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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 H] 175화 - 수민 vs 파디샤(2)

시어하트어택, 2021-12-08 07:50:18

조회 수
115

그리고 약 5분 정도 후.
일행은 구경하던 건물을 나와 다음 구경거리를 찾아 거리를 걷고 있다. 어느새 거리에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었다. 일행이 처음 여기 발을 디딜 때만 해도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는데, 일행이 그 건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어느새 거리는 이제 슬슬 붐비기 시작하고 있다. 거리의 건물마다 사람들이 없는 곳이 없고, 손에는 부채나 딱지 같은 기념품 아니면 떡꼬치, 탕후루, 케밥 같은 간식거리가 하나씩 들려 있다.
미켈 역시 다음에는 어디를 또 들어가 봐야 할지 고민한다. 이곳 개척촌 테마 거리는 미켈이 패키지 여행 가이드를 하면 항상 가는 곳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얼마나 활기가 넘치는 곳인지, 어제 봤던 간판이 오늘 가 보면 내려가 있는 경우도 있고, 어제는 텅 비어 있던 건물에 오늘 가 보면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미켈도 여기에 오면 1분 정도씩은 가만히 서서 고민하는 일이 많다.
“파울리 씨, 오늘은 좀 빨리 들어간다고 했죠?”
미켈의 옆에서 걷던 시저가 말을 건다.
“간만에 파울리 씨도 좀 쉬겠네요. 안 그래요?”
“아, 하하하, 그렇죠...”
미켈은 어색하게 대답한다. 물론 내부 사정이야 알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지금 시저가 자신에게 덕담을 해 주는 건지 놀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그래도, 미켈은 최대한 웃으며 친절하게 말한다.
“내일을 준비하려면 좀 휴식도 필요하니까요, 맞죠?”
“그럼요!”
다행이다... 시저는 별 의심 없이 넘어간다. 미켈은 속으로 안도한다.
그러던 미켈의 눈에 들어온 건, 현란한 조명을 쓰는 오락실. 다행히, 이곳은 몇 달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날 양식의 오락기와 게임들 덕분에 인터넷 상에도 많이 알려진 곳이다. 목표를 확인하자마자, 미켈의 입에도 다시 웃음기가 돈다.
“자, 이제 가시죠. 다음은 또 어디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한편 바로 그 시간, 테마 거리 뒤쪽의 으슥한 거리.
“크... 윽...”
조금 전까지도 정장 입은 남자를 향해 강한 적의를 감추지 않던 수민은, 거리 한구석에 주저앉아서 몸을 가누기 힘든 듯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그나마 충격이 크지는 않았는지, 그는 다시 일어선다. 조금씩 다리가 흔들거리기는 하지만.
“흐... 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수민은 다시 일어서자마자 멀리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말한다.
“알겠어... 왜 내 아버지와 삼촌이 그렇게 속절없이 당했는지.”
“제대로 봤군. 내게 가까이 갔기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내 능력을 제대로 못 알아본 거지. 철저히 대비했다면 그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지. 안 그런가?”
다리에 힘을 주고 선 수민의 눈에, 다시 남자가 주먹을 휘두르려는 자세를 취한 모습이 보인다.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아도, 온몸에서 발산되는 살의가 강하다. 그러면서도, 겉으로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은근히 여유롭다.
“하나 정도는 네게 좀 더 높은 평을 주어도 괜찮을 것 같군. 시간과 공간을 접을 수 있는 능력을 무의식중에 알아채고 그렇게 충격을 최소화했으니 말이야. 2년 전 네 작은 아비는 이 공격 한 방에 배가 뚫려 버렸지. 그리고 거기서 그 녀석의 운명도 결정 났고! 한심하고 멍청해라, 그 녀석이란!”
“말 다 했냐, 개자식!”
남자의 그 말에, 수민은 곧장 그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훗, 피는 다르지 않군. 그 아비에 그 자식, 그 삼촌에 그 조카란.”
하지만, 그다음 순간. 남자는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이건, 그가 원했던 바와 다르지 않은가... 분명 시간과 공간을 전부 도약해 수민에게 날아가야 할 주먹이, 또다시 엉뚱한 쪽으로 날아가고 있지 않은가!
쾅-
엉뚱한 데로 날아간 주먹은, 이번에는 땅바닥을 내려친다. 보도블록이 산산조각이 나고, 그 아래에 있는 흙도 이리저리 튄다. 그의 꽉 쥔 주먹도 조금 욱신거린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도, 이런 적은 처음이다. 이렇게나 지칠 것 같고, 이렇게나 힘든 싸움이라니...
그리고 그때.
퍽-
뭔가가 날아와, 남자의 뒤통수를 정통으로 때린다. 순간 멍해진다. 눈앞이 어질거리더니 일시적으로 캄캄해졌다가, 다시 어질거린다. 평형감각이 일시적으로 상실된 것인지, 머리에 손을 댄 채 애써 두 발로 서 보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으... 으윽...”
남자는 비틀거리더니, 벽에 손을 짚고 나서야 겨우 설 수 있게 된다. 눈에 불을 켜고 수민부터 찾는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인가? 지금 분명, 지근거리에서 그의 머리를 가격했을 텐데!
“멀리는 못 갔을 거다. 더군다나 나를 직접 노리는 이상, 절대 내 주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터!”
보인다. 남자의 눈에, 수민이 지금 있는 위치가.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공간이 그에게 읽힌다. 남자의 머리 위에서!
“거기구나... 위에 있구나!”
곧바로, 남자는 주먹을 휘두른다. 이 정도면 시야의 밖이기는 해도 충분히 닿을 만하다. 단지 시야에서 벗어나 슬슬 기회를 노리는 것뿐이면, 승산은 있다.
쿵-
지면과 공기를 가득 울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닿는다. 그리고 물컹한 감촉까지.
“됐군... 이번에야말로!”
남자가 그렇게 입에서 안도하는 날숨을 내뱉으려는 그때.
“무슨...”
온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 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하더니, 눈앞이 팽팽 돌아가는 듯하고, 귀가 먹먹해진다. 누군가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귀가 왕왕거리기만 할 뿐. 공중에 뜬 것인지, 아니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감각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어디론가 내동댕이쳐진다!
쾅-
직격했다. 땅바닥에, 그의 온몸이.
마치 누군가에게 잡혀서 내던져지듯 한 그의 온몸은 성한 데가 없고, 팔다리는 마치 배배 꼬인 것처럼 보인다.
“흐으윽... 으극...”
그에게 있어서, 이렇게 절망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여태껏 적들을 상대할 때, 정신에 대한 공격은 받았을지언정, 그 누구도 그의 몸에 직접 타격을 준다든가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그에게 닥친 건 차원이 다른 위기다. 온몸에 통증이 밀려온다. 움직이기도 힘들다. 잔뜩 위에서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은 덤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앞에 누군가가 멀찌감치 서 있는 게 보인다. 다름 아닌 수민이다. 정장 여기저기가 찣기고 긁힌 그와 대조되게, 수민의 흰 로만칼라 셔츠와 흰 바지, 그리고 흰 구두는 햇빛을 받아 마치 자체적으로 빛을 발산하기라도 하듯 더욱 하얗게 보인다. 그에게 절대 다가오지 않겠다는 듯, 수민은 거리를 유지한 채,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남자를 향해 말한다.
“네 녀석은 딴에는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지금 너는 뭐냐? 한낮 내 앞에 구차하게 엎드려서 겨우 부지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기어가는, 그저 한 명의 비참한 녀석에 지나지 않아!”
수민의 일갈이 들리자마자, 남자는 온몸에 고통이 밀려오고 두 팔 두 다리가 모두 성하지 않은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이제 ‘위엄있는 모습으로 감히 자신을 노리는 추적자를 제거하는 일’은 둘째치고, 그의 바로 눈앞에 놓인 몇 분 뒤 미래조차 불투명해졌다. 그가 처음에 하려고 했던, ‘추적자를 직접 처치’하는 일은 둘째치고, 이제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지만 머릿속에서 자꾸 맴돈다.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까지 수백 년간 그가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허사가 되게 생겼다. 어떻게든, 그 상황만큼은 면해야 한다...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재빨리 손목에 찬 시계의 버튼을 누르려고 한다. 만약 누르기만 한다면, 그 누구라도 그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무위에 그치고 만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던 수민이, 재빨리 그의 손가락을 꺾어 버린 것이다.
“아... 으그극...”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는 참아 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수민의 눈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더욱더 비참해 보일 뿐이다. 그런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수민은 조금도 그에게로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의식적으로 두는 거리는 점점 더 남자에게서 멀어진다.
“꼴사납군, 그 모습.”
“으... 이 자식...”
“파디샤, 너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들을 제물 삼아 지금과 같은 불로불사를 누리고, 너만의 군대도 가질 수 있었지. 물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신이었고, 그것을 위해서 더 많은 이들을 네 앞에 제물로 바쳤지. 일부러 한 행성에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고, 실험체를 개발하다가 네가 지배하던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어. 그 모두를 네가 배후에서 조종하면서도, 지금껏 네 녀석은 대가조차 치르지 않고 지금까지 쭉 승승장구해 왔지. 수천 개의 이름 뒤에 숨어서!”
“으, 으윽...”
남자의 오른손은 벌써 2개째 손가락이 꺾여 있다. 손가락으로 누르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왼손 손목을 직접 들어 땅바닥에 내려치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수민에게 저지당한다. 수민이 그의 손목을 안쪽으로 꺾어 버린 것이다.
“수천 가지 이름을 사용하고 자신을 그렇게 신비주의로 철저히 포장하다 보면, 누구라도 못 찾을 줄 알았나 보군. 하지만 나 같은 녀석도 너를 이렇게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네 녀석이 너의 그 신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계속 표출하는 한, 너를 못 찾아낼 방법은 없기 때문이지!”
남자의 눈이 생명의 위협을 온몸으로 느낀 건지 한없이 파르르 떨린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손목시계의 버튼을 누르는 것, 아니면 소리라도 질러 보는 것뿐.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되지 않는다... 그가 해 보려는 어떤 시도도. 남자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한다.?
“으... 이건...”
설상가상으로 그의 숨마저 점점 조여져 오기 시작한다. 그런 남자를 몇 걸음 밖에서 지켜보며, 수민은 담담하게 말한다.
“됐다. 너를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윽... 끄으윽...”
남자는 있는 힘을 다해 손목시계의 버튼을 누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오른손 손가락은 꺾였고, 왼손은 경직되어 가고, 숨은 막혀 온다.
“결코 잊지 않았지. 내 아버지, 내 삼촌, 그리고 내 소중한 친구들까지, 너는 내게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네 녀석에게 모든 것을 정산받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남자는 온 힘을 다해 손목시계의 버튼을 누르려 한다. 정말,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머리를 들어, 시계에 내려치려 한다. 이것이라도 해야 한다!
시어하트어택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4 댓글

마드리갈

2021-12-08 14:08:54

한적한 교외와는 달리 도심의 뒷골목은 이상한 일이 많죠.

대학 신입생 때 일인데 누군가가 제 손목을 붙잡고 확 끌어당긴 적도 있었죠. 갖고 있는 소지품으로 그 자를 때려서 겨우 빠져나오긴 했지만 만일 그 이상한 자가 그냥 손목을 붙잡고 끌어당긴 수준이 아니라 흉기를 휘둘렀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여기에서 일어나는 수민과 파디샤의 싸움도 바로 그런 것. 수민은 그 파디샤에 근접하지 않고 상황을 유리하게 이끄는데, 파디샤의 손목시계의 버튼이 신경쓰이네요. 대체 무슨 흉악한 수단을 실행시키려는 건지...


평온한 번화가, 그리고 그 뒤에서 일어날 무서운 일의 전조...이 둘의 어색한 공존은 언제 끝날까요. 물론 후자의 쪽으로 가서는 안되겠지만...

시어하트어택

2021-12-12 20:11:24

고등학생 때인가 웬 불량배들이 저를 척 봐도 역 방향이 아닌 곳으로 데려가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한동안 큰길로만 다녔던 적이 생각나네요. 그 뒤로도 골목길은 좀 기피하게 되었고요. 아직도 그때만 생각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SiteOwner

2021-12-22 19:52:33

갑자기 뭔가 날아오는 것, 정말 싫지요. 게다가 상황판단이 진짜 안됩니다.

수민과 파디샤의 싸움은 정말 누가 먼저 죽기 전에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듯 싶은데 어떻게 될지. 죽으면 그 자체로 불행이고 살아남더라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여러모로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맞은 날짜도 기억납니다. 1997년 4월 17일 밤에 머리 오른쪽을 주먹으로 맞았습니다. 주먹을 휘두른 자는 술에 취한 채 난동을 부리던 대학생. 저는 한동안 정신이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바로 살의가 충천해 버렸습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시어하트어택

2021-12-26 23:22:15

그야말로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이죠. 스케일에 차이는 좀 있어도, 운명을 건 싸움이란 게 바로 이런 게 아닌가 합니다. 확실한 건, 작품 기준으로 다음날이면 모든 게 바뀌어 있을 거란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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