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은 마츠에나 슌의 만화 '사상최강의 제자 켄이치(史上最?の弟子 ケンイチ)'와 아네코 유사기의 라이트노벨 '방패 용사 성공담(盾の勇者の成り上がり)'의 제목을 섞은 이중 패러디.
흔히 낙하산 인사는 '직장생활에서 연줄에 의해 기존 조직계통을 무시하고 끼어든 사람'을 비하하는 용도로 쓰이는 말이죠.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유유히 지상으로 내려오듯, 연줄 만으로 회사에 유유히 안착했다는 의미. 해당 인물이 능력이라도 좋으면 또 모르겠는데, 무능력한 주제에 인맥만으로 간탁됐다면 화룡점정.
하지만 세상에는 낙하산 인사에 의해 회사의 미래, 그리고 산업의 미래가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는 기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1889년 9월 23일, 초대 사장 야마우치 후사지로에 의해 화투 제조를 가업으로 내세운?개인 상점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 임천당 골패)가 창업합니다. '놀이'의 역사를 새로 쓴 회사의 유구한 시작이었죠. 이 시기의 트레이드 마크는 동그라미 안에 한자 복 복(福)자를 그려넣은 그림. 닌텐도 곳파이가 만들던 화투는 안에 석회 가루를 넣어 화투를 칠때의 경쾌한 맛을 살리고, 어느정도 가지고 놀다 보면 내부의 석회 가루가 터져 새로 사도록 하였으며 이를 위해 사람들이 어디서든 손쉽게 화투를 취급하도록 담배 가게를 유통망으로 잡았습니다.
1929년에는 데릴사위 야마우치 세키류가 뒤를 이었고 1947년에 사명을 '주식회사 마루후쿠'로 변경. 이후?1949년에 세키류가 사망하자 손자 야마우치 히로시가 중간에 잠적한 아버지 대신 대를 이어 3대 사장으로 취임합니다. 이 시기의 닌텐도는 사명을 여러번 바꾸기도 하고(닌텐도 카루타(주) 라던가 닌텐도 곳파이(주) 라던가),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트럼프 카드를 생산하기도 하고?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디즈니 트럼프 카드 등을 판매하면서 세계 최대의 카드 회사를 목표로 잡죠.
헌데 견학을 위해 방문했던 세계 최대의 카드 제조 회사인 미국의?'US Playing Card'가 생각보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작은 회사라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야마우치 사장은 '카드만으로는 안된다'는 판단 하에 다른 사업을 물색하여 택시업, 러브호텔, 인스턴트 라이스(지금의 햇반 같은 물건), 유모차 등 온갖 사업을 손대보지만 줄줄히 실패하면서 도산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리하여 1963년, 사명을 익숙한 지금의 '주식회사 닌텐도'로 바꾼 후,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의미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완구, 이른바 '울트라' 시리즈를 전개합니다. 울트라 시리즈가 히트하자 닌텐도는 샤프와 손을 잡아 장난감 레이저 광선총을 개발하고 폐업한 볼링장을 인수해 개조하여 광선총용 실내 사격장을 운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런 것들로는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들과의 승부는 무리였고, 결국 야마우치 사장과 닌텐도가 선택한 수는?당시로선 최신 사업이었던 전자 완구, 즉 비디오 게임 이었습니다. 지금의 휴대용 게임기의 아버지인 요코이 군페이의 주도하에 1980년에는?전자계산기에서 착안해 누구나 들고 다니면서 가볍게 게임을 즐기는걸 모토로 개발한?닌텐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 앤 워치'를 내며 재미를 보았고, 1983년엔 다들 협업을 고사하는 가운데 흔쾌히 응해준 리코와 합작한 닌텐도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식 8비트 비디오 게임기이자,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의 대명사 '패밀리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지금의 '비디오 게임의 명가 닌텐도'의 이미지를 점차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죠.
이 시기의 닌텐도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우리의 낙하산 인사.
1977년, 상기했듯 경영 부진과 도산 위기로 도저히 신입을 뽑을 역력이 없었던 닌텐도였지만 아버지가 손을 써준 덕분에 닌텐도에 디자이너로 취직합니다. 유아동 대상의 놀이기구 디자인 등을?포트폴리오로 가져갔던 이 낙하산 인사는 입사한 후에는 게임기 외장에 색을 칠하는 디자인 업무를 맡게 됩니다.
그러다가 닌텐도의 북미지사Nintendo of America에 급히 게임을 제작해 보내야 할 일이 생기게 되면서 이 낙하산 인사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사내 게임 제작 공모에 그가 출품한 것은 뽀빠이 게임이었는데, 라이선스를 획득하는데 실패하면서 저작권 문제로 뽀빠이는 주인공 점프맨, 올리브는 그의 여자친구, 브루투스는 고릴라로 바꾼 오리지널 게임으로 재설계하여 발매하게 됩니다.
...혹시 눈치 채셨는지?
그렇습니다. 1977년의 닌텐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 낙하산 인사의 이름은?현재?주식회사 닌텐도의 총대장격 존재인 동시에?아타리 쇼크에 의해 공멸할 뻔한 비디오 게임 산업의?구세주이기도 한 현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
대표작으로는 주인공이 킹콩을 닯은 고릴라를?물리치고 납치당한 여인을 구한다는 아케이드 게임 '동키콩(Donkey Kong, 1981)', 배관공이 거북괴수를 무찌르고 납치당한 공주를 구한다는 스토리를 바탕으로, 패미컴과 함께?지금의 비디오 게임 업계가 있게한 1등공신?'수퍼 마리오 브라더스(Super Mario Bros., 1985)', 패미컴 전용?주변기기인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플랫폼으로 발매된, 용사가 되어 트라이포스를 모아 마왕을 무찌르고 평화를 가져오는 스토리의?하이랄 판타지 '젤다의 전설(The Legend of Zelda, 1986)' 등이 있으며,?닌텐도를 대표하는 타이틀과 그 마스코트 캐릭터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 미야모토 시게루.
그가 닌텐도에 취직한 이후의 역사는 익히 아시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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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eOwner
2018-01-29 22:12:06
정말 놀라운 낙하산이군요. 그야말로 예외 중의 예외라고 봐도 될 정도의 대성공이니, 역시 현실이 창작물을 능가하는 것인가 봅니다. 낙하산 인사를 일본어로는 아마쿠다리(天下り)라고 하는데, 예의 미야모토 시게루의 경우는 아마쿠다리가 텐카비토(天下人), 즉 게임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사례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 군가 중 하늘의 신병(空の神兵)이라는 것이 같이 생각납니다. 낙하산이라는 명사도 나오고 아마쿠다루라는 동사도 나오다 보니 링크를 인용해 두겠습니다.
마키
2018-01-31 13:29:41
아버지의 연줄로 들어온 낙하산 신입이 쓰러져 가던 비디오 게임 업계를 부활시키고, 화투 제조가 본업이던 개인 상점을 지금의 비디오 게임의 명가로 만들 줄은 아마 본인도 상상조차 못했겠죠...
천하를 얻은 자라... 확실히 그 말씀대로네요.
마드리갈
2018-01-30 17:16:38
닌텐도의 역사가 참 재미있어요. 예전에 컴퓨터 잡지에서 읽은 바로는 택시회사를 경영한 적도 있었다는 게 나와서 그것은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역사가 파란만장하고, 창의와 혁신에 충실한 기업이라는 점도 새로이 알게 되네요.
게다가 미야모토 시게루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있네요. 정말 예외 중의 예외.
읽고 나니까 이런 게 생각나네요.
닌텐도의 한자 任天堂를 보면 하늘[天]에 맡긴다[任]라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닌텐도의 행보 그리고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든 역사를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라는 격언 또한 같이 연상되고 있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도우니 운명도 그들의 편인가 싶어져요.
이번에도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 덕분에 즐거워졌어요!!
마키
2018-01-31 13:36:31
"화투를 만들던 개인 상점이 택시와 러브호텔까지 손대다 전부 실패하면서 도산할 위기에 처하자 하늘에서 고귀한 분이 내려와 구원해주셨다" ...소위 말하는?데우스 엑스 마키나(라틴어로 기계장치의 신. 그리스 연극 무대에서 신과 같은 절대자가 기계장치를 타고 절정 부분에 등장하는?묘사로부터, 모든 인과관계를 마음대로 조종해 해결하는 절대자의 개입을 뜻하는 용어)도 아니고 말이죠.
닌텐도가 만들던 콘솔 하드웨어 같은 경우도 다른 회사라면 엄두도 내지 않을 온갖 다양한 기능을 거리낌 없이 시험해보는게 재밌죠. 모션 인식으로 히트쳤던 Wii 라던가, 3D 입체영상을 휴대기기에 구현한, 어찌보면?버추얼 보이의 머나먼 후손인 3DS 계열이라던가,?요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거치|휴대 하이브리드?콘솔인 스위치도 그렇구요.?
1977년의 그 해,?미야모토 시게루 라는 낙하산 인사가 만약 입사하지 않았다면, 닌텐도가 그 신입 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과연 그때의?비디오 게임 시장은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