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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개척촌 테마거리를 출발하고 나서 약 20분쯤 후.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은 마치 습기가 100% 되기라도 하는 듯, 상당히 질퍽한 공기가 감돈다. 보통이라면 여행 일정을 일찍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는 해도 음침하기는커녕 잔뜩 들떠 있을 것이다. 저녁 시간에 뭐 하고 놀지, 아니면 어디 구경거리가 있을지 등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버스 안은 그렇지 않다. 버스 앞자리, 무인운전 중인 버스의 운전석에 앉은 미켈은 마치 뒤에서 뭔가 쫓아오는 듯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있기에 그런 것이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정면을 응시하는 미켈의 얼굴은 필요 이상으로 어둡다. 뒤에 앉은 일행도 말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의자에 얼굴이 가려져 있어 앞에서는 일행이 뭘 하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지만. 하지만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졸고 있는 니라차의 부모님을 빼면, 일행은 자고 있지도 않다.
“야, 너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냐?”
가운데쯤에 앉은 세훈은, 옆 창가에 앉은 현애를 흘끗흘끗 돌아보며 말한다.
“버스 안이 좀 조용하지 않아? 뭐라도 좀 이야기해 봐라. 자꾸 밖만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할 소리인데, 그건.”
현애는 세훈을 돌아보며 퉁명스럽게 말한다.
“어... 어?”
“뉴스도 안 보냐, 너는.”
“뭐야, 뉴스? 아니, 너는 지금 무슨 소리를...”
세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현애가 말하는 대로 인터넷을 열고는 포털에서 막 뉴스를 보려는데...
갑자기 세훈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더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는다.
“어... 엇, 뭐야!”
그 시간, 테르미니 퍼스트의 크루들이 탄 승합차는 테르미니 시내의 고속화 고가도로를 지나고 있다. 도로 위에는 벌써부터 정체가 시작된 모양인지, 차들이 느릿느릿 가고 있다.
“하, 미켈은 왜 또 전화를 안 받는 건지...”
전화를 손에 든 자라는 초조한 표정이다. 눈앞의 광경을 보면 더 그렇다. 도로는 차들로 빽빽이 차 있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야, 교통 상황 좀 보자. 지금 차가 왜 이렇게 막힌 건지 모르겠네.”
“그러게. 차가 벌써부터 이렇게 막힐 시간이 아니잖아? 아직 퇴근 시간도 안 됐는데.”
뒤에서 도레이와 비앙카가 한마디씩 하자, 자라는 운전석 옆에 있는 버튼 하나를 누른다. 그러자, 홀로그램에 나타난 것은...
[속보 : 도심지 시민들 시체화 현상... 현재 정확한 상황 파악중]
[시청, 긴급대책회의 소집... 주정부도 비상사태 1단계 발령 검토]
[정규방송 중단, 재난방송 편성. 시민 여러분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교통 상황 방송은 나오지 않고, 웬 긴급속보 방송이 나온다. 도로를 꽉 메운 CCTV 영상이 아닌 빨간 글씨의 자막이 화면의 아래쪽을 채우고, 화면 한가운데 나온 아나운서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지금의 상황이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울먹이는 것같이 들리기도 한다.
“아니, 뭐가 어떻게 되길래 비상사태까지 선포한다고 저러는 거야? 그것도 시 차원도 아니고 주 차원에서. 도대체 무슨...”
자라가 궁금증을 못 이기고 차창 너머로 보이는 고가도로 아래쪽을 본 순간.
“아... 아앗!”
“왜 그래, 자라?”
“밑에...”
“밑에가 뭐?”
자라와 같은 쪽 창가에 앉은 비앙카가 자라에게 되물으며 아래쪽을 내려다본 순간.
“으... 으아아아악!”
비앙카가 아래를 내려보자마자, 공포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른다. 그 아래, 비앙카의 시선에 바로 들어온 것은...
시민들이다. 그것도, 초점 없는 눈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시민들. 멀리서 봐서 자세히는 알기 힘들지만, 신체 여기저기가 뜯겨 나간 것 같고, 양손은 뼈가 드러나 보인다. 의복은 성한 데가 없다. 머리카락은 마치 야생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헝클어지고 풀어 헤쳐져 있다. 하지만, 비앙카가 그것만을 본 것이라면 그 정도로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체처럼 돌아다니는 시민들은 점점 무리를 지어 다니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키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성인들이지만, 어린아이들도 이따금 보이고, 얼핏 보니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성인 남자, 성인 여자, 그리고 아이 2명이, 시체의 행색을 하고는 돌아다니고 있다. 거기에다가,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그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다른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공격당한 시민들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든지, 아니면 걸어다니는 시체로 변해서 무리에 끼어 몰려다니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지밖에 없다.
“저... 저게 다 뭐야, 왜 저래, 저거!”
비앙카를 밀치고 창밖을 내다본 바리오 역시 차마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는지,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앉는다.
“아... 저... 저건...”
“야, 너는 또 왜 그래, 바리오? 대체 아래가 어떻길래 그러는 거야?”
“말도 마...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끔찍한 광경이 밑에 있어...”
“아니, 뭐가...”
“지금까지 시체를 수도 없이 봐 왔지만,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보다 더 끔찍한 건 처음이야. 아니, 저게 살아 있는 건가? 시체들이 걸어 다니는 거 아닌가...?”
“시체들... 시체들이 걸어 다닌다고 하면... 좀비...?”
좀비라는 말을 입에서 꺼내는 자라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이런 걸...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한편, 카사 데 토르나도 호텔 근처의 번화가. 분명히 퇴근 시간을 앞두고 인파로 조금씩 채워져야 할 거리이건만, 마치 사람만 모두 지워지기라도 한 듯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번화가 입구의 큰 길가에 세워진 차 안에, 두 사람이 있다. 제법 큰 키, 좀 짙은 피부, 정장과 캐주얼 어느 쪽에 입어도 어울리는 검은 재킷을 입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와 비슷한 키에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다. 여자의 표정은 은근히 여유로움을 품고 있는 반면, 남자는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는지 두 눈을 떨고 있다.
“라자 님,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잘 들으라고, 도르보.”
라자는 불안하게 말하는 도르보를 돌아보며 말한다.
“네가 지금까지 내 능력을 100% 사용한 상황을 못 봐서 그래.”
“아... 그렇죠. 그러고 보니까 제가 라자 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들어본 것밖에 없는데...”
“그야 당연하지. 직접 그걸 경험했다면 네 목숨은 여기 없었으니까. 지금 똑똑히 봐 둬. 지금 아니면 보기도 힘든 광경이니까.”
“그렇군요..”
도르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연다.
“그러면 라자 님, 지금 이 상황은 우리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습니까? 여유를 좀 더 가져도 될 때가 됐는데...”
“그래서 너는 늘 부족해, 도르보. 어서 거기 방독면이나 써. 나는 어차피 이게 내 능력이니까 면역이지만 너는 안 썼다가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
“아... 방독면, 네, 써야지요.”
도르보가 자리 아래쪽의 서랍을 이리저리 뒤져 가며 방독면을 찾지만, 나오지 않는다. 라자가 자기 자리에서 잠시 뭔가를 뒤지더니, 이윽고 반투명 재질의 방독면을 하나 꺼내서 준다.
“생각해 봐. 마이삼, 콜론, 질라니가 왜 당했는지 몰라? 방심했다가 그렇게 당해 버리는 거 아니야. 안 그래?”
“그... 그렇죠. 방심이야말로... 최고의 적...!”
“알았으면 옷이나 좀 갈아입어. 그렇게 입고 밖에 나가면 누가 봐도 이상하게 보이겠다!”
“아... 알겠습니다!”
도르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차 뒤칸에 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한편 테르미니 교외의 우주공항. 평일 퇴근 이전의 시간대지만 터미널 내부는 혼잡하다. 퇴근 시간이 일찍 시작되었다든가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혼란에 더 가까운 상태다. 어딘가에 열심히 전화를 거는 사람들, 한가운데 걸린 스크린을 유심히 떨리는 눈으로 보는 사람들, 그리고 얼굴을 파묻고 자리에 주저앉은 사람들까지.
“뭐야... 지금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지?”
막 터미널 출입문을 빠져나온, 품이 넓은 흰 옷을 입은 이레시아인 남자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갸우뚱거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평소의 공항 풍경은 아닌데...”
“맞아, 호렌.”
뒤에서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앞으로 나오는 하늘색 머리의 이레시아인 여자가 보인다.
“뉴스 좀 보라고. 지금 이거,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잖아.”
“네... 네? 레아 님, 그게 무슨...”
호렌이라고 불린 남자가 레아라고 불린 여자가 가리킨 쪽을 보니...
[속보: 원인불명의 바이러스 테르미니시 일대 전파, 시당국 긴급대책회의]
[속보: 주정부, 외출 제한 행정명령 발령 검토]
“뭐... 뭐죠, 이 뉴스들은 다?”
호렌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화면에 나오는 큰 헤드라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레아 님?”
“뭐긴 뭐야. 여기 올라가는 영상들을 자세히 보라고.”
레아가 홀로그램에 나오는 최신 영상들을 보여준다. [라이브:테르미니]라는 표제어를 달고 있는 영상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영상은 공포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아 보이는데, 초점 없는 눈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시민들이 어느새 군집을 이루더니, 사람들이 있는 마트로 들어가, 마트에 있던 사람들을 습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거... 혹시 여기만 이런 건가요?”
“다른 곳은 안 이러네... 테르미니만 이래. 믿지 못하겠으면 봐.”
레아의 말대로, 세라토를 포함한 다른 도시들의 실시간 영상에는 테르미니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사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이 이른바 ‘이세계’에 들어간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확연히,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다.
“레아 님, 다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안 돼.”
레아는 딱 잘라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발레리오 씨하고 한 약속이잖아? 일단은 연락을 취해 보자.”
“네... 네.”
호렌은 대답은 하지만, TV에 나오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상황 때문인지 잠시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전화를 들려고 해도 두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건지, 아니면 너무 충격을 받은 건지 전화를 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걸 보다 못한 레아가 목소리를 높인다.
“뭐 해? 빨리 전화해!”
“네... 네!”
호렌은 곧바로 전화를 집어 들고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울리고 몇 초 정도 후, 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린다.
“여보세요?”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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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마드리갈
2021-12-17 16:22:05
결국 대사건이 벌어지네요. 이렇게 좀비들이...이건 밤에 읽었다가는 잠을 못잘 것 같네요.
그런데 이 대사건이 유독 테르미니에 한정해서 벌어지고 있네요.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이런 행위가 옳지도 않을 뿐더러 아주 큰 대가를 치루어야 할텐데, 정말 답이 없네요.
전작에 등장했던 호렌이 나오네요. 밀수업 일에 손을 대었다가 크게 고생했던 그 호렌조차도 망연자실할 정도면...
시어하트어택
2021-12-19 22:00:08
사실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게 능력이라고 하더라도 우주선 같은 걸 동원하지 않는 이상 행성을 넘어가지는 못하죠. 우주공항까지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지금부터 시작되는 에피소드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쓰고 싶던 에피소드였습니다. 잘 묘사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SiteOwner
2021-12-24 23:09:15
갑자기 좀비 대량발생이라니...정말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게 보입니다.
테르미니에만 한정된 게 그나마 불행중다행인 것일지, 다른 지역이 무사한데 테르미니만 저 꼴이 났다는 게 더없는 비극일지, 판단이 서지를 않습니다.
역시 이레시아인의 사회는 신분제로 움직인다는 게 드러나는군요. 이게 여기에서 도움이 조금이나마 된 것 같습니다.시어하트어택
2021-12-31 18:48:34
그야말로 판타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 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넋을 놔 버리는 게 다수일 겁니다. 마치 저곳이 다른 세계로 들어와 버린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죠...