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언급한 틀려버린 미래예측들을 살펴 보면 몇 가지의 공통된 것들을 추려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일단 이 정도로 거명해 보고 싶습니다.
- 현재의 상황에서만 생각한다
- 비용의 문제, 기존 네트워크의 문제 등의 현실적인 제약요건을 고려하지 않는다
-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1번 사항과 2번 사항은 꽤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의외로 모순적이지가 않습니다.
즉, 미래예측은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하되, 유리한 것, 로망에 반영하고 싶은 것들을 대거 인용하고, 극복의 가능성이 있거나 낡아서 대체해야 할 것은 배제하는 일종의 취사선택을 거칩니다. 긍정적인 예측 말고도 부정적인 예측의 경우에도 이러한 사고의 회로는 동일하게 작용하는데, 단지 방향만이 다를 뿐이지요. 조금 극단적인 비유이지만,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1주일분인데 이것을 보고 8일 뒤에는 아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틀리게 되어 있는 예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외출해서 장을 봐서 음식을 더 채워놓는다는 선택지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1960년 로마클럽의 선언이 이 점을 증명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현실적 제약요건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는 상당히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라디오가 발명되니 독서가 필요없게 된다고 생각했고, TV가 발명되니 라디오 방송을 듣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고, 인터넷이 대중화되니 이전의 다른 매체들이 모두 폐기될 거라는 생각은 어김없이 틀린 미래예측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문화활동이 엄청난 진보를 이루어내었지만, 인간의 사고방식과 성향은 사실 상당히 보수적이라서, 기존 플랫폼이 완전히 쓸모없어지기 전까지는 그 플랫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신문물이 나와도 기존 문물을 일거에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기존 문물과 공존하거나, 대체하더라도 그 변화가 상당히 점이적입니다. 철도노선이나 컴퓨터의 운영체제처럼 플랫폼의 형식이 고정된 경우라면 그런 급변이 일단 물리적으로 안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부작용입니다.
소련이 기획했다가 결국 실현되지 못한 각종 프로젝트는, 실현되었다면 정말 큰 대재앙이 될 뻔 했습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급속도로 보급되어 있지만, 스마트폰을 쓰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함은 물론이고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역사상 가장 스마트하지 못한 세대로 쇠퇴해 갈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특정사안의 명암을 모두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밝은 면에만, 또는 어두운 면에만 편벽되어서는 안 될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사실 이렇게 정리해 보았지만, 막상 지금 하는 미래예측이 앞으로 얼마나 적중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겠지요.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고, 점진적인 변화가 쌓여서 이후에 엄청나게 큰 결과를 만들어내고, 또한 그것들이 우연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이 정도만 제대로 숙지하더라도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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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호랑이
2014-09-03 00:14:31
과거의 유산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잔류하거나, 혹은 취미/수집/학술 등 그 어떤 이유에서든 절대 없어지지 않는데, 미래예측을 할 때는 "이번 새로운 ㅇㅇ로 인해 XX는 없어질꺼야!" 하는 것들이 꽤 많더라고요. 이 부분이 미래예측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합니다.
페이퍼리스 오피스랑 전자책이 나왔다고 해도 종이는 없어지지 않고, MP3P와 스마트폰이 나왔다고 해서 LP와 진공관이 멸종하지 않았으며 인체공학적 플레이트 캐리어와 멀티캠이 개발되어도 우드랜드와 엑스반도가 지구 어딘가에서 지금도 쓰이는 것처럼요.
SiteOwner
2014-09-03 12:38:11
그렇습니다. 사실 과거의 유산 중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쓰이거나 새로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조차도 문화의 화석으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것들을 새로운 문물이 만들어지면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것처럼 착각하기에 문제가 됩니다.
한때 컴퓨터에 의한 사무자동화가 진전되면 사무실에서 종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되었지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보입니다. 모니터 화면보다는 역시 종이에 인쇄된 서류를 읽는 게 편한 게 사실입니다. 자체발광하는 매체보다 외부의 빛을 반사하는 방식이 눈에 피로가 덜하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데다 한 눈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기술적 우위는 그냥 기술적 우위이지 다른 것을 일방적으로 몰아낼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