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최첨단 유행이라도 한참 뒤에 보면 굉장히 뒤떨어져 보이는 게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패션인데, 1990년대에 유행했던 것들을 회상해 보거나 당시의 영상물을 다시 보면서 웃게 되는 게 좀 있습니다.
그 몇 가지가 생각났길래 글로 좀 써 보겠습니다.
1. 속칭 "농띠바지"
일단 "농띠" 라는 말부터 설명해 둬야겠군요.
농띠란 표준어 "농땡이" 의 대구경북지역 사투리로서, 불량하고 일탈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일컫는 당시의 용어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일진이니 노는애니 하는 표현은 있었습니다만, 예의 그 "농띠" 가, 당시 살던 지역내에서는 더욱 많이 쓰였습니다.
이 농띠바지라는 게 어떻게 생겼나 하면, 허리 부분에는 주름이 여러 개 들어가 있고, 바지의 폭이 굉장히 넓었습니다. 허벅지 부분의 단을 잡아당기면 허벅지 두께의 4-5배는 될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입은 모습을 보면 벨트 아래에는 주름이 여러개에, 바지단이 무슨 옹기단지같았습니다. 그것이 당시 좀 논다 싶은 남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고, 심지어는 교복바지 대신 색깔과 패턴이 같은 농띠바지를 항시 착용하는 남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유행은 대략 1992-1993년 정도까지 유행하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2. 지퍼 부분이 기이한 백바지
대략 1994년쯤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옹기단지같았던 농띠바지 대신에 슬림핏의 백바지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퍼 부분이 좀 기이한 것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인 지퍼 대신 미군 군복처럼 단추로 잠그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금속제 밀폐용기의 잠금장치같은 은색의 크고 번쩍이는 것을 단 바지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것은, 고간에 시선을 집중시켜서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좀 마이너했는데, 확실한 건 2000년대 이후로는 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 아무튼 그렇습니다.
3. 야광 야구모자
여학생들 사이에서 주로 유행했던 것 중의 하나로, 당대에 잘 나갔던 패션 아이템 중의 하나가 이 야광 야구모자였습니다.
1994년에 발표된 히트곡인 칵테일사랑의 PV에도 이것이 등장하고 있으며, 기억으로는 1997년 가을 때까지도 상당히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대성리, 강촌 등의, 수도권 소재 대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경춘선 연선지역의 MT촌 등지에서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4. 속칭 "양키셔츠"
원색 티셔츠 위에 그냥 의미없이 여러 자리의 숫자와 로마자를 조합한 문자열을 프린트한 것. 이것을 흔히 양키셔츠라고 불렀습니다. 이유는 미국인들이 잘 입고 다닐 것 같아서라나요. 이것들은 꽤 수명이 긴 편이어서, 1990년대는 물론 2000년대에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는 야구팀 유니폼 등 다른 디자인의 더 좋은 대체재가 많다 보니 요즘은 보기 어렵습니다.
이건 군생활 때에 카투사 내부에서 강매당한 게 하나 있긴 한데 싸 보이는데다 착용감도 별로 안 좋아서 지금은 입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시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그 자칭 "패션리더" 들은 저 때의 패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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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안샤르베인
2015-07-03 23:28:08
저런것도 있구나 하는 재밌는 디자인도 있는 반면에 저게 뭐지? 하고 경악할 만한 디자인도 있네요. 농띠바지는 왠지 생각하기도 참 싫고(....)
전 교복 수선해 입는것 중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패션이 허벅지는 넓게 만들고 종아리는 아주 딱 붙어서 벗기도 힘들것같은 남학생들의 바지였어요. 그게 멋있어 보이니? 하고 진심으로 묻고 싶었죠.
SiteOwner
2015-07-04 00:43:22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옷을 보면 패션 테러리즘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문제의 농띠바지는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 생각해도. 특히 웃기는 것은, 바지 폭 자랑한다고 바지의 단을 쭉 펴는 것...그게 대체 뭐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허벅지를 넓게 만들고 종아리를 딱 붙게 개조한 남학생 교복바지...그렇게 만들면 멋있는 줄 아나 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해 줄 사람들은 그렇게 줄이는 학생들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나중에 추억하면 이불을 뻥뻥 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