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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상품과 궤변, 그리고 아편전쟁

마드리갈, 2013-10-23 19:30:36

조회 수
404

산자이라는 중국어가 있어요.

山寨라는 한자어를 중국어로 저렇게 발음한 저 어휘는, 현재 중국에서는 가짜상품, 위변조품, 모조품 등의 의미로 쓰이고 있어요. 한국어로 옮기자면 짝퉁, 짭, 가품 등의 여러 가지 역어가 대응될 거예요.

그런데 山寨라는 단어의 원래 뜻을 보면, 온갖 가짜상품이 판치는 중국의 현실을 비웃는 "대륙시리즈" 제하의 것들을 그냥 유머로서만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이건 산 속에 돌이나 목책 등을 둘러친 진지, 나아가서 산적의 소굴을 의미하니까요. 이문열 평역삼국지 2권에서 "이 보궁수와 마궁수를 이끌고 태산에 들어가 산채라도 여실 작정이오?" 라고 빈정대는 장비의 대사에도 이 산채가 나와요.


이 기사를 한번 볼까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023&aid=0002599701


여화(余華)라는 소설가는 중국의 이 가짜상품 문화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어요.

가짜상품의 범람이라는 현상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한다든지, 이 현상이 무정부주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다든지 하는 발언도 놀랍지만, 중국 자체의 사회문제라면서도 근본적으로 해를 끼친다고 보지도 않는다는 데에서 놀랐어요. 중국경제의 급성장으로 인해 서민이 가짜상품을 쓸수밖에 없다는 논리 자체도 수긍할 수 없는 궤변에 불과하구요.

게다가 그의 작품 속에서는 남자친구에게 받은 선물이 가짜 스마트폰인 것인 것을 알고 상심하여 자살한 여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가짜상품을 옹호하는 데에서는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중국의 인구폭발 억제에 기여하니까 그렇다고도 주장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저 소설가의 주장은 서민들을 옹호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서민들을 심각하게 모욕하고 있어요. 그의 논리에 따르면 가짜상품을 쓰면서 그냥 거기에서 만족해 버리는, 전혀 능동적이지 못한 무지몽매한 자들에 지나지 않게 되어요. 게다가 서민을 그 도적의 소굴에 협력하는 공동정범으로 전락시키고 있기도 하니까요. 그것 뿐일까요? 국가의 존재이유도 부정하고 있어요.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사회적 계약으로서 존재하는 근대국가의 원리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도 보여요.

더욱 심각한 것은, 창조와 개발보다는 남의 것을 그냥 모방하고 위조하는, 구조화된 도적질을 양성한다는 데에 있어요. 그래서 저 산채라는 표현의 이면에는 그냥 웃기만은 힘든, 문화창달의 의지를 꺾는 독소가 가득 서려 있어요.


약간 더 생각을 확장해 봤어요.

어쩌면, 이러한 가짜상품의 범람은, 아편전쟁의 21세기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19세기 영국이 일으킨 가장 추악한 전쟁인 아편전쟁은 대청무역에서 만성적인 적자를 단기간에 뒤엎는 데에 성공했어요. 그리고 이 전쟁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수천년간 이어진 중화주의 질서는 발밑부터 무너지기 시작하여 20세기의 전반까지 중국은 열강들의 이권각축장으로 전락했어요. 또한 이것은 중국에서 마약사범에 대해 극형을 불사하는 중요 계기가 되었구요.

그런데, 이 가짜상품을 보니, 이건 중국발 신종마약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가짜상품은 국내적으로는 서민들을 기만하여 그냥 그 상태로 평생을 보내게 취하는 마약이자 국제적으로는 세계의 자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 모으는, 19세기의 영국이 수출했던 아편의 21세기판이라고 해야겠어요. 그렇다면, 중국의 그 엄격한 마약단속과 가짜상품의 범람은 이율배반의 공존으로 보여요. 그 소설가의 작품 속에서는 가짜상품으로 등장인물이 죽는데 그 소설가는 가짜상품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의풍당당이라는 애니에서는 오프닝에서 義라는 개념은 자신[我]을 아름답게[美] 하는 것이라 하고 있어요.

그걸 생각해 볼 때 마약은 엄단하면서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가짜상품이 활개를 치는 중국은 결코 義라고 할 수 없어요. 오히려 귀신[鬼]같은 솜씨와 언변으로 술[酒]같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그 가짜를 옹호하게 만드는 것, 이 두 글자를 합치니 醜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추한 실상을 그렇게 덮을 수 없다는 건 이미 중국 고전에서 "서시의 아름다움과 무염녀의 추함을 언변으로 속일 수 없다" 라고 나와 있을텐데,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마드리갈

Co-founder and administrator of Polyphonic World

4 댓글

대왕고래

2013-10-23 19:38:37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영 이상한 말을 하는 소설가라는 건 알겠군요.

가짜 사용이 무정부주의를 외치는...이라니 이건 무슨 바보짓인가요;;; 뭐지 이건...

생각을 하고 말한거라면 기본 사상이 의심스러운 것이고, 생각을 하지 않고 말한거라면 그 사실로도 아웃이네요.

소설가가 왜 저러는지...

마드리갈

2013-10-23 19:44:56

저런 것을 혹세무민이라고 하지요.

말과 글의 프로페셔널이라면 더더욱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그의 말 한마디가 세계를 뒤흔들 수 있고 그 파장도 오래 갈 것이 확실하다 보니 자신의 발언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저 소설가는 기본적인 세계관 자체가 나쁜 방향으로 뒤틀려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여 문명의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이 누리게 할 수 있는 현대문명의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저 발언은 결코 동의할 수 없어요.

하네카와츠바사

2013-10-26 21:42:53

그야말로 궤변이군요. 가짜 상품을 그럴 듯한 말로 옹호해 봐야, 그건 가짜일 뿐인데 말이죠.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마치 정부의 압력으로 저런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마드리갈

2013-10-26 21:48:37

그리고, 언제나 가짜상품은 진본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보니 결국 그런 가짜상품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자주적인 존재가 아닌 무엇의 아류로 전락시킬 수밖에 없는,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혈관 속에 마약을 주입하는 어리석음과 전혀 다를 게 없어져요. 이래서 어떻게 21세기의 주도권을 논할 수 있는 걸까요.

정말 정부의 압력으로 저런 글을 썼다면, 저것은 이웃을 굶겨서 돈을 뺏으라는 중국 정부의 관제테러(state-sponsored terrorism)일 것이지만 결국 자신의 몸을 찔러 상처낼 최악의 심리전일 거예요. 자기 의지로 저런 글을 썼다면, 이미 그 작가의 정신세계는 회복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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