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회차에서 이어서 쓰겠습니다.
5. 국어순화의 시간
1980년대에는 국어순화운동이 꽤 광범위하게 벌어졌는데 그 중에는 왜 하는지 모를 정도로 과격한 것도 많았습니다. 텔레비전이라는 어휘가 외국에서 들어온 단어라고 해서 이 어휘를 배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후보 중의 하나가 "바보상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TV가 일방향으로 사람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바보로 만든다고 바보상자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그 의도가 실현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6. 합창단의 시간
다른 지역은 어떠했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대구경북권에서는 방송국이 어린이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합창단원을 모집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구MBC 쪽이 확실히 잘 기억나는군요. 대부분의 경우는 여학생이었고, 남학생은 열에 하나 정도 비율로 보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대의 부유층 유행 중의 하나가 자기 집의 딸을 방송국 합창단에 입단시키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의 문제도 꽤 있었습니다.
7. 퀴즈의 시간
예전의 TV 프로그램에는 퀴즈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선경그룹(현 SK그룹)이 후원하는 장학퀴즈는 물론이고, 중학생 퀴즈,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퀴즈아카데미, 자연다큐멘터리 관련의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자동차 관련의 퀴즈대회인 도전 차차차, 처음에는 일반인 대상의 퀴즈대회였다가 이후 참가팀이 부부로 한정된 퀴즈올림픽, 퀴즈와 각종 장애물 돌파 경기가 혼합된 형태의 열전 달리는 일요일, 정확한 컨셉트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참가자 수가 상당히 많았던 퀴즈 동서남북 등 지금도 여러가지가 생각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미군방송인 AFKN에 나오는 퀴즈프로그램인 Jeopardy!를 즐겨 봤고, 그래서 군생활 때 미군들과도 그걸 같이 보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고 그랬습니다.
8. 호러의 시간
당시에는 오후 9시가 임박하면 아이들은 잠잘 시간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말이 나오면서 시보가 방영되었습니다. 그 이후 9시 뉴스가 방영되고 나면 여러 드라마가 나오고는 그랬는데, 고정적으로 호러 드라마 시간대가 있는 요일도 있었습니다. 그것 하면 역시 전설의 고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름에는 공포영화 특집이 "납량특집(納?特集)" 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나오는 때도 많았지요.
국내산라이츄님이 아트홀에 연재중인 소설 괴담수사대를 읽고 있으니,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호러드라마 M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캐스팅도 초호화였는데다 낙태한 아이의 원혼이 복수를 하러 온다는 소재, 생각만 해도 섬찟한 주제가 등 여러모로 무섭기 짝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국민학교 취학 직전에 칼라TV를 접했고, 성인이 될 때까지 칼라TV의 초창기의 모습을 봐 오면서 성장한 것이 되는군요. 이렇게 생각하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은 물론이고, 미디어 역사의 전환기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데에서 묘한 자부심 비슷한 것도 들고 그렇습니다.
칼라TV 초창기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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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콘스탄티노스XI
2017-09-08 01:16:25
바보상자란 말은 제주변 어르신들은 이런 용도로 쓰시더군요. "TV를 보다보면 입을 헤벌리고 보는데 이게 사람 바보만들어서 그런거다. 그래서 바보상자라 하는거다." 그래서 저희 집에서는 TV보다가 입벌리고 보면 바로 닫으라는 말이 나왔죠...요즘은 안그렇습니다만.
SiteOwner
2017-09-24 15:50:16
말씀해 주신 사례는 저도 어릴 때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들어본 말입니다.
언어순화 광풍이 불었을 때 텔레비전이라는 영어 계열 외래어를 쓰지 말고 바보상자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특정대상에 비하의 의미를 담은 용어를 붙이는 발상 자체가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이런 의견들은 주류로 부상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 움직임이 현실화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어문정책은 북한과 동급으로 추락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조커
2017-09-08 07:09:17
AFKN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전 가장 그 시절 재미있게 즐겨본 프로가 휠 오브 포츈입니다 커다란 룰렛을 돌리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에 따른 단어 맞추기 챌린지 과제를 맞추고 못맞추고의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과 간간히 나오는 Bankrupt나 loose the turn같은 꽝에 멘탈이 산산조각나는 참가자와 잭팟이 터졌을때 나오는 사회자의 오버액션 섞인 진행도 인상적이었죠.
제가 어린시절엔 WWF(현재 WWE의 전신)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주말만 되면 친구들과 모여앉아서 영어도 모르면서 가장 좋아하던 레슬러(저같은 경우엔 래뷔싱 릭 루드와 얼티밋 워리어, 그리고 제이크 더 스네이크의 팬이었죠)만 나오면 열광하고 이겨라 져라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간간히 톰과 제리, 로드런너와 코요테같은 애니메이션도 나와서 눈이 즐거웠던 때가 많았죠.
AFKN엔 그런 특별한 추억이 있습니다:)
SiteOwner
2017-09-24 15:50:42
코멘트가 상당히 반갑게 느껴집니다. 조커님이 저와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는 세대였다니 특히 더욱 그렇습니다.
Wheel of Fortune도 재미있었지요.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Jeopardy!가 시작되고 그랬다 보니, 시작 전에는 꼭 그것을 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국내에도 그 포맷을 모방한 것이 있었지요. MBC의 화요일에 만나요, 약칭 화만나가 그랬습니다.
톰과 제리 시리즈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지요. 지금 다시 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다른 기회를 빌려서 TV 프로그램 이야기도 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