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쟁, 독점, 독점적경쟁, 과점의 네 가지로 구분되는 시장의 유형 중 독점은 공급자가 가격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게다가 공급자가 오직 하나라서 소비자는 좋든 싫든간에 그 가격을 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과점은 소수의 거대 공급자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사실상의 지배자로서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형성되는 가격은 자유경쟁이나 독점적경쟁의 경우보다는 높기 마련이고, 그만큼 사회후생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 여러 조치가 단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미국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Standard Oil Company)의 분할이라든지, 작게는 식품분야에서 크게는 우주항공 분야에서까지 일어나는 업체간의 담합, 트러스트, 카르텔 등을 막기 위한 각종 정책이 시도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언어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유감입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의 경우, 어떤 어휘나 언어의 상당부분, 혹은 전체가 새로이 탄생하거나 재정의되거나 주류로 정착하면 그 이후부터는 그 언어는 그것의 여집합을 적대시하거나 배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 경우를 보겠습니다.
진보, 자주, 민족, 페미니즘, 다원주의 등의 어휘를 보았을 때 이 어휘가 표방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대할 용기가 그렇게 쉽게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대척점에 있는 가치는 어떻게든 평가절하되거나 타도, 청산, 극복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또한, 언어에 독과점이 일어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언어의 정의에도 변동이 일어납니다.
이미 위에서 보듯, 시장이 독점 또는 과점 상태일 때에는 공급자가 가격결정권을 갖게 됩니다. 언어라고 해서 이게 달라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거의 동일한 형태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왜곡이 일어나고,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함의는 물론이고 사전적 정의까지 달라지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조선인(朝鮮人)의 일본어 발음인 쵸센진, 조센징 등은 분명 겉보기에는 조선의 사람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과 글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일본 지배하의 우리나라의 언어환경에서 "조센징" 이라는 말은 일본인이 사용하는 한국인의 멸칭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조선총독부 체제가 끝난지도 이미 반세기하고도 절반 가까이가 지났지만 예의 어휘는 더 이상 가치중립적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의 각종 어휘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의미의 왜곡이 진행되어, 궁전이라는 어휘가 일반적으로는 군주국의 왕가가 거주하는 건물을 의미하지만 북한에서는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대형 문화시설로 완전히 다르게 정의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존재이고, 그래서 자신의 말이 옳다는 확신 및 자신의 생각이 널리 퍼졌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자체로서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특정 가치의 절대화 등을 위한 도구로 쓰이면, 그 폐해는 좀처럼 극복하기 쉽지 않으며, 아예 불가능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독과점은 여러모로 경계해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습니다.
말과 글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현대사회에서 표현이 세련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하고 나날이 거칠어져 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된 현상에 일조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독과점으로 공급된 어휘에 대해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여러모로 생각하고 반성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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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대왕고래
2018-08-26 04:11:48
단순한 버섯 이름에 자양강장제 이름이던 "운지"가 인터넷상에서 금어가 되어버리고, 어느 집단에서 "한남"을 명칭으로 사용한 덕분에 어느 대학 이름이 이상하게 보이게 되기도 하죠. 누군가가 한 언어를 다른 의미로 변질하는 순간, 그것은 아예 고정되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니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네요.
SiteOwner
2018-08-26 19:54:34
그렇습니다. 한번 변질된 말은 더 이상 제대로 쓸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그러한 현상이 나날이 늘어만 가니 앞으로 제대로 쓸 수 있는 말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두렵고 그렇습니다. 문제는 언론매체나 어문정책 담당기관 등도 이런 것들에 무관심하여, 그러한 어휘에 휘둘리고 있으니 사정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
최소한 포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