번째의 마르스 2는 인간이 만든 물체로서 처음으로 화성에 닿는 데에 성공했고 같은 해에 이어진 12번째의 마르스 3은 사상최초의 연착륙도 성공하고 지상탐사차량 또한 화성의 표면에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소련은 없습니다. 1991년의 크리스마스가 끝난 다음날 소련의 해체가 발표되고 크렘린에는 좌상단에 노란색의 낫과 망치와 별이 새겨진 붉은 기가 내려진 뒤 바로 하얀색과 파란색과 붉은색의 신생 러시아공화국 삼색기가 게양되었습니다. 소련의 구성국들은 1990년에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선언한 이후로 다른 구성국들이 모두 독립하여 결국 사실상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국력은 크게 쇠퇴하여 한때 제2세계의 수장이었던 국가로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던 그 소련 대신 크게 위축된 상태로 신생 러시아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당장의 생존이 급급한 상태였습니다.
그 러시아가 다시 화성탐사를 재개한 것은 1996년의 일입니다.
이 재도전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 Mars 96 (1996년 11월 16일) - 발사실패
- Phobos-Grunt & Yinghuo-1 (2011년 11월 8일, 중국과 공동추진) - 발사실패
- ExoMars Trace Gas Orbiter & Schiaparelli (2016년 3월 14일, 유럽우주기구(ESA)와 공동추진) - 궤도진입성공, 표면탐사차량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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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2021-12-07 20:17:19
마르스 2호가 화성과 랑데부를 하는 동안 아폴로 15호는 지구의 기원을 증명해줄 월석을 캐고 있었죠.
비록 다른 모든걸 이겨놓고 달착륙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는 소련이지만 21세기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훨씬 열악했던 반세기전에 달성하기위해 노력해온 신념은 그 한번의 실패는 아무것도 아닌 값진 성과들을 갖고 돌아온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었죠.
SiteOwner
2021-12-08 20:22:22
생각해 보면 소련의 우주개발은 경이로운 데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제정러시아 당시의 문명수준은 18세기에는 미하일 로모노소프(Михаил Ломоносов, 1711-1765)로 대표되는 당대 최고의 위대한 지식인 중의 1명으로 꼽히는 인물도 있었고 19세기에는 파비안 폰 벨링스하우젠(Фабиан фон Беллингсгаузен, 1778-1852), 아담 요한 폰 크루젠슈테른(Адам Иоганн фон Крузенштерн/표기에 따라서는 이반 표도로비치 크루젠슈테른(Иван Фёдорович Крузенштерн), 1770-1846), 미하일 라자레프(Михаил Лазарев, 1788-1851)같은 위대한 탐험가도 많았지만 전반적인 수준은 서유럽 주요국에는 미치지 못했고 그 저변도 잦은 전쟁으로 소진해 버려서 소련 건국 직후에는 사실상 유의미한 정도의 근대지식유산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덩치만 컸지 내실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는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진한 것은 정말 기적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게 관록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