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국민학생 때의 일이었습니다.
대략 5학년 쯤 되니까 조숙한 아이들도 많이 보였고 성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의 여자아이들은 발육상황이 두드러지다 보니 키가 커지고 가슴과 엉덩이가 커져서 성인여성에 근접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조숙하고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이런 장난을 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공공연히 사용해서 좋을 것 없는 용어에 대해 이용규칙 게시판 제10조 및 추가사항에 따른 인용이 있으니 주의를 요하겠습니다. 이 점을 숙지하신 뒤에 열람을 이어나가시를 바라겠습니다.
무턱대고 행동부터 하는 경우에는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추거나 심한 경우 가슴을 만진다든지 팬티까지 잡아끌어내리는 등의 절대 장난으로 봐 줄 수 없는 짓을 자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머리가 좀 돌아가는 남자아이들은 국어사전에서 성기에 대한 명칭을 찾아내서 대놓고 큰 소리로 읽는 식으로 놀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여자아이들 앞에서 일부러 "보지" 를 연호한다든지 여자아이들의 대화 일부분을 따라하면서 여자아이들이 "자지" 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고 변태라고 놀려댄다든지.
이런 사건이 빈발하면서 교사도 대응을 하게 되었는데 교사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는가 하면 그건 또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예의 머리가 좀 돌아가는 남자아이들이 이렇게 항변했으니까요. 예의 "보지" 도 "자지" 도 사전에 있는 말인데 왜 쓰면 안되냐고 따지면 교사들은 할 말을 못 찾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표제어 탓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좀 더 나아가서는 아예 복수의 표제어를 조합하면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 좆같다" 라는 문장을 구성하는 두 어휘가 모두 사전의 표제어니까 잘못한 게 없다는.
사실 사전의 표제어라고 해서 그것을 어느 상황에서 써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는 사용자나 사용환경에 따라 적절한 것이 따로 있습니다. 즉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나 사용환경이 맞지 않으면 부적절한 어휘가 됩니다. 이것은 겸양어 같은 것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성기의 명칭이라든지 부정적인 상황판단을 가리키는 어휘가 예외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만 지켜도 좋은 언어생활은 영위가능합니다.
국민학교 5, 6학년 때의 그런 소동은 아이들이 졸업하여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일삼던 아이들에게도 식상해지는데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여러모로 통제의 범위도 강도도 높아지다 보니 그런 짓을 하다가는 현실의 생활이 힘들어지니까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리고 그런 소동은 그렇게 1980년대말의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끝나려나 싶었는데...
이런 뉴스가 있습니다.
최강욱 “깐죽거리지마라” vs 한동훈 “국회의원이 갑질하는 자리인가” (2023년 8월 21일 조선일보)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해 "깐죽거리지 마라" 라는 표현을 썼고 한 장관이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에게 항의했습니다. 법제사법위원장은 해당 어휘가 지극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했고 게다가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도 "깐죽거린다는 말은 국회의원이 스스로 국회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 이라고 최 의원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최 의원은 "깐죽거린다는 말은 비속어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국어사전에 있는 그 어휘의 정의를 인용했습니다.
저야 한낱 연작(燕雀)에 불과한 재야의 소시민이라서 홍곡(鴻鵠)같은 위정자들의 복안 같은 건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은 확실히 판단가능합니다. 사전의 표제어라서 비속어가 아니라는 논리는 이미 1980년대 후반의 국민학생들 사이에서나 잠깐 유행하고 말았던 철지난 유행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이 글 속의 어떤 문장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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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er
2023-08-27 23:34:16
제가 초등학생일 시절에도 그런 표현들을 사용한 저속한 '장난'이 만발했죠. 컴퓨터의 전반적인 도입으로 인해 '유치한 짓'으로 간주돼서 증발하고 더욱 저질스런 '장난'이 등장했지만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국어사전은 어디까지나 단어의 뜻을 알려주는 것일 뿐인데 그것이 하나의 권위로 작동한다고 착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네요. 게다가 '비속어가 아니면 써도 된다'는 것과 '공공장소에서 공인에게 써도 된다'는 게 같은지도 모르겠고요. 그 정도의 정당성에 기댈 만한 권위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말을 잘해야 할 정치인이 할 말이 없어진 끝에 헛소리를 하다가 결국 책임을 지는 건 국민 입장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책임의 소재를 아는 건 다행이지만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나랏일을 맡긴다는 건 불행이니까요.
SiteOwner
2023-08-29 23:44:03
말씀해 주신 대로 국어사전은 단어의 뜻을 알려줄 뿐 세상 어디에도 국어사전에 실린 표제어라면 아무 제한없이 써도 된다고 인정하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일일이 알려주지 않으면 안될만큼 인간이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이미 사전의 표제어니까 비속어가 아니니 어쩌니 한 시점에서 말의 권위도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준에도 한참 못미친다는 것밖에 될 게 없습니다. 문제는 저런 정치인이 책임지려는 태도도 안 보인다는 것인데 언제까지 갈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끌면 끌수록 나중에 치르는 값도 천정부지로 높아집니다만, 어디까지나 그 정치인이 치르는 값이니 누가 대신해 주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시어하트어택
2023-08-30 21:24:04
그러고 보니 북한의 공식 발표가 그렇게 거친 이유에 대해 본 게 있었죠. 가장 유력한 건 1967년 있었던 김일성의 '전투적인 화법 구사'에 대한 교시죠. '신과도 같은' 수령의 말이니 감히 거역할 수 없었고, 그렇게 북한의 언어는 오염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최근 북한이 주민들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나 평양문화어보호법에서도, 보통의 법조문에서는 상상도 못할 지저분하고 저속한 말투가 그대로 사용되었죠.
SiteOwner
2023-08-30 21:52:02
언어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공산주의의 도구로 전락시키니까 그렇게 말이 저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북한의 언어가 거친 것은 바로 그런 가치관에 기인합니다.
이미 2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북한의 김여정이 "떼떼" 라는 욕설로 대남비난을 늘어놓은 게 있습니다("떼떼" 라는 북한말에서 생각났던 1987년의 봄날 참조). 아주 질낮고 유치한 그런 비하적인 화법도 역사가 이미 반세기를 넘었습니다. 사전의 표제어니까 써도 된다는 이런 유치한 심리는 적이니까 막 대해도 된다는 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